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84화 (84/374)

〈 84화 〉 84­ 이젠 진짜로 때가 됐어.

* * *

“일어나요. 오빠.”

“아오­ 으음.”

마리가 흔들어 깨워서 일어난 김준은 길게 하품 한 번 하고는 마리를 한번 안았다.

“안 돼요. 지금은 아웃!”

팬티 한 장 걸치고, 가슴을 출렁이는 여배우를 두고서 김준은 피식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마리가 옷을 챙겨입을 때, 세면실로 가서 씻었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옷 챙겨 입고 나갈 때, 세수랑 머리를 감고 수건을 잡았다.

“후우­”

오늘은 컨디션도 좋으니 남은 발전기 방음 박스 설치하는 건 금방 끝날거다.

문제는 그다음.

이제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이 참에 부족한걸 다 채우려고 하니 이거저거 따져도 결국은 한 가지의 길 밖에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그 동네'를 가야한다.

“진짜 이젠 가야 되나….”

“밥먹다 말고 어딜?”

에밀리의 물음에 김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들 잘 들어.”

진중한 얼굴로 말하자 8명의 톱스타들은 모두 긴장한 얼굴로 김준을 바라봤다.

“이젠 진짜로 무기 챙기고 내년 생각해야 될거 같아.”

“어… 이제 크리스마스네?”

“하아~ 진짜 내년이 되는구나.”

이 상황에서 이미 짐작했다는 듯이 달관하는 건 에밀리와 라나.

다른 아이들은 이 상황에서도 아직 좀비 시대에서 못 벗어났다는 걸 알고 각자의 미묘한 상황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난번에 말했지? 무기가 있는 신릉면 지구대 정보 얻었다고.”

“….”

“이번에 발전기 방음 박스 다 만들면 그리로 갈 거야. 방법이 없어. 총은 계속 필요하니까.”

“엽총이랑 공기총 탄은 충분하다면서요?”

은지의 물음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공기총 연지탄은 납도 있고, 거기에 대해 틀도 있으니 직접 만들 수 있어. 그리고 엽총탄도… 총포상 털었을 때, 남은 게 아직 있고.”

“그러면… 또 다른 무기요?”

“권총탄, 그리고 거기 있을 테이저건, 그건 너희들도 사용할 수 있겠다.”

화기류는 몇 번 시도해봤지만, 제대로 사용하는 것을 겁내하고 위험성도 컸다.

하지만 테이저 정도는 확실히 쓸 수 있을 거다.

물론 카트리지가 문제겠지만, 그건 앞으로 계속 경찰서 일대를 루팅하면 구할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소총까지 있으면 진짜 월척인데….”

“지구대에… 라이플이 있어?”

이번엔 에밀리가 되물었고, 김준은 잠시 생각했다.

“옛날에는 파출소에 예비군용 소총이 있었는데, 요새도 있을지는 모르겠네.”

“흐응?”

“그러니까 있으면 월척이라는 거지.”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확실히 있다.

만약 카빈이라면 그거 탄 구하는 거 엄청나게 힘들겠지만, M­16이나 K­2라면 그 일대 군부대를 털어서라도 탄을 수급할 거다.

물론 그동안 예비군 사격장이나 군부대 안에는 얼마나 많은 좀비가 있을지, 아니면 생존자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언제 출발할 거죠?”

“발전기 방음 박스 다 만드는대로.”

“그럼 모레쯤이겠구나….”

다른 아이들도 마음의 준비를 잔뜩 하고서 무기를 수급하러 가는 루팅 순번을 정했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이 돌고 돌면서 이제 안 가 봤던 톱스타들의 차례가 온다.

먼저 가야가 손을 들고 이번 루팅에 참여하려 했다.

“일단 돌고 돌아서 내 차례 왔고, 그다음으로 갔던 애가….”

“…저네요.”

가야 다음으로 가서 종묘상과 철물점을 같이 털었던 캐릭터, 인아가 손을 들었다.

이번에 같이 갈 파트너는 그렇게 가야와 인아의 차이가 되었다.

김준은 이참에 어색한 분위기 좀 극복해 보기 위해서 미소를 지었지만, 인아는 아직도 떨떠름해 했다.

***

“이번엔 진짜 잘 해볼게요.”

“망치질 잘하면 칭찬… 어, 그래 해줘야지.”

오늘 아침까지 찐한 사이였는데, 이럴때는 그냥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해줘야겠다.

마리는 수술 메스와 타이를 하던 손기술로 나무에 대고 힘껏 망치질을 했다.

딱­ 딱­ 딱­

“그렇지. 잘한다.”

마리의 망치질을 김준이 칭찬해주자 사포를 들던 라나가 조립된 박스를 곱게 다듬었고, 도경은 톱으로 판자를 만들면서 바라봤다.

“그래, 다들 잘 해주고 있어.”

김준은 셋 모두에게 칭찬을 해줬고, 손발이 착착 맞으면서 상자를 만드는 시간이 지난번보다 훨씬 빨라졌다.

