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화 〉 239 선택의 갈림길.
* * *
그날 밤.
절의 중심이라는 대웅전에서 마리를 포함해 스님들이 108배를 올리고 있을 때, 김준은 바깥에서 총을 멘 채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친구인 은기 역시도 같이 움직였다.
“안 힘들어?”
“내가 당직을 얼마나 섰는데.”
전역한 지 한참 됐지만, 아포칼립스의 삶에서 여전히 부사관 김준 모드 상태였다.
두 친구는 그렇게 밤에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모두를 지키기 위해 초병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어두운 밤 담배를 나눠 피다가 은기가 말했다.
“한 1년 지났나?”
“아직 아슬아슬하게.”
“후~ 진짜 세상이 망했나보다.”
은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찼다.
“내가 [살아있다] 이후로 우리나라에 진짜 좀비 깔린거 처음본다.”
“그거 마지막에 헬기 나와서 아파트에 숨어있던 사람들 다 구조되지 않았냐?”
“그랬지. 박신혜 진짜 이뻤는데.”
“아, 결혼한 새끼가….”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낄낄거리던 중 은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군부대까지 싹 다 어그러진거면 진짜 큰일 아니냐?”
“나도 군에 오래있었는데, 아직까지 안나오는건 죄다 감염됐다 이거지.”
“후우~ 군부대 가서 어떻게 총 못구해오나?”
“생각은 해 봤는데, 가장 가까운 쪽만 하더라도 1시간 반은 가야 해.”
서해안에 있는 해군부대, 혹은 아예 위로 올라가 있는 향토예비사단.
어느 쪽이든 동탄도 못 넘어가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힘든 일이었다.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이 땅에서 앞으로 산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대한민국 인구가 5200만에 육박하는데, 좀비 사태 이후 산 사람은 지금 김준이 만난 사람들을 다 합쳐도 50명이 될까말까였다.
은기 역시도 그 이야기를 듣고 착잡한지 담배를 연신 뻐끔거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처음에 어떻게 살았냐?”
“밖에 나왔다가 갑자기 민방위 사이렌 울려서 급하게 들어왔는데, 과장하고 계장하고 서로 물어뜯고 죽이고 하더라… 집에 들어왔을때는 말했고.”
“흐으음.”
은기는 그러면서 좀비 사태에 대해 자신이 아는 전조에 대해서 슬며시 꺼냈다.
“원래 옆 동네 진성시 있잖아. 거기 공단 새로 만드는거하고, 경찰서 신축으로 높으신 분들 잔뜩 온다고 하더라고.”
“그때?”
“어, 그래서 우리도 지원 나간다고 해서 몇 명 차출됐는데, 그때 갑자기 연락이 온 거야. 지금 당장 민방위 점검하고, 경찰에 연락 돌리라고 했는데 그냥 끊겼어.”
“존나 빨리도 끝났구만.”
하긴 김준도 TV보다가 뉴스 속보 뜨고서 주변에 여기저기 연락하다가 1시간도 안 돼서 인터넷이고 휴대폰이고 다 끊겼었다.
“확실히 뭐가 안 나오긴 하네.”
“후우~ 그렇지 뭐.”
“진성시에 연락받은 게 마지막이었다고?”
“응, 내가 마지막으로 받은 연락은.”
김준은 그 말을 듣고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생각했다.
‘옆동네긴 한데, 가 본 적은 없고….’
그도 그럴 것이 아산으로 내려가거나 동탄으로 올라갈 때도 안 갔던 곳이었다.
왜냐면 진성까지 가는 길에는 이전에도 몇 번 갔다가 돌아온 고속도로 요금소 옆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일대 수많은 폐차와 좀비들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규모도 작은 그 동네를 탐험하느니 차라리 다른 길로 갔던 것이 훨씬 나았었다.
“언제고 가 보긴 해야겠다.”
“진짜, 거기를?”
“혹시 알아? 잔뜩 살아있을지?”
“쯧”
김준의 의지에 은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냥 친구한테 몸 조심하라는 말 밖에 못했다.
그렇게 야간 보초를 서로가 교대로 서면서, 하루가 지났다.
아침은 심플했고, 김준은 다른때와 달리 교대로 자서 오늘은 절에서 아침 공양을 할 수 있었다.
“흐으음.”
“왜요?”
“마리 뭔가 편해보여.”
은지와 같이 맞은편에서 국수를 먹는 마리를 보니, 어제의 그 108배가 효과가 있었나보다.
잔잔한 미소 속에서 뒤에 빛까지 생긴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템플스테이는 생각보다 멘탈 안정하는데 좋아보였다.
“나중에 다른 애들도 한 번 하라고 해볼까?”
“에밀리 시키면 되겠네요.”
“절대 안 할 것 같은데?”
에밀리나 김준이나 그 이야기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식사 이후 서로의 물물 교환을 할 때, 스님들은 직접 손질한 칡뿌리와 생쑥과 말린쑥을 각각 담아 건네줬다.
“잘게 다져놨으니 차로 끓이시면 속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다음 재배때 오신다면 채소를 넉넉히 드리지요.”
“아닙니다. 여기도 식구가 많은데, 드실 건 남겨야죠.”
김준은 그러면서 오늘도 쌀 한 가마와 방앗간에서 가져온 도정 안 된 생밀 한 포대도 올려놨다.
