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48화 (348/374)

“슬슬 가야겠다!”

김준은 미군부대에서 두둑하게 받아온 통조림과 기름을 하나하나 담았다.

땡볕에서 보호용 프로텍터와 오토바이 헬멧을 쓴 상태에서 힘겹게 날랐다.

“끼익!”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통조림 박스를 들다가 풀썩 쓰러지는 가야.

김준이 황급히 다가가서 그녀의 헬멧을 벗겼을 때, 물에 푹 젖은 미역같은 곱슬머리가 찰랑거렸다.

그걸 창살 너머로 본 미군들이 순간 환호했다.

“ Oh~ Oh~!!!”

“Sweet~ Woooooo!!!!!”

여기저기서 가야의 얼굴이 드러나자 환호하는 미군들.

가야는 얼굴이 잔뜩 달아오른 상태에서 땀을 줄줄 흐르고 있었다.

“죄송해요. 금방 일어나서 담을게요.”

“아니 됐어. 안으로 들어가.”

“이건 들고….”

“아, 빨리!”

애가 탈수가 왔는지 입술 색깔도 점점 변하고 있었다.

김준은 황급히 가야를 데리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진 차 안에 담았고, 바로 땀에 절은 재킷을 벗긴 다음에 욕실에서 수건에 물을 적셔서 가야에게 던져 줬다.

그걸 받은 가야는 얼굴부터 닦다가 목에 휘감고는 달아오른 몸을 빠르게 식혔다.

한편 밖에 홀로 남은 에밀리는 그 상황을 보고 창살 너머의 미군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에밀리아! Take off helmet!!”

“ Show me the face!!!”

여기저기 들리는 미군들의 캣콜링과 에밀리를 향해 갈구하는 모습.

김준이 황급히 나왔을 때, 에밀리는 조용히 헬멧을 벗어 금발의 머리를 찰랑였다.

그 순간 환호성은 더 커졌고, 잔뜩 흥분한 미군들이 창살을 붙잡았다.

“헤이! 스탑!!! 스탑!!!”

매튜 리 대위가 바로 제지시키고, 김준에게 손을 흔들면서 빨리 가라고 손짓 했다.

“이런 씨!”

김준은 에밀리의 손을 붙잡고서 바로 차 안으로 끌고 갔다.

“잠깐만! 준! 아직 한 박스 남았어.”

“됐어! 빨리 들어가.”

김준은 에밀리도 차 안에 태우고는 바로 나와서 그 남은 통조림 박스를 들었다.

“Envy you~”

“Lucky Korean~ Woooo!!!”

“Sweet guy~!!”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에 김준은 조용히 가운뎃손가락을 미군들에게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걸 좋다고 웃어대면서 손을 흔들어 주는 미군들을 보니 저것들 정말 또라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렇게 거래 이후에 돌아가는 길에 벌어진 일 때문에 김준은 더운 날에 짜증이 치밀었다.

“준~ 아까 내가 얼굴 까서 화 났어?”

“시끄러.”

“와서 가슴 만질래?”

김준의 기분이 안 좋으면 언제나 제안 하던 에밀리의 ‘가슴 만질래?’이야기.

김준은 조용히 차를 운전하면서 길을 찾았고, 미군부대를 벗어난 뒤로 털 거리가 있는지를 찾고 있었다.

연신 담배를 문채 뻑뻑 거리면서 말없이 운전하고 있을 때, 김준은 뒤에 있는 에밀리에게 물었다.

“에밀리 너, 우리 말고 다른 생존자 이야기도 했냐?”

“어, 그거 알려달라고 하더라고. 매튜가.”

“황 여사네도 이야기 한 거 같더라?”

“그거 말고도 그 갱스터들 있는 동네 이야기도 했어. 약쟁이들 밑에 후커들이 잔뜩 있다고.”

“별소리를 다 했어!”

김준은 순간 분노의 클락션을 누르려고 했다가 멈췄다.

상황을 눈치챈 가야도 황급히 에밀리의 손을 막으면서 뭔 짓을 한 거냐고 속삭였다.

“그래서 걔들이 구해 준다고 하잖아? 그럼 더 잘된 게 아니야?”

“거기 들어가서 제대로 살 수 있을 거 같아?”

“못 할 게 뭐야? 그냥 후커들 생존자도 있다고 말한 건데.”

안 그래도 에밀리의 방송으로 인해 성인용품을 구해 달라고 하고 그걸로 성욕을 풀 정도로 쌓여 있는 미군들이었다.

그 상황에서 열댓 명 남짓한 여자들을 그곳에 보낸다? 뭔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매튜 리 대위도 알려만 주면 생존자 구조 명목으로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김준 처지에선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준, 그거 알려 준다고 우리가 무슨 스내치나 핌프가 되는 건 아니잖아?”

“한국말로 설명해.”

“음~ 그러니까 밀고자나 포주가 되는 건 아니라고.”

“후우~”

“만약에 그 바텐더들 있는데나, 진짜로 갱스터들 잡으러가서 그 후커들도 구하면 그때 내가 물어보면 되잖아?”

“아까 너한테 하는 거 못 봤어? 영어로 별소리를 다 하잖아?”

“그거 별말 없었어. 그냥 헬멧 벗어 얼굴 보여달라, 준 보고서 럭키 가이다, 스윗하다 이런 말이 전부야.”

에밀리는 별 신경 쓸 거 아니라면서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아직도 자기 미모가 먹힌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있었다.

