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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폭풍
"내가 굳이 버스 파티에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 딜량만 놓고 보면 자유롭게 딜을 때려 넣을 수 있는 막내 라인들이 더 잘 할 테고 말이야. 게다가 나는 이제 비가 오면 슬슬 허리가 쑤실 나이라고."
"기각. 언니는 궁극기 때문에 안 돼요. 파괴의 교향곡이 없으면 공격대 딜량이 최소 10%는 넘게 떨어진다고요."
"……."
거침없는 현아의 반박에 소정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건 그래."
민국도 현아의 말에 동의했다.
김소정의 레전드리 클래스, 불꽃의 광채가 사용하는 궁극기인 파괴의 교향곡은 GGW 멤버들이 사용하는 궁극기 중에서도 가장 티어가 높은 궁극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트라이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이 합류하는 상황. 남은 이들이 모자란 딜량을 메우려면 공격대의 화력을 최대한 극대화시켜야 했다.
힐러진도 쉴 수 없었다.
탱커와 힐러 간의 호흡은 레이드의 클리어 여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었다.
하물며 【S - 7】 난이도의 최상위 레이드에서 호흡이 틀어진다? 레이드를 클리어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대체 누가 쉴 수 있는 거야?"
"어쩔 수 없지. 딜러에서 두 명 빼는 수밖에…."
결국 근접 딜러진에서 한 명, 원거리 딜러진에서 한 명을 교체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게 뭐야."
소정이 고개를 푹 숙였다.
크게 의미가 없던 회의였다. 근접 딜러진은 답이 정해져 있었으니까.
아무튼 휴식을 취하는 멤버는 시라누이 마이와 정예린으로 정해졌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각자 개인 궁극기를 사용하는 영웅이라는 점.
그 때문에 소정이 진심을 담아 본인의 클래스를 변경하겠다며 충격적인 선언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침대에서 혼을 내줘야 할 행동이었다.
"드디어 우리의 차례인가?"
"네, GGW 공격대가 운전하는 버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PLA 에서는 클랜장 샤오란과 함께 왕위완이라는 원거리 딜러가 합류하기로 했다.
PLA 클랜의 성골 유스 영웅이기도 한 왕위안은 클랜 내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딜러로 20 살의 젊은 영웅이었다.
"공략은 숙지하셨죠?"
민국의 물음에 샤오란과 왕위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트라이를 해 본 녀석은 아니지만, 둘은 영웅 패드를 통해 GGW 공격대가 네임드급 어둠 괴물을 상대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었다.
'내 기량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야.'
'전술적 움직임은 어렵지 않았어. 어차피 공격대의 리딩은 내가 아니라 한민국 영웅이 할 테니까…. 그의 지시에만 집중하면 된다.'
처음으로 상대하는 【S - 7】 난이도의 괴물.
지금까지 PLA가 상대했던 난징 던전의 9등급 괴물과도 동급이 수준의 개체였다. 물론, 그보다는 조금 더 강력한 녀석이겠지만 중국의 두 영웅은 자신들의 실력을 믿었다.
그렇게 시작된 트라이.
"전방 찌르기! 탱커 머리 돌려!!!"
"근접 딜러진 옆구리에 붙어서 딜!"
네임드의 공격은 자신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때문에 트라이 역시 굉장히 스피디하게 진행이 되었다. 상황 판단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샤오란! 조금 더 소정에게 붙어!"
"바닥 패턴! 7시 방향에 모두 모여! 녀석의 공격이 떨어지면 시계 방향으로 산개 할 거야!"
"왕위완! 이쪽으로! 어리바리 타지 말고 빨리 부터!"
그리고 그럴 때 마다 민국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둘의 귀를 때렸다.
자신들의 전투를 제 3자의 입장에서 해설하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민국의 리딩에 샤오란은 짧게 신음을 흘렸다.
'전투의 상황이 전부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있는 건가?'
십 년이 넘도록 네임드들과 싸워왔지만 이런 전투는 처음이었다.
오직 한민국의 지시에만 따르면 모든 게 해결이 되고 있었다. 심지어 상대는 쉴더급 공격대도 쉬이 감당하지 못하는 9 등급의 특수 네임드였다.
하지만 민국은 네임드가 어떻게 움직일 생각인지, 또한 어떤 공격을 하려고 하는지 전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미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공격대의 영웅들이 녀석의 공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도 실시간으로 파악해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게 공대장 한민국!'
전장의 신이 강림한 것 같은 민국의 모습에 샤오란은 자신의 명치 아래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트라이를 경험했던 영웅들이 한 차원 위의 수준을 겪었다고 떠들어댔던 말들이 과장이 아니었다. 샤오란이 입술을 깨물었다.
