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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절벽의 바이콘
"너, 너희가 어떻게?!"
무플런들을 이끌며 인도 대륙을 지배하던 재앙 메를린.
잉글랜드에서 GGW 손에 의해 패퇴한 버니.
인간들에게 패배해 공허의 벽으로 끌려간 재앙 둘이 바이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이콘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도대체 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바이콘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지구는 생각보다 작은 땅이었다. 당연히 지구라는 행성에서 재앙급 존재가 풍기는 기운을 자신이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메를린과 버니의 기운은 진즉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공허의 벽에 끌려간 줄 알았건만. 바이콘을 바라보던 버니가 눈을 깜빡이며 주먹을 맞부딪쳤다.
"……."
푸른빛의 전류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바이콘이 얼굴을 굳혔다.
놀랍게도 눈앞의 녀석들은 가짜가 아닌 진짜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좋은 마음을 갖고 나타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어서 버니가 고개를 좌우로 꺾으면서 말했다.
"별 거 아니야. 그냥 다시 태어난 거지."
"뭐, 뭐라고?"
"자세히 알 필요는 없어. 어차피 네 놈은…."
짧게 호흡을 한 버니가 몸을 날렸다.
"여기서 뒈질테니까!"
"자, 잠깐만!!!"
바이콘은 버니의 공격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기껏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을 건졌는데, 여기서 허무하게 죽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히이이이잉…!"
버니의 상태도 정상은 아닌지 재앙의 수준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진 모습.
그러나 힘의 대부분을 잃은 바이콘이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바이콘을 압박하는 건 버니만이 아니었다.
"크허어억!"
어디선가 날아온 실 뭉치가 바이콘의 몸을 결박했다.
공허의 마력을 동원해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결박. 덕분에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버니의 공격에 가슴을 얻어맞은 바이콘이 피를 토해냈다.
"좋아, 메를린. 그렇게 붙잡고 있으라고."
"자, 잠깐! 우리 이, 이러지 말자고! 크헉! 컥! 히히히힝!"
"원투! 레프트! 라이트! 훅! 너 때문에…! 야발! 잉글랜드에서…! 인간들에게 당한 생각을 하면…! 아, 물론 주인님을 만난 건 좋았지만…! 아무튼!"
힘의 대부분을 잃은 바이콘은 두 재앙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버니의 메를린도 정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바이콘이 감당할 수 있을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바이콘은 버니의 무자비한 주먹질을 버티지 못했다. 한 세력을 이끌고 지구로 넘어온 재앙의 최후치고는 초라한 죽음이었다.
"찾았다!"
마지막까지 확인 사살하듯 죽은 시체 속에서 바이콘의 결정을 꺼낸 버니가 만족스럽게 입 꼬리를 들어 올렸다.
어둠 괴물을 잘 모르는 인간들은 재앙급 존재가 도망을 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터였다.
물론, 바이콘에 대해 잘 아는 둘은 그가 이런 식으로 도망을 칠거라 예상을 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바이콘의 목숨을 끊어낼 수 있었다. 만약 이 사실을 한민국에게 알린다면….
"좋은 씨앗을 받을 수 있겠지?"
버니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행동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메를린에게 바이콘의 결정을 던져주었다. 그것을 한민국에게 전달하는 것은 메를린의 역할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가고 싶었지만, 인간들 사이로 숨어드는 건 자신보다는 메를린이 훨씬 나았다.
"아무튼 우리의 임무는 끝났지?"
"…주인께서 내리신 임무는 아니지만."
"중요한 건 도망친 바이콘을 우리가 잡았다는 거지. 아무튼 주인님을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활약을 했는지 설명해주는 거 결코 잊지 마라?"
"……주먹질 몇 번 한 것도 활약인가?"
"하지만 그 주먹으로 바이콘의 목숨을 끊어줬잖아?"
손에 들린 마력의 결정을 바라보면서 메를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바이콘이 도망을 칠거라 예상하고 이곳에 잠복하자고 한 것은 전부 버니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곳에서 도망친 바이콘을 공허의 벽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명령을 어겼어.'
한민국이 그녀에게 내린 명령은 한국의 한 섬에 숨어서 힘을 회복하라는 것.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지만 결국 민국의 명령을 어긴 것은 사실이었다.
"에이, 주인도 오히려 칭찬할 걸?"
찝찝한 얼굴을 하는 메를린을 향해 버니가 확신하듯 말했다.
만약 자신들이 바이콘을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언제 자신의 주인이 저 놈에게 뒤통수를 맞았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원래 잡초는 뿌리부터 뽑아야 한다고. 후환은 빠르게 제거해야 하는 법이었다.
"한 마리 아니지 두 마리 정도 낳으면 딱 좋을 거 같은데…."
버니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자신들이 몰래 도망친 바이콘을 처리했다고 하면 민국이 뱃속 가득 생명의 기운을 뿌려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두 재앙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이건?!"
"……!"
익숙한 마력의 느낌에 두 재앙이 멈칫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몸을 피하려고 했을 때 주위의 공간이 바뀌기 시작했다.
"제대로 꼬였네."
침묵 속에서 버니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공간을 생성하고 소멸시키는 힘. 지구의 지형 중 가장 넓다는 태평양을 지배하고 있는 리바이어선의 권능이었다.
* * *
"……버니, 메를린."
둘은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다처럼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단발 여성이 의아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비아탄 혹은 리바이어선.
'오르티카'를 다스리는 재앙이자 십이 재앙 중 가장 강력한 공허 마력을 지니고 있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그 괴물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공허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열심히 잘?"
버니는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치듯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가둔 심해 환상의 틈을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전혀 틈이 보이지 않았다.
'골치 아프네.'
