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 4화 - 마물은 아니야!
“어 그러니까… 정세마…씨?” “편하게 세마라고 불러도 돼. 편하게. 나도 알스라고 편하게 부를 테니까.” “아, 알았어. 그러니까 세마 넌... 저 멀리 있는 저주받은 산맥 너머에서 왔단 얘기지?” “뭐 그렇지”
대충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하면 귀찮을 것 같아, 저주받은 산맥이라고 부르던 저 산 너머에서 살다 사람이 사는 도시를 찾아 왔다는 식으로 대충 내 소개를 하였다. 이세계에서의 내 이름도 한달 넘게 이리저리 생각해왔던 게 있었지만, 막상 이름을 말하게 되니 그냥 불리던 이름이 편한 것 같아 지구에서의 내 이름을 말해 주었다.
편하게 부르라고 하자 형도 씨도 안 붙이고 반말이 나오는 게 좀 그랬지만, 뭐 어떠냐! 대화를 할 수 있는데! 이쪽의 문화 같은 것도 아직 모른다. 거기다 말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형이라 부르긴 뭐하겠지. 그래, 마음대로 불러라!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
“으음... 어쩐지 좀 믿기 힘든데... 이름은 또 뭐 그래?”
리즈벳쪽은 겁먹은 표정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눈에선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니 생긴게 흉악하다지만 그리 의심할건 없잖아...
“히잉... 리즈는 내가 구해줬는데도 날 믿을 수 없는 거야?” “난 편하게 부르라고 안했거든? 리즈벳 씨 라고 불러줄래? 말을 하는거 보니 마물은 아닌 것 같지만 마물이 넘치는 저 산을 넘어왔다니...” “아 넘어온 게 아니라 그냥 산모퉁이 부분을 빙 돌아서 온 거야. 리즈벳 ‘씨’ ”
그리 불러 달라는데 불러줘야지. 뭐 어때! 이제 갓 성인이 된 리즈벳이 까칠하게 말하지만, 대화를 할 수 있단 사실 덕분에 그 정도는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
“강조는 안 해도 되거든? 흐음... 저 넓은 산맥을 돌아서 오다니... 하긴 그 속도라면... 아니 그래도 오염은...”
리즈벳이 중얼중얼 거리며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온다. 이제 따가우니 그만해줘잉
“흠흠. 그건 둘째치고 세마는 사람이 있는 마을에 가고 싶단 거지?” “음. 그렇지. 정확히는 날 내쫓지 않고 공격하지 않는 곳에서 살면서, 말 겸 모험가를 하고 싶다고 해야하나...” “모험가? 몬스터가~? 흐으으음...”
몬스터가 아니라 말인뎅...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구자 알스가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뭐 어쨌든 세마가 리즈 널 구해준 건 사실이고, 말을 할 줄 아는걸 보면 마물은 아닌 게 확실해. 마물은 말 자체를 못하니까. 테세르의 기운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렇게 대화하는 중에 오염이 없는걸 보면 좀 특이한 에세르의 기운이겠지. 어차피 라디아엔 고레벨 용사도 몇 명 있으니 혹시 모를 사태가 발생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긴 한데... 하긴 고민해도 어쩔 수 없나... 아 근데 벌써 해지고 있어. 돌아가봤자 한참 늦은 한밤중이겠는데... 그 정도 시간이면 길드관리소도 문 닫았을 테고...”
어째 처음 듣는 단어들이 마구 나오고 있지만, 어찌됐든 마을엔 데려다 줄 모양이다.
“아 늦었다고 해서 말하는 건데 혹시 마을은 많이 멀어?” “여기서 걸어가면 반나절 정도야. 아무래도 도착할 때쯤엔 성문이 닫혔겠는걸.” “어... 오늘은 못 들어간단 말?”
아 다 와선 눈앞에서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잔뜩 기대하고 있던 차에 짜게 식는 소리였다. 하긴 처음 보는 말이 한밤중에 갑자기 들어간다 하면 나라도... 어?
