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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절벽의 바이콘
[크하하하하!]
바크라의 창에 걸린 흑범이 상하로 분리되며 폭발했다.
마력석을 포함시켜서 장갑 능력을 높인 최신예 전차지만 8 등급 괴물의 공격을 당해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탱크조차도 장난감 취급하는 괴물.
당연하지만 장갑차나 보병들도 바크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1 중대가 시선을 끌고 3 중대는 후퇴한다!"
"연막탄 뿌려!!!"
그래도 전투 경험이 많은 정예답게 한국군은 정면에서 녀석을 맞서지 않고 반격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놈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7군단이 보유한 기갑 전력과 무기로는 놈의 공격을 받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전투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아군 병력의 전멸은 불을 보듯 뻔했다.
"영웅! 영웅들의 지원이 더 필요해!"
어깨에 대위 견장을 단 장교가 무전으로 외쳤다.
당장 놈을 상대로 시선을 끄는 이들 중에는 국내의 랭커급 클랜의 영웅들도 끼어 있었다. 하지만 부활석이 있는 던전이 아닌 현실에서 펼쳐지는 전투라 그런지 랭커급 클랜의 영웅들은 과감하게 놈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탱커 영웅이 놈의 공격을 받아내다가 중상을 입고 물러난 것이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뭐?! 야이…! 지금 우리 애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뭐?! 중국 애들이라고 데리고 오라고!!! PLA 있잖아! PLA!!!"
결국 이런 상황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일반 병사들 뿐.
참다못한 장교가 무전기를 내던지고 병사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쿠웅!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바크라의 상체를 두들겼다.
포탄이 떨어진 것 마냥 커다란 반동이 일어나면서 바크라의 보호막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위력적인 공격에 눈앞의 보병들을 공격하려던 바크라가 뒤로 폴짝 물러서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두 대의 버스가 모래 먼지를 뚫고 맹렬하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투 장소에 도착한 버스 안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내리며 전장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바이콘의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던 GGW의 공격대였다.
"……."
민국은 바크라의 위치를 체크하면서 주변의 상황도 확인했다. 여기저기서 박살이 난 전차들을 보면 놈들의 공격에 아군 또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바이콘의 둥지 안에서 내린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들이 아니었더라면 한국군은 바크라의 공격에 굉장한 피해를 입고 물러났을 터. 그랬더라면 바이콘의 던전을 공략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았다.
그런 민국에게 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바크라라는 놈만 따로 빼내는 게 낫겠지?"
"음. 놈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그게 나을 것 같아."
만약 녀석이 전장 한 가운데서 광역 공격이라도 사용하면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이곳은 영웅과 어둠 괴물만이 싸우는 던전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영웅들만 바크라를 공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녀석을 표적으로 삼기 딱 좋은 장소로 놈을 유인해야 했다.
"작전대로 가자."
민국과 시선을 마주친 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10 등급 탱커가 마력을 끌어올리자 바크라의 눈이 그 쪽으로 향했다.
[크흐…….]
어둠 괴물의 본능을 자극하는 탱커 영웅 특유의 불쾌한 마력.
무슨 일이 있어도 마력을 드러낸 상대를 죽여야겠다는 어둠 괴물의 본능이 발동하면서 5m에 달하는 거체가 폭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강철의 전차를 동강낸 어둠 괴물의 창날이 인간 여성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쿠웅!
이어서 붉은 마력이 포개진 방패가 크게 일그러지면서 굉음이 들려왔다. 그 충격파로 인해 현아의 머리카락이 거칠게 흔들렸다. 하지만 바크라의 공격을 막아내는 그녀의 표정은 굉장히 가벼워 보였다.
"오케이! 생각보다 버틸 만하네. 지젤, 방금 보호막 안 넣었지?"
"응."
흉악하게 생긴 바크라를 마주하면서 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공격으로 자신이 받은 피해량은 기껏해야 3% 남짓한 수준. 힐러의 서포팅만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죽기 싫어도 죽을 수가 없는 차이였다. 아무리 녀석이 8 등급 특수 개체라지만 GGW 멤버들은 10 등급 영웅. 그것도 높은 수준의 기어 스코어 장비로 풀 무장한 스펙이었다.
"좋아, 우리 어디 넓은 곳에서 싸워보자."
다시 한 번 창을 휘두르는 바크라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현아는 검을 들어서 녀석의 다리를 툭 찔렀다. 장난치듯 휘두른 가벼운 공격이지만 그 안에는 어둠 괴물을 자극하는 탱커 고유의 마력이 듬뿍 담겨 있었다.
[죽여버리겠다!!!]
