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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89화 (89/374)

〈 89화 〉 89­ 여기까지 오래도 걸렸다.

* * *

“오빠,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김준은 가야를 진정시킨 다음 천천히 중심을 잡고 일어났다.

칼 맞았을 때 다리 힘줄 어디 안 잘린 게 천만다행이었고, 아직도 여기저기 찔린 상처에서 조금만 건드리면 피가 터지겠지만, 새로 갈 붕대도 없으니 버텨야 했다.

“끄응­”

“괘, 괜찮으세요? 부축할게요.”

“됐어.”

김준은 인아와 가야의 손길을 사양하고 운전석으로 갔다.

깨진 유리 조각들은 어떻게 다 털어냈고, 기어봉 뒤에 있는 콘솔박스를 열고 안을 뒤적거렸다.

달그락­ 달그락­

금속 부딪히는 소리 속에서 김준이 꺼낸건 종이 곽으로 쌓여있는 권총 탄이었다.

어제 광란의 전투 이후로 전부 쓴 권총부터 하나하나 장전했고, 그다음으로 연지탄 케이스를 꺼내 뚜껑을 열고 공기권총과 공기총도 장전했다.

“후우, 물 좀.”

“네! 여기요.”

어제 출혈이 하도 심했어서 계속 물로 수분을 채우는 김준이었다.

이 상황에서 수혈도 할 수 없으니 할 거라곤 그저 집으로 돌아가 푹 자는거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는 욱씬거리는 팔을 차가운 생수통으로 아이싱을 하면서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뒷문을 통해 나왔을 때, 그 일대는 벽부터 바닥이 새카맣게 타 있었다.

“히익?!”

그 상황에서 나가다가 가야와 인아는 발치에 타다 만 시체 조각들을 보고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태연하게 탄 시체들을 밟고 지나가면서 다방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인기척이 없는 곳에서 지하 창고 철문을 발견하고 두들겼다.

쾅쾅­

“안에 다들 살아있어?”

“….”

쾅쾅­

두 번째 노크를 하고 기다리던 김준은 조용히 두 톱스타를 데리고 의자 하나를 잡아 앉았다.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때, 계단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리고 있었다.

철컥­

끼이이이­

“중사 삼촌?”

앞장서서 먼저 나온 황 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을 때, 김준이 대답했다.

“상황 다 끝났습니다.”

“정말 끝났어?”

반가운 목소리로 문을 열었다가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김준을 보고 순간 놀란 황 여사였다.

“어머머 삼촌! 이 상처 봐! 괜찮은 거야?”

“네~ 아직 살아있어요.”

담배 든 손을 흔들었을 때, 여기저기 칼에 베이고 유리에 찢긴 왼팔이 드러났다.

“세상에… 그 팔 어떡해?”

“지혈은 돼요.”

“여기 치료할게 없어서… 위스키라도 뿌릴래?”

“됐습니다. 사람들이나 불러줘요.”

김준의 말에 황 여사는 바로 내려가서 아가씨들을 불러왔다.

잠을 설쳐서 두 눈이 시뻘개지고, 어둠 속에 공포에 질려있던 아가씨들.

그중에서도 은별은 다른 이들을 진정시키면서 김준에게 다가왔다.

“전부 처리한 거야?”

“내가 제일파 몇 명인지 모르지만… 다섯 놈 이상은 잡았어.”

“고마… 아니, 감사합니다.”

은별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자 황 여사도 다른 아이들 옆구리를 찔러서 김준 앞에서 인사를 시켰다.

앉아서 여유롭게 담배를 태우는 김준과 달리 뒤에 있던 가야와 인아는 당황해서 같이 인사했다.

“바깥에 시체가 좀 있는데, 치울 수 있겠어?”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은별이 팔을 걷어붙이고, 제일파 놈들에게 시달렸던 지옥 같은 일을 생각하며 시체라도 치워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몇몇의 비명이 들렸지만, 이내 차분하게 치우는 것 같았다.

“끄응­”

“다시 움직이게요?”

“집에 안 가게?”

“아니, 그렇긴 해도 차가….”

유리창은 다 깨지고, 여기저기 찌그러진 차로 가능할까 싶었는데, 김준은 곧바로 계획을 말했다.