“옛날 공연 다닐 때 느낌 나던데 뭘~”

“에밀리, 그건 아니야.”

가야도 점잖게 타이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김준은 더 이상 말을 말자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차분히 생각해 봐야겠고, 만약 신릉면 쪽을 구하러 간다면 그때 가서 확인해야겠다.

‘일단, 절에 있는 그 만신창이 누님이 치료 끝나고 볼일이지만….’

그렇게 차로 길을 달리다가 길가에 있는 가건물 상가 몇 곳이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된 일행이었다.

[토지매매 문의], [신도시 개발공사], [수익형 부동산]이라고 써진 건물과 모델하우스 폐허, 그리고 편의점이 있는 곳이었다.

“여기 털고 가야겠다.”

“아, 총 준비할게!”

“기다리고 있어 봐.”

김준은 드론을 쓰던 양 사장이 떠올라 미군부대의 드론을 생각했지만, 그건 군사물자라고 하니 아쉬운 대로 하던 방식을 그대로 썼다.

[빵- 빵- 빠아아아아아앙!!!]

클락션을 여러 번 누르고 5분간 대기했던 시간.

하지만 주변에 반응은 없었고, 10분을 더 기다린 다음에 밖에 나온 김준은 이곳에 좀비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움직였다.

트러블이 좀 있었지만, 다시 루팅의 시간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발이 척척 맞는 세 사람이었다.

“에밀리, 이거!”

“여기 쌓아 놓고.”

구르마를 가져와서 가야가 가져온 물건들을 빈 박스에 담아 차곡차곡 담는 에밀리.

그러고는 자신이 가져온 더블백에 각종 로션과 편의점에서 파는 속옷, 양말, 머리핀, 휴지 등을 따로 담아서 분류했다.

이제 편의점에서 챙길 수 있는 먹을 거라고는 술과 생수, 통조림이 전부였지만, 이건 언제 쌓아놔아도 땡큐였다.

그렇게 편의점에 물건들을 다 챙긴 뒤에 김준은 길게 숨을 내쉬면서 더위 가득한 바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파~ 들어가면 시원한 거 먹고 싶어.”

“오늘 들어오면 인아가 화채 해준대.”

“오~ 플루트 아이스!”

안 그래도 편의점 과일 통조림이 가득했는데, 그걸로 시원한 화채를 만들어 준다니 벌써 에밀리의 입에 침이 고여 있었다.

“일단 씻자.”

김준이 앞에 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재킷부터 시작해서 옷을 훌렁훌렁 벗는 에밀리.

땀에 절어 있지만, 여전히 월드클래스에 몸매의 금발 아가씨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당당하게 캠핑카 욕실로 들어가 시원한 물로 씻었다.

그때 가야도 벗으려다 김준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 에밀리 이야기는 제가 따로….”

“이미 이야기 나왔는데 어쩌겠어?”

“네?”

“후우, 앞뒤도 안 보고 질렀는데, 그래도 구하러 가긴 해야겠지. 그 깡패 새끼들도 잡고.”

“!!!”

좀비가 아닌 사람을 상대로 죽이러 갈 수 있는 일.

가야의 얼굴에 굵은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고, 김준은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그놈들도 결국은 군인이고, 일단 규율은 지키니 적어도 깡패 새끼들한테 시달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네.”

가야는 순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난날 행사 나왔다가 소사벌운동장 대기실에 갇혀 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며칠 동안 물만 먹고서 굶어가던 상황에서 만난 김준.

그 상황에서 집에 들어왔을 때, 쫓겨날수도 있단 상황에서 몸도 바치고, 절대 밤일을 거절하지 않는 충실한 여자가 되어서 여기까지 살아남았다.

만약, 조금이라도 나쁜 마음을 먹었던 사람 밑에서 구조를 받으면 그게 과연 살아도 산 것일까? 하는 생각은 여전히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런 거 먹을 수 있는 거 진짜 감사해야겠어요.”

남들은 밖에서 죽네사네 할 때, 집에 가면 시원한 얼음 과일 화채를 만들어 준다며 그걸 기대하는 하루 일과.

가야는 황도 통조림 하나를 들고 살며시 끌어안았다.

그리고 김준 역시 그러고 있는 가야의 땀에 젖은 흰티셔츠 너머로 검은색 브라가 보이자 조용히 등을 스다듬으면서 그 감촉을 느꼈다.

***

“파하! 시원하다!”

찬물로 샤워를 마치고 온 에밀리.

김준은 그때 갑자기 그녀를 보고 일어났다.

“응, 다음 차례 준 오빠야?”

“….”

김준은 말없이 에밀리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콱 잡았다.

갑작스러운 박력에 화들짝 놀란 금발의 소녀는 이내 김준의 얼굴에 비치는 욕망을 보고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방금 씻고 나온 욕실에서 샤워기를 폴대처럼 잡고는 엉덩이를 쭉 내밀었다.

김준은 주저 없이 바지를 벗고 아까 그 미군 녀석들이 에밀리에게 환호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거침없이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도장대신 손바닥 낙인을 찍듯이 에밀리의 엉덩이를 한 번 쳐줬다.

짝-

“꺄아~♥”

***

이후 그들이 집에 돌아온 건 2시간 뒤였고, 그날 따라 땀을 더 흘렸는지 옷가지가 속옷까지 전부 축축한 것을 나니카나 라나가 아무것도 모르고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그 뒤로 김준 품 안에 에밀리가 딱 안겨서 그날 밤새 과일화채 안주에 소주를 이튿날 까지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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