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 - 18화 - 자각! (NTR 회상 주의)
기분 나빠질 수도 있는 NTR 묘사가 있습니다. 감상에 주의를 부탁 드립니다.
눈을 뜨니 검은 공간이다. 마치 이세계로 넘어오던 당시의 로딩 같던 검은 공간. 그 공간과 유사한 느낌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때보단 좀 추운 것 같은 느낌. 설마 나 죽은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내 몸이 인간일 때로 모습일려나 싶었지만, 눈에 보이는건 발굽달린 말 몸뚱이 그대로다.
“에휴...온 지 얼마나 됐다고 시바...”
이세계에 온지 이제 두달 반 정도 되가나? 고작 그 정도 만에 죽게 되다니, 이세계로 보낸 노숙자 신이 한심한 놈 쯔쯔 하며 바라보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아니 그렇다 쳐도 그 에레보스는 뭔데? 멸망은 수백년 뒤 일 이라면서요? 갑자기 나타난다며? 떡 하니 적혀있는 멸망을 부르는 자 라니, 너무 대놓고 사기친거 아닙니까?
그리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기분이 심숭생숭 하다. 기껏 이세계 전생을 해놓고, 말 몸뚱이에다 흉악한 말자지 크기 때문에 여자 한번 안아보지 못하고 죽다니. 도대체 뭐하러 이세계에 온거지 나는?
“하아... 시발...”
짜증인지 뭔지 모를 이상한 기분이 부글부글 새어 나온다. 왠지 이상하게 감정이 위 아래로 들쭉날쭉 한 느낌인게, 무슨 전기 신호 그리는 것처럼 출렁이는 것 같다.
“아...씹...진짜...”
그렇게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으니, 갑자기 눈 앞에서 뭔가 꾸물꾸물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주변은 그냥 검은 공간인데도, 꾸물거리는 움직임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꾸물거림이 멈추자...
“...? 어...?”
그 앞에 보이는 건, 나 자신이었다. 정확히는 지구에서, 한참 잘나가던 시기, 나름 간지나게 꾸미면서 다니던 그 시절의 모습. 주변에서 다양하게 인기가 많던 그 시절의 그 모습이다.
“뭐야 시발 왜 저 모습이...”
눈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며 의문을 가지자, 눈 앞의 내가 웃으며 말을 건다.
(만족해?)
뭐 시발 만족하냐고? 장난하냐? 기껏 이세계 와놓고 말 몸뚱이인 상태로 고생만 하다 여자 한번 안아보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러자 눈 앞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그런 의미로 묻는게 아니란 거. 알고 있잖아?)
뭔 소리지. 알긴 뭘 알어 새꺄. 좀 있으면 여자한테 등이나 쳐먹힐 놈이.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검은 공간의 풍경이 바뀌었다. 교실. 정확히는 내가 고등학생 시절의 교실이다.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그 사이에 둘러싸인 내가 보인다.
(세마야 너 오늘 학원 갈거야?) (세마! 농구한판 고!?) (세마 너 어제 그 드라마 봤어!?) (야 세마 너 경진대회 나간다며! 상금 나오냐!?) (세마 오늘 끝나고 피씨방 콜?) (세마 나 만화책 들고왔는데 볼래?)
주변의 친구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동영상 스킵을 하듯 한 장면씩 지나간다. 그래. 저 시절. 나는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녀석이였다. 뛰어난 성적, 준수한 외모, 178의 적당한 키, 다양한 재주, 부족함이 없는 집안, 누구나 두루두루 사귈 수 있는 좋은 성격.
그러한 난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공부만 하는 공부벌레 친구들 부터 조용히 만화나 애니같은 덕후 문화에 빠진 친구들까지. 누구에게나 인기있는 인싸. 하지만...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의 풍경이 다시 바뀐다. 내가 합격한 명문대의 풍경이다.
(세마! 너 학생회 들어올래?) (세마야! 이따 교수님이 같이 밥먹자고 하시더라!) (세마야! 너 과제했어?) (세마 너 족보 필요하면 우리 동아리 와라!) (세마야 오늘 누나가 집까지 태워다줄까?)
...대학에 들어갔던 새내기 시절. 저 시절에도 그 생활은 바뀌지 않았었다. 동기 선배 할 것 없이 누구든 어울릴 수 있었고, 스마트폰이 활성화 되기 전 시절이라 문자와 컴퓨터 메신저의 연락이 끊기질 않는 생활이였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게...
(세마야. 그럼 우리 오늘부터 1일이다?)
하은진. 나타난 그 얼굴을 보자, 뿌득 하고 이가 갈리는 느낌이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사귀던, 같이 공부하고 하교하는 수준의 여자친구가 아니라 대학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깊은 관계를 생각하며 만난 여자.
