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막다른 절벽의 바이콘
"진짜 볼 거 없네."
여느 때처럼 방구석에서 인터넷 방송을 검색하던 채담이 불만을 터뜨렸다. 그녀가 본진으로 삼고 있는 남자 스트리머는 오늘 아프다고 방송을 쉬었다.
"우리 지성이 아프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해 줄 방법도 없고."
요즘 열심히 방송을 하더니만 탈이 난 모양이었다.
아무튼 다른 방송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멀티로 삼은 애들도 오늘은 전부 휴방이었다.
열심히 새로 고침을 해봤지만 현재 방송 중인 스트리머는 요즘 다시 유행을 하는 리그 오브 히어로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임 스트리머가 대부분이었다.
굳이 볼 필요가 없는 하꼬들.
차라리 남자가 방송을 했더라면 방송을 볼 의향이 차고도 넘칠 정도로 있었다. 채담과 같은 여성이 이성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이었으니까.
그 때 커뮤니티에 한 글이 올라왔다.
[속보) 킹핀에서 최유나 방송 켬.]
└ 최유나가 누군데 병신아?
└ 이 미친년은 한국사는 년이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최유나를 몰라?
└ 너 검머외지?
└ 검머외도 최유나는 알 듯. 그냥 대가리에 생각이라는 게 없는 년임.
"최유나?!"
채담은 바로 인터넷 방송 사이트인 킹핀에 접속을 했다.
GGW 공격대의 슈팅스타 최유나.
GGW 공격대에 소속된 국내 멤버들 중에서 신나연과 함께 막내 라인을 담당하는 여성으로 채담과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경외감의 대상이 되는 영웅들 중에서도 정점에 오른 영웅이었다.
모 애니의 캐릭터처럼 '내가 하늘에 서겠다.'고 외쳐도 다들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
"최유나, 최유나, 최유나…! 아! 여기에 있다."
채담은 빠르게 최유나의 방송에 접속했다.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지 사이트가 버벅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GGW 에 소속된 영웅다웠다.
"유나 언니…!"
최유나는 하늘의 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 GGW 멤버들 중 백수들이 가장 친근하게 여기는 영웅이었다. 그도 그럴게 해외에서도 인터넷 방송을 할 정도로 일반인들과의 소통을 좋아했다.
『언니, 언니. 바이콘은 어떻게 잡았어요?』
"어떻게 잡았냐고? 그냥 열심히 때려잡았지? 그 녀석의 인중에 쳐 박은 내 화살이 트라이 당 백 발은 넘을걸?"
가슴을 내밀며 뿌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여성.
그 행동 자체가 제법 귀여웠기에 채팅창으로 'ㅋㅋㅋ' 거리는 웃음들과 함께 그녀의 업적을 리스펙하는 댓글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채담도 후원 채팅을 켜서 키보드를 눌렀다.
후원 금액이 적지는 않았지만 상대는 인류의 수호자이자 방패로 불리는 GGW의 영웅. 그녀가 자신의 물음에 대답해 주는 것만으로도 평생 자랑거리로 삼을 수 있었다.
한참 후, 그녀가 보낸 채팅이 올라왔다.
『그래서 선클? 눕클?』
"서, 선클이었나? 선클이었을걸? …아닌가?"
최유나가 당황한 모습이 화면 너머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채담은 그 모습을 보며 낄낄거리고는 계속해서 그녀의 방송을 보았다. 언제나처럼 최유나의 방송은 소통이 내용의 주를 이루었다.
가끔 다른 멤버들과 함께 게임 방송을 할 때도 있었는데,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오늘은 잔잔하게 방송을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R's 에 입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고?"
제대로 된 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글들이 많이 올라왔지만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질문은 고액의 후원 채팅으로 이루어졌고 유나는 본인이 원하는 물음에만 대답을 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뭐, 그런 것 자체를 마음에 들지 않는 분탕들도 적지 않게 있지만 그녀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녀의 방송에서 분탕을 칠 간 큰 년들이 있을 리 없었다.
