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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남의 여자를 빼앗는 말이 되어버렸다-3화 (4/749)

Chapter 3 - 3화 - 사람이다!

숲을 빠져 나왔다는 기쁨으로 기분 좋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지났다. 정말 아쉽게도 그동안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바뀐 거라곤 배경 뿐이었는데, 만약 흐릿한 길마저 끊겼다면 정말 암울했을 것이다.

'하... 설마 진짜 사람이 없는 세상이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슬슬 이 상쾌한 풍경이 희망고문 처럼 느껴졌다. 그 긴 한달 가량의 기간을 숲을 헤마다 빠져나왔는데 이런 상쾌한 풍경을 가진 곳도 이 모양이라니. 정말 그 노숙자 신은 뭐 때문에 날 여기로 보낸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투덜대는 도중, 어디선가 높은 고음의 외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스! 왼쪽을... 려!”

'......!? 말? 한국어!?'

정신이 번쩍 들면서, 소리가 들리는 위치로 생각하기도 전에 달려가고 있었다.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히 말을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달 넘게 비명 같은 울음소리 외엔 들은 게 없는데, 말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니 감격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렇지! 혹시나 사람을 만나도 말이 못 알아먹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야! 한국어야! 알아서 번역되게 다 맞춰서 보내준 거겠지? 노숙자 신님 감사합니다! 아, 쟤들인가!?'

달려가니 사람 같은 형체와, 그것과 대치하고 있는 새빨간 소처럼 생긴 무언가가 보였다. 고양감에 속도를 올리다가, 아차 싶은 생각이 들어 속도를 줄이고 몸을 숨길 곳을 확인했다.

'나는 지금 대화도 못하는 단순한 말일 뿐이지... 혹시 공격받게 될지도 모르니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좀 떨어진 곳에 커다란 바위 뒤로 숨어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 정말! 그러게 슬슬 돌아가자고 했는데! 계속 몰려들잖아!” “하하... 미안. 슬슬 제대로 실력확인 좀 해보자 싶어서... 경험치도 얻고 괜찮지 않아?” “경험치는 둘째치고 끝나질 않잖아! 봐, 한 마리 더 오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짜증을 내는 여자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확실히 대치하고 있는 소와 똑같이 생긴 소가 천천히 두 남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대치중인 소를 도와주러 온건가? 싶었는데 멀찍이서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러던 중 남자쪽이 자기 앞의 소를 쓰러트렸다.

“됐어, 6마리째! 자 다음!” “아 진짜, 저놈만 잡으면 바로 도망가는 거다!? 난 이제 에세르가 모자라!” “알았어, 알았어. 자 온다!”

흐음... 자세히 보니 좀 떨어진 곳에 몇 마리의 빨간 소가 누워있는 게 보였다. 같은 곳이 아니라 조금씩 떨어진 곳에 한 마리씩 쓰러져 있었다. 저 두 사람이 잡은 건가? 아 멀리서 지켜보던 소가 달려오네? 저 소들은 혹시 한 마리씩 덤비는 습성이 있는 건가? 그래서 계속 몰려든다 한 거고?

“발부터 멈출게! 파이어 샷!”

여자가 불 스킬 같은 이름을 외치며 지팡이를 뻗자 지팡이 끝에서 작게 마법진같은게 펼쳐졌다. 그리고 이후 마법진에서 작은 불덩이가 3개 튀어나와 곡선을 그리며 소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오오...! 마법이다! 진짜 마법!'

보면서 감탄하는 동안 날아가던 불덩이는 뛰어오는 소에게 부딪치며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뭔가 작은 폭탄 같기도 해서 소는 끝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달려오던 발만 멈췄을 뿐 소는 꽤 멀쩡해 보인다.

“좋아. 간다아아아아!”

그렇게 외치며 남자가 달려나간다. 양손으로 쥔 제법 그럴듯한 검을 소에게 내리치자,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소의 허리에 칼날이 박혀있는 게 보였다.