“가야가 가서 황 여사랑 은별 누나 좀 불러와.”

“네? 아, 그분이요? 제가 갈게요.”

가야가 달려가서 밖을 찾으러 가고, 남아있는 인아를 향해 김준이 그를 불렀다.

“차 안에 그거 챙겨.”

“그거요?”

김준은 인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고, 그녀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걸 다요?”

“물물교환이잖아.”

김준의 말에 인아는 한숨을 길게 내 쉬면서 망가진 캠핑카가 있는 카센타로 향했다.

얼마 안 있어 가야와 같이 온 은별과 황 여사를 두고 김준은 앞으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가려고 하는데, 챙겨야 할게 몇 개 있어요.”

“뭔데? 삼촌, 말만 해봐! 뭐든 다 챙겨줄게.”

황 여사의 말에 김준은 하나하나 물었다.

“제일파 규모가 얼마나 돼요?”

“자세히는 몰라도 현역 시절 오십은 넘었지.”

“지금 그놈들이 전부 살아있을 리는 없고, 다섯 놈 잡았으니까 확인하러 오려나?”

“후우, 다음이 문제지. 다음이….”

황 여사와 은별 모두 일단 처리는 했지만, 그다음으로 올 보복을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했다.

“대안은 있어요?”

“하나 생각한 게 있긴 한데….”

“!”

황 여사는 은별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서해안 쪽에도 내 소유의 노래방 있거든. 거기는 2층이고 방도 많으니까 거기로 다 옮기려고 해.”

“당장에는 힘들겠네요.”

“그래서 말인데, 한 번 더 도와줄 수 있겠어? 중사 삼촌, 어려운 부탁인거 알아.”

“….”

김준은 말없이 발치에 놓인 위스키 박스와 생수를 보고 슬며시 생각했다.

일단 도와는 준다고 해도 저거 하나 가지고 다 해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눈치챈 황 여사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로는 부족하지? 삼촌,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또 뭐 좀 가지고 올게.”

황 여사가 달려갈 때, 인아가 김준의 심부름으로 가져온 것들이 있었다.

“저게 뭐야?”

“받아 봐.”

인아가 메고 있는 소화기를 개조한 분사기, 그리고 락스 박스와 새총, 블랙잭 등이었다.

“일단 당분간 방어할 수 있는 무기 정도는 갖추라고.”

“이건 새총이고, 뭐야? 스타킹에 나사 넣은거? 그리고 소화기는 뭔데?”

“하나하나 설명해줄게.”

락스 분사기, 블랙잭, 그리고 새총 사용법까지 인아에게 말해서 가르쳐주라고 오더를 내린 김준.

짧은 시간에 일단 사용법 정도만 알려주고, 남은 시간동안 어떻게든 숙지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 사이에 황 여사는 위스키 박스 하나를 더 가져왔다.

“삼촌 이거 받아.”

“뭐에요?”

“이건 18년 짜리야.”

시바스리갈 18년 위스키 박스를 하나 더 가져온 황 여사.

시중가로 친다면 위스키 두 박스라면 상당한 가격이겠지만, 이 자리에서는 당장에 처리할 수 있는 물물교환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거….”

“음?”

고급 위스키에 담는 면포자루.

그 안에 담긴 것은 번쩍이는 황금열쇠, 그리고 목걸이와 장신구 등이었다.

“어?”

“삼촌, 그거 다 24k야.”

“…!!”

손대중으로 무게를 재 봐도 2kg는 넘어보였는데, 이 정도면 억대는 우습게 넘는다.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받은 금을 보고서 김준이 멍하니 바라볼 때, 황 여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지점마다 금고에 현물로 넣어놨는데, 이걸 여기다 쓰네. 어떻게 안 되겠어?”

“흐음, 뭐 이거라면….”

억단위 거래였지만, 당장에 교환용으로 어디 쓰기에는 애매한 금붙이들이었다.

그나마 사용처를 써 본다고 해야 절에 가져가서 치과의사한테 갖다주고 부러지거나 충치 긁어낸 치아에 달아줄 정도?

