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155 회식으로 집안 일상.
* * *
그날의 저녁은 엄청나게 다양한 음식들이 각 방에 오갔다.
“저기~ 한 번 드셔보세요.”
“오, 나니카가 만들어본 술안주 한 번 먹어볼까?”
오늘은 저녁까지 집안에서 잡무만 다 마치고 회식을 하자고 김준이 제안했고 덕분에 모두가 모여서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와~ 대박!”
“냄새 좋다~ 나니카 고생했어!”
안방에는 김준과 같이 먹는 멤버로 가야랑 에밀리, 마리의 연장자 멤버들이 있었다.
나니카가 가져온 것은 버너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오뎅전골이었다.
1층 상가와 옥탑방에서 재배한 부추와 무, 쑥갓에다 인아와 은지가 만들어준 오뎅으로 일본식으로 끓여냈다.
“근데 이건 진짜 잘 만들었네.”
“음~ 저페니스 스타일~ 맛도 좋아.”
그동안 이 안에서 아이돌들이 만들어주는 요리를 많이 봤지만, 술안주로 이렇게 다채롭게 나오는 걸 보면 그저 흡족한 김준이었다.
“맛있네. 고생했어.”
“고마워요. 오빠.”
머리를 쓰다듬해주자 얼굴을 붉히는 나니카를 보고 잔 하나를 집어서 소주를 따라주자 그녀가 조용히 마셨다.
“요새는 물자도 풍족하고, 다들 별 일 없지?”
“그렇긴 해요. 요새 좀 지루할 정도니까.”
마리는 키득거리면서 그동안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천천히 풀었다.
“가장 불편한건 역시 그거겠죠?”
“음?”
“휴대폰하고 컴퓨터.”
“아, 그거야 뭐….”
생각해보면 진짜 스마트폰과 컴퓨터, TV없이 잘도 살고 있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공익광고 제안 받은거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거 할걸!”
가야 역시도 스마트폰은 가끔 충전해서 옛날 사진을 보거나 지금 이곳의 기록을 남기는 카메라 용도로만 쓰는 게 전부였다.
인터넷이나 라디오도 끊긴 지 오래이고 TV는 그 역할이 레트로 게임기를 설치해서 노는게 그 역할의 전부였다.
“그래도 다들 에너지 절약하고 잘하고 있어.”
“게임은 딱 30분!”
피 끓는 20대 청춘의 소녀들이 디지털 기기는 아무것도 사용 못 하고, 서점에서 루팅해온 레트로 게임기로 890년대 마리오나 갤러그 등을 하는게 전부였는데, 그 상황에서도 전기 절약까지 했다.
“그래도 요새는 뭐 부족한 거 없지?”
“그… 있어요. 아주 많이.”
“!”
가야는 총무 생활 속에 계속 물자를 점검하면서 요새 급속도로 사라져서 간당간당한 것에 대해 말했다.
“오빠 저기, 우리 피임약이 다 떨어져가요.”
“어….”
“솔직히 그거 많이 쓰긴 했죠?”
마리도 그 이야기에는 뜨끔했는지 많이 먹기는 했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이야기에 나니카의 얼굴도 새빨개진 채 고개를 푹 숙였다.
피임약이 왜 그렇게 빨리 사라지는 지는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알고 있고, 그래서 더 부끄러워하는 애들이었다.
“그… 앞으로는 콘돔을 자주 써야 될까요?”
나니카의 말에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다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안 한다는 선택은 없는 거지?”
“앗, 아앗! 싫으시면 그….”
김준도 멋쩍게 웃으면서 질내사정이 아무리 좋아도 이젠 고무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뭐, 사실 안 써도 되긴 하지만….”
그 와중에 마리는 자기 아랫배를 만지면서 김준한테 미소를 지었고, 전부터 계속 임신공격을 하려는 그녀의 반응에 고개를 돌렸다.
“가야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으, 으응?!”
뜬금없이 불똥이 자신에게 튀었고, 당장에 어제만 하더라도 자궁 빵빵하게 격한 노콘 섹스를 한 지라 할 말이 없었다.