"요즘 스카우트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영웅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입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나 때보다 허들은 조금 많이 높아진 것 같더라."
트롤러나 어그로 꾼들도 본인들의 목숨은 소중한 법이니까.
『언니는 GGW 공격대에 어떻게 들어갔어요?』
"나? 나는 어떻게 입단했냐고?"
워낙 유명한 영웅인만큼 최유나의 GGW 합류 스토리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또 이 몸과 민국 오빠와의 썰을 풀어야 되나?"
자신의 턱을 매만지면서 유나가 분위기를 잡으려고 할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후원금과 함께 기계 음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FACT) 최유나는 한민국이 레이드 자격시험을 볼 때 자칭 미소녀 궁사로 레이드 팀에 합류했다.』
『FACT) 최유나가 한민국과 처음으로 잡은 레이드 몬스터는 '혈갑 고블린 - 파투'다.』
『FACT) 놀랍게도 최유나는 셋째 부인인 오현아 다음으로 한민국 영웅과 오랫동안 합을 맞춘 사이다.』
"…아니,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야?"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님?』
『너 님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셔야 할 듯.』
무시무시한 재앙을 쓰러뜨리는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영웅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최유나의 허술한 모습에 채담은 낄낄거리며 방송에 집중했다.
"흡?!"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아니, 방송을 보는 이들 모두가 비슷한 반응을 보였으리라 확신했다.
"너 거기서 뭐해?"
"오, 오뺙?! 아, 혀 깨물었다."
화들짝 놀라는 유나의 뒤로 남신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인류의 구원자,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재앙 킬러 등 다양한 별명과 함께 밤마다 수많은 여성들의 남편이 되고 있는 GGW 공격대의 공대장 한민국이었다.
* * *
방송에 집중했던 걸까?
화들짝 놀란 유나가 본인의 혀를 깨물고는 울상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다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영웅이라도 혀를 깨물면 아픈 건 일반인들과 똑같았다.
바로 마력을 돌리면서 회복 능력을 사용했다.
"아…?!"
일반인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영웅의 아픔은 쉽게 치유할 수 있었다.
"이제 아픈 건 됐지? 그러면 방송 열심히 해."
"오빠! 자, 잠깐만!"
방송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몸을 돌리자 뒤에서 유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시 고개를 돌리자 잠깐 고민을 하던 유나가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오빠 지금 바빠요?"
"아니, 딱히 바쁜 건 없는데."
오현정과 김태연은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러 갔고, 강채영과 오현아는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소영이 역시 두세 시간 후에나 일어날 거라 채영이 말했으니 지금 당장 딱히 할 일은 없는 셈이었다.
"그러면!"
유나가 캠과 모니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시청자들과의 소통 어때요? 오빠 한 번 나오면 난리가 날 텐데…."
"아하…."
해외 원정을 떠나기 전이었던가?
시청자들과 이상형 월드컵을 하면서 소통했던 기억이 떠올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의외의 재미가 있던 시간들이었다. 네이처 멤버들과도 아마 그 때 인연을 맺었더랬다.
슬쩍 캠 화면에 얼굴을 가져다 대며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갑자기 나와도 괜찮은가? 시청자들이 안 좋아하는 거 아니야?"
"무슨 소리?! 남자 게스트 있으면 방송 뜨는 거 순식간이거든요?"
"최유나 방송은 남자 게스트 없으면 방송 못 뜨나?"
"…네? 아니, 저 10 등급 영웅이에요. 제가 방송 한 번 켜면 동접 십만 명은 순식간에 달성할 수 있다고요."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현재 11만 명이 넘는 사람이 유나의 방송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 빠른 속도로 접속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기까지 했다. 채팅에 자신의 이름이 가득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한민국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타 커뮤니티에 퍼진 모양이었다.
"으음…."
