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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폭풍
동아시아 연합군 본부.
중국군을 주력으로 한 브레이크 임박 던전의 공략 작전이 시작된 지 네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 동안 장교들은 분주히 통신을 연결하고 돌아다니며 작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발견된 던전의 공략 난이도는 굉장히 쉬운 편이다.
하지만 던전이 위치한 지역이 바이콘의 세력권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했다. 언제 바이콘의 주력이 혹은 재앙 본인이 직접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통신을 받은 한 중국 장교가 벌떡 일어나더니 당황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장교들의 시선이 모두 그리로 향했다.
"뭔가 문제가 터진 것 같은데요? 이러다가 우리도 작전에 투입되는 거 아닙니까?"
돌아가는 분위기를 살피던 유혜령 준장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고비 사막 전선에는 대한민국의 7군단도 참전하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문제인 만큼 한국도 남 일 보듯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던 까닭이었다.
특히 한국군은 예전 청두시 브레이크 때 주력군을 한 발 물러서 배치했던 까닭에 이번에는 직접 병력을 투입하라는 압박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야."
최희 군단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 어둠 괴물과 싸운다지만 막상 전투가 눈앞에 닥치자 그녀 또한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들의 한 마디 및 결정에 따라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이 오가기 때문이었다.
GGW 를 포함해 강력한 공격대가 여럿 합류했다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영웅들이 배치될 전선보다는 그렇지 않은 전선이 훨씬 많았다.
'메모리아를 포함해 세 곳의 랭커 클랜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둠 괴물의 공격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문제는 공격의 규모가 얼마나 될 지 쉽게 예상할 수가 없다는 것.
더 큰 문제는 괴물들의 공격 규모와 상관없이 강력한 개체가 공격에 포함되어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파악이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런 공격은 결국 공격대가 나서야만 인명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전 지역에서 문제가 터졌다.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작전의 실패가 너무나도 빨랐다.
보아하니 중국의 공격대가 【A】 난이도 던전을 공략하던 도중 던전의 마력이 한계치를 넘으면서 브레이크가 터져버렸다고 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브레이크가 임박한 던전이라 해도 공격대가 던전 내부에서 공략을 진행하고 있다면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러시아의 장교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황당함과 함께 브레이크를 터뜨린 중국군에 대한 한심함이 섞여 있었다.
공격대가 진입한 던전은 침입자를 방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마력을 사용한다.
그 말은 즉, 브레이크가 임박한 던전이라 해도 공격대가 투입하면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던전 공략에 실패해 영웅의 마력을 던전이 흡수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번 【A】 난이도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 내에서도 최상위 실력을 지닌 공격대가 투입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만…. 공격대가 던전의 공략에 실패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정보가 잘못되었습니다. 분명 【A - 9】 난이도의 던전이라고 생각했는데…. 공략을 진행한 영웅들의 말에 의하면 던전 내에서 등장한 괴물은 최소 8 등급 이상의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8등급 개체면 최소 【A - 1】 난이도 이상의 던전에서만 등장하는 괴물이었다.
보고받았던 던전의 난이도와는 못해도 두, 세 단계 이상의 차이. 이는 공격대의 재량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당초 격이 다른 상위 공격대가 나서야 하는 문제였다.
더욱 큰 문제는 우려했던 브레이크가 결국 터졌다는 것.
그리고 작전에 투입된 부대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몬스터들로 인해 각개격파를 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선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던전 근처의 부대는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지원군으로 투입된 네 개 여단이 몬스터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으며, 71, 79, 80집단군이 투입 중입니다."
"공중 전력은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회의는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전방에 고립된 전력을 구출해 내는 것 그리고 사방으로 퍼져 나갈 괴물 무리를 상대할 방어선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일단 한국의 7군단은 71집단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고비 사막의 중심을 기점으로 우측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지역을 방어, 중국의 동북부와 한반도 쪽으로 밀려들 어둠 괴물 무리를 막는 게 목표였다.
