〈 424화 〉 자유의 나라, 아메리카
* * *
어둠 괴물의 공격 패턴은 굉장히 다양하다.
그러나 인류는 오랜 전투 경험을 통해 그런 괴물들의 패턴들을 어느 정도 정형화 시키고 대응책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S】 난이도의 던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S】 난이도의 던전에 등장하는 최상위 괴물들의 공격 패턴을 가장 많이 경험하고 정형화시킨 공격대가 바로 민국이 지휘하는 GGW 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면 브리핑 들어가겠습니다.”
【S 7】 난이도의 코디 그리즐리 던전.
원래 이 던전의 브리핑은 라비아 맥퀸이 직접 진행할 예정이었다. 임신 문제 때문에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미국 안보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공략인 만큼 공략이 진행되는 장소까지는 나설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코디 그리즐리 던전에서 등장하는 상위 어둠 괴물의 목록과 그 공략방법을 훑은 민국이 본인이 직접 브리핑을 진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간단한 이유였다.
‘예전에 잡아본 녀석들과 패턴이 다들 비슷하잖아?’
여러 나라 특히 인도 전쟁을 통해 민국은 GGW 멤버들과 함께 수많은 【S】 난이도의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었다.
비록 난이도가 너프된 버전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놈들의 공격 패턴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부상을 입지 않은 상위 괴물도 다수 상대해 본 경험도 있고 말이다.
게다가 민국에게 있어 【S】 던전에서 등장하는 괴물의 난이도는 그다지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모바일 우주소녀전쟁과 비교하면….’
【S】 난이도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어둠 괴물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또한 십이 재앙이라 불리는 괴물의 공략이 아무리 까다롭다고 해도 그 때의 정신 나간 개발진들이 만들어내었던 모바일 레이드 게임과는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다.
그나마 미노스나 메를린같은 경우는 대충 시나리오의 최종 네임드와 엇비슷한 분위기와 존재감을 풍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민국에게 WFK를 선물했던 우라디우스 수준은 절대로 아니었다.
“일단 첫 번째 네임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코디 그리즐리 던전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이 녀석은 9 등급 몬스터로 판정이 된 거대 야수곰입니다. 던전의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 녀석이면서도 던전을 공략하려는 공격대의 스펙 체크 네임드이기도 하죠.”
민국은 천천히 브리핑을 시작해나갔다.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지만, 딱히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수없이 많을 정도로 해봤던 경험들이기 때문이었다. 민국은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회의에 참여한 영웅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폈다. 브리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하나같이 브리핑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는 도브 캐머런도 예외는 아니었다.
‘간결하고 정확하네.’
도브 캐머런은 손가락으로 볼펜을 튕기면서 브리핑을 진행하는 민국을 바라봤다.
그녀의 영웅 인생 중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남자 공대장의 브리핑은 막 엄청나게 감탄이 나오거나 할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문대로 여러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짬밥이라는 것일까?
브리핑에 군더더기가 없기는 했다. 영웅들이 네임드와 싸우면서 주의해야 할 점, 지켜야 할 점에 대해서 딱딱 짚고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이건 마음에 드네.’
그리고 도브 캐머런은 그런 민국의 브리핑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간혹 상위 어둠 괴물들을 공략하는 공대장의 브리핑을 듣다보면 이야기가 구구절절 길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행이도 민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공대장이 직접 지시를 내리는 콜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굉장히 많은 편이었는데, 이는 한민국의 전투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건 아니었다.
‘어차피 공대장의 콜은 트라이가 점점 진행될수록 레이드에 참여하는 영웅 재량으로 넘어가게 되니까.’
초반에는 공대장이 조금 고생을 해야겠지만, 공략이 익숙해질수록 그의 부담 역시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편했다.
아무튼 공격대를 지휘하는 인물이 십이 재앙을 쓰러뜨린 한민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거기까지 자신이 신경 쓸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던전으로 이동하도록 하죠. 일단 저희들의 우선 목표는 던전의 1지구 공략입니다.”
코디 그리즐리 던전의 1지구에서 등장하는 네임드의 브리핑이 모두 끝나자 다들 던전으로 진입할 준비를 시작했다.