자신의 힘이 회복되었더라면 리바이어선의 환상을 힘으로 부수고 탈출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의 마력으로는 녀석의 공간에 흠집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주인님과 섹스를 하는 건데….'
좀 더 생명의 기운을 흡수해서 힘을 회복했어야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지고 난 후였다.
"가능?"
"……."
혹시 몰라 메를린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도 고개를 젓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메를린의 힘으로도 이곳을 벗어나기란 어려운 모양이었다. 녀석의 마음에 따라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이 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자고 있을걸."
버니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과 리바이어선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은 편. 이는 메를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지구로 넘어온 재앙 중 그녀와 사이가 좋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리바이어선이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직 가루다만이 그녀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녀석과 충돌하는 일은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힘이 온전한 상태여도 승률이 20%가 되지 않을 텐데 지금의 상태라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열심히 잘? 공허의 마력 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리바이어선의 눈동자가 위아래로 버니를 훑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대체 어떤 힘이 너를 유지하고 있는 거지? 공허의 힘이 아닌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맞아."
"어떻게 된 일이지?"
"그냥 노선을 갈아탔어. 갑자기 공허 녀석이 존나 마음에 들지 않더라니까? 걔 때문에 우리가 공허에서 밀려난 건 알고 있지? 그렇게 쫓겨나듯 지구로 왔으니 나도 새롭게 재탄생할까 싶어서…."
"나를 바보로 아는 거야, 버니? 갑자기 기분이 많이 나빠지는데…."
리바이어선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장 공격을 한다거나 할 생각을 없어보였다.
"으으음…."
버니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이 자리에서 한민국의 존재를 밝힐 수는 없었다.
만약 그의 존재가 재앙들에게 알려진다면? 그의 위험을 알게 된 재앙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재앙들의 계속된 공격에 살아남지 못할 테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도 끝장이었다.
아무리 한민국과 그를 따르는 영웅들의 전투력이 높다 하더라도…….
'이 땅에 오랫동안 터전을 세운 녀석들을 감당하는 건 불가능해.'
특히나 아프리카의 재앙들이 움직이면 GGW고 나발이고 인간들의 멸망은 정해진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무려 몇 십 년 가까이나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나간 놈들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주인 아니 한민국의 존재는 감춰야 했다. 버니가 태연한 얼굴로 리바이어선을 보며 말했다.
"우리 인간들에게 죽을 뻔한 건 알고 있지?"
"죽었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죽기 직전까지 갔었지. 그 때 카오스랑 손을 잡았어."
"…카오스랑?"
리바이어선이 멈칫하며 되물었다.
옆에 있던 메를린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버니를 쳐다보다가 표정을 관리했다. 무슨 헛소린가 하다가 돌아가는 상황을 빠르게 눈치 챈 모양이었다.
"맞아. 죽기 직전에 녀석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지. 그리고 그 대가로 힘을 회복하게 되면 다시 공허로 되돌아가야만 해. 놈의 뜻에 따라 공허와 한바탕 맞붙어야 하거든. 내친 김에 공허의 벽도 박살내고 말이야."
"…불가능한 일이야."
리바이어선이 말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공허는 그 무엇으로도 소멸 시킬 수 없는 존재였다. 버니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우리도 아는데 어쩌겠어. 계약이 그런 걸. 아무튼 당장 공허의 벽으로 끌려간 건 아니잖아?"
리바이어선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읽기 힘든 얼굴이었다.
잠시 후, 그녀가 버니와 메를린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러면 너와 나는 적이겠군."
"당연히 아니지. 우리는 너와 싸울 이유가 전혀 없어. 힘만 회복하면 바로 공허로 되돌아갈 거라니까? 네가 지구의 태평양에서 헤엄을 치던 인도양을 가든 우리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을 거라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면 바이콘은 왜 죽였지?"
"놈이 약해진 틈을 타서 힘을 좀 흡수하려고 했지. 아시다시피…."
버니가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지금 존나게 약하잖아?"
"……."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는 리바이어선의 모습에 버니는 메를린을 향해 턱 짓을 했다.
그러자 메를린이 챙겨뒀던 바이콘의 결정을 꺼내어 리바이어선에게 던졌다.
부드럽게 떠오른 결정이 리바이어선의 손에 들어간 순간 환상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튀자."
환상이 깨지자마자 버니와 메를린은 빠르게 던전에서 벗어났다.
"이거 주인님한테 걸리면 한 소리 듣겠지?"
"분명히."
"… 갑자기 담배 땡기네."
자신들의 존재가 다른 재앙에게 밝혀진 것은 커다란 패착이었다.
하지만 살인멸구라는 게 불가능한 존재가 리바이어선이라는 괴물이었다. 못해도 재앙급 존재 둘 이상이 힘을 합쳐야만 동수를 이루는 게 가능했다.
그렇게 새로운 힘을 받아들인 두 재앙이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것을 느끼며 리바이어선은 그녀들이 던지고 간 바이콘의 결정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재앙 분들의 말이 사실일까요?"
"글쎄…."
아마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일 게 분명했다.
카오스라는 존재가 죽어가는 재앙을 살리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믿기 힘든 말이었다. 하지만 공허의 마력이 사라진 녀석들이 살아있는 것을 보면 완전히 거짓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공허의 마력이 사라진 재앙이 다른 기운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일단 둘의 뒤를 밟을 필요는 있어 보이네."
리바이어선은 인간들의 전투로 약해진 바이콘의 힘을 흡수하고, 인도양의 파푸니르를 손봐줄 생각이었다.
요즘 들어서 녀석이 까부는 게 도를 지나치고 있었다. 하지만 파푸니르를 손보는 것은 훗날의 재미로 미뤄둬야 할 것 같았다.
"둘의 흔적은?"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동쪽이면…. 한국이나 일본이겠네."
예상을 깨는 흥미진진한 일이 그녀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