그 뒤로 발전기를 만지는 곳 반대편에서는 가야와 인아가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지금 목공질에서 쓰다 남은 나무들을 가지고, 낫과 야쓰리로 날카로운 장대를 만들고, 본드로 깃대를 만들어 붙였다.

“이번에 나가면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아, 괜찮아. 언니가 있잖아?”

“설마 하룻밤 자지는 않겠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이미 다른 애들은 다녀왔잖아.”

“다 김준 오빠하고… 으으음.”

인아는 여전히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가야는 이 상황에서 뭐라고 말해주기 그랬다.

자신이 가장 먼저 시작했고, 그 뒤로도 몇 번씩 안방에서 거사를 치른 사이였으니 말이다.

“근데 낫질 정말 잘한다.”

“어렸을 때 많이 해봤어요.”

낫으로 화살을 만들어 능숙하게 깎는 인아의 모습은 상당히 안정적이었고, 석궁의 화살이 계속 만들어지다가, 이내 다른 무기들은 가야가 점검하면서 한 번씩 훈련을 시작했다.

새총 쏘기, 석궁 발사, 그리고 자신들이 한때 좋은 데 썼던 스타킹 안에 자갈과 볼트를 넣고 묶어서 휘휘 돌려 철퇴 블랙잭을 만들었다.

저녁이 되어서 남은 작업은 김준이 창고 안에 들어가 조명 속에서 홀로 뚝딱 거렸다.

“니들은 먼저 들어가도 돼.”

“에이~ 이왕 시작한거, 마무리 다같이 해야죠.”

“네, 네. 같이 만들면 더 빨리 끝나지 않겠어요?”

나무가루 휘날리는 자리에서 계속 박스를 만들고 있는 세 톱스타와 김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저녁을 만들러 들어가려던 인아는 그 상황을 슬며시 보고는 마음이 복잡했다.

저 셋은 모두 김준과 자줬던 인물들인데, 오순도순한 자리에서 생존 장비를 만드는 것을 보니 뭔가 미묘한 심정이었다.

‘흐으음.’

인아는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돼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2층으로 올라갔다.

그날 저녁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바쁘니까 먼저 먹으라고 해서 먹은 아이들과, 밤늦게 올라와 9시가 돼서야 겨우 식사를 하러 온 네 명이 있었다.

“어서오세요~ 국 다시 데울게요.”

인아 대신 은지가 밥을 차려서 네 명에게 전해 줬고, 손을 씻은 다음에 늦은 밥을 먹었다.

“하~ 당분간 좀비 잡는 일이 없으니까 하루 일과가 이렇게 편하네?”

“그런 말 하면 꼭 어디서 뭔 일 생겨.”

“영화에서나 그러겠죠.”

마리와 라나가 서로 농담을 하면서 전기가 풍족하던 시절에 보던 TV와 DVD 셋트로 눈이 갔다.

“지난번에 했던 게임기도 있고.”

서랍장 안에 은지와 김준이 서점에서 털어왔던 고전게임 카트리지들이 보였고, 저게 시간 잘 보내기엔 최고였는데 요샌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방음 박스 다 만들었으니까 이번 루팅 끝나는대로 다시 돌려보자.”

“오!”

“그때되면 크리스마스일텐데, 그 전에 파티라도 한 번 해야지.”

“와~ 이 세상에 크리스마스!”

아무리 유쾌하게 말해도 생각해보면 이제 한 해가 끝난다는 것이었다.

길어봤자 한 두 세달이면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좀비물처럼 금방 군대가 나오고 세상이 안정화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결국 이 자리에서 이들이 같이 지내게 된 시간이 5개월이 넘었고, 곧 있으면 새해가 되어서 설날도 여기서 치를 것 같았다.

“뭐,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고.”

김준은 손뼉을 쳐서 아이들을 집중시킨 다음에 말했다.

“그래도 1년은 아직 안 채웠잖아? 그 안에는 끝나지 않겠어?”

“하~ 그랬으면 좋겠네요.”

다른 일을 하고 왔다 내려온 인아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밥상 위에 올려놨다.

“생각해보니 내년되면 준은 서른이네?”

“….”

옆에서 런닝하던 운동을 하던 에밀리가 멈추고서 한 말에 순간적으로 김준이 움찔했다.

“뭐, 지금도 3­4살은 더 성숙해 보이지만….”

그 말에도 움찔했는데 뭐라고 반박을 못하는 김준이었다.

그저 ‘군대가 날 더 늙게 만들었다.’라고 말해봤자 이해해 줄 아이들도 없고 말이다.

***

아침일찍 일어난 김준은 오전에 바로 창고안에 있는 발전기들을 모두 방음 박스에 담았다.

그리고는 전선을 한 곳에 모아서 바로 스위치를 올리자 전에 비하면 상당히 적어진 잔잔한 소리로 전력이 돌아갔다.

“흐음~”

“와­ 만들길 잘했다.”

이렇게 두고서 감탄하는 은지와 마리.

특히 은지는 한 번 창고 밖으로 나와서 그곳에서 귀를 기울여봤다.