【S 7】 난이도의 던전답게 코디 그리즐리 던전은 3지구까지 존재하는 초대형 던전이었다. 그리고 임시로 구성된 공격대는 먼저 1지구 공략을 목표로 던전을 공략해나갈 생각이었다. 화이트 하우스 자체적으로는 올 클리어까지 최소 한 달을 예상하고 있는 장기 공략인 것이다.
‘얼마나 걸릴려나.’
민국은 머릿속으로 던전 공략의 대략적인 진행 흐름을 그려나갔다.
처음 상대해보는 네임드가 몇 있기는 했지만 공격 패턴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운 녀석들은 없어 보였다. 다들 비슷한 공격쯤은 경험해 본 적이 있는 괴물들. GGW 멤버들의 적응력을 생각하면 10 트 정도면 패턴에 익숙해지는 건 충분해 보였다.
하물며 화이트 하우스의 멤버들은 라비아 맥퀸의 지휘 아래에 던전 공략을 성공시켜 본 경험이 있기도 했다.
‘비록 한 번 뿐인 클리어 경험이지만, 경험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지.’
그렇다면 자신들과 함께 새롭게 합류한 도브 캐머런이 얼마나 빠르게 던전의 공략에 적응하느냐에 따라 공략의 진행 속도가 정해질 것 같았다.
‘이왕 시작한 거 빨리 끝내야지.’
민국이 미국의 【S 7】 던전을 공략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여자에게 선물을 할 실버급 마력의 결정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미국에 발이 묶이게 된다면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미국에 온 것은 어디까지나 라비아 맥퀸을 포함한 서양인들과의 뜨거운 썸을 즐기기 위해서였지 던전의 공략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민국을 포함한 공격대 멤버 및 지원팀과 함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있는 던전의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반가워요, 여러분.”
방탄 버스에서 내린 민국의 눈에 신기한 광경이 들어왔다.
도브 캐머런이 던전에 도착하자마자 자연스레 본인의 개인 방송을 켜는 모습이었다.
* * *
미국 영웅들에게 개인 방송은 본인들의 삶이나 다름없었다.
개인 방송을 통해 던전을 공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에 따라 받게 되는 후원금은 영웅들의 주된 수입원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도브 캐머런과 같은 쉴더급 영웅들은 최상위 레이드를 진행할 경우 그에 대한 방송권을 판매하기도 했는데, 일반적으로 8등급 영웅의 경우는 하루 10 번의 트라이를 기준으로 시청료가 무려 80달러나 되었다.
정리하자면 도브 캐머런의 방송을 만 명이 볼 경우 그녀는 수수료를 제외하면 거의 70만 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하루에 올리게 되는 셈이었다.
참고로 쉴더급 영웅이자 자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그녀의 방송은 평균 6,70만 뷰를 판매하곤 했다.
그리고 이는 화이트 하우스의 다른 멤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다들 뭐하고 계셨어요? 아, 여기가 어디냐고요?”
“안녕하세요, 화이트 하우스의 벨라 트윈스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던전을 공략하러 나왔습니다. 무려 【S 7】 난이도의 코디 그리즐리 던전인데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 클랜이 담당하고 있는 가장 어려운 던전 중 하나입니다.”
도브 캐머런이 개인 방송을 열자 화이트 하우스의 멤버들도 하나, 둘씩 방송을 켜기 시작했다.
그렇게 개인 멘트로 주변이 순식간에 소란스럽게 변하는 모습을 보며 김소정은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그렸다.
미국 영웅들 입장에서는 PPV 판매를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GGW 멤버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던전을 공략하면서 방송을 진행하는 일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이유였다.
트라이 중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리는 것을 공대장인 민국이 좋아할 리 없었던 것이다.
“…….”
소정은 조용히 입을 다물며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민국의 눈동자가 방송을 진행하는 미국 영웅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민국의 불벼락이 떨어질 것 같았다.
‘신기하네….’
