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앗?! 안에 들어오면 안… 히익?!”
“처사님! 지금 뭘 드신 겁니까?”
제일파 보스가 칼에 맞은 상처를 지혈하고, 몸 이곳저곳을 급하게 꿰매고 있던 마리와 치과의사는 다짜고짜 문을 열고 권총을 든 김준을 보고 경악했다.
“둘 다 비켜요. 한 방으로 끝낼 테니까.”
철컥-
김준이 레버를 당기고 혼수상태의 제일파 보스 박제혁의 머리에 겨눴을 때, 마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나와.”
“오, 오빠!”
“빨리.”
그때 뒤따라오던 양근태가 황급히 김준을 말렸다.
“김 사장! 왜 그러나? 빨리 그 총 내려놔!”
“비키세요. 나 이젠 아저씨도 못 믿습니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부하들에게 죽을 뻔한 거 겨우 피해 온 친구야!”
“그래서 이 새낀 깡패 두목 아니냐고!”
김준의 외침에 옆에 있던 치과의사는 타이 한 곳을 마치면서 천천히 손을 뻗었다.
“처사님, 진정하십시오. 일단 그 총부터 내려놓으시고….”
“아저씨도 비키세요.”
“처사님….”
모두가 말리는 상황이었고, 소란을 들은 다른 절의 생존자들도 김준의 행동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준 엄마는 황급히 아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갔고, 은기 일가 역시도 애들부터 챙겼다.
“마리 빨리 안 나오고 뭐 해?”
“그, 그….”
머뭇거리는 마리, 빨리 비키라고 재촉하는 김준.
놔두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권총으로 제일파 보스 박제혁의 머리통을 날려 버릴 수 있는 그 상황에서…
수습을 위해 낡은 장삼의 노스님이 다가왔다.
“절에서 살생하러 오셨습니까?”
“!?”
“보아하니… 이전부터 악연이 많은 사이 같소이다.”
노스님은 담담한 얼굴로 김준을 향해 말했다.
총을 본 다른 스님들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노스님은 더욱 김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스님도 비키세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야기는 무슨!”
“절까지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 이를 죽이러 오신 것은 그만한 악연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김준은 그 상황에서 머뭇거렸다.
그사이 김준의 바로 앞에 선 스님은 담담하게 총 앞에서도 문을 잡고서 다시 닫아버렸다.
드르르륵-
“무슨?”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스님.”
“듣고서도 저 자가 바깥의 악귀보다 못한 자라면 그때 소승이 눈을 감지요.”
적어도 무슨 이유인지 말은 하고 죽이라는 뜻일까?
그 상황에서 가야 역시도 김준의 뒤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
“….”
애처로운 눈으로 김준을 잡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가야.
모두가 말리는 그 상황에서 김준은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총을 내려놨다.
노스님은 빙긋 웃었고, 모두가 안도하는 상황에서 김준은 조용히 그를 따라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파라고, 이 일대에서 가장 깽판 치던 조폭들입니다.”
“들은 적이 있습니다.”
“!”
“시주하면서 세금 영수증을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
“절의 땅을 팔아 전부 돌려드렸지만 말입니다. 허허허-”
노스님은 그러면서 더 할 말이 많은 것 같으니 모두 털어놓아 보란 듯 김준에게 미소를 지었다.
“같이 왔던 애들도 봤죠. 사람들끼리 살아가도 모자랄 상황에 죽이고, 약탈하고… 아주 썅 개새끼들이예요. 저 먼 곳에 황 사장이라고, 저놈들에게 시달리다 도망친 생존자들도 수두룩해요.”
“….”
“여기 팔 보이십니까? 저놈들과 싸우다 생긴 겁니다. 심지어 여긴 안 왔지만 집에 있는 애 중에 하나는… 하, 씨발!”
만약 에밀리를 이 자리에 데려왔다면, 트라우마로 주저앉았을 수도 있을 거다.
겉으로는 굉장히 쾌활해 보여도 그 속은 누구도 모른다.
아직도 그녀의 등에는 칼에 맞은 뒤로 녹농균이 감염돼서 잘라 낸 흉터가 남아 있다.
“계속해 보세요.”
“저, 그리고 우리 애들 피해만 다입니까? 이제 여기가 알려졌으니 다른 깡패 새끼들이 올지도 모릅니다. 겨우 평화롭게 지내는 곳인데요.”
“그것은 나중의 일이겠지요.”
“!”
“그리고 도망쳐 온 자를 그들이 쫒지 못했으니 길을 모를 겁니다. 게다가 지금은 늦은 밤입니다.”
