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으으- 뻐근해.”
김준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쏴아- 쏴아아아-
“아직도 오네.”
어제 저녁 비가 온 뒤로 급하게 나와서 빗물탱크를 열고, 양동이 전부 꺼내다가 옥탑방과 2층 장독 베란다에 설치해놨는데,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욕실에 들어가니 밤새 김준이 빗물로 채워 놓은 욕조가 보였다.
김준은 우산을 하나 꺼내 밖으로 나가 빗물탱크를 살폈다.
오랫동안 비가 안 오고, 펌프로 끌어올려 생활용수로 쓴 지라 탱크가 바닥을 보이고 있을 때였는데 적절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김준은 커버를 열고 안을 확인한 다음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됐어. 오늘 저녁까지 열어놔도 되겠다.”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올라왔다.
안에서는 김준이 나온 사이에 일어난 인아와 은지가 밥을 차리고 있었다.
“아, 오빠!”
“좋은 아침이요!”
“응, 그래.”
어제의 루팅 이후로 편안했던 하루.
그렇게 하나둘씩 일어나 씻고 나와서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아침 이후에 빈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에 양치까지 마치고 비 오는 날 조용한 일과를 시작할 때, 김준은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툭툭- 툭-
“아, 아- 잘 들려요?”
김준이 어디론가 무전을 보내자 상대방이 바로 화답했다.
[치직- 치이이이익- 우우우우웅-]
“이게 비가 와서 무전이 잘 안 되나?”
김준이 계속 무전기를 두들기는데 노이즈만 가득했다.
그렇게 몇 분간 씨름하다 보니 소리가 들렸다.
[치이익- 치지지직-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들려요? 지금 받는 건 누구지?”
[치지직- 아, 김준 오빠! 나 나미요.]
“어, 나미야? 거기 어제 잘 지냈어?”
[치직- 지금 농협 아저씨가 물탱크 손보고 있어요.]
“근태 형님이 거기서 하루 묵었어?”
[네. 사장님이 방 하나 내주셨어요.]
“결국 합쳤구만.”
어차피 서로 부족한 살림에 필요한 걸 가진 사람들끼리 합쳤으니 잘 살 거다.
김준은 잘된 일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양근태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후 노이즈 속에서 무전기를 통해 양근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치직- 어, 김 사장.]
“형님, 저 이따가 정토사 거기 갈 겁니다.”
[어, 어?]
“조만간 신릉면 갈 거예요. 그 전에 그 사람한테 한 번 들어 보려고요. 지금 상황이 어떤가, 규모는 얼마나 되나 그런 거요.”
[그렇게 됐구만. 나도 도울게!]
“일단은 봐야죠. 빠르면 이번 주 내로 승부를 볼 셈입니다. 미군부대에도 이야기하고요.”
김준은 그렇게 알린 다음에 그쪽도 조심하라는 말을 끝으로 무전을 마쳤다.
그리고 김준의 무전을 보고 있던 아가씨들이 있었다.
“또 나가는 거야?”
에밀리가 눈을 반짝이자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서 옷 준비하라고 요청했다.
에밀리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금발을 휘날리며 후다닥 달려갔고, 옆에서 보고 있던 마리도 빙긋 웃어 보였다.
“저도 가는 거죠?”
“그래, 그 사람 몸 상태도 봐야 하니까.”
“오케이! 안 그래도 가져갈게 많았어요.”
마리는 거실에 있는 서랍장을 열더니 그 안에 있는 노트와 전문 서적을 챙겼다.
“뭐야, 그거?”
“치의학 책이요. 김 원장님한테 물어볼게 있어서요.”
“오~ 언니 치과도 하게요?”
“보다 보니 재밌더라고.”
라나는 마리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따라가고 싶었다면서 아쉬워했다.
그렇게 김준은 마리와 에밀리를 데리고서 바로 정토사로 향했다.
김준은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나가는 길에 주변을 살펴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어디 가서 매연 필터라도 구해와야 하나?”
“네?”
“어제 알았거든. 좀비가 왜 밖에 나올 때만 맞닥트리는지.”
“좀비도 루틴이 있었구나….”
조수석에 앉은 마리는 김준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정토사까지 빠른 길로 달려간 김준 일행은 좀비가 없는 길을 빠르게 달려서 15분 만에 도착했다.
차 소리를 듣고 나온 아이들이 김준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저씨~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아, 그래. 아유~ 이뻐라.”
김준은 친구의 딸 소율이와 옆에서 아장아장 달려오는 하준이까지 끌어안아주고, 품에서 사탕을 꺼내줬다.
“자, MRE 사탕이다.”
“고맙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정토사 올 때는 애들이 있어서 전투식량에 있는 사탕과 초콜릿, 젤리를 빼다가 애들 몫으로 줬다.