아니나 다를까 잔뜩 흥분한 바크라가 미친 듯이 달리며 현아를 쫓기 시작했다.
민국을 포함한 멤버들도 바크라를 포휘하듯 움직이면서 현아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아군과의 거리가 벌어졌다는 판단이 들자 민국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신나인의 마력구가 불을 내뿜었다.
쿠웅! 쿵!
세 개의 마력구가 살아 있는 생명체 마냥 움직이며 포격을 시작했다.
[어, 뭐야?!]
비록 바크라의 보호막은 뚫지 못했지만 눈으로 강한 흔들림이 보일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어그로! 어그로 주의해!"
아니나 다를까 신나연에 대한 바크라의 위협 수치가 현아의 턱 밑까지 높아지고 있었다.
그만큼 신나연의 공격이 위협적이었다는 뜻.
만약 크리티컬이 터졌다면 바크라를 노리는 대상이 탱커가 아닌 신나연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딜 살살 넣어!"
"일단 근접 딜러 접근 금지! 원거리 딜러진도 평타만!"
자신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약한 놈의 방어력에 민국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최근 9, 10 등급 개체 혹은 재앙급 놈들만 상대하느라 【A】 난이도 던전에서 등장하는 놈들이 어떤 수준인지 잠깐 잊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딜러들이 평타만 치는 동안 현아와 타냐는 자신들의 스킬을 총 동원해 열심히 어그로 수치를 쌓아나갔다. 동급 수준의 어둠 괴물이라면 탱커의 공격에 크게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보통 레이드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경우 탱커 두 명이 넣은 데미지 비율은 전체의 10% 가량이었으니까.
하지만 바크라라는 녀석이 워낙에 약해서일까?
신나게 놈을 두드리는데 녀석의 보호막을 유지하는 공허 마력이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드는 게 영웅 패드로 확인이 되고 있었다.
'역시 레벨과 스펙이 최고네.'
심지어 녀석의 고유 공격 패턴도 회복과 보호 능력으로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동급의 영웅들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과감한 전투였다.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PLA 가 나섰더라도 어렵지 않게 바크라를 쓰러뜨렸을 것 같았다. 지금의 PLA는 쉴더급 공격대라 불렸던 시절보다도 한층 업그레이드 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GGW를 제외한 국내 최고의 공격대라는 메모리아 1군은 조금 힘들어 보였다.
'어떻게든 개선은 해야겠네.'
어차피 나중을 생각하면 기량이 뛰어난 공격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슬슬 딜러들 공격 준비."
바크라의 보호막이 줄어드는 수치를 계산한 민국이 오더를 내렸다.
놈의 강함이 이 정도라면 김소정의 궁극기를 사용한 후 폭딜을 넣으면 빠르게 놈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소정"
자신을 부르는 민국의 목소리를 들은 소정이 포지션을 잡자마자 바로 파괴의 교향곡을 사용했다.
김소정의 손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면서 그녀의 몸에서 짙은 붉은색의 마력이 폭발하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녀를 중심으로 터져 나온 마력의 충격파가 GGW 멤버들을 감싸듯 움직였다.
"딜!!!"
"최유나 표식 찍어!"
"넵!"
여러 소리들과 함께 딜러들의 공격도 시작되었다.
영웅들의 갑작스러운 맹공에 바크라는 자신의 실드를 중첩시키며 공격을 받아냈다. 인간들의 강철 무기도 또한 자신에게 달려든 몇몇 영웅들의 공격도 막아냈던 단단한 보호막이었다.
하지만.
보호막을 유지하는 공허 마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마치 댐에 구멍이 난 것 마냥 마력의 밀도 빠르게 흩어지는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이상할 정도로 강력한 인간들의 공격에 바크라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바이콘이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이 녀석들이?!'
최근 몇몇 재앙을 쓰러뜨렸다는 공허 세력들의 가장 큰 적, GGW 공격대가 틀림없었다.
아니, 확실했다. 인간 영웅 무리 중 수컷의 영웅이 바크라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다른 인간 공격대와는 다른 GGW 공격대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인간 영웅이 내뿜는 불쾌한 마력은 계속해서 자신의 살의를 자극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이콘이 내린 명령과 생존의 욕구는 본능에 내재된 살의를 억누르기에 충분했다. 자신이 임무는 인간 영웅들이 부활석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 정면으로 인간 영웅들과 싸워 놈들을 죽이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의 다리라면 드넓은 암석지대에서 도망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바크라가 전투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치를 볼 때였다.
투쾅!
[음?]
멀리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음. 그와 함께 한 줄기의 벼락이 번뜩이며 바크라의 몸체를 두들겼다.
K - 5A1 흑범.