“밖에서는 거의 안 들리네요.”

“안 그러면 만든 의미가 없지.”

일단 그렇게 만들어 둔 다음에 김준은 준비한 소화기를 마리와 은지에게 하나씩 주고서 창고 밖에 설치하게 했다.

“내가 없을 때 둘이 체크 잘해.”

“아, 불날 대비요?”

“혹시 몰라. 일단 만들긴 했지만, 안에 통풍이 안되서 열이 올라서 연기나는 순간… 바로 스위치 내리고 불붙으면 바로 끌 수 있게.”

방화수에 방화사, 거기에 소화기까지 준비해서 만전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알려준 김준.

그리고 두 언니들은 확실히 상황을 숙지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1시간마다 한번씩 지켜보게 하면 되겠네요.”

“내가 직접 체크할게.”

은지가 직접 나서겠다고 하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고스럽겠지만.”

“내일 모레 올 수도 있다는 거 감안할게요.”

무전기는 챙겼지만, 혹시 거기를 벗어나서 하룻밤 늦는다 하더라도 전부 감안하겠다는 은지.

그렇게 나갈 준비를 모두 마치고 점심 식사를 마친 뒤에 김준은 떠날 준비를 했다.

“자~ 총 챙기고, 방어구 단단하게 입었고, 또 안전 장비 챙겼고.”

김준은 바깥 상황까지 확인한 다음 바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조수석에서 긴장한 얼굴의 가야가 석궁을 어루만졌다.

“세 번째네요.”

“이번엔 잘 할거야.”

“네, 조심 또 조심 할게요.”

그리고 뒷좌석에 있는 인아는 사방을 보면서 앞에서 못 보는 사각의 시선을 살폈다.

“나중에 가다가 카센터 발견하면, 후방 카메라를 좀 달아야겠어.”

“네, 그것도 가다가 발견하면 좋겠네요.”

김준은 국도로 향하면서 좀비들의 상황을 살펴봤다.

그리고 익숙한 길이 나오자 두 아이돌 모두 얼굴이 굳어갔다.

가야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끔찍했던 고가밑 도로, 그리고 그 곳을 넘어가 인아가 가던 길로 들어가서 있는 철물점과 화훼 단지.

“신릉면은 여기서 또 고가 타고 위로 가야 돼.”

“얼마나 걸리죠?”

“20km정도.”

옛날이면 지하철 몇 정거장의 별 거 아닌 거리였겠지만, 지금은 안전운전으로 좀비들 하나하나 상대해야 하면서 가야 하는 거리다.

부우우우웅­

경제 속도 60km로 착실하게 달리면서 갔을 때, 여기저기에 보이는 폭발의 잔해에 가야와 인아의 인상이 찌푸러들었다.

정 반대편 절이 있는 곳에서 올라갈 그 외곽도로처럼 꽉 막히진 않았지만, 여기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좀비 습격에 피하기 위해 도망치던 차들이 이리저리 들이받고 폭발해서 안에 시체 흔적이 보였다.

얼마 안 있어 밖에는 완전 들판만 보이는 4차선의 도로만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곳에서 계속 달려가는 와중에 간간이 보이는 거라고는 저 멀리 기어다니는 좀비들. 그리고 버려져 있는 트렉터나 공사 장비들이 전부였다.

그때였다.

“어, 어?! 저거 뭐야?”

“뭐?”

“오빠! 이리로 차가 막 와요!”

“!?”

차라는 말에 김준이 바로 백미러를 살펴봤다.

뭔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긴 했다.

차가 아니라 정확히는 오토바이였지만, 말이다.

“오토바이?”

“하, 생존자무리인가?”

김준은 일단은 계속 달리면서 거리를 벌리기 위해 액셀을 밟았다.

부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요란한 머플러 소리와 함께 점점 더 빨리 달려오는 오토바이가 총 다섯 대였다.

헬멧을 쓴 가운데 한 명 빼고는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은 자들.

그리고 손에 들려있는 건 쇠파이프나 각목 등이었다.

“안 좋은데….”

“오빠, 설마 저것들….”

그 순간 빠르게 달려온 오토바이 하나가 김준의 운전석과 눈이 마주쳤다.

생존자, 그것도 사람이 확실했다.

하지만 김준이 뭐라고 하려는 순간 그는 피식 웃으면서 손에 들린 각목으로 김준의 캠핑카를 내리쳤다.

콰직!

“꺄앗?!”

“이런 미친!”

김준이 바로 핸들을 틀어서 피하려는 순간 뒤에 있던 두 대의 오토바이가 김준의 캠핑카 닫힌 부분을 마구 내리쳤다.

퍽­ 퍽­ 콰직­

“꺄악! 이거 뭐야?!”

덜컹거리는 상황에서 뒤에 있던 인아는 뒷문의 강한 충격에 어쩔줄을 몰라했다.

“꽉 잡아!”

김준이 엑셀을 더 밟아 달리는 순간 다섯 대의 오토바이는 캠핑카와 같이 달리면서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 움직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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