'좀 더 집중하자!'
자신은 PLA 아니, 더 나아가 중국을 대표하는 영웅.
이런 공대장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다짐하면서 샤오란은 민국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무기를 휘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죽어나가는 것은 샤오란과 왕위완이었다. 레이드의 경험과 숙련도가 가장 그 이유겠지만, 애당초 둘과 GGW 멤버들과는 상위 레이드에서 쌓은 경험치가 달랐다.
결국 열 번이 넘는 트라이를 진행했지만, 네임드가 쓰러졌을 때 샤오란과 왕위안은 던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승리의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눕클이었다.
* * *
"상자 열까?"
"아니, 버스 승객들이 열라고 해. 그 정도 서비스는 해 줘야지."
민국이 상자를 열려는 현아를 제지하며 말했다.
샤오란과 PLA 의 유망주는 【S - 7】 난이도의 첫 번째 네임드를 상대로 한 열 번의 트라이를 버텨내지 못했다. 열 번 전부 전투 중간에 사망해버린 것이다.
9 등급 개체를 상대하는 레이드지만 둘 다 쉴더급 공격대에 소속된 영웅. 모르긴 해도 자존심이 꽤나 상했으리라.
'그래도 전투에 점점 익숙해지는 모습이기는 했다만….'
그녀들이 전투 경험을 쌓을 때 까지 GGW 가 트라이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그건 버스가 아니라 학원 파티였다.
게다가 아직 바이콘이 쓰러진 것도 아니었기에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네임드를 잡았으니 이것을 사용해도 되겠지.'
영롱한 빛을 내는 상자를 보며 민국은 품에 있는 주먹 크기의 구슬을 매만졌다. 가루다에게서 받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마력의 결정이었다.
'뿌우, 이거 상자 안에 넣어둘 수 있지?'
[물론입니다, 민국님. 그런데…. 이 마력의 결정을 다른 이들에게 주시려고요?]
'응.'
[아깝지 않으십니까?]
'내가 흡수한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아껴봐야 똥이잖아?'
이미 GGW 에 소속된 영웅들은 전부 10등급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민국 또한 당장 10등급 영웅 이상의 단계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건 너무 먼 이야기였다.
'지금의 전력으로도 재앙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GGW의 전력 상승보다는 인류 전체의 내실을 다지는 게 먼저였다. 다른 공격대의 수준을 강제로라도 끌어 올리는 것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군."
"그래도 잘했어. 조금만 더 집중 했으면 녀석이 쓰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걸?"
"……그래."
트라이 장소로 돌아온 샤오란은 자신감이 한 풀 꺾인 모습이었다.
아무리 버스 파티라 해도 같은 쉴더급의 영웅. 게다가 그녀는 중국 영웅의 정점에 서 있는 히어로였다.
게다가 영상을 통해 공략법도 공부했기에 쉽게 트라이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 하지만 서로 간의 기량 차이가 이 정도로 크게 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아무튼 GGW 버스는 승객의 마음까지 치료해주는 리무진 버스였다.
그리고 민국은 풀 죽은 이들의 자존심을 세워줄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가위바위보나 열고 싶은 사람이 아무나 여는 GGW 공격대와는 달리 중국의 공격대는 레이드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이가 보상 상자를 연다고 했다.
그것이 굉장히 영광이라나?
"보상 상자를 한 번 열어보는 게 어때?"
"보상 상자? 내가?"
아니나 다를까 제안을 하자마자 샤오란이 큰 관심을 보였다.
"그래, 그래도 우리가 힘을 합쳐서 처음으로 잡은 【S - 7】 난이도의 네임드잖아?"
"내가 도움이 된 것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되겠나?"
"물론이지."
흔쾌한 허락에 샤오란의 시선이 보상 상자로 향했다.
전장 중앙에 생겨난 황금색 상자는 영롱한 빛을 내며 영웅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샤오란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코어 1570 이상의 장비가 나온다고 했지?"
"실버급 마력의 결정도 나오곤 하지. 그리고 운이 좋다면…."
"운이 좋다면?"
"골드급 마력의 결정이 나올지도 몰라."
"에이, 그게 그렇게 쉽게 나오겠어요? 재앙이나 심복급 녀석들도 아닌데?"
옆에 있던 현아가 말도 안 된다는 듯 툭 말을 던졌다.
애당초 9 등급 특수 개체라도 녀석들이 주는 마력의 결정은 실버급이 최대였다. 최소 재앙 혹은 코드명이 붙여진 10등급의 강력한 네임드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골드급 마력의 결정이었다.