“혹시, 두 사람 다 내 등에 타고 가면 해지기 전엔 도착하지 않을까?” “뭐!? 등에 탄다고!?”
리즈벳이 놀라는 건지 싫다는 건지 모를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본다. 알스도 순간 놀란 눈치지만, 곧 날 천천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응. 이정도 크기라면 우리 둘이 타도 여유롭겠는데? 얼마나 빨리 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으~음... 하긴 노숙은 나도 싫고...” “말 나온 김에 가자! 한번 올라가 봐! 나도 누굴 태워 본적은 없긴 하지만 걷는 것보단 빨리 갈 수 있을 거 같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주저 앉아 두 사람과 마주보고 있던 몸을 90도 돌려 두 사람이 옆에 올라탈 수 있도록 보여주었다. 알스는 잠깐 멈칫 하더니 곧 한쪽 다리를 올리며 올라탔고, 리즈벳은 고민하는 듯 하더니 다리를 모은 채 엉덩이를 올렸다.
“으음. 알스는 괜찮지만 리즈벳씨는 그 자세로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혹시 떨어질 거 같으면 말해” “알겠으니까 한번 일어나서 걸어봐”
아까까지만 해도 날 보고 부들부들 떨며 죽음을 각오하던 그 아가씨는 사라지고, 고압적으로 명령하는 시건방진 아가씨가 나타나버렸다. 대화가 통하니 공포심이 날아간 모양이다. 하긴 뭐 겁에 질리는 것보단 낫겠지.
'음... 무거우면 어쩌지 싶었는데 두 사람을 태워도 그리 무겁진 않네'
일어나서 느끼는 두 사람의 무게는 어째 가방 하나 둘러맨 듯한 적당한 느낌이었다. 역시 이 말 근육의 힘인가. 하고 새삼스레 내 몸에 감탄이 나왔다.
“꺄악! 새, 생각보다 엄청 높네...” “그러게... 와 근데 시야가 확 트여서 좋은걸” “그럼 천천히 걸어볼 테니 빠르면 얘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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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사람을 태우며 천천히 속도를 올려본 결과 적당히 경보 하듯 뛰는 속도가 적당한 듯 했다. 말 타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서, 둘 다 허리가 아프거나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편안한 듯 했다. 넓은 등판 때문인가? 아님 나한테 무슨 스킬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두 사람이 괜찮다는 걸 확인한 후, 달리면서 아까의 못 알아듣던 용어들에 대해 물어보니, 두 사람은 그걸 모르다니? 하는 표정으로 설명해 주었다.
에세르와 테세르라고 하던 두 명칭. 일종의 에너지원인데, 간단히 말해 마물은 테세르를 가지고 있고 그 외의 생명체들은 에세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적당히 내가 이해한 건 에세르는 빛의 힘 같은거고 테세르는 어둠의 힘 같은 느낌이었다. 테세르가 많은 곳엔 마물이 나타나고, 동시에 마물은 테세르를 퍼트리면서 주변을 오염시킨다고 한다.
그런 테세르가 모인 곳중 하나가 내가 왔다는 저주받은 산맥이었는데, 산 꼭대기에서 테세르가 퍼져 나오는 곳이라 올라갈수록 위험한 마물이 나온다고 한다.
내가 산맥에서 본, 시체가 먼지가 되는 녀석들이 마물이고, 매드카우 같은 녀석은 에세르를 가진 몬스터라고 말했다.
내가 잡은 마물들을 설명하면서 미친 광년이 같은 꽃을 잡았다고 했을땐, 두 사람 모두 꽤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광년이 꽃이 그 산맥 입구쪽에선 제법 골치아픈 녀석이라고... 다만, 그 녀석도 산맥 전체를 보면 하위권에 속하는 녀석이라는데, 이거 위로 올라갔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어째 산기슭에서 빙 돌아온 게 헛고생이 아니라 정답이었던 것 같다.