그것을 받아들고 쪼르르 달려가자 스님들과 같이 나무를 자르던 은기가 반갑게 맞이했다.
“어, 왔어?”
“별일 없지?”
“여기는 똑같지 뭐.”
처음 왔을 때, 차를 타고 유랑하면서 거지꼴로 다녔던 친구 내외가 이제는 승복을 갖춰 입고 절의 일을 도우면서 잘 지내고 있었다.
주방에서는 가마솥에서 제수씨와 은기 엄마, 간호사 보살이 음식을 만들다가 김준에게 인사했다.
“혹시 안에 환자 계신가요?”
“아, 네. 저기요.”
김준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고 별당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는 이불을 꽁꽁 싸맨채 누워 있는 여성을 주지스님이 간병하고 있었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스님도 잘 지내셨죠?”
“하하하, 부처님의 은덕은 모든 시주들에게 있습니다.”
큰스님이 인사했을 때 그 옆에서 덜덜 떨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으, 으으으- 으드드드드-”
“안녕하세요. 좀 어떻습니까~?”
김준은 조용히 누워 있는 환자를 향해 인사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상태에서도 연신 이불을 겹으로 끌어안으면서 덜덜 떨고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고는 하지만 날씨가 그렇게 춥지 앉은 대 구들장까지 때워서 후끈거리는 방 안이었다.
“이, 이야기 들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예요.”
“좀 볼게요.”
마리는 환자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손발 상태를 체크하고 몸 이곳저곳에 붉은 발진이 생긴 것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매스버그네요.”
“그게 뭔데?”
“몸 안에 잔류 마약이 빠지면서 생기는 금단 증상이요. 피부랑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면서 발진이 생기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가렵다고요.”
“네… 진짜 가려워요.”
그녀가 그 말을 할 때 입안이 반짝였다.
“이는 좀 어때요?”
“여기 의사 선생님이 임시로 만들어줬는데….”
그녀가 입을 벌리자 여기저기 부러지고 깨진 치아에 은으로 때워진 임시 크라운이 있었다.
김준은 그 상태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도 하나하나 듣기 위해 그녀의 몸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몸 상태가 조금 나아졌을 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에밀리 스케일링 받는 동안 이야기 좀 해 봐야겠다. 지금 대답해 줄 수 있죠?”
“으드드드- 해 볼게요. 다른 애들 구해 준다면….”
필로폰 반감기로 몸 상태가 너덜너덜했지만, 다른 아이들을 구해 준다는 말에 따르기로 한 안마시술소 아가씨였다.
“자, 적을게요. 아는 대로 말해주세요.”
“으드드드- 그, 그게….”
김준은 펜을 들었다.
***
그녀의 예명은 미미.
원래 신릉면에서 보도 아가씨 일하다가 안마시술소까지 오게 된 여성으로 작은마담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신릉면 안마시술소에는 총 8명의 매니저가 있고, 그 인근에 보도와 바에 아가씨들 해서 총 17명이 있다고 한다.
“건물에 의사 둘이 있고, 약사가 하나 있어요. 박… 회장님 돌아가시고, 김 부장이 자리 잡았는데… 흐윽….”
그녀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쁜 새끼들… 바로 회포 푼다고 마약을 잔뜩 빤 상태에서 한놈씩 룸으로 아가씨들 끌고 가서 자기들끼리 돌아가면서….”
“어으….”
옆에서 듣고 있던 마리가 등골이 서늘한지 부들부들 떨었다.
김준은 조용히 마리의 손을 붙잡아주며 진정시켰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그 자리에서 끌고나와 마구 팼어요. 미친놈들이 애들 얼굴까지….”
폭력과 강간으로 만들어진 쿠테타의 깡패들 요새.
그런 자리에서 이야기만 들어도 정말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김준이었다.
“그놈들은 자기들끼리도 치고받았어요. 술자리에서 아가씨 하나 끼다가 자기들끼리 시비가 걸려서 주먹다짐을 하고, 거기서 휘말린 애가 휘두른 칼 맞아서….”
“!!!!”
“팔 한쪽이 이렇게 베였어요. 근데 그 상태에서 상처 썩어들어가서… 썩어서….”
더 이상 물어보질 못하겠다.
“바깥에서 좀비가 달려오자 산 채로 집어던져서 먹이로 줬어요.”
“하….”
마리는 더 듣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도저히 괴로워서 안 되겠다는 듯이 김준에게 양해를 구하고 물러났다.
김준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다시 물었다.
“그래서 몇 놈이나 있냐고요?”
“스무 명 좀 안 돼요. 대부분은 일대에서 조폭 따라다니는 양아치들인데, 걔들이 주력이예요.”
김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신릉면에서 벌어질 생각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가만두면 안 되겠네. 진짜….”
좀비만도 못한 짐승 새끼들을 반드시 쳐 내겠다고 다짐한 김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