"운이 좋으면 나올 수도 있지."
하지만 민국도 믿는 게 있었다.
"아무튼 정말로 운이 좋아서 골드급 마력의 결정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약서 내용이 어땠지?"
민국의 말에 현아가 샤오란을 힐긋 보며 말했다.
"PLA 클랜에서 가져가기로 했으니까…. 으음, 일단 축하부터 하면 되겠네요. 골드급 마력의 결정을 흡수하면 10등급 영웅이 될 테니까요. 맞죠? 샤오란?"
"실버급 결정을 통해서는 상승시킬 능력이 없긴 하지."
그 말은 즉, 골드급 마력의 결정만 흡수할 수 있다면 샤오란은 10등급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둘의 대화를 둘은 민국이 다시 보듯 샤오란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스펙이 굉장히 높은데?'
되짚어보니 놀라울 건 아니었다.
PLA는 난징 던전을 통해 주기적으로 실버급 마력의 결정을 수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결정을 어떻게 사용되었을 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
'그렇지 않아도 골드급 마력의 결정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클랜들이 몇 있다고 했지.'
클랜장인 현정이 그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식으로 전에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았다. 민국이 인심을 쓰듯 말했다.
"좋아, 운 좋게 골드급 마력의 결정이 나오면 반값에 판매해줄게."
"…반 값?"
계약서의 내용대로라면 1500억 위안밖에 되지 않는 헐 값.
골드급 마력의 결정과 10등급 영웅의 가지는 가치를 생각하면 거저 수준이었다.
"그만큼 골드급 마력의 결정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야."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요?"
"아무튼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도록 하지."
포권을 한 샤오란이 보상 상자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GGW 공격대와 함께한 트라이로 인해 알게 모르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는데, 잠깐의 대화가 상처 난 자존심을 어루만져 준 것 같았다.
보상 상자 앞에 도착한 샤오란이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고오오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황금색의 빛기둥이 천장을 뚫듯 위로 뻗어 오르기 시작했다.
"화, 황금 빛 기둥?!"
현아가 외쳤다.
GGW 공격대가 이번 던전을 공략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빛기둥이었다. 레이드를 끝내고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멤버들의 눈동자도 빛기둥으로 향했다.
"흡!!!"
그리고 상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샤오란이 눈을 부릅떴다. 금빛으로 물든 마력의 결정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 * *
중국은 바이콘과의 전쟁을 통해 자국의 영웅 전력을 드높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GGW가 베트남 전쟁을 통해 쉴더급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거듭났던 것처럼 중국도 GGW에 버금가는 쉴더급 공격대를 다수 키워낼 계획인 것이다.
그래야만 어둠 괴물과의 전쟁이 끝난 이후, 세계의 패권을 중국이 장악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번 임시 게이트는 텐센스와 휘하의 클랜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략하도록 하지요."
텐센스의 공대장 쯔닝도 베이징의 계획에 동의했다.
중화라는 말처럼 세계의 중심은 오직 중국뿐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애당초 한민국 역시 과거 중국에서 넘어간 동이족의 후예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재능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바보 같은 샤오란을 포함해 계획에서 소외된 상하이의 녀석들이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던 상황이지만 정말로 71 집단군이 한국과 연합해서 독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중앙에서도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 바로 샤오란과 친분이 있던 쯔닝에게 그녀를 설득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PLA 에게 게이트와 관련된 이권 몇 개는 통째로 넘겨줘야겠네. 아니지, 이참에 샤오란을 중앙으로 불러?"
그녀가 응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안 정도는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정말로 샤오란이 중앙으로 온다면 그녀의 목에 제대로 목줄을 걸 수 있었다.
그렇게 쯔닝이 화상으로 통신을 연결했다.
삐이이이….
기계음과 함께 통신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화면을 가득 채우는 샤오란의 얼굴이 보이자 쯔닝이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그녀는 침대에 엎드린 모습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야? 우, 우리가 흣! 이렇게…아! 통화할 사이, 사이, 사이 였…!!!]
말을 하다 말고 몸을 떨어대는 샤오란.
그녀의 목을 조여 대는 검은색의 목줄이 쯔닝의 눈에 틀어박혔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뒤에서 목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
쯔닝은 손가락을 조심스레 움직여 화면을 확대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은은한 빛 아래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한 남성의 목줄을 잡아당기며 샤오란을 뒤에서 범하고 있었다. 거대한 남근이 샤오란의 안을 드나들 때 마다 그녀의 입에서 음란한 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