문제는 그 근방에 【A - 1】 난이도로 추정되는 던전이 브레이크 되었다는 점이었다. 최희 군단장이 말했아.
"영웅들이 바쁘게 움직여야겠어."
우후죽순 생겨난 임시 던전을 처리하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게 분명했다.
"저희들도 힘든 싸움이 되겠네요."
군단장의 말에 유혜령 준장도 짧게 한숨을 쉬고는 괴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영웅들이 처리하지 못한 임시 던전은 계속해서 몬스터를 토해낼 테고, 그것들을 막아내는 것은 오로지 자신들의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예전 청두 브레이크 때도 본격적인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한국군 입장에서는 어려운 실전이 될 것으로 보였다.
* * *
"……출동이야?"
영웅 패드에 네임드 공략과 관련된 글을 적고 있던 민국이 고개를 들었다. 차분하게 가라앉던 눈동자에 걱정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최유나가 말했다.
"네. 【A - 1】 난이도로 추정되는 던전에서 브레이크가 터졌다고 해요."
"【A - 1】난이도? 보고는 【A - 9】 난이도가 아니었어?"
"저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던전에서 8 등급 수준의 괴물이 나타났다고 해요."
"바이콘의 짓인가? 역시나 이번 건은 녀석의 함정이었나 보네."
당장이라도 브레이크를 터뜨릴 수 있는 녀석이 계속해서 시간을 끄는 게 조금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함정을 판 모양이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었나?'
그래도 자신들이 나섰더라면 아무 문제 없이 브레이크를 해결할 수 있었을 터였다.
아무튼 브레이크가 발발했으니 엄청난 사상자가 나왔을 게 분명했다.
참호와 방어선을 구축한 상태의 인류의 군대는 웬만한 규모의 공격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의 방어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끊임없이 몰려오는 공격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중, 대형급 괴물들을 상대할 수 있는 영웅 전력이라도 충분하면 모르겠지만, 쉴더급을 포함해 최상위 공격대들은 대부분이 이번 작전에 나서지 않았다. 자신들의 힘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중국군의 요청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이렇게 되었으니 무리를 해서라도 자시들이 나서는 게 맞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따로 요청이 들어온 게 있어?"
민국이 물었다.
GGW 공격대는 소속된 곳이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한국군이 맞는데, 쉴더급 공격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독자적인 작전권을 가지고 있었다.
"유혜령 준장님은 7 군단과 합류해서 동부 방어전에 함께 하는 바람이던데…. 뭐, 연합군 본부에서는 고비 사막 중심으로 가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그쪽에 바이콘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콘이나 심복급 녀석들만 나타나더라도 GGW가 아니면 막아낼 수단이 없었다. 미노스, 메를린, 버니가 사라지면서 이제는 구 재앙이 되었다지만 녀석들은 본신의 힘으로 하나의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민국도 유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자신들이 나서서 어둠 괴물의 머리를 상대하는 게 옳았다.
'게다가 재앙 녀석들에게 시간을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어.'
가루다의 말에 의하면 재앙들은 공허의 힘을 사용해 휘하 괴물들을 이 세계로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그 힘이 만만치 않게 필요하다지만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녀석들의 전력 또한 강해진다는 말이었다.
'빠르게 끝내버리자.'
그리고 내실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민국이 바이콘을 상대할 목적으로 나서려고 할 때였다.
"…대장님, 계십니까?"
중국의 텐센스 공격대가 민국을 찾아왔다.
그리고 텐센스의 공대장 쯔닝은 민국을 만나자마자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그것은 GGW 공격대가 한국군과 함께 움직여달라는 이해할 수 없는 부탁이었다.
"네? 중국이 단독으로 던전 브레이크를 막겠다고요? 그게 무슨…."
뜬금없는 텐센스의 요구에 현아가 흥분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눈앞의 영웅과 중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던전 브레이크는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큰 위기였다.
그런 현아의 반응에 쯔닝이 입을 앙 다무는 모습을 보이더니만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던전 브레이크는 저희 텐센스와 중국군이 반드시 막아내겠습니다. 부디 GGW 공격대는 동부로 뻗어나가는 괴물 무리들을 처리해주셨으면 합니다."
