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 2화 - 밖이다!
“푸히힝! (싸커킥!)”
어찌저찌 이세계로 건너와 말이 된지 한달 정도. 숲의 풀을 뜯어먹고 이리저리 몸을 숨기고 걷고 하면서, 숲에서의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내 몸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돌아다니다 보니, 역시 이세계답게 여러 몬스터를 만날 수 있었다. 작게는 만렙토끼인줄 알고 쫄았다가 밟아 죽인 매서운 표정의 뿔달린 토끼, 요상한 뿔을 가지고 얼굴이 도대체 무슨 동물인가 싶은 멧돼지 같은 녀석, 그리고 방금 뒷발차기로 머리를 날려버린 고블린처럼 보이는 무언가 등등... 어째 생긴 꼴들이 흉악하게 생긴 무서운 녀석들이었다. 가볍게 죽이긴 했지만 말이다.
“푸히힝 푸힝... (또 쓸데없는 것을 죽여버렸군...)”
널부러진 고블린의 시체를 바라보며 중2병 걸린듯한 대사를 지껄였다. 그래 봤자 말 울음소리란걸 알지만, 한 달간 만나온 몬스터들은 대화는 커녕 언어 비스무리한 거라도 말할 수는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비명 같은 울음소리만 질러대는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만 만나니 뭐라도 말하는 기분을 내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다. 적어도 고블린은 뭔가 언어 비슷한 거라도 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지켜본 적도 있는데, 전혀 그런 모습도 없었다. 그리고 그 동안 사람은 전혀 보지 못했다.
이쯤 되니 여긴 사실 인간이 없는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노숙자 신에 대한 짜증이 샘솟았다. 아니 시발 뭘 하려거든 이벤트 발생은 하게 해줘야지? 한 달간 사람 코빼기도 안 보이다니. 설마 몹 만나는게 이벤트야? 언제까지 이런 잡몹만 잡으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고블린의 시체가 검은 먼지가 되면서 사라졌다. 아무래도 이곳은 몬스터 시체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세계관인 것 같았다.
일단 다행스러운 것은, 예상대로 이 말 육체는 어마어마한 근육질 말 답게 상당히 강한 편으로 판단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 숲 안에서 만났던 동물 같은 몬스터들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5마리쯤 잡았을 때, 방어력은 어떠려나 싶어 달려오는 미친 멧돼지에게 부딪쳐봤는데, 오히려 멧돼지가 부딪친 충격으로 쓰러지더라. 제법 커다래 보이는 멧돼지 였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니, 그때는 새삼스럽게 이 말 몸뚱이에 감탄했었다.
'그래도 그 미친 광년이처럼 머리에 꽃 달고 있던 식물은 좀...'
개중에 가장 성가신 건 어디 호주 같은 데서 보이는 뒤틀린 꽃처럼 생긴 주제에 머리 양 끝에 작은 꽃을 달고 있는 미친 식물이었다. 크기도 말인 나만한 데다, 이상한 괴성을 지르면서 뿌리로 보이는 부분으로 달려오는데, 일단 모습에 기겁했었고, 또 의외로 줄기 같은 몸이 질겨서 말의 몸으론 잡기 힘든 녀석이었다.
'바위에 올려서 발로 짓밟아가면서 겨우 잡았지... 미친 광년이 식물 같으니'
“푸히힝! (상태창!)”
말 울음소리로 외치자 눈앞에 상태창 하면 누구나 생각할만한 형태의 스테이터스 창 같은게 나타났다. 그렇다. 상태창은 있었다! 숲에서 한참 헤매다 처음 만난 토끼를 한 마리 실수로 밟아 죽였는데, 피가 팍 터지는 꼴을 보고 깜짝 놀랐고 사라지기 전의 시체에 징그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현기증이 난다 싶더니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나 있었다. 아마 경험치를 얻으면서 레벨업하며 생긴게 아닐까?
그때의 기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방금 생각하던 미친 광년이 식물처럼 뛰어다녔다고 생각한다.
================================================== 이름 : 정 세마 종족 : 말 레벨 : 12 ( 8320 / 38000 ) 칭호 : - 나이 : 29세 ==================================================
눈앞의 스테이터스 창을 바라보며 경험치를 확인한다. 스킬이나 능력치 표시도 없는 빈약한 상태창이였다. 처음 이를 깨닫곤 다소 실망하긴 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맘을 다잡았었다 빈약한 상태창이긴 하지만 경험치와 레벨이 표시되는게 어디냐! 모 이세계엔 이름 말곤 아무것도 표시 안 되는 그런 상태창도 있는데!
그 외엔 말이 되었는데 왜 나이는 그대로일까 궁금했는데, 혹시 이세계의 말이 된게 아니라 인간이던 내 몸이 말로 변해서 이세계로 온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난 이런 근육질이었던 적은 없어서 확실한 건 아니긴 했지만. 사실 뭐가 됐든 크게 상관은 없는 항목이었다. 나이 보단 차라리 스텟 항목 같은걸 표시해주는 게 좋았을 텐데.