그래도 언젠가 다시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쓸 데가 많을테니 챙기기로 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그래, 뭐든 말해 봐!”

***

“어, 그거랑 그거!”

“끄으응~ 이거 엄청 무겁네요.”

“그래, 원래 그게 좀 무거워.”

아픈 몸으로 황여사 밑의 아가씨들이 김준이 말한 카센터의 부품들을 하나하나 챙겼다.

앞유리와 옆유리, 그리고 본닛과, 교체용 범퍼, 헤드라이트와 덴트, 마커 등을 한 가득 챙겼다.

“이 정도면 차 수리는 집에 가서 하면 되겠지.”

“될 수 있으면 빨리 해줘. 기다릴게.”

“걱정하지 마세요. 그동안 은별 누나한테 알려준 거 무기 사용법 가지고요.”

“아이고, 그래! 일단은 버틸게.”

김준은 황 여사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 상태에 망가진 차를 가지고 당장에 이들을 모두 태우고 물자까지 옮긴다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딱 2주의 시간만 달라고 했다.

그 안에 차를 수리하고, 몸 상태를 추스른 다음 돌아오는 대로 일단 옮긴다는 황 여사의 노래방 일대를 같이 수색하고, 안전을 확인하면 그곳으로 모두 쉘터를 옮긴다.

“그 연못 있는 동네, 거기도 생각해보니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그 일대는 라나랑 한 번 갔을 때, 약국과 횟감들을 챙기러 항구 쪽으로 돌아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 언제까지 신릉면의 제일파 잔당들이 습격할지 몰라 공포에 떠는 것 보다는 지금이 나을 것 같지만 말이다.

그렇게 모든 짐을 챙기고, 가야와 인아가 새총 숙지를 은별에게 완벽히 알려준 다음 다른 아가씨들에게도 알려주라 하면서 떠날 준비를 했다.

“후우, 후우­”

“삼촌 괜찮겠어?”

“그래도 갈 길은 가야죠.”

김준은 욱씬거리는 몸을 움직이면서 진통제를 한 알 더 먹었고, 인아와 가야를 태운 뒤로 떠날 준비를 했다.

“2주 뒤에 뵙죠.”

“그래, 다들 잘 살아야 돼. 기다릴게.”

김준은 황 여사 이하 아가씨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다시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엔진이나 어디 망가진 곳은 없어서 쉽게 걸리는 시동. 그리고 김준이 다시 출발했다.

“어, 집으로 가는 거 아니었어요?”

가야가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것을 보고 놀라 묻자 김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지구대는 가 봐야지.”

“아!”

제일파 놈들이 지구대를 습격해 소장의 권총을 뺏어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금고까지 털지는 못했을거다.

적어도 유압 프레스나 전기톱 등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걸 털 수 있는 전기가 없을테니 말이다.

뭐, 그 놈들 안에서 금고털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인은 해야 된다.

“어머!?”

“흐음.”

지나가는 길에 어제 습격한 제일파 건달 셋이 탄 오토바이가 보였다.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면서 바로 지구대로 향했다.

“도착했다.”

김준은 총을 챙기고서 주변을 살피다가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크윽!”

내리자마자 상반신이 흔들리면서 또 다시 몸 여기저기 쑤셔서 죽을 것만 같았다.

김준은 왼팔을 붙잡은채로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갔고, 완전히 난장판이 된 곳 안에서 새카맣게 말라붙은 피가 사방에 튀어 있었다.

“아주… 난장을 깠구만.”

일단 1층을 살펴봤을 때, 안에 있는 것은 피투성이의 컴퓨터, 그리고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봤을 때 잡동사니만 가득했다.

그때 그 죽기 전에 경찰이 말했던 대로 지하 캐비넷에 가야 했는데, 일단 뒤에서 기다리는 가야와 인아를 보고서는 나서지 말라고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성치 못한 몸으로 권총과 HD등을 파지하면서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대낮에도 조명 하나 없는 지하실. 그 안에는 상당한 양의 캐비넷이 있었고, 김준이 이리저리 살피면서 물건을 챙겼다.

“이건 제복이고, 이건 진압봉… 방검복… 야, 다 챙겨야겠다.”