"바이콘이나 그의 심복으로 추정되는 녀석들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습니다. 게다가…."
민국도 회의적인 눈으로 쯔닝을 바라보았다.
텐센스의 실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재앙이나 심복급 녀석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브레이크는 이미 터진 상황.
아무리 중국이 영웅 강국이라고 해도 중국 자체의 전력만으로는 쉴 새 없이 생겨나는 임시 던전조차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 괴물과의 전쟁은 인류 전체가 나서야 하는 위기. 언제까지 한민국 영웅에게 은혜만 입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민국의 대답에 쯔닝이 고개를 꾸벅이고 물러났다.
그런 쯔닝을 보면서 민국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군의 행동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독단적이었다. 홀로 이렇게 모든 것을 감당할 생각이었으면 애당초 연합군을 구성할 필요도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적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은근히 우리를 껄끄러워 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멤버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다들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쯔닝과의 대화가 제법 짜증스럽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이상하네."
중국군의 이런 변화는 민국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이유가 없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나쁜 것도 아니고, GGW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샤오란 좀 불러와 줘."
결국 이에 대한 답은 내부 관계자에게 들어야 할 것 같았다.
* * *
영웅 호송 차량.
40 인승의 방탄 리무진 버스 안에서 천장을 보고 있던 민국은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있었던 샤오란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중국 정부가 우리를 견제한다고…?'
그것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였다.
어둠 괴물과 재앙이라는 강력한 적을 상대로 서로가 손을 꽉 잡아도 이상하지 않은 판국에 오히려 상대를 견제한다니 절로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희망 회로를 제대로 풀가동했네.'
재앙급 존재가 아직 아홉 아니, 여덟 개체나 남아 있는 판국에 중국 정부는 그 이후의 주도권 싸움을 생각하고 있었다. 순식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몇 달 사이에 재앙급 괴물을 쓰러뜨렸던 것이 문제였다.
이유를 들으니 민국은 베이징에 있는 중국 정치인들이 한참이나 어리석게 느껴졌다.
하물며 GGW 공격대의 급성장을 재앙의 유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벌써부터 속이 갑갑하다 못해 메슥거릴 지경이었다.
어쩐지 던전을 처리하려는 GGW의 행보를 막아서는 느낌이 들더니만….
모든 것이 던전의 공략 보상을 자신들이 전부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거기에 샤오란의 말에 의하면 본인과 손을 잡은 것 때문에 GGW가 중앙의 정치인들에 밉보이기까지 했다고 했다.
[진짜 전부 갈아엎어야 되는데….]
이야기를 하면서도 잔뜩 화를 내던 샤오란의 모습이 떠올랐다.
샤오란이 더욱 짜증을 내는 대상은 그런 정치인들의 의견에 동조하고 따르는 영웅들이었다.
특히나 쉴더급 공격대인 텐센스가 내린 멍청한 결정에 샤오란은 친우였던 쯔닝과 절교를 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선언까지 할 정도였다.
"그래도 한국군 입장에서는 오히려 호재네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도중이었다. 소정이 자연스레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렇겠네. 우리를 포함해서 쉴더급 공격대가 두 곳이나 함께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동부 전선에 배치된 중국의 71 집단군은 상하이의 장위거 상장이 지휘하고 있는 군단이었다.
샤오란의 PLA가 71 집단군과 함께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엄밀히 말하면 PLA를 포함해 남부 소속 공격대는 전부 동부 전선으로 배치가 되었다고 했다. PLA와 마찬가지로 그녀들 역시 견제를 당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7 군단에는 민국이 이끄는 GGW 공격대를 포함해 메모리아 1군 및 국내의 랭커 클랜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영웅 전력만 따지고 보면 재앙인 바이콘이 나타나도 한 판 뜰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소정이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이 정도 전력이면…. 우리가 먼저 치고 들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아요? 동부에서 브레이크의 중심부로요."
누워있던 민국이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