“하… 정말 좋은 스님인 건 아시지만, 저런 놈을….”
“이제는 절 안에 들어온 모든 길 잃은 불자입니다.”
김준은 정말 꽉 막힌 사람이라면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제일파 놈들이 쳐들어온다면 답이 없을 수도 있었다.
“정 불안 하시면 저자의 간병은 소승이 하지요. 아침까지는 충분할 겁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노스님은 조용히 합장 인사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김준은 한숨을 쉬며 빡담을 물었고, 그 상황에서 다시 온 건 양근태 사장이었다.
“김 사장 저기….”
“아저씨가 문제네?”
“내 그건 진짜 미안 하네. 하지만 나한테는 정말 친구였어.”
김준은 차마 면전에 대고 ‘조폭 새끼 친구요?’라고 말하진 못했다.
양근태 역시도 자신이 뭔 짓을 한 지 알고, 그 전에 김준 일행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하씨… 진짜 이렇게 될지 몰랐는데.”
“내가 대신 사과하겠네. 저 녀석 낫는 대로 얼른 데려가고!”
양 사장의 말에 김준은 당장에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이 한풀 꺾여 있었다.
당장에 주지 스님 다음으로 양 사장하고 이야기하는 도중에 저 멀리서 머뭇거리는 가야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소란 이후에 겨우 수술을 마친 마리와 치과의사.
“어때?”
“….”
마리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상도 너무 심하고, 피를 많이 흘렸어요. 예전처럼 O형 피 주사해서 넣는 걸로는 택도 없고요.”
“….”
“길어야 일주일. 그 전에 감염으로 죽을 수 있어요.”
“후우….”
어차피 놔 둬도 뒈질 놈.
김준은 지금 총질해봤자 고통에 몸부림치는 저 녀석에게 있어선 안락사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수술방 앞에서 주저앉았다.
물론 그의 어깨에는 언제라도 갈길 수 있는 공기총이 있었다.
“별수 없지. 기다려 봐야겠어.”
“….”
그리고 조용히 다가온 노스님이 약속한 대로 김준의 옆에 앉아 기다렸다.
“안 계셔도 됩니다.”
“시주와 약속했지 않소이까? 안에 있는 불자가 염려되니 제가 간병하겠다고 말입니다.”
“….”
김준은 조용히 담배를 물고 기다렸고, 노스님 역시도 조용히 있었다.
“어차피 얼마 못 산다고 하네요.”
“….”
“스님, 지금 제가 여기서 저 놈을 총으로 한 방 갈기면 고통을 덜어 주는 겁니까?”
“조금이라 해도 아직 남은 삶인데 그 이치를 거스르는 것 역시 살생입니다.”
“살생.... 그러는 스님은 제가 이제까지 얼마나 살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부처님께서 아시겠지요.”
“….”
예전이면 상상도 하지 못할 삶.
인간의 형상을 한, 아니 원래는 인간이었던 좀비를 그동안 죽인 것만 해도 수백 명이고, 거기에 예전에 마리를 습격한 범죄자 둘이나, 제일파 조폭들을 도끼로 휘둘러 쳐 죽인 것까지 생각하면 사람도 최소 열 명 이상.
법치가 살아 있는 나라였으면 백퍼 사형이었을 거다.
물론 그러면서 구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상참작은 물론이고 오히려 영웅 소리를 듣겠지만 말이다.
김준 처지에서도 사람을 구하고도 이렇게 찝찝한 적은 처음이었고, 이 불편한 상황이 얼마나 갈지 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새벽 해가 뜰 때까지 경계를 섰을 때, 조금의 졸음도 없이 밤을 샌 둘이었다.
“으- 으으…”
“!?”
안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에 김준이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온몸이 붕대로 감겨 있는 제일파 보스 박제혁이 있었다.
“…살았네?”
“크으윽…큭!”
김준이 박제혁에게 다가갈 때, 노스님이 먼저 그를 제치고 조용히 앉았다.
“보살님, 정신이 드십니까?”
“크으윽… 흐윽.”
희미하게 눈을 뜬 제일파 보스 박제혁.
이미 눈은 풀려 있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붕대에 피가 배어 나왔다.
“여기… 사람이… 살고 있었…쿨럭! 쿨럭!”
“말을 아끼십시오. 치료가 끝났으니 곧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치우…쇼. 갈 때가 된 것… 같으니까.”
이미 본인도 자신이 오래 못 살 거라는 것을 확인한 박제혁.
