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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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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큼한 레포리데
“어둠은 모든 것을 무너트리리라. 알량한 네 육체도 말이지.”
8등급 괴물이자 던전의 마지막 네임드인 와라크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색의 구체가 모습을 드러내며 영웅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집중해! 파장에는 조금도 스쳐선 안 돼!”
와라크가 만들어낸 구체의 속도는 영웅이라면 쉽게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릿했다. 설령 구체의 마력에 휩쓸린다 하더라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할 정도로 위력도 약했다.
문제는 구체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보라색의 파장이었다.
와라크의 공략을 시작하면서 민국은 녀석의 구체 공격을 힐러진의 보호막과 힐로 버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스펙으로 녀석을 찍어누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구체의 파장에 얻어맞는 이후 생각을 바꿔야 했다.
‘구체 데미지는 진짜 별거 아닌데….’
영국 영웅 협회가 건네준 정보에 의하면 와라크가 사용하는 구체의 파장에 휩쓸리면 영웅의 신체 저항력이 낮아진다고 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체에 마력을 품으면서 튼튼해진 영웅의 육체가 일반인처럼 물렁해진다는 것.
다시 말해 구체의 파장 공격을 허용하고 나면 이후에 이어지는 와라크의 공격을 버텨내는 게 불가능했다.
《10등급 영웅은 다를 줄 알았는데 말이죠.》
‘나도 그럴 줄 알았지.’
하지만 와라크에게 몇 대 맞고 나니 구멍이 숭숭 뚫린 스펀지가 따로 없었다. 현아와 타냐의 생명력이 순식간에 삭제가 될 정도였으니 다른 영웅등를 두 말 할 필요가 없었다.
그나마 두, 세 명의 저항력이 낮아졌다면 아군 힐러진의 힐 집중으로 감당해낼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버티는 게 불가능했다.
궁극기를 사용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정도.
‘원탁의 기사단은 한 명 이상의 팀원이 파장에 휩쓸리면 다시 트라이에 들어갔다고 했던가?.’
기껏해야 8, 9 등급의 영웅으로 구성된 그녀들의 멤버를 생각하면 그런 선택이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로 녀석의 구체가 거는 디버프는 위력적이었다.
물론, 안 맞으면 그만.
반대로 생각하면 구체의 파장에 휩쓸리지만 않는다면 녀석의 공격은 쉬어가는 패턴이라 할 정도의 공격에 불과했다.
“아, 야! 이쪽으로 온다!”
“아, 왜 이리로 오는 건데?! 나 딜량 떨어진단 말이야!”
자신들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는 구체의 움직임에 김소정과 시라누이 마이가 재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와라크의 어그로를 잡고 있는 메인 탱커 역시 마찬가지. 굳이 지시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팀원들이 딜을 잘 우겨넣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로 네임드를 유도하는 모습이었다.
“크읏….”
인간 영웅들의 움직임에 와라크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기껏 놈들을 약화시킬 수 있는 구체를 만들어 내었건만 눈앞의 인간들은 아주 당연하게 자신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그것도 벌써 몇 번이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후우웅!
와라크가 스탭을 밟는 한 영웅을 향해 지팡이를 내리쳤다.
흰색과 붉은색이 섞인 갑주를 입은 방패를 든 여성이었다. 그리고 열 명의 인간 영웅들 중 그에게 가장 위협적인 마력을 내뿜는 대상이기도 했다.
콰앙!
그렇게 전력을 다해 무기를 휘둘렀건만.
커다란 바위도 깨부술 수 있는 자신의 공격을 눈앞의 조그마한 인간 여성은 어렵지 않게 방패를 들어 막아내고 있었다.
“건방진 인간…!”
콰앙! 쾅! 쾅! 콰아앙!
와라크는 연속으로 지팡이를 내리쳤다.
그의 위력적인 공격에 지면이 주저앉고 여성의 무릎이 꺾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름끼치는 마력이 근방을 휘감는 순간 주저앉았던 자세가 무너졌던 여성은 어느새 꼿꼿이 몸을 세우고 있었다.
이빨을 꽉 깨물고 있던 얼굴도 어느새 편안해져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놈!”
부상이 치유된 탱커의 모습에 와라크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민국을 포함한 힐러진을 바라봤다. 열심히 공격을 해서 바퀴벌레 마냥 되살아나니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시선만으로는 안전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 힐러들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영웅들도 몬스터의 눈빛에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와라크 마나 체크해!”
“18%요!”
“곧 마력 저장소로 되돌아갈 거야! 경로 방해할 준비 해!”
“궁극기 올릴까요?!”
“이번에 패스! 다음 턴에 준비해!”