그 사이 치과 치료를 받고 온 은지와 마리는 바로 절에서 챙겨준 짐들을 챙겼고, 차에 올라탈 준비를 했다.
“앞으로 연락 되니까 가기 전에 미리 말 할게요. 무슨 일 있으면 그쪽에서도 부르시고요.”
김준의 인사에 성정 스님이 빙긋 웃으며 조용히 합장을 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소율이와 은기 내외를 보면서 김준은 웃으며 절을 떠났다.
“자~ 그럼 우리 루팅하러 한 번 가 볼까?”
“네, 가죠.”
“이 괜찮아?”
“그냥 잇몸 좀 긁은거에요. 문제 없어요.”
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준이 가는 길에 절대 방해가 안 될 것을 약속했다.
그렇게 힘차게 가는 동안 국도에서 보인 것은 수많은 좀비 떼였다.
“은지야! 준비해라!”
끼긱 끼기긱
“문제 없어요.”
은지는 침착하게 다시방에 있는 화살을 꺼내고 석궁에 천천히 장전시켰다.
김준 역시 엽총의 장탄을 확인하고는 힘있게 수많은 좀비 무리를 향해 발사했다.
타앙 탕!!!
쉬이이익 팍!!
“후방 이상 없고! 양 옆에도 뭐 없어요!”
어제와 달리 힘있는 목소리로 사각에서 나올지 모르는 좀비들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마리.
그러는 사이 김준과 은지는 엽총과 석궁으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잡아댔다.
캬아아악 캬아아아!!!
우워어어어어어!!!
“엇, 씨발?!”
그동안 소사벌 일대에 없었던 뛰는 좀비들이 우루루 달려대는 광경에 김준은 반사적으로 후진기어를 돌린채 바로 뒤로 빠졌다.
길거리에 널브러진 폐차를 뛰어넘고, 앞의 좀비가 넘어지면, 뒤의 좀비가 짓밟으며 생존자 무리의 살을 뜯고, 피를 마시며 감염시키려는 의지가 가득했다.
“은지야! 몸 집어넣어!”
피유우우웅!
그 와중에 은지는 상반신을 내민채 빠르게 후진하는 캠핑카에서 기어이 화살 한 방을 쏘고 들어왔다.
물론 날아간 화살은 피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좀비의 머리통을 훌륭하게 꿰뚫었다.
위이이이잉
이제는 김준이 말하면 잘 듣는 편인 은지.
그녀는 바로 몸을 집어넣고 창문을 닫으면서 나머지를 김준에게 맡겼다.
부우우웅 끼이이익!
계속 후진하다가 아예 틀어버린 뒤로 김준이 장전 된 두 엽총을 들고서 미친 듯이 난사해댔다.
무연화약인데도 코가 매캐해질정도로 쏴댄 벅샷과 버드샷.
한번 폭발해서 발사될때마다 흩뿌려지는 수많은 쇠구슬들이 달려드는 좀비들의 몸을 갈가리 찢어댔다.
몸에 수십 수백발의 쇠구슬이 박힌 좀비들이 쓰러져갈 때, 김준은 두 자루의 엽총을 다 쓰고 권총을 뽑아 발사했다.
탕 탕 탕 탕 철컥!?
권총까지 동난 순간 김준은 바로 창문부터 닫았다.
캬아아아아!!
쿵 쿠웅
부우웅
좀비다 달려와 문을 쳐 댈 때, 김준은 바로 후진하면서 차를 틀었다.
그래도 많이 줄어든 상태에서 기어를 돌리고 그대로 돌진해 좀비들을 그야말로 깔아뭉개면서 앞장섰고, 드드득 거리는 뼈가 갈리는 소리가 차 안에 가득 퍼졌다.
결국 안 되면 차로 치고 가는 좀비 사냥에서 은지나 마리나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김준 역시도 고라니나 너구리 치는 것도 아니고, 사람 형상을 한 것을 수십 구나 갈아버린 것에 대해 한숨 한 번으로 넘겼고, 그렇게 겨우 벗어난 상태에서 루팅 장소를 찾았다.
“내리자!”
20분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도심 외곽에 있는 구제 옷가게와 고물상이었다.
바깥에 있는 것들이야 여러 번 비가 온 상황에서 곰팡이가 슬고, 녹이 잔뜩 끼었지만 안에는 제법 쓸만한게 많았다.
끼이이
문이 열린 뒤로 플래시를 비춰봤을 때 안에는 곱등이나 바퀴벌레들 다니는 것 외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김준이 호루라기까지 불어대서 확인했지만 반응해서 튀어나오는건 길고양이나 작은 새 정도였다.
“좋아! 빠르게 털자고!”
“오케이!”
“옷 이거 쓸수는 있으려나.”
먼지가 가득 쌓인 것들을 하나하나 탈탈 털어 확인하는 은지, 다시 텐션이 올라가서 구제옷 중에서도 그나마 냄새 덜 나고 쓸 만한 것들로 찾아 골랐다.
그리고 마리는 김준을 도와서 바깥에서 그동안 만들었던 나무 상자를 잔뜩 꺼내서 그것들을 담을 준비를 했다.
밖에 나온 이상 뭐라도 챙겨 가야 했고, 그렇게 그날의 하루도 있으면 좋을 물건들을 잔뜩 챙기는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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