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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남의 여자를 빼앗는 말이 되어버렸다-11화 (12/749)

Chapter 11 - 11화 - 죄송합니다!

그렇게 밤새 창밖을 확인하다보니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조금 잘까 싶었지만, 언제 알스나 리즈벳이 보일지 몰라 도저히 잘 수 없었다. 그렇게 밤을 지새면서 가만히 생각하다보니, 두려움의 감정은 점점 사라지고, 리즈벳에 대한 분노가 조금씩 커져왔다.

“아니... 시벌 생각해 보면 지가 나한테 버섯 먹인거 부터가 잘못이잖아? 그거 아니었음 내가 그렇게 흥분을 했겠어? 그리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 되는 거였지! 지가 그냥 거절도 안하고 딸쳐준거 뿐인데!”

내가 반쯤 위협했었단 사실이 머릿속에 멤돌았지만, 책임회피를 하고싶은 내 머리는 그 사실을 구석에 조용히 밀어넣었다. 어제의 그 일은, 내 머릿속에서 리즈벳이 대딸한번 해달라 했다고 거절도 안하고 대딸해준 후 지 혼자 쓰러진 일로 변해있었다.

“그래 내가 뭐 죄지었어!? 시발 지가 그냥 해준거지 뭐! 당당히 돌아다닐거야 시발!”

죄 지은거 맞다고 외치는 양심의 외침은 무시한채, 일어나서 창고 밖을 향했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일단 길드사무소로 향하기로 했다. 혹시 리즈벳이 무슨 말을 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양심을 무시하면서 일부러 과장되게 고개를 쳐들고 길드사무소 앞으로 가니, 갑자기 양심이 뛰쳐나와 미친놈아 하고 나에게 주먹을 날리는 듯 했다. 갑자기 쭈글해지면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창문 아래에 숙여서 무슨 말이 오가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모험자들의 잡담 소리가 들리는데, 딱히 별 말은 없고 시시콜콜한 잡담이었다. 그중에서 나에대한 얘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좀 그렇지만 내가 인간화 하면 가입권유 하는게 어떠냔 식의 얘기가 나온걸로 보아, 리즈벳이 길드관리소에선 별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휴우...... 다행이다...”

알스와 리즈벳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까지 확인한 후, 나는 길드관리소에 들어갔다.

“아, 세마씨! 안녕하세요!” “안녕 세라! 좋은 아침!”

세라가 웃으며 반겨주는 것 까지 확인되자, 내 맘속의 걱정은 완전히 사라져 밝은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고마워 리즈벳. 은혜는 잊지 않을게! ......피해다니긴 할거지만.

“마침 잘 오셨네요! 알스씨가 감사하다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쿵.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아, 알스 목소리는 안들렸었는데? 아무리 길드관리소가 넓어도 청력 좋은 동물귀에 아무것도 안들렸다고?

“식사하신 후에 잠깐 나가셨던 것 같았는데... 아 저기 계시네요!”

세라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알스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뚱한 표정의 리즈벳이 날 째려보고 있었다.

'좆됐당...'

알스의 저 웃는 표정이 반가움인지 널 죽여버리겠다 인지 파악하지 못한채, 경직된 걸음으로 다가오는 알스에게 다가갔다.

“안녕 세마. 아침은 먹었어?” “아, 아침? 아아~ 먹었지 먹었어. 괜찮아 괜찮아” “응. 그럼 리즈벳도 저기 있으니 잠깐 얘기할게 있는데...” “얘, 얘기!? 어, 어어 얘기하는거 좋지”

뭐가 괜찮고 좋다는건지, 나도 내가 무슨 소리 하는지도 모르겠다. 리즈벳에게 가는 알스의 뒤를 따라 위가 콕콕 쑤시는 기분을 맛보며 리즈벳에게 다가갔다.

“아, 안녕 리즈벳?” “......안녕”

두려움에 떨며 인사를 건네는 나에게, 리즈벳은 뚱한 표정 그대로 인사해줬다. 뭐냐 이건, 기억상실이냐!? 아니면 널 죽이겠다 냐!?

“일단 먼저... 정말 고마워 세마.” “으, 응?”

자리에 앉은 알스가 고맙다는 얘기를 시작했다. 고맙다니?

“그리폰을 잡은 공적을, 전부 리즈벳에게 몰아줬다고 들었어. 리즈벳에게 듣기론 세마 너랑 같이 잡았는데, 어느새 부풀려져서 혼자 잡은걸로 되어있었다 하더라고.” “아, 아~ 그거~”

아무래도 이거 리즈벳은 기억상실이 맞는 것 같았다. 만약 기억이 났었더라면 이런 감사는 집어치우고 알스와 함께 날 죽이려 들었을 테니까.

“내가 따라가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오히려 도움까지 받다니, 업적 쌓는게 필요한 우리로선 그런 양보가 너무 고마워. 거기다 기절한 리즈벳을 길드관리소까지 데려다줬다며? 계약보수도 예의상 건 1쿠퍼 밖에 없는데, 우리가 너무 많은걸 받은 것 같아” “하하, 별거아냐! 신경쓰지 마! 나도 뭐 좋은 경험이었으니까!”

순간 리즈벳의 눈빛이 날카로워 진 것 같았는데 착각이겠지. 응, 기억상실이 아니라면 그런 짓을 당했는데 이리 얌전할 리가 없어.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정식으로 우리 길드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 “으음~ 길드라......”

정식 길드원 제의를 받자 잠시 걱정을 잊고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돌아간다. 정식 길드원. 지구로 따지면 입사 제의. 그래도 이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인간이면서, 가장 친해진 두 사람이 제안해주는 것이었다. 받아도 상관은 없을 것 같았으나, 길드에 묶이기보단 좀 더 자유롭고 싶다는게 내 마음속 외침이었다.