한국군의 주력을 담당하는 전차가 나란히 늘어서서 쉴 새 없이 포탄을 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존재들의 공격에 바크라가 놈들을 응징하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영웅들이 바크라의 앞을 가로막았다.
바크라는 놈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쉴 새 없이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재앙을 쓰러뜨렸다는 인간들은 자신의 창 또한 어렵지 않게 막아내는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는데….
쿵! 쿠쿠쿵!
다시 한 번 강력한 충격이 바크라의 몸을 두들겼다.
레포리데의 펀치 마냥 정신을 번쩍 들 정도의 강력한 충격이었다. 바크라의 새빨간 안광이 인간들의 전차로 향했다.
하지만 인간들의 무기를 무력화시킬 만한 수단이 바크라에게는 없었다. 지금의 그는 영웅이라 불리는 존재를 뿌리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콰아앙! 쾅! 쾅!
"그냥 그 자리에서 뒈저버려라! 이 말 새끼야!!!"
"명중! 명중입니다!"
"좋았어!!!"
한국군의 최정예답게 흑범의 포격은 정확하게 바크라를 명중시켰다.
GGW 멤버들의 공격으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고정된 목표물. 이런 녀석을 명중시키지도 못한다면 정예라 불릴 자격도 없었다.
그렇게 탱크의 포구가 쉴 새 없이 불을 내뿜을 때 마다 바크라의 공허 마력도 계속해서 깎여나갔다.
수치로 따지면 명중탄 한 방에 0.1% 정도.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누적이 된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였다. 거기에 놈은 GGW 공격대의 맹공까지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그렇게 공격을 받던 놈이 발악을 하듯 창을 풍차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잔뜩 공허의 마력을 끌어올린 놈이 만들어낸 소용돌이가 근처에 있던 GGW 멤버들을 휩쓸었다. 마치 대자연의 재해가 인간을 덮친 것 같은 끔찍한 공격에 여기저기서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원형으로 만들어진 보호막 속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멀쩡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GGW 영웅들이 보이자 안타까움의 비명은 곧바로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십 분 정도 진행이 된 전투 끝에 보호막이 깨진 바크라의 가슴을 오현아의 검이 관통했다.
* * *
[최희 군단장이 이끄는 7군단! 바이콘의 주력을 상대로 대승!]
[바이콘의 심복 바크라! GGW 공격대와 7 군단의 합공에 쓰러지다!]
[전쟁의 끝이 보이나?! 7군단, 바이콘의 던전을 포위 중.]
[바이콘을 공략할 준비를 시작하는 GGW 공격대.]
바크라가 이끄는 주력을 전멸시킨 7 군단은 곧바로 던전의 포위에 들어가며 보급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장위거 상장의 71 군단이 7 군단을 호위하듯 병력을 배치했다.
그녀의 71 집단군이 한국군의 들러리가 되는 모양새였는데, GGW와 PLA가 손을 잡은 상황이라 그런지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정작 자존심이 구겨진 것은 이번 연합군의 수장을 자처하던 중국이었다.
중국은 이번 전쟁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보이기 위해 다수의 정예군과 베이징의 모든 공격대를 동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바이콘의 【S】 난이도 던전에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심지어 던전의 공략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외부에서도 바이콘의 주력과 맞붙으면서 패배를 거듭, 세 번의 회전을 모두 패배하면서 막대한 수준의 인명 피해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변절자나 다름없는 71 집단군과 한국군은 두 개의 【S】 난이도 던전을 공략하는 공을 세우는 것도 모자라 재앙인 바이콘을 상대로 공략 준비를 끝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 쉴더급도 쉴더급 나름이네.
- 텐센스 정도면 그래도 수위에 들어가는 쉴더급임. GGW 가 범접 불가능한 수준이라 그렇지.
- 그런데 중국 정부는 왜 꼬장 부리는 거임? 전쟁이 빨리 끝나면 오히려 좋은 것 아님?
- 높은 곳에 있는 년들은 그런 것 생각 안함. 뻔한 일임. GGW 공격대 때문에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게 눈에 확확 보이니까 저러는 거임. 진짜 혁명 마렵긴 함. 아무튼 돌아가는 꼬라지 보면 상하이 쪽은 완전히 중앙과 돌아선 것 같음.
덕분에 중국 내부의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정부에 충성하던 군인들에게도 불만이 나올 정도. 민간인이나 다름없는 영웅은 두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PLA 의 기대주. 텐센스로 이적하나?]
이 모든 것을 잠재울 정도의 대형 소식이 터져 나왔다. 빅 샤이닝이 아니라 대상자에들에게 큰 충격을 주는 스캔들에 가까운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