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214 아포칼립스의 버킷리스트.
* * *
김준은 가야의 맹장수술 상처가 점점 낫는 것을 확인하며, 자신도 작업에 들어갔다.
“못.”
“여기요.”
오랜만에 바깥에서 작업하는데, 뒤에서 라나랑 도경이 거들었다.
김준은 남는 나무를 깎아다가 나무 상자를 여러 개 만들었고, 못질을 하는 동안 라나와 도경을 보며 넌지시 물어봤다.
“니들도 하나씩 만들어볼래요?”
“네, 해볼게요!”
라나가 힘차게 손을 들면서 김준에게 망치를 받았지만, 도경은 몇 번이고 해봤다가 못질 못 한다고 타박을 받아서인지 조금 주저하고 있었다.
딱 딱 딱
라나는 김준이 사인펜으로 표시한 부분에 맞춰서 못질했고, 그 옆에서 도경이 조용히 보조를 맡았다.
그렇게 정오까지 나무 상자 10개는 넘게 만들었고, 점심먹고 하라는 인아의 부름에 모두가 손을 털고 들어갔다.
이제는 가야도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인아와 은지는 가볍게 야채죽과 소화가 잘되는 반찬 위주로 차렸다.
“후~ 진짜 살이 쭉 빠졌어.”
“애기 이유식 같네.”
파랑 당근, 양파를 잘게 썰어서 만든 죽을 두고 에밀리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은 야채를 잘게 썬 김에 만든 볶음밥이었다.
“다음주면 밥 먹는데 문제 없을거에요.”
“상처도 거의 다 붙었어.”
가야의 말에 마리와 김준 모두 미소를 지었고, 다른 아이들도 맏언니의 쾌유를 빌면서 한 마디씩 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 김준은 가야와 에밀리, 그리고 은지와 인아를 불렀다.
그리고는 노트를 펼쳐서 저번에 말했던 것을 위해 리스트를 적을 준비를 했다.
“다음 주가 가야 생일이잖아?”
“어, 진짜 그렇네요?”
인아가 몰랐다는 듯이 놀랐고, 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왜 자신들을 불렀는지 안다는 눈치였다.
“다다음주는 마이 벌쓰데이~!”
에밀리 역시도 손을 번쩍 들어올리면서 벌써부터 잔뜩 먹을 생각에 설레는지 침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니까 리스트 한 번 만들어보자고. 인아랑 은지도 가능한지 보고.”
“아, 그냥 가볍게 먹어도 되는데….”
가야는 자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김준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은지때 생각해봐. 가장 관심없다고 한 애가 제일 좋아했잖아.”
“뭐, 그때는… 인정!”
얼음마녀같이 다른 애들하고도 안 어울리고 냉기 풀풀 날리던 시절에 과거를 은지는 쿨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도 가야가 주저하고 있을 때, 에밀리가 먼저 손을 들었다.
“생일 파티 같이 할 거면, 나 그거 먹고 싶어. 초콜릿 케이크.”
“으으음.”
김준이 초콜릿 케이크에 대해 적자 인아가 집에 있는 물자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코코아 파우더랑 버터에 우유까지 있으니 만드는 건 문제 없어요.”
“식품 창고에 그 미군식량에 코코아 파우더랑 초코볼 많더라.”
그렇게 케이크는 해결됐고, 에밀리는 거기에 이어서 또 하나를 말했다.
“음, 소시지도 먹고 싶어.”
“많이 있잖아?”
“아니이~ 그건 스팸 캔이고, 진짜 자글자글 구운 길다란 소시지!”
에밀리가 소시지에 대한 의지를 밝힐 때, 인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
“고기는 많아도, 케이싱 할 내장 같은게 없는데….”
예전에 있던 곱창이랑 막창은 상하기 전에 다 먹어버려서 고기를 채울 케이싱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때 은지가 조용히 손을 들면서 말했다.
“가능해. 라이스 페이퍼 쓰면 되잖아?”
“아?”
“전에 마리가 순대 먹고 싶다고 한것도 그걸로 만들었잖아? 전에 만들었을때도 괜찮았고.”
은지가 요리책을 보면서 직접 만들었던 것들이라 가능하다고 하자 김준은 그것도 적었다.
그리고 에밀리가 또 뭘 고를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가야도 결국은 하나를 정했다.
“굳이 만들어준다면… 튀김?”
“어떤걸로?”
“튀기면 뭐든 상관없어요.”
나름 소박한 것에 대해 말하자 인아가 튀김은 걱정하지 말라면서 가슴을 탕탕 쳤다.
그 외에도 두 아이돌은 조용히 하나씩 말했다.
“양념치킨!”
“간장이랑 설탕이랑 마늘 있으니까 어떻게 만들어 볼게.”
“쌈에 고기.”
“부채살이랑 우삼겹 썰어놓을게.”
“꼬치구이!”
“나무 깎아야겠네.”
하나둘씩 말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김준과 인아, 은지는 가지고 있는 것을 두고서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구상했다.
이후 김준은 리스트를 전부 적은 다음에 조용히 은지를 불렀다.
“조만간에 한 번 또 나가려고 하는데, 네가 같이 갈래?”
“마리는 남아야 하니까… 네, 그래요. 제가 가죠.”
은지는 쿨하게 받아들였고, 김준은 이번 루팅에 대해서 계획을 말했다.
“이번에 오랜만에 고가밑 쪽으로 갈 거야. 그리고 또 사냥도 할 거고.”
“…오!”
사냥이라는 말에 은지는 지난번에 잡아왔던 염소와 오리 등을 생각했다.
“그리고 파트너로 갈 애가….”
“나니카 시켜요.”
“음?”