하지만 그런 소정의 생각과는 달리 민국은 조금 황당한 기분으로 미국의 영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연스레 방송을 진행하는 영웅들의 모습은 민국이 예전 세계에서 봤었던 개인 BJ들을 보는 것 같았다. 예전의 세계에서도 대형사건 사고가 생길 때면 지금처럼 핸드폰을 앞으로 내민 방송인들이 잔뜩 몰려들곤 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방송을 진행하는 이들은 이 세계의 안전을 책임지는 영웅이라는 점.
그리고 방송을 송출하는 기계가 핸드폰이 아니라 굉장히 값 비싼 드론 카메라라는 사실이 달랐다. 이어서 드론 카메라를 바라보던 민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저거 던전에서도 작동이 되나?’
보통 강력한 수치의 마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던전에서는 기계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술의 발전으로 마력 수치가 낮은 던전에서 작동되는 기계를 만들어냈다고 하지만…. 지금 자신들이 진입해야 할 던전은 무려 【S】 난이도의 던전이었다.
그렇게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영웅들과 그녀들의 모습을 송출하는 드론 카메라를 바라보는 민국의 행동에 화이트 하우스 관계자가 주춤주춤 민국에게 다가갔다. 한민국 공대장이 던전을 공략하면서 개인 방송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건 제법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혹시 PPV 방송 진행이 거슬리시면 중단하라고 할까요?”
그렇게 되면 그와 관련해서 클랜 측에서 영웅들에게 여러 가지 부분을 양보해야겠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던전의 공략이었다. 그런 관계자의 물음에 민국이 고개를 저었다.
“아, 괜찮습니다.”
“네, 네? 아…. 괜찮으신가요? 그러면 영웅들이 계속 방송을 진행해도……?”
“트라이에 집중만 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그 던전 내에서도 방송의 송출이 가능한 겁니까?”
“…아. 원래는 불가능했습니다만.”
관계자의 설명이 빠르게 이어졌다.
정리하자면 실버급과 퍼플급 마력의 결정을 섞어서 만든 드론 카메라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다.
기존부터 연구가 되었던 것인데 인도 원정을 통해 각인된 실버급 마력의 결정의 여유가 몇 개 생겼고, 그것이 만들어내기 시작한 기술 문명의 발전인 셈이었다.
“그렇구나….”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민국은 신기한 눈동자로 드론 카메라를 바라봤다.
예전에는 던전에서 통화를 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는데 몇 년 사이에 개인 방송까지 송출할 수 있다니…. 역시나 인간 기술은 그 필요에 따라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화이트 하우스의 관계자는 이어서 던전 공략과 관련된 초상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줬다. 방송을 통해 얻는 수입의 60%를 GGW 멤버들에게 분배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에서 표준적으로 진행되는 분배 비율보다 조금 더 좋은 계약이라고 했다.
‘거부한다면 모자이크로 처리가 되겠지만….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겠지.’
이참에 미국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민국이 개인 방송을 허락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레이드에 집중한다는 전제 조건하의 일이었다. 방송 때문에 레이드에 지장이 간다? 그러면 당장 방송을 종료시킬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민국은 개인 방송을 진행하는 이들을 불러 한 번 더 그 점을 주지시켰다.
“넵!”
“걱정마세요. 방송 때문에 제 임무에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트라이에 들어가면 바로 마이크 끌 거예요.”
개인 방송 때문에 던전 내에서 벌어졌던 멍청한 사건 사고도 많았던 모양인지 그 점에 대해서는 영웅들도 바로 수긍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공격대의 던전 진입이 시작되었다.
코디 그리즐리 던전은 커다란 산맥에 온 것 같은 깊고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던전에 등장하자마자 일행들을 반긴 것은 깊은 산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커다란 뿔을 지닌 사나운 사슴, 거대한 덩치를 지닌 곰과 같은 야생 동물이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외형이기는 한데….
●크기가 조금 많이 크지 않아?
●눈깔도 돌아간 게 병 걸린 거 아니야? 곰 눈깔이 원래 저렇게 새빨개?
그냥 보기만 해도 평범한 동물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괴물들.
방송을 보는 일반인들에게는 공포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놈들이겠지만 민국을 비롯한 영웅들에게 이런 녀석들은 식후 운동거리도 되지 않는 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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