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431화 (431/486)

〈 431화 〉 동아시아 연합군

* * *

어둠 괴물이라는 공허의 존재가 인간계로 넘어오면서 발발한 전쟁.

전쟁 초반 인류는 어둠 괴물을 상대로 연전연패를 거듭해나갔다. 상식을 초월하는 강함과 공허 마력을 전부 소모시키기 전까지는 사라지지도 않는 던전 그리고 던전에서 퍼져나가는 오염된 대지까지.

전쟁이 시작된 후 5년간, 인류는 난생 처음 보는 괴물들을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며 수많은 희생자를 내야했다. 그 때 사망한 이들의 숫자가 인류 전체의 반이 넘었으며 남자는 80% 이상이 죽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였다.

그 후 영웅이라는 존재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니, 재능 있는 영웅들이 본인들의 능력을 개화시키기 전까지 버티지 못했더라면 인류는 진즉에 멸망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인류의 생명이 연장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은 어둠 괴물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손을 잡고 인류를 공격했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해서 괴물들의 활동 구역이 확연하게 티가 날 정도로 나뉘어졌지.’

어느 정도 인간들을 몰아내었다 생각하자 십이 재앙들끼리 본인들의 영역에 둥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전 세계에 십이 재앙의 둥지가 만들어지고, 재앙의 활동이 줄어들자 인류는 십이 재앙이 일으키는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내는 것을 최선으로 삼아 방어전을 이어나갔다.

‘훗날 쉴더급 공격대가 등장하면서 잃어버렸던 땅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잠시 품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십이 재앙과 심복급 괴물은 그리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몇 번의 대규모 전투가 있기는 했지만, 인도 전쟁에서 GGW 공격대의 손에 미노스와 메를린이 쓰러지기 전까지. 인류는 십이 재앙을 상대로 조그마한 상처조차 주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세계 곳곳에 십이 재앙의 둥지가 생겨나면서 아시아는 지구의 화약고가 되어버렸다.

크기가 가장 크고 인구가 가장 많은 대륙인 까닭에 아시아에 자리를 잡은 십이 재앙만 하더라도 무려 넷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활동하는 파푸니르와 리바이어선까지 포함시킨다면 십이 재앙의 반수가 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셈이었다.

덕분에 최근의 큼지막한 던전 브레이크는 전부 아시아에서 발생했으니 진짜 저주받은 대륙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의 미노스가 인도 북부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무려 일곱의 재앙급 세력이 아시아에서 활동한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땅으로 편했죠. 전부 민국님의 덕분입니다.》

‘낯 부끄럽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그리고 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십이 재앙들은 전부 GGW 공격대의 손에 의해 공략 당했다.

가루다는 이제는 반쯤 수하가 되어 매 달 골드급 마력의 결정체를 바치는 신세가 되었고, 갑자기 인도 북부에 둥지를 만들면서 깽판을 부렸던 미노스는 공허의 벽에 갇혔다.

인도의 터줏대감이었던 메를린은 공허와의 연결을 끊고 생명의 마력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부하로 재탄생, 서해의 섬에서 찬드라니암과 함께 본인의 힘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바이콘 뿐인데…….’

아니, 따지고 보면 한 녀석이 더 있기는 했다.

드넓은 시베리아 삼림지대에 잠들어 있는 스베틀라야.

하지만 호랑이와 흡사하게 생긴 녀석은 전쟁 초기에 잠깐 모습을 드러내었을 뿐, 시베리아 삼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곳에서 자신의 둥지를 만들고는 본인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화산은 화산인데 휴화산이라고 해야 할까?

“정작 호랑이도 시베리아는 춥고 척박해서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조금 독특한 녀석이었다.

실제로 십이 재앙의 손에 의해 죽은 이들 중 스베틀라야의 세력에 의해 사망한 인간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동물들의 피해가 더 컸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였다.

물론, 십이 재앙답게 그 위험성은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의 둥지에서 벗어나지만 않을 뿐, 놈은 자신의 영역으로 침입했던 러시아의 공격대 아홉 개를 잡아먹은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둥지의 근처에만 접근해도 어둠 괴물들이 몰려든다고 하니, 그 근방은 완전 스베틀라야의 왕국이라 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그 녀석도 상대해야 하겠죠?》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스베틀라야보다는 바이콘이 먼저니까.’

고비 사막에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가루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신경이 쓰이던 녀석이기는 했다.