“걔 요새 집안에서만 있으면서 새총이랑 석궁 연습 엄청하더라고요.”
“흐으음, 그래. 그러자.”
그렇게 이번에는 사냥이 주가 되는 외출이 되었다.
김준은 내친김에 나니카도 불러와서 지도를 펼쳐놓고서 초창기에 숱하게 사인펜으로 표시한 곳을 하나하나 제끼면서 하천을 가리켰다.
“여기로 가자.”
“이 동네 인아가 많이 돌았는데, 여기 하천 이야기는 못 들었네요?”
“안 가봤으니까, 이 일대는 상수도라서 진짜 뭣도 없거든.”
“사냥하기에 딱 좋은 곳이겠네요.”
“이번엔 혼자 행동하지 말고.”
김준은 은지에게 지난번처럼 하지 말라고 단단이 숙지했고, 그녀 역시도 예전과는 다르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날.
사냥을 위한 루팅을 떠났을 때, 김준은 두 명을 태우고 바로 고가교까지 달렸다.
“요새는 진짜 근처에 좀비가 안 보이네요?”
“그만큼 많이 잡았다 이거지.”
은지의 말에 김준은 대로를 타고 가면서 옆에 보이는 낡은 주공아파트 단지를 바라봤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5층 짜리 단층 아파트에 중앙난방을 위한 거대한 탑이 우뚝 서 있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아파트 일대에 수많은 담쟁이 덩굴이 붙어있는 것이 을씨년스러워보였다.
“저런 곳도 하나하나 문 열면 좀비 우루루 튀어나올걸?”
“확실히….”
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최근에 연습 많이 한 신형 석궁을 어루만졌다.
연습은 많이했는데, 아직 이걸로 좀비를 쏴 본적은 없었다.
“나니카, 뒤에 뭐 있어?”
“아무것도 안 보여요.”
“오케이. 계속 간다.”
김준이 고가교에 도착해 사거리를 한 번 둘러봤을 때, 바닥에는 새카만 자국들이 가득했다.
불과 작년에 이곳에서 가야 데리고 처음 나갔다가 좀비들이 달려왔고, 그 상황에서 그녀가 비명을 마구 질러대다가 총알도 빗나가고 쌍욕 나왔던 일이 전부 기억났다.
“지나고 보니까 내가 진짜 미안하네.”
“여기가 거기예요? 처음 나갔다가 가야 언니 데리고 간 곳.”
“음.”
“역시 처음엔 내가 나갈걸 그랬나?”
“위험한 건 똑같을 걸?”
“적어도 비명은 안 질렀죠.”
은지는 넉살좋게 김준이 하는 말을 받아치면서 미소를 보였다.
이곳은 주차된 트럭상인부터 주유소까지 싹 다 털었던 곳.
김준은 좌회전으로 차를 돌린 다음에, 불에 탄 폐차만 가득한 그 종묘상 골목으로 향했다.
끼익
“여기도 진짜 오랜만이다.”
맨 처음에 루팅을 왔던 시골 만물상.
어지간한 건 다 털었지만, 아직도 많은 양의 물건이 가득한 곳이었다.
“자, 먼저 나가볼테니까 천천히 주변 살피다가 내가 부르면 나와.”
“네, 혹시 무슨일 있으면 창문 두들길게요.”
김준은 은지를 믿고서 먼저 나왔다.
엽총을 들고서 주변을 둘러봤을 때, 이곳은 좀비 아포칼립스라기 보다는 인간이 사라진 시가전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여기서 잡은 좀비만 하더라도 오십 마리는 넘을 거고, 그 이후로 더 이상 보이는 게 없는지 생물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끼이익
유리창이 깨진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어두운 상가 안을 비춰보자 쥐들이 이리저리 도망쳤다.
김준은 그곳을 한 바퀴 돈 다음에 예전에 좀비를 잡았던 핏자국이 눌어붙은 박스들을 보고 확실히 쥐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됐어! 나와.”
덜컥
은지가 먼저 나오고 뒤이어 나니카도 백팩을 잔뜩 챙긴 채 나왔다.
“경계는 제가 설게요.”
은지가 자원해서 석궁을 들고 차 주변을 지키겠다고 하자, 김준은 여느때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니카를 데리고 들어왔다.
“속옷 남은 것도 좀 있고, 정장 양말에… 수건은 못 챙기겠다.”
“오빠, 저거 그릇은요?”
그동안 신경 안썼던 도자기 그릇들을 보고서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챙기자. 가져가면 어디든 쓸데가 있겠지.”
“네~”
나니카는 더블백을 열고서 비닐과 신문지에 쌓인 도자기 그릇들을 하나하나 담았다.
부피는 작지만, 무게가 상당한 것들이었다.
김준 역시도 뭘 챙길지 모다가 공중에 걸려있는 백팩들을 발견했다.
등산갈 때 쓰면 딱 좋을 것 같은 가방들이었고, 김준은 굴러다니는 작대기 하나를 들어 그것들을 쳐서 떨어트렸다.
“여기 가방들에다가 안에 물건 담을게.”
“오빠, 이거는요?”
“슬리퍼? 뭐, 없는것보단 낫지.”
“캔들도 있어요.”
“챙겨챙겨.”
“빗자루는….”
“그냥 다 담아. 들고 가는 건 내가 할테니까.”
김준이 전권을 줘서 나니카가 하나둘씩 챙기기 시작했다.
샵 안에 있는 등산가방을 전부 꽉꽉 채웠고, 구르마도 없는 곳에서 김준은 한번에 꽉 찬 가방 두세개를 양손에 들고서는 힘껏 들어올렸다.
“자~ 가자!”
생필품은 챙길만큼 챙기고, 여기서 나오면 바로 사냥을 시작할 셈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