“처음 봤을 때 마물이라고 했던 게 그런 이유라고?” “응. 마물은 강한 마물일 수록 자연스럽게 테세르가 뿜어져 나오면서 주변을 오염시키니까. 그 산 주변엔 여러 용사가 만들어둔 결계가 있기 때문에 그 이상 테세르가 흘러나오진 못하고, 마물들도 거기 갇혀 있는 셈이거든. 세마는 그래도 거의 안된 산 아래쪽을 지나온 것 같아서 다행이야” “끙…뭔가 이상한 풀은 안 뜯어먹은게 다행이네. 근데 산에 오래 있어서 내 에세르가 그렇게 느껴지는건가?” “음… 기운이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그건 아닐걸. 내가 사제는 아니지만, 세마한테서 느껴지는 기운은 정말 오염이 없다면 착각할 정도로 테세르와 비슷한 것 같아. 물론 에세르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족 같은 경우엔 테세르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렇게까진 똑같진 않아. 세마는 정말 눈감고 느끼면 똑같을 정도라고 해야하나...”
아무래도 그 테세르 같다는 기운과 외모 때문에 누굴 만나든 내 첫인상은 빵점이 확정인 것 같다. 이거 앞으로 가는 곳마다 설명충이 되겠는데. 큰일인걸.
근데 마족이라. 역시 있는 건가. 이세계스러운 명칭을 들으니 이거 어째 점점 흥분되는 느낌이다.
“아 그리고 우리가 가는 라디아는 라인하르트 왕국의 지방도시중 가장 활발한 곳이야. 제 2수도란 느낌이지. 수도를 빼고 모험가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도시인데, 세마를 보면 어찌 반응할진 잘 모르겠지만, 모험가가 되는 걸론 가장 좋은 시작지점이 될 거야.” “오오. 그거 괜찮은데...”
라인하르트 왕국이란게 얼마나 큰진 잘 모르겠지만, 계속 말해주는 내용을 들어보니 제법 괜찮은 도시로 보인다. 말 모습만 잘 넘길 수 있다면 좋겠는걸. 잘 얘기해 주겠다는 알스를 믿어보자.
“하아... 아마 우리도 한동안 길드관리소에 묶이겠어. 이걸 설명하려면 소장... 잘하면 영주님도 나오겠네.” “음... 그렇긴 하네. 뭐 그래도 이런 진귀한 경험을 해보잖아? 신수를 만날 일이 얼마나 있겠어?” “난 아직 이게 신수 라는게 믿기질 않거든?”
시끄러워 진다는 건 예상을 했지만, 귀족이 나올 수도 있단다. 설마 보자마자 죽여라! 하고 모가지 뎅겅인건 아니겠지? 헌데 신수라니?
“신수는 뭔데? 내가 그거야?” “신수는 그러니까... 말을 할 줄 아는 몬스터를 말해. 영물이라고도 불리는데, 대부분 오래 살았고 인간에 우호적이라 신성한 취급을 받지. 인간종 외엔 말을 할 줄 아는 건 신수밖에 없어.” “아하, 그래서 내가 말할 수 있게 되니 신수라고...”
음. 신성한 취급을 받는다니. 앞으로 뭔 일 생기면 신수라고 잡아떼야겠다 이거.
“에이, 절대 아닐걸. 이런 기운을 가진 신수라니. 마법학교에서도 들어본 적 없어. 인간화도 못하는걸 보면 희귀 몬스터 같은게 아닐까... 이런 외형을 가진 몬스터도 들은 적이 없는걸”
끙... 리즈벳 쪽은 영 반응이 좋지 않은걸 보니 신수라고 잡아 떼는 것도 안 먹힐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이쪽엔 말이 따로 없는 건가? 외형을 처음 본단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질문하고 하다 보니, 한 시간 정도 만에 라디아란 도시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