살짝 뜸을 들이자 채팅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민국의 방송 출연을 바라는 내용의 채팅들이었다.
『최유나 뭐하냐? 빨리 방송 이름 '한민국님의 소통 방송'으로 안 바꾸고?』
『스트리머 교체? 바로 진행해!』
이어서 짓궂은 내용의 채팅들이 올라오자 유나가 과장하듯 팔을 흔들며 말했다.
"어?! 좋아, 이제부터 오빠 방송 하세요! 스트리머 이름 바로 한민국으로 변경합니다!"
"아냐, 굳이 그럴 필요 없어."
그런 유나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주고는 민국은 옆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데?"
"어…. 오빠랑 처음 만났던 일?"
"아, 기억난다. 라이센스 따야 하는데, 갑자기 공대장이 잠수타서 사람 한 명 구했었는데 네가 왔었지. 자칭…. 미소녀 궁사라고 했던가?"
"저 정도면 미소녀 맞죠."
"으음……."
잠시 고민을 하는 척 모습을 보이자 유나가 주먹을 볼에 가져다대며 애교를 부린다.
"그래. 내 눈에 예쁘니까 미소녀로 해줄게."
그 모습이 퍽 귀여워서 볼을 살짝 꼬집어줬더니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아무래도 이런 달달한 스킨십이 시청자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모양이었다. 이어서 유나가 캠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말았다.
"꼬우면 너희들도 카르텔에 들어가던가."
『님을 봐야 뽕을 따죠. 길거리 돌아다녀도 남자 한 명 안 보여요.』
『카르텔이 아니라 소모임이라 하는 게 맞을 듯. 요즘은 두 세명도 카르텔이라고 하더라.』
『진짜 일부다처제 법 개정 해야 됨. 남자 한 명이 최소 여자 열 명은 거느려야지.』
『저도 남자 손 한 번 잡아보고 싶어요….』
그런 유나의 도발에 시청자들이 모조리 격침되었다.
대부분이 남자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이들이라 그런지 남녀가 꽁냥대는 상황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 뭐, 이 세계의 슬픈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여성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민국님! 카르텔 인원 늘릴 생각 있나요?』
"어…, 없지는 않은데. 지금은 당장은 생각이 없습니다."
매력적인 여성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카르텔 내에 있는 여자들을 관리하는 게 먼저였다. 예를 들면 네이처라던가. 아무튼 확장보다는 내실이 중요했다.
이 외에도 앞으로의 활동, 어둠 괴물 공략 계획 등 여러 질문들이 날아들었다.
그 중에는 일반인들에게는 밝히기 힘든 민감한 내용도 끼어 있었지만, 이런 방송을 처음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잘 피해서 대답을 해줬다.
그런 식으로 소통을 하다 보니 밖에서 아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영이 깼나 보다."
"그러면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가지 말라는 내용이 가득 올라오는 채팅을 뒤로 하고 방송을 종료했다.
당연히 오늘 받은 후원들은 전부 개인의 이름으로 기부를 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다시 소영이와 놀아주다가 오후 늦게 집을 나섰다. 오늘 밤 녹화 예정인 인기 아이돌 그룹인 네이처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관람할 계획이었다.
'언제 다시 해외로 나갈 지 알 수 없으니….'
혹시나 싶어 네이처 멤버들과 만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예능 녹화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관객으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나 한 번 더 물었더니 순식간에 자리가 마련이 되었다.
그렇게 오늘 밤은 네이처 멤버들의 예능 프로그램을 관람하고 그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뭔가 특이한 냄새가 느껴지는 마력이네. 인간들이 사용하는 마력은 확실히 아닌 것 같고."
"어?"
"내가 아는 녀석은 아닌데…. 느껴지는 기운은 또 심상치 않단 말이지."
"???"
"최근에 새로 넘어온 녀석인가?"
"무슨 말인지 잘…. 혹시 예전에 저를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방송국 앞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