복잡한 전투 속에서 민국은 녀석의 다음 패턴을 예상하며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년을 읊는다고.
레이드 경험이 쌓일 대로 쌓인 GGW의 멤버들은 직접적으로 와라크를 공략한 횟수가 몇 번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빠르게 녀석의 공략 패턴에 적응하고 있었다.
‘영국 영웅 협회가 건네 준 공략본도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처럼 【A - 1】 난이도의 던전 공략을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어지까지나 아군의 높은 스펙과 많은 전투 경험 덕분이었다.
어쨌든 와라크를 쓰러뜨리고 나면 근방의 임시 던전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이 【A - 1】 난이도의 던전은 주위의 임시 던전에 공허 마력을 공급하는 마력 탱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임시 던전들이 우르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임시 던전이 평소보다도 더 약화되는 것 정도는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면 기량이 떨어지는 공격대도 충분히 상위 난이도의 던전 공략을 진행할 수 있었다. 부활석이 충분하다면 말이다.
* * *
“와, 잡았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얼마나 걸렸지? 3일은 안 됐지?”
와라크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영웅 패드에서 기계음이 터져 나오자 주위가 시장통 마냥 시끄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민국도 와라크가 쓰러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어렵지 않은 상대였지만, 그래도 공략을 진행하면서 실수가 나왔던 터라 공격대 멤버들 중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최유나와 정예린.’
둘의 공통점이라면 원거리 딜러.
하지만 민국은 둘의 죽음에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
포지션과 관련해서 실수가 나오기는 했지만, 둘의 죽음은 엄밀히 말하자면 와라그의 발악에 의한 억까 수준의 공격이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었다.
“반 쯤 재수가 없긴 했지.”
“그래도 둘은 탈락인 거 알죠?”
“탈락? 아….”
어느새 다가온 김소정.
빛나는 구슬만이 주위를 밝혀주는 전장의 중심에서 적발의 미녀가 머리카락을 귀로 넘기며 민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이 억울해 하지 않을까요?”
특히나 정예린은 죽기 직전까지 전체 딜량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래도 죽은 건 죽은 거. 그리고 그렇게 라이벌이 떨어져 나가야 나도 좀 즐길 수 있지.”
하지만 소정은 냉정했다. 그리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움직인 그녀의 손길이 민국의 허벅지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고혹적인 목소리가 민국의 귀를 울렸다.
“게다가 이번 던전 공략은 조금 삭막했잖아, 요?”
평소라면 던전을 공략하면서 짧게라도 뜨거운 시간을 갖거나 못해도 모든 여성들에게 힘을 줄 겸 자지를 입에 물려줬던 민국이었다. 하지만 이번 던전 공략은 그 무엇보다도 클리어 타임이 중요했던 터라 딴 짓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것을 삭막했다고 말하면…. 다른 공격대들을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트라이도 끝났는데 편하게 말해도 돼요. 어쨌든 그 둘이 빠지면 던전 공략의 MVP는 소정 누나다?”
“그렇지 않을까? 와라크 딜량도 1위고 그 전 네임드들을 상대로도 꽤나 잘했는데?”
《인정합니다.》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를 무시하고 민국은 영웅 패드를 열었다.
소정의 태도가 너무나도 자신만만했던 터라 전투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잘 피하고 잘 때리고. 그리고 정해진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고.
‘에이스가 따로 없었네.’
그만큼 이번 던전 공략에서 김소정은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그 누구에게 물어도 던전의 공략 기여도가 가장 높은 멤버를 꼽는다면 다들 김소정이라 말 할 정도로 말이다.
“후후….”
소정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민국의 가슴 부위를 더듬다가 아래쪽으로 향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눈치를 보는 듯 과감하게 자지를 붙잡는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허락이 떨어지면 팬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을 기세였다.
“아, 아….”
“후우, 수련 부족입니다. 마지막에 콤보만 끊기지 않았더라면….”
“딜량만으로 평가하는 건 아니지. 레이드의 꽃은 탱커 아니야? 내가 아니면 괴물들의 공격은 누가 막아주는데?”
일찌감치 민국에게 침을 바르는 소정의 행동이 마음이 들지 않는 모양인지 여기저기서 투덜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팀의 맏언니라는 포지션도 포지션이었지만 그녀의 공략 기여도가 대단히 뛰어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매럭적인 미녀가 자신을 안아달라고 애원하는 상황.
‘그래도 오늘은….’
던전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그녀를 안고 싶었다.
실은 중국의 일이 신경이 쓰였다. 던전에서 광란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중국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다행이 와라크의 【A - 1】 던전을 끝까지 공략한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말이다.