'처음부터 치트능력 쓰려하지 말고 스킬렙 같은걸 올리란 거겠지. 고럼고럼'
올라간 경험치를 확인하곤 곧 상태창을 닫았다. 상태창은 생각만 하면 안되고, 말 울음소리로 상태창이라고 외쳐야만 나왔는데, 닫는 건 그냥 생각만 하는 걸로도 닫히는 상태창이였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그것 외엔 특이한 점이라면... 이 숲에서 보이는 몬스터들 생김새가 상당히 징글징글 하게 생겼다는 것? 생김새만 보자면 아무리 근육빵빵 이라지만 쪼렙인 나에게 간단히 죽는게 이해되지 않는 녀석들이란 것이었다. 보통 쪼렙 몬스터들은 순하게 생기지 않았던가? 혹시 이놈들이 고렙 몬스터인데 내가 스텟 보너스 같은게 있어서 잡을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외형이었다.
“푸히힝 푸힝... (만약 스텟이 특전이라면 좀 아쉬운데...)”
만약 그런 스텟 보너스가 특전이라면 퍽 아쉬운 특전이다. 특전이라면 공간마법이나 뭐 인간화스킬 같은걸 줘야지. 스텟 같은 건 그냥 레벨업 하면 그냥 땡이잖아.
제발 아니길 하고 생각하며 발을 움직여 걷기 시작했다.
“푸르륵 푸힝...푸히잉... (하아, 시발놈의 숲... 이젠 좀 벗어나고 싶은데...)”
숲을 헤맨 지 한 달. 어째 시야에 비치는 숲은 나무가 많은가 적은가 정도만 차이나고 계속 같은 장소처럼 보이는 숲이었다. 어째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계속 우중충한 짙은 회색빛 하늘이고, 어둑어둑한게 기분이 영 좋지 않은 숲이다. 나무 때문에 전력질주 할만한 곳은 아니라서 주변을 살피며 걸어다니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달가량을 걸을 줄은 몰랐다. 설마 이렇게 오랫동안 숲을 헤매게 될 줄이야.
슬슬 이 우중충한 숲을 빠져나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물론 언어도 말하지 못하는 지금 상태로 누굴 만나도 좀 곤란하겠지만, 만나지 않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되었다. 뭣하면 발로 땅에 그림이라도 그리면 뭐라도 표현이 되겠지. 설마 공격하지도 않는 말을 죽이기라도 하겠어?
'시발... 제발 이젠 좀 누구라도 나와주길...'
노숙자 신에게 빌면서 주변을 살피고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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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걸은 지 한 달하고도 3일째. 마침내 눈에 보이는 시야가 변경되었다. 나무가 사라지고 뭔가 숲에서 나가는 느낌의 길이 나타나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곧, 화창한 하늘과 들판 같은 장소가 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잡초들이 제법 우거져있긴 하지만, 무언가 길 처럼 보이는 흔적도 보인다. 듬성듬성 나무가 나 있고, 눅눅한 숲의 공기가 아닌 맑고 상쾌한 바람이 느껴졌다. 그 광경을 보자, 참을 수 없는 흥분과 함께 발이 저절로 달리기 시작했다.
“푸르륵! 푸힝! 푸히힝! (길이다! 밖이야! 끼야아아앗호우!!!!!!!)”
그렇게 흥분한 채로 한참 달리다 크게 발견되는게 없어 일단 멈춰 섰다. 새삼스래 느끼는 거지만, 진짜 말이 맞긴 했나 보다. 지나가는 풍경이 상당히 빠르게 지나갔던 것으로 보아, 온 힘을 다해 전력 질주하면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 거라 생각된다. 체감이긴 하지만 방금 달린 게 시속 80km 되는 것 같았는데, 전력으로 달리면 시속 100km는 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 시벌?'
뒤돌아 보니 저 먼 곳에서 보이는 것은 커다란 산이었다. 아니, 산맥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숲이라고 생각한 곳은 사실 산맥이었고, 상당히 커다란 크기로 좌우 끝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넓게 퍼져 있었는데, 여태까지 걸어온 길이 어딜까 하고 찬찬히 살펴보니, 저 산맥 뒤편에서 산을 타지 않고 아래쪽으로 돌아서 다시 반대편으로 넘어온 것으로 보였다.
'아니 시발 그냥 올라가는 길로 이동했으면 그냥 산타고 빠르게 올수 있었던 거야?'
올라가지 않고 물을 따라 아래쪽으로 돌면 뭐가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게 판단 미스였던 것 같았다. 저 넓게 퍼진 산맥을 빠져 나오겠다고 한달 넘게 빙 돌다니, 병신도 이런 병신이 따로 있나. 숲이 좀 어둑어둑 하고 산이 워낙 큰데다 올라가는 길도 경사가 낮다 보니, 제대로 파악을 못한 것 같았다. 그냥 큰맘 먹고 한쪽으로 쭉 빠졌으면 산 바깥을 파악할 수 있었겠지.
'하, 시발 나란 병신 진짜...'
내 모자란 판단력을 욕하면서 힘없이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시벌... 이 멍청한 말대가리 새끼... 정말 앞날이 걱정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