'흐음... 멋지게 내리치길래 그냥 두동강 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안 먹히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남자는 잽싸게 칼을 빼내더니 소 옆으로 돌면서 제법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아아앗!”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게 아닌, 제법 그럴듯한 동작이 나오면서 소가 방향을 틀기도 전에, 소의 허리가 반쯤 너덜거리게 베이는 게 보였다. 한방딜이 아니라 지속딜 하는 검사인가? 동시에 여자쪽에서 소의 상처부위에 불덩이를 몇 개 날리는게 보였다.

“쉬이익….!”

쿵!

남자를 머리로 들이받기 위해 미친듯이 방향을 틀어대던 소는, 머리가 남자에게 닿기도 전에 땅에 쓰러져 버렸다.

...? 뭐지. 저 소, 시체가 안사라지네? 내가 숲에서 만난 몬스터들이랑 뭔가 다른건가?

“하아, 하아… 나도 슬슬 검에서 힘이 빠지네.” “아~ 정말. 오늘은 퀘스트만 하고 빨리 갈 줄 알았는데 매드카우를 이렇게 잡게 될 줄은... 따로 퀘스트도 안받아왔고, 이걸 다 챙겨갈 수도 없으니 경험치 말곤 얻는 것도 없잖아.” “하하. 그래도 매드카우는 경험치도 괜찮고, 어느 정도 실력확인이 되긴 했잖아?”

흐음... 어째 들리는 말로 유추하기엔 친구? 연인? 같은 사이의 초보자 남녀가 실력 테스트 겸 나와봤단 느낌이다. 혹시 저 녀석들 상태창도 볼 수 있으려나?

“푸히힝 (상태창)”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두 사람의 스텟을 확인하기 위한 상태창을 불러보았다. 숲에서 만난 몬스터의 스텟은 전혀 볼 수 없어서 좀 실망스러웠는데, 사람은 과연?

================================================== 이름 : 타니아 리즈벳 종족 : 인간 레벨 : 18 ( 1800 / 5400 ) 칭호 : 주목받는 초보 마법사 나이 : 19세 ==================================================

================================================== 이름 : 라이언 알스 종족 : 인간 레벨 : 20 ( 3460 / 6800 ) 칭호 : 초보 용사 나이 : 20세 ==================================================

오오...! 뜬다! 어째서 몬스터는 안되고 사람은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감격스럽다. 나타난 두 사람의 상태 창을 살펴보면서, 두 사람의 외모도 찬찬히 다시 살펴보았다.

리즈벳이라는 여자 쪽은 확실히 이세계라는게 느껴지는 약간 붉은기가 있는 핑크색 머리카락 이었다. 살짝 곱슬거리며 허리에 살짝 닿는 길이의 머리카락이다. 색상에서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아무래도 좀 신선하게 느껴졌다. 염색과는 다른 자연스러움이다.

얼굴은 19세라는 나이답게 고3~대학교 신입생스러운 외모였다. 귀여우면서 살짝 앙칼져 보이는 게 왠지 모르게 성격이 츤데레스러울 것 같이 보인다. 그래도 상당한 미인이다. 귀에는 작은 귀걸이가 달려 있는게 보인다. 키는 160cm이 조금 안되려나?

근데 가슴이... 키에 걸맞지 않게 어마어마한 크기다. 가슴 사이즈를 정확히 볼 줄은 모르지만, 적어도 지구에선 가슴 확장 수술을 한 여자들 에게서나 찾아볼만한 크기였다. 본인 머리크기랑 엇비슷하게 느껴지는 수준? 어쩐지 아래쪽 주니어가 불렀어? 하고 꿈틀대는 느낌이 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크기다. 복장은 하얀 블라우스에 무릎을 살짝 덮는 붉은색 치마를 입은 단정한 복장. 하얀 스타킹을 신고 거기에 어울리는 갈색의 단화가 보인다. 등에 후드가 달린 망토를 단 모습이 딱 단정한 스타일의 마법사란 느낌이다.