다만, 인도의 상황이 워낙 급박했기에 녀석을 그냥 두었을 뿐. 아무튼 전에 가루다가 했던 말에 의하면 놈이 고비 사막에서 던전 브레이크를 터뜨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했던 적이 제법 오래되었으니 슬슬 일이 터질 때가 됐기는 했다.

‘고비 사막에서 발생하는 던전 브레이크라…. 골치는 아프겠네.’

인명 피해는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애당초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브레이크를 진압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터였다. 고비 사막 자체가 굉장히 넓은 땅이기도 했지만, 사막의 가혹한 환경 때문에 군대가 움직이는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공격대의 활동은 외부의 공격 때문이라도 군대의 도움이 필수였다.

‘결국 공략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던전 브레이크가 연달아 터지겠지.’

인도처럼 쉽게 임시 던전을 공략할 수도 없었다. 그 때는 카우킹과 무플런이라는 두 세력의 충돌로 인한 행운이었을 뿐이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놈 역시 그 점을 노리고 사막에 던전을 만들었을 테니까요.》

‘브레이크가 일어날 던전의 규모는 아무래도 【S】 난이도일 테고.’

《가능성이 높습니다.》

‘머리 아프게 됐네.’

뿌우의 말을 들으며 민국은 낮게 신음했다.

고비 사막에서 던전 브레이크 터질 경우 그것을 빨리 정리하지 않는다면, 아시아 전체가 좀비처럼 불어난 괴물로 인해 쑥대밭이 될 게 불을 보듯 뻔해 보인 까닭이었다.

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퍼져 나가는 어둠 괴물들은 러시아에도 영향을 미칠 거고, 정말 재수가 없으면….

‘스베틀라야도 움직일지 모르지.’

일단은 가루다를 만나서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원정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한 1년은 푹 쉴 생각이었는데…….”

인도 원정이 끝난 지 반년이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다시 야전에서 뒹굴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미녀들이 옆에 잔뜩 있어서 다행이지 그게 아닌 세계였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할 것 같았다.

* * *

가루다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며칠 전, 알에서 순혈의 슈가빈이 탄생했기 때문이었다. 인간 남자의 정을 받아 알을 낳았기 때문일까? 슈가빈 특유의 새빨간 붉은색 깃털이 아닌 핑크빛에 가까운 깃털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천만 다행이야.”

끊길 줄 알았던 슈가빈의 명맥이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게 된 까닭이었다.

아무튼 한민국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남자의 정으로 태어난 자식은 그냥 봐도 꽤나 대단한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대로 잘만 자란다면 재앙급에 필적한 수준의 아이가 되겠지.”

덕분에 가루다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강력한 자식의 탄생은 곧 슈가빈의 족의 성장을 의미했으니까. 때문에 가루다는 둥지의 발전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 훗날 자식이 한 축이 되어야 할 둥지의 상태가 형편없다면 어미로서의 낯이 없었다.

아무튼 한민국 아니 주인님이라 불러야 하는 존재와 마주치게 된 것은 슈가빈 입장에서는 큰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순혈 슈가빈이 모조리 사망하면서 공허도 아닌 인간계라 불리는 이상한 차원에서 종족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어떻게든 그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흐, 흐응….”

그게 아니더라도 가루다는 민국에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달라붙은 경향이 강했지만, 미노스와 메를린을 제압하는 그의 강인함과 재앙급 존재인 자신을 쉽게 임신시킬 정도로 뛰어난 정력에 점점 빠져든 것이다.

‘아무튼 우리 사이에 딸도 태어났으니….’

가루다는 내심 민국을 자신의 남편으로 여기고 있었다.

종은 다르지만 충분히 남편에 어울리는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별 문제는 없었다. 더욱이 그의 강인한 육체와 커다란 수컷의 성기는 그녀를 푹 빠지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흐, 흐으….”

지금도 자신의 몸을 탐하던 수컷의 움직임을 생각하니 몸이 절로 달아올랐으니까. 다만, 아주 매력적인 수컷답게 주위에 암컷들이 많은 것이 살짝 흠이기는 했지만….

“종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지. 나는 가슴이 아주 따뜻한 슈가빈이니까.”

그의 정을 품어서 순혈 슈가빈의 알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가루다가 믿을 건 오직 민국 뿐이었다.

민국의 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일하게 이 세계에서 슈가빈을 번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때문에 민국이 새의 탑을 방문한다는 말에 가루다는 부리나케 민국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가 새의 탑을 방문하는 목적은 바이콘 때문이었다.

‘나 때문은 아니지만….’