“콘돔이랑 노콘이랑 느낌 심해요?”
“그, 그런 거 별로 신경 안썼어.”
“흐으응~?”
그때 안방 문이 열리면서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는 에밀리가 보였다.
“아~ 이쪽은 그래도 술 좀 잘 먹네? 저쪽은 영 재미가 없어.”
다른 방에서는 은지나 라나 등이 있었는데,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다르게 에밀리한텐 재미가 없나보다.
“그럼 내가 저쪽으로 자리 옮기지 뭐.”
“어, 안 그래도 되는데.”
“아니에요. 은지랑 인아 좀 보러 가죠.”
가야가 슬쩍 일어나서 거실로 갔을 때, 에밀리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차지해서 김준의 옆에 착 달라붙었다.
“나 없어서 심심했지?”
“저리 가 더워.”
“흐으응~”
에밀리는 여느때와 같이 출렁이는 가슴을 어필하면서 김준에게 달라붙었다.
8명의 아이돌 중 가장 김준에게 끈적하게 달라붙는 원투펀치 에밀리와 라나.
그나마 라나가 다른 쪽에서 이야기 하느라 여기 없는게 다행이었다.
“근데 여기서 무슨 이야기 했어?”
“피임약 줄어든다고.”
“어머! Pill이 벌써 다 써가?”
에밀리도 그것에 대해서는 신경쓰는지 마리나 나니카같은 다른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나야 반반씩 쓴다지만, 누가 그렇게 많이 먹는 거야?”
“저, 그….”
“됐어. 사람이 많아서 그런건데.”
김준은 술이나 마시라고 아까 가야가 두고 간 잔을 물티슈로 슥슥 닦고는 바로 한 잔 따라줬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바람으로 이렇게 파티 하는거야?”
에밀리의 물음에 김준은 담담히 소주를 마시다가 대답했다.
“그냥 한 번 하고 싶어서.”
“흐으음, 회식이 있으면 그 날 이후는 뭔가 중대발표가 있었는데, 오늘도 그런 건가요?”
마리도 넌지시 물어보자, 나니카도 거들었다.
“저기 오빠… 저, 혹시 바깥 나가는 거 때문이라면 다음엔 이번에 갈 게요. 저… 이제껏 다른 언니들에 비해 도움 된 적이 없어서….”
이제는 눈치가 백단인 아이돌들을 보고서 김준은 대략적으로 운을 띄웠다.
“좀 장거리를 나가보려고 해.”
“흐음~ 장거리?”‘
“뭐야, 우리 서울 가?”
서울이란 말에 흠칫한 둘이었지만, 김준은 그런 에밀리를 조용히 쓰다듬고는 말했다.
“그냥 옆 동네까지 한번 수색해보려는 거야. 아직은 구상이지만.”
“흐응~ 그렇구나? 그래서 잔뜩 먹여서 긴장 풀게 하려고….”
에밀리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김준은 그 동안 인구 15만의 소사벌 시를 탈탈 털어서 많은 물자를 챙겨왔다.
거기에 생존자도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지만 교류할 정도는 생겼고, 그러면서 근거리에 있는 물자들은 웬만큼 다 털었다.
덕분에 눈길도 안 줬던 등잔 밑이 어두운 주변의 좀비 위험이 있는 이웃 폐가들까지 탈탈 털어서 통조림이랑 물자를 챙기기까지 했다.
그 상황에서 트럭 행상인까지 발견하자 김준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그럼 진짜로 인근에 다른 도시로 가 보면 어떨까?
아마 그쪽도 좀비가 넘쳐나겠지만, 그만큼 남들이 가지 않은 곳에 물자가 많이 쌓여있을 수도 있었다.
“대형마트 하나만 털면 진짜 월척인데.”
“그러게~ 이 동네는 다 좋은데 백화점하고 그런데는 없어~”
만약 그런 곳을 찾는다면 바로 장신구와 명품샵부터 털 거라고 너스레를 떠는 에밀리였지만, 진짜 대형 상점이 필요하긴 했다.