그러고는 힘없이 손을 들어 올리면서, 누군가 들어 주길 원할 말했다.
“신릉면… 재령다리… 사금고….”
“!?”
“거기 금고 번호는…”
노 스님을 붙잡고 귀에 속삭이는 제일파 보스 박제혁.
마지막 기운을 짜내어 말한 그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
“의사를 어서 불러야겠군요!”
뒤늦게 일어난 마리와 치과의사가 왔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
마리는 CPR을 하려고 했지만, 치과의사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관련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소사벌 밤의 제왕은 숨을 거두었다.
김준은 눈앞에서 죽은 박제혁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고, 차에서 자고 있던 양 사장 역시 그것을 보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렇게 악인이었던 자도 양 사장하고는 정말 절친이었나보다.
그렇게 아침 공양을 하기 전, 절의 사람들 모두가 모여서 조촐하나마 박제혁의 장례식을 치러졌다.
똑똑똑똑-
목탁을 두들기며 염불을 외우는 노스님.
그리고 김준과 양근태, 은기가 삽을 들고서 구덩이를 깊이 파고 면포에 쌓인 박제혁의 시체를 담고 무덤을 만들었다.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던 놈인데, 결국 마리에게 수술까지 받고도 버텨내지 못하고 사망한 그를 두고서 한숨이 나오는 김준이었다.
만약 에밀리에게 이 이야기하면 뭐라고 했을까?
그렇게 잠깐의 휴식을 취한 김준은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가야 데려다 주고, 에밀리랑 같이 가야지.”
“그… 오빠, 저도 영어 조금은 할 수 있는데.”
“뭐?”
“그냥 여기 나온 김에 바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
가야 역시도 밤늦게 왔다가 못 볼 꼴을 다 보고서 자신이 가겠다고 자원했다.
그 상황에서 뭔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가야는 굳은 의지가 담긴 눈이었다.
“됐어. 들어가 쉬어라.”
“오빠…!”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가겠다는 가야.
김준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한숨을 내쉬었고, 양근태가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김 사장….”
“….”
“저번에 말한 그 미군부대 가는 거야?”
“네.”
“나도 공단면까진 가야 하니까 같이 가세. 줄 것도 많고.”
“줄 거요?”
“그래도 친구 놈 마지막 가는 길은 기다려 줬잖나? 그리고 내가 미안 해서라도 창고에서 필요한 물건 있으면 맘껏 주겠네.”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는 양 사장을 보고 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마리와 가야를 차에 태웠다.
“됐습니다. 그런 건 나머지 제일파 새끼들이나 쳐 죽이고, 받죠.”
“미군부대까지는 내가 지름길을 알아! 좀비 없이… 거기로 왔어.”
“!?”
“논밭 비탈길이라 쪼~끔 차가 덜컹거리겠지만 말이야.”
양근태의 말에 김준이 그의 트럭을 자세히 보니 도저히 잘 뚫린 포장도로로 온 것 같지는 않은 진흙투성이었다는 게 뒤늦게 보였다.
“빠른 길이라면 한 번 가 보죠.”
“그래! 내가 앞장설게.”
그렇게 정토사 모두와 인사하고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시주.”
“!”
노스님은 조용히 다가와 인사하고는 김준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네줬다.
“이게 뭡니까?”
“죽은 보살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입니다.”
“아까 사금고 이야기하더니만, 그건가 보더군요.”
“아무래도 이 땡추보다는 시주께서 가지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노스님은 제일파 박제혁이 남겼다는 사금고의 위치와 비밀번호가 적힌 것을 김준의 주머니에 넣어 주고 조용히 합장했다.
그렇게 모두와 인사하고 예정대로 미군부대로 가는 길.
[치직- 아 뭐야! 내가 가기로 한 거 왜 가야 언니가아아앗!!!]
“미안, 미안, 집에 가면 이야기할게.”
[치직- 치잇!]
가야가 에밀리를 달래면서 우리 바로 미군부대로 간다고 하니 무전기 너머로 잔뜩 토라진 에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수석에 앉은 마리는 아직도 김준의 눈치를 보며 어제 총을 들었던 누구 하나 죽이려고 한 그의 눈을 보고 살짝 두려워했다.
“사금고라….”
“네?”
“시발… 그게 뭐 합의금이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절 지원 이후로 김준의 차는 다시 달렸다.
앞장서서 달리는 양근태의 만물상 트럭이 좀비를 한 번도 안 마주치고 갈 수 있다는 지름길을 안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