아무튼 가루다는 자신이 인정한 수컷이 그리고 자신에게 정을 주었던 수컷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때문에 민국이 오기 전부터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어, 어서 오세요!”

“……?”

새의 탑 1층에 도착하자마자 자색의 눈동자를 가진 여성체가 민국을 반겼다. 가루다였다.

《…가루다가 맞는 것 같은데, 갑자기 왜 저래?》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뿌우의 목소리. 민국도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다. 묘하게 반기는 느낌인데?’

《민국님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걸까요?》

아오자이라고 했던가?

베트남의 섹시한 전통복을 입은 가루다는 살짝 수줍은 얼굴로 자신을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민국은 이런 가루다의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힘드셨죠?”

재빠르게 옆으로 다가온 가루다가 자연스레 팔짱을 끼며 민국의 팔을 잡아 끌었다.

이상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친근한 가루다의 모습에 절로 헛웃음이 나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런 장소에서 바이콘과 관련된 대화를 나눌 것은 아니었기에 민국은 못 이긴 척 가루다의 손에 이끌려 탑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움직여 탑의 내부를 살펴보았다.

“탑 내부가 많이 달라졌는데?”

예전의 후줄근했던 모습은 보이지 않는 탑의 내부는 못해도 6,7 등급의 영웅들은 되어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둠 괴물들에 의해 삼엄한 경비를 자랑하고 있었다.

달라진 1층으로 수호자도 눈에 띄었다.

십이 재앙의 둥지답게 녀석은 못해도 쉴더급 공격대는 되어야 공략이 가능할 것 같았다.

“이게 전부 민국 아니 주인님의 덕분이죠.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옅게 화장한 얼굴이 미소를 지어 냈다.

골드급 마력의 결정을 상납하는 것이 쉽지 않은 걸까? 이상할 정도로 저자세로 그리고 과도하게 친근한 가루다의 모습에 민국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암고양이 같은 년. 민국님, 저를 소환해 줄 수 있나요? 이상한 꿍꿍이를 품고 있는 저 년에게 본인이 어떤 신분인지 제대로 알려줘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큐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짜증이 잔뜩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나도 그러고 싶기는 한데….’

민국은 아쉬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카오스의 도우미인 뿌우와 큐우♡는 자신이 부르고 싶다고 해서 쉽게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퀘스트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 지금은 퀘스트를 드릴 수가 없는데. 으, 으으…….》

그런 민국의 대답에 이빨을 으득 갈아대던 큐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처럼 사라졌다.

왠지 나중에 가루다가 있을 때 소환하면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 시간이 지금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탑의 10층으로 올라서는 동안 민국은 탑의 새로운 네임드들과 달라진 환경을 볼 수 있었다.

[꺄악! 꺅! 꺅! 꺄약!]

또한 자신의 정으로 탄생한 순혈 슈가빈도 만날 수 있었다. 의외로 귀엽게 생긴 녀석이었다.

“어, 어떠세요?”

“귀엽네? 손으로 살짝 만져 봐도 되나?”

“네, 네! 얘도 주인님의 손길을 반길 거예요.”

이상할 정도로 좋아하는 가루다의 반응.

아무튼 본능적으로 아빠의 존재를 느끼는 것일까? 슬쩍 손을 가져다대자마자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던 녀석이 얼굴을 기대는 것이 느껴졌다.

“인간 형태는 못하는 거야?”

“아직은 너무 어려서요. 그래도 인간의 기준으로 일 년 정도가 지나면 할 수 있을 거예요. 인간의 언어로 자유자재로 사용할 테고요.”

“…엄청나게 빨리 자라네.”

어쨌든 자신의 정으로 탄생한 녀석이라 그럴까? 병아리보다 조금 큰 녀석은 생각 이상으로 순한 모습이었다. 나중에 소영이랑 지호랑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 여기 앉으세요, 주인님.”

그렇게 탑의 10층에 도착하는 동안, 민국은 가루다를 통해 탑의 달라진 부분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마치 가루다라는 가이드를 두고 새의 탑 관광을 온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탑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옥좌 위에 앉았을 때, 가루다가 자신의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그…. 주인님을 위한 마지막 서비스가 있는데…….”

의도가 훤히 보이는 모습.

가루다를 향해 입 꼬리를 들어 올린 민국은 탑의 옥좌에 몸을 기대었다.

“마지막 서비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받아야지.”

그리고는 손가락을 짧게 까닥였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나오는 데 녀석이 원하는 것 하나 들어주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섹시한 복장에서 나오는 그녀의 몸을 보고 살짝 끌린 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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