반면 알스라는 남자 쪽은 여러모로 평범하다 해야하나...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 170cm 정도로 보이는 키와 적당히 날렵해 보이는 몸매. 평범하지만 나쁘지도 않은 얼굴. 뭔가 가죽 같은 갑옷을 걸치고 적당한 크기의 검을 휘두르는 게 평범하단 말이 딱 어울렸다. 다만 얼굴은 제법 깔끔해 보이는 게 꾸미기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 얼굴이었다.

그 외의 공통점으론 잘 보이진 않지만, 두 사람의 오른쪽 손등에 같은 표식같은게 있다는 것이었다.

레벨은 18렙 20렙이라... 아직 어느 정도 인지는 감이 안오지만, 초보 모험가 수준이 아닐까 생각된다. 경험치 상한이 12레벨인 나보다 작은 게 신경 쓰이지만, 그보단 칭호가 눈에 띄었다. 리즈벳이란 여자 쪽은 주목 받는 이란 수식어가 붙어있고, 알스라는 남자 쪽은 무려 ‘용사’ 다. 초보라고 붙어있긴 하지만 내가 아는 그 용사가 맞겠지? 근데 왜 난 칭호가 없냐?

이거 생각보다 대단한 녀석들을 만나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을 때... 남자를 바라보며 한숨 쉬는 여자의 뒤편에서 달려오는 또 다른 붉은 소가 보였다.

'!? 눈치 못챈건가!?'

남자 쪽도 끝났다 생각했는지 검을 천으로 닦고 있느라 눈치를 못 채고 있다. 제법 빠르게 뛰어오는 중이라 더 늦게 눈치챈다면 늦을 것 같았다.

'야, 야, 니네 뒤! 아니 저 소새낀 저리 달려오는데 소리도 거의 안나네!?'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외쳐보지만 두 사람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녀석을 잡고 주변에 소가 안보여서 더 없다고 생각한 건가.

'안돼!'

더 이상은 늦겠다 싶어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여태까지 전력질주로는 달려보질 못했는데, 저 상황을 보니 다리가 지 멋대로 빠르게 움직여버렸다.

'아니 시발! 나 말도 못하는데 참!'

두 사람은 갑자기 달려오는 날 확인하곤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머릿속에서 말도 못하고 생긴 건 흉악하게 생긴 말이 어쩌려고 라는 생각이 맴돌았지만, 내 다리는 이미 멈추지 않고 전력으로 뛰는 중이다.

'에라 시발 모르겠다! 싸커킥이다 이 소새꺄!'

나조차도 깜짝 놀랄 속도로 여자 근처까지 다가온 나는, 지팡이를 챙겨 나에게 겨누려고 하는 여자를 무시하고 뛰어오른 뒤 몸을 비틀어 뒷다리 킥을 날렸다. 킥을 맞은 소는 달려오던 방향으로 그대로 10m 가량을 날아간 후, 부들부들 떨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어?” “......아 ......어? 이 검은 몬스터는... 대체...?”

두 사람이 얼빠진 소리를 낸다. 그도 그렇겠지. 갑자기 커다란 말이 달려 나와선 자기들을 구해주다니. 아 그래도 이 상황이라면 말은 안 통해도 날 믿을 수 있는 동물이라 생각하고 의사소통을 시도하거나 혹은 데려간다거나…

“리, 리즈! 어서 내 뒤로!” “꺄아아아악! 뭐야 이 몬스터는!?”

시발. 아무래도 망했나 보다.

“이, 이 몬스터는 뭐지? 본적 없는 몬스터야... 매드카우를 일격에 날려버리다니...” “뭐야...? 주변이 오염되지도 않았는데 테세르의 기운이 느껴져. 거기다 저런 흉악한 모습의 몬스터는 처음 봐...”