“으음... 길드 가입 자체를 그냥 좀 더 생각해보고 싶은데... 좀 자유롭게 이것저것 해보고싶거든” “응, 그럴 수 있지. 세마는 아직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 온지 한달 정도밖에 안된 신수니까. 그럼...”

이후 이어진 알스의 제안은, 별 일 없다면 임시계약으로 계속 본인들과 함께 퀘스트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마델의 빛에 가입해도 좋고, 혹은 다른 길드로 가더라도 아쉽긴 하겠지만 잡지는 않겠다고 했다. 본인들은 은혜를 입게된 나와 꼭 함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뭐 그런거라면 오히려 내가 고맙지!” “하하 고마워 세마. 그럼 일단 지금은 내가 남쪽 성문에 갔다와야 할 것 같아. 얼마전 던전에 갔었던 파티가 어제서야 옮겨온 물건이 그쪽에 있는데 그걸 좀 확인해보고 와야 할 것 같거든. 아마 저녁때쯤 오게 될 것 같은데 그때 다시 만나서 퀘스트를 고르고 내일 하는건 어때?” “음. 난 상관없어. 아직 마을도 못가본 곳이 많기도 하고 말이야, 근데 용사를 소집한 용건이 뭐래?” “그게 아직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좀 그래. 확정이 되면 알려줄게. 혹시 그때 길드에서 직접 퀘스트를 받을 수 있게 될 지도 몰라. 자세히는 아직 말 못하지만...”

뭔가 좀 대단한 일이 있나보다. 용사가 계속 불려다니고, 이유는 비밀로 할 정도라니.

“그럼 인사도 했으니 나는 이대로 남쪽 성문에 가볼 예정인데... 리즈벳은 어떻게 할래? 오늘은 같이 가도 되는데.”

알스가 일어나면서 리즈벳을 쳐다보고 묻는다. 아니 걍 같이 가는게 당연한거 아냐? 니네 사귄다며, 뭘 묻고있어.

당연히 리즈벳도 알스를 따라가겠지 싶었는데, 리즈벳은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난 세마랑 같이 마을이나 둘러볼께. 들릴 가게도 좀 있고 해서.” “응. 그러면 세마한테 잘 안내해줘. 나는 저녁까진 그쪽에서 먹을 것 같진 않지만, 혹시 너무 늦으면 먼저 먹어.” “응, 이따봐”

리즈벳이 알스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날 쳐다보며 대답했다. 알스는 웃으면서 이따 보자고 말하며 길드관리소를 빠져나갔다. 아니 저기 니 여친은 이대로 놔두고 혼자 가니? 같이가도 된다며? 그럼 같이 가야지?

“......” “......”

어째 리즈벳의 시선이 너무나도 따갑다. 왜 저리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는걸까. 너무나도 따가운 시선이, 리즈벳이 기억상실이 맞는건지 아닌지 확신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뭐라도 말을 좀 해줘...

그렇게 리즈벳의 시선을 외면하며 최대한 눈을 마주치고 않고 있으니...

“......따라와” “으, 응? 아,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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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나가는 리즈벳의 뒷모습을 보며, 불안한 두근거림을 느끼며 따라 걸었다. 주변에선 여전히 나에게 시선이 꽂히고 있었지만, 이번엔 그 시선을 차마 느끼질 못했다. 리즈벳의 뒷 모습에서 느껴지는 저 기운이 과연 분노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오늘 리즈벳의 복장은 평소에 보던 그 복장이 아니었다. 상의는 좀 끼는 듯한, 가슴이 달라붙는 하얀 셔츠에 걸쳐입은 붉은색 가디건, 길이는 그동안 입던 치마와 비슷한, 팔랑거리는 체크무늬 주름 치마, 거기에 어제의 스타킹과는 조금 무늬가 다른 하얀 스타킹. 살짝 굽이 있는 검은색 단화. 이전 복장처럼 전체적으로 수수하지만 리즈벳의 붉은기가 도는 핑크색 머리와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다만 뭔가 예전에 입던 옷을 꺼낸 것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망토가 없으니 리즈벳의 몸매가 드러나면서, 저런 수수한 복장의 뒷모습 조차 나에겐 너무 자극적이었단 것이었다. 그나마 어제의 대딸 사건이 있었으니 참는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저 자극적인 뒷모습에 말자지를 억누를 수 없을것이다.

“......”

말이 없는 리즈벳을 한참을 따라가니, 점점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는 듯 했다. 들릴 가게가 있다더니, 좀 구석진 곳에 있는 가게인가? 그렇게 주변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사라지다 더 이상 들려오는게 없어질 때쯤...

“......?”

리즈벳의 발이 멈춘 곳은, 벽이 가로막고 있는 막힌 골목이었다. 뭐지? 가게는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리즈벳이 홱 돌아서더니 입을 열었다.

“나한테 할 말 없어?”

뭐지? 이 날카로운 시선은? 할 말 없냐고? 서, 설마...

“푸, 푸륵!? 하, 할 말 이라니!?”

나도 모르게 말 같은 소리를 내며, 되물었다. 서, 설마 아니겠지? 너 기억상실 맞는거지? 그렇다고 해줘!

“......”

리즈벳은 날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홱 돌아서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안쪽에 있는 너덜너덜한 나무 상자에 걸쳐 앉았다. 그리고 다리를 꼰 후 팔짱을 끼고 날 더욱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나한테... 네 좆 대딸 시킨 것 말이야.” “죄송합니다아아아아아!!!!!!”

난 그대로 땅바닥에 말 대가리를 박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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