“근데 이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가 어디에요?”
“아산, 그리고 옆으로 가면 온양.”
“온양온천!”
에밀리는 다리를 쭉 뻗어 김준의 무릎 위에 올리면서 육덕진 하체를 자랑했다.
“이렇게 다리 쭉 뻗고 몸 담그고 싶어. 진짜 스파 가고 싶다.”
“후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여기저기 좀이 쑤시던 아이돌들에게 정말 필요한 거였다.
2층 욕실에 욕조가 있지만, 작은 거라 나니카나 라나 같은 체구의 아이들이나 겨우 들어갔지 도경 같은애는 불편하다면서 쓰지도 않았다.
“그래, 말 나온 김에 진짜 한 번 이야기 해 봐야겠어. 그런 뜻에서 에밀리?”
“으응?”
“족발 치워.”
“쉿! 뭐라고? 이 짐승!”
에밀리는 순간 다리를 들어올려 김준의 허벅지를 내리치고는 족발이라 불린 자기 다리를 만졌다.
“이게 어딜 봐서! 몇 백만명이 리트윗한 다리인데!”
“음, 좀 쪘어.”
김준은 장난스럽게 에밀리의 허벅지를 톡톡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줏잔을 들고 갔다.
***
거실에서 밥상 테이블로 야식을 먹던 애들에게 다가간 김준은 안방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그녀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그래서 다음 루팅은 좀 장거리가 될거야. 심하면… 하룻밤 자고 오는게 아니라 이틀에서 사흘이 걸릴 수도 있어.”
“헐….”
라나는 이제 이 동네를 벗어나 다른 지역을 한 번 둘러볼 거란 말에 긴장한 얼굴로 엄지손톱을 짓씹었다.
“위험하지 않겠어요? 오빠 몇 번 시도했다가 계속 돌아갔잖아요.”
“그랬지.”
도경의 말대로 김준이 국도와 외곽순환 도로 등을 타고 가려다가 꽉 막힌 차량 잔해들과 좀비들로 인해 포기했던 적이 많았다.
심지어 한 번은 시 외곽의 고물상 털러 가다가 내친김에 고속도로로 빠지는 길 쪽 한 번 가 보려고 했다가 갑자기 집에 좀비 웨이브 생겨서 급히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이번에 한 번 도전해보려고. 그래서 충분히 준비해야겠어.”
그 말을 듣고 숙연해진 분위기에서 은지가 조용히 술잔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럼 이게 최후의 만찬인가….”
“아, 은지야.”
“뭔가 그런 삘이 팍 오는데요?”
은지의 말에 몇몇이 작게 피식거렸고, 김준은 애들의 잔을 일일이 채워준 다음에 말했다.
“그래도 점점 생존자들이 늘어나고, 이렇게 지내다보면 언젠가는 좀비들이 줄어들면서 다시 돌아올거야.”
“가다가 군부대라도 만난다면….”
은지가 또 한마디 하자 순간 숙연해졌다.
“좀비…아포칼립스… 군대… 으으음.”
솔직히 그건 김준 본인도 군인 출신이지만, 진짜 만난다면 불안할 것 같았다.
과연 이 나라의 60만 장병 중 지금은 얼마나 살아있을지는 몰라도 1년이 지나도 군부대가 나와서 좀비 토벌하는 일은 없었다.
“암튼, 오늘 회식 잘 진행하고 내일부터 준비 좀 하자.”
“네~ 그래요. 다들 잔 들자.”
가야의 말에 은지는 조용히 일어나서 안방을 향해 외쳤다.
“야! 거기 안에 애들! 다 나와! 잔 들고 짠 해야돼.”
은지의 말에 마리와 에밀리, 나니카가 각자의 잔을 들고 우루루 달려와서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8명의 톱스타들과 김준은 각자의 잔을 채우고 내일을 위해서 건배를 했다.
김준은 다음 루팅에 대한 루트를 이미 계획한 상태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