[샤오란 : 지금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영국을 간다고? 설마 그 쪽의 일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
[한민국 : ㄴㄴ. 브레이크 터지면 바로 중국으로 날아갈 거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방어선이나 제대로 구축해 놔요.]
[샤오란 : 아니, 방어선이 문제가 아니라…. 후. 아무튼 이번 일은 나한테 빚진 거야.]
[한민국 : 네? 빚이요? 갑자기?]
그래도 중국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GGW 공격대의 영국 지원이 섭섭했던 모양이었지만.
아무튼 던전 브레이크를 몇 번이나 경험했던 중국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도 여러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현정 : 세계 영웅 협회와 중국 정부의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고 해요.]
때문에 못해도 세 개 군단급 병력이 고비 사막 전선에 배치가 될 예정이라고 했다.
랭커 수준의 공격대도 열 곳 이상이 투입될 거라고.
어둠 괴물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인류가 경험했던 던전 브레이크 중 가장 상위 난이도의 던전이 폭발하는 브레이크인데다가 현재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도 있던 까닭에 각국에서도 심각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 그러면 여기서 마무리 짓고 돌아가도록 하죠.”
“아, 아아….”
“누나는 호텔가서 박힐 준비 하고요.”
아쉬운 표정을 짓는 소정을 향해 민국이 말했다.
공략 도중 지젤과 짧게 회포를 풀기는 했지만, 카오스에 의해 이 세계로 온지 수 년. 이제는 한 명의 여자를 상대하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GGW의 멤버들도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민국의 과감하고 도발적인 말투에 익숙해져 있었다.
민국의 말에 입꼬리를 올린 소정이 팔로 자신의 가슴을 받치며 기대감을 담아 말했다.
“그럼 오늘 소현이 동생 만들어 줄 수 있나?”
“……뭐. 노력해 보죠.”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김소정을 대체할 수 있는 멤버가 없으니 그녀를 임신시키는 일은 패스. 그래도 기대를 깰 수는 없으니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안에 정액을 싸줄 생각이었다.
* * *
GGW 공격대는 본인들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어둠 괴물 세력의 요충지이자 골칫거리였던 와라크의 【A - 1】난이도 던전을 사흘도 되지 않아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던전 타이머가 초기화 된 【A - 1】 난이도의 던전은 소멸된 네임드들을 다시 재창조하기 위해 던전이 보유하고 있던 공허의 마력을 대량 사용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브레이크로 생겨난 임시 던전에 공급되는 공허의 마력이 끊겼고, 유럽 연합의 영웅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스윈던은 【B - 1】로, 트랜스미어 팀은 언덕 왼쪽에 있는 【A - 8】 던전으로 보내!”
“대령님! 브래드포트 쪽에서 탱커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하는데요?”
“젠장, 던전 난이도 두 개 낮춰서 보내! 팀에 예비 탱커는 있을 거 아니야?!”
영국 영웅 협회는 국내의 모든 영웅 길드를 소집했고, 1, 2군과 리바이벌 팀을 가리지 않고 임시 던전의 처리에 투입시켰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 전황이 점점 더 나빠질 거라고 예상한 것이다.
원탁의 기사단과 함께 투입된 각국의 쉴더급 공격대들도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쉴더급 공격대 하나하나가 작전이 시작된 당일에만 서너 곳의 【A】 난이도 던전을 쓸어버리는 성과를 올린 것이다. 마력 공급이 끊기면서 위험성이 약화된 임시 던전이라 해도 놀랄 만한 공략 속도였다.
하지만 어둠 괴물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S】 난이도로 추정되는 던전 발생!”
“던전 네임드로 레포리데 종족 발견!”
“버니! 버니의 심복입니다!!!”
인간 영웅들이 기세를 타고 전황의 균형을 깨뜨리려고 하자 버니는 인간 전력의 중심부에 떡하니 【S】 난이도의 던전을 만들어내었다. 흐름을 끊는 날카로운 타이밍이었다.
“현재 대기 중인 쉴더급 공격대는?”
“철십자와 원탁의 기사단이 있습니다만….”
“철십자 쪽에서 공략에 나설 가능성은 많지 않겠지?”
“아무래도….”
어둠 괴물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대하고 있다지만, 발 등에 불이 떨어진 나라는 직접적으로 브레이크가 터진 영국. 타국 입장에서 자국의 최정예 전력을 위험 지역으로 투입 시킬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사흘 만에 【A - 1】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고 휴식에 들어간 GGW 공격대에게 부탁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어쩔 수 없군. 히어로 아델에게는 내가 직접 이야기하도록 하지.”
지금의 기세를 늦출 수 없던 영국 영웅 협회는 버니의 심복이 포함된 【S】 던전의 공략은 원탁의 기사단에게 위임했다. 그리고 사고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