테세르가 뭔진 모르겠지만 어째 매드카우란 저 붉은 소를 한방에 날려버린 게 두 사람에게 겁을 준 모양이다. 하긴 이런 흉악하게 생긴 우락부락한 말이 갑툭튀해서 본인들이 마법과 수십 번의 칼질로 잡던 소를 발차기 한방에 날려버리면 겁먹을 만 하겠지. 아직 18살, 20살의 갓 성인이 된 어린애들이니까. 그래도 나름 구해준 건데 너무 겁먹는 거 아냐?

“푸히힝 푸륵... (아니 나는 몬스터가 아니라...)”

아 시발. 역시 말 울음소리밖에 나오질 않는다. 이걸 어쩌지?

“뭐, 뭐야, 저 기분나쁜 울음소리... 오염은 없지만 역시... 마물!?” “그럴리가! 저주받은 산맥은 아직 한참 떨어져있는데!” “그것 말곤 저런 흉악한 존재를 설명할 수가 없잖아! 오염은 없지만 테세르의 기운이 느껴지는걸 보면 확실해!” “크윽...”

여자의 설명에 남자가 신음소리를 낸다. 거기다 저주받은 산맥이라니? 혹시 내가 빠져나온 그 산맥? 거기 저주받았었냐?

“리즈... 내가 최대한 시간을 끌께. 넌 빠르게 도망쳐”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마! 뭣 때문에 같이 모험가가 된 건데!” “푸힝 푸르르륵(아니, 잠깐만 나는...)” “내 말 들어 리즈! 아직 초보 모험가 라곤 해도, 난 용사야! 저런 마물이 상대라도 네가 도망칠 시간은...” “아까 달려오는거 못봤어!?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알스 널 놔두고 나 혼자만 도망치면 뭐해!” “푸히히힝 (아니 그러니까...)” “내가 죽더라도 막을 테니 도망쳐! 널 다치게 할 순 없어!” “싫어 싫어! 알스가 죽고 나 혼자 사느니 같이 죽는게 나아!”

두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투는걸 보면서 몸을 흔들며 의사소통을 하려 노력해봤지만, 말 몸뚱아리론 뭘 어찌 표현할 수가 없는 상태. 아무래도 심각함만 더해준 것 같다. 잠시 뒤 두 사람은 곧 결의한 듯 각자 무기를 잡기 시작했다. 특히 용사라는 남자 쪽은 갑자기 몸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아 시발 망했네 이거.

말이 나오지 않는 답답함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아니 솔직히 대화는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거 아니야!? 뭐 진짜 몬스터 역할 하라고 보낸 거야 뭐야!? 사람을 이렇게 엿을 매기냐 신이란 양반이!

점점 몸에서 열이 나는 듯한 기분이다. 어쩌지? 그냥 빠르게 도망쳐야 하나? 근데 그러면 앞으로 사람들에게 현상수배 같은 거라도 걸리는 거 아닌가? 말도 못하는 상태로 보내버린 노숙자 신에 대한 원망과, 눈앞에서 날 보며 목숨을 걸고 싸우려고 하는 두 사람의 눈빛. 그것을 바라 보면서 언어스킬에 대한 간절함만 늘어간다. 동시에 몸 속에서 무언가 계속 끓어오르는 듯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아니 그러니까 난 너희들을 구할려고...!” “...!?” “...어!?” “푸힝!?”

말이, 제대로 된 발음으로 나오는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마, 말했다!?” “어...? 어!? 말을 하다니... 서, 설마 마물이 아니라...” “어... 어!? 말할 수 있다아아아아아아아아!!!!!!!!!!!!”

입에서 튀어나온, 내 목소리로 만들어진 한국어에 감격이 벅차 오른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면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끼야아아앗호오오우!!!!!!!! 말이 나온다고!!! 으하하하하하하핫!!!” “꺄악, 뭐, 뭐야!?” “자, 잠깐….!” “끼요오오오오오옷!!!!!!!”

내 날뜀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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