일단 다 챙긴 다음에 경찰 마크나 이름표만 잘라내고 수선해서 쓸 거였다.

그 외에 교통경찰이 쓰는 야광봉, 그리고 각종 무전기들 역시도 챙겼는데, 캐비넷을 열 때마다 하나 웃기는 게 있었다.

“이 새끼들… 다 들쑤셨구만.”

누군가 격하게 두들겨서 캐비넷과 금고 앞에 기스가 잔뜩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자물쇠가 보통 단단한게 아닌지 시중에 있는 물건으로는 도저히 못 깰 강도였다.

김준은 한 가득 짐을 채우고, 마지막으로 금고로 향했다.

수동식 금고를 보고서 캐비넷과 똑같이 비밀번호를 맞춘 순간… 문이 열렸다.

드르르륵­ 땅!

안에 잠금이 열리면서 안을 비추자 순간 김준이 탄식했다.

“하….”

금광을 찾은 느낌이었다.

신형 권총 한 자루, 그리고 그 옆에 전기충격기 여러 대와 테이저건 세 자루.

그리고 밑에 층에는 종이곽에 잘 담겨있는 수많은 권총탄과 그 옆에 테이저건 카트리지와 배터리 등이 있었다.

아까 받은 금 보다도 이게 더 감동적이었고, 더블백 한 곳에 무기들을 꽉꽉 채워넣다가 괜스레 그때의 그 경찰이 떠 올랐다.

“…천국 갔을 거야. 사람 구하려고 다닌 사람이니까.”

김준은 잠시 묵념을 한 다음 물건을 다 챙기고 두 자루의 더블백을 들려는 순간 올라오는 통증에 주저앉았다.

“크윽!”

몸 상태만 멀쩡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갈 수 있었지만,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끄으윽… 아오 씨발 진짜….”

떨어진 더블백을 들고 질질 끌고 갔으니 부들부들 떨리던 팔에서 상처가 터져 다시 피가 흘러나왔다.

하도 이를 악 물어서 잇몸이 다 시큰거릴 정도였고, 차 안에 있던 둘이라도 데리고 같이 들어야 했지만 김준은 기를 쓰고 직접 움직였다.

겨우 1층까지 올라온 상태에서 어지럼증이 올라온 김준.

그 순간 그것을 본 가야가 황급히 내려서 달려왔다.

“오빠!”

“이것 좀… 챙겨라.”

“네!”

뒤늦게 인아도 달려와서 둘이 무거운 두 짐을 낑낑거리며 실었을 때, 김준은 피 냄새 가득한 지구대 안에서 다시 기력이 떨어져 못 움직였다.

“부축해드릴게요.”

“하씨… 그래야겠다.”

그동안 애들에게 도움 받는 걸 피했지만, 지금은 도저히 힘이 안들어갔다.

좌반신 전체가 안 움직이는 상황에서 가야와 인아가 몸을 부축해서 일어난 김준.

그는 비틀거리면서 차에 올라탔고, 숨을 길게 몰아쉰 다음 담배를 태웠다.

“…가자.”

“….”

김준은 시동을 걸었고, 정말 괜찮을까 싶어 가야가 물었다.

“저, 면허 있는데 제가 운전할까요?”

“됐어. 그 정도는 아니다.”

그대로 차가 출발했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아까의 그 오토바이들이 보였다.

“….”

김준은 그 순간 권총을 꺼내 들었고, 오토바이를 향해 갈겼다.

탕­ 탕­

쿠당탕탕탕!!!

오토바이 타이어가 터지면서 힘없이 넘어가며 망가진 두 대의 오토바이.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놀라서 다방 건물에 나온 은별을 보고 손을 흔들면서 지구대에서 챙겨온 물건 중 하나를 쿨하게 던져줬다.

“!?”

“전기충격기야. 누나가잘 써.”

“아… 고마….”

김준은 손을 흔들면서 엑셀을 밟았고, 지나가는 길에 박살난 오토바이와 사람 시체를 보고 비명을 지른 가야와 인아 빼고는 순탄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자마자 바로 모든 아이들이 기겁했고, 마리가 치료를 위해 준비했다.

아마 이 부상이 다 낫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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