그 외모는 입학한 여학생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띈다 할 정도로 예뻤고, 행동 하나하나에서 나오는 청순함과 단정한 옷차림은, 대학 술자리에서 어느 남자든 한번씩 이름을 말해 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여자에게 반해, 명문대에도 왔으니 연애를 해야지 하며 술자리에서 고백하고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연애에는 조건이 있었다. 본인은 혼전순결 이라며 섹스는 안된다고 말했었다. 이때의 나는, 순진하게도 그걸 믿으며 받아들이고 연애를 시작했다. 혼전순결을 말하는 그녀에게서 순결을 지키는 고결함을 느꼈고, 그 행동에서 진심을 보았고, 혹시 깊게 사귀다 보면 이후 생각이 바뀌어 관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자만심과 욕망때문에. 하지만 그 어리석음을 빨리 버렸어야 했다.
대학시절의 다른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클럽에 한번 가본 후, 다시 들어오는 클럽 권유를 거절하는 나, 다른 여자들이 들이대는걸 눈치채고 칼같이 쳐내는 나. 모두 어이없는 자아도취에서 나온 행동이였다.
부모님은 대기업을 다니다 회사를 설립해 10년도 안되서 중견기업 수준의 규모로 만든 유명하고 잘 나가는 사장과 그런 사장을 내조하는 사모님. 그리고 나는 예의바른 행동과 명문대라는 스펙으로 어느 부모나 부러워 할 우수한 아들.
그런 나 자신은 나중에 문제되지 않도록 올바른 생활을 해야하고, 클럽이나 술자리에 나오는 그런 여자들은 내 수준에 맞지 않는 저급한 여자들이라 생각하며 살았었다.
다시 장면이 바뀐다. 군대 시절. 누구에게나 힘든 군대 시절이지만, 나는 하은진이란 여자친구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었다. 면회가 가능할 때마다 찾아오는 미모의 여자친구, 휴가로 나갈 때마다 늘 함께했으며, 나를 기다려주는 여자친구의 존재는 그 자체로 큰 힘이 되었다.
군대가 끝나고 복학한 이후, 나는 자취중인 여자친구의 생일을 맞아 선물을 들고 그녀의 자취방에 찾아갔었다. 저녁에 약속을 잡았었으나, 좀 더 빨리 만나 그녀에게 선물을 주며 축하해주고 싶었으니까. 자주 찾아가 비밀번호는 알고 있었으니, 슬쩍 들어가 깜짝 놀래켜 줄 생각이었다.
공간에 나타난 장면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의 복도로 바뀐다. 종이가방에 든 선물을 들고 그녀의 자취방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그러지마. 그냥 돌아가. 그 문을 열지말고 그냥 집에 돌아가...!
내 외침은 나오지 않은 채, 그녀의 자취방에 들어간다. 혼자 살기엔 꽤 넓은 오피스텔. 들어가자, 아직도 내 귀에 남아있는 듯한 묘한 신음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아~앙...♡ 주인님... 변태같은 은진이에게 주인님의 자지 주세요~♡”
부들부들 떨며 소리가 들리는 침실에, 천천히 한 발짝 씩 걸어간다. 안돼. 지금이라도 돌아가. 그런걸 보지 마...!
“하읍... 쥬인님의 쟈지... 너무 마시써요오...♡ 생일에 쥬인님의 자지를 받을 수 있다니, 은진이는 너무 행복한 노예에요오...♡” “크크큭, 남자친구도 있는 년이 생일에 다른 남자 자지에 발정해서 그리 빨아대다니, 완전 변태년인걸?” “하읍... 세마 걘... 남자친구 아니에요오... 그냥 지갑일 뿐이에요오... 저에겐 주인님밖에 없어요오...” “큭큭 미친년. 넌 그냥 내 노예야. 내 명령에 복종하는 암캐년일 뿐이지. 건방지게 사귄다는 말 하진 마 암캐년아” “하앙...네...시건방진 암캐한테 벌주세요오...♡” “정성을 다해 빨아봐. 잘 빨면 오늘 보지에 잔뜩 질싸 해줄테니까. 그 상태로 보지 막아둔 채로 남자친구 만나고 와라. 약 먹는거 잊지말고” “네에~♡”
...그 소리를 들으며, 눈 앞에 있는 종이가방을 든 내가, 문을 열었다.
쮸웁, 쮸웁, 츕....!!?
끼익, 하고 문이 열리자 눈 앞에는 알몸에 목줄달린 개 목걸이를 차고, 개를 흉내내듯 쭈그려 앉아 손을 개처럼 든 상태로 서있는 남자의 자지를 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목줄을 쥐고 서있는, 누구인지 모를 남자의 자지를 입에 넣은 채, 행복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날 보자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바뀌며 일어나 몸을 가리며 그 남자의 뒤로 몸을 숨겼다..
남자와 한 때 내 여자친구였던 여자가 뭐라뭐라 말하는게 들리다, 나는 종이가방을 떨어트린 채 뛰쳐나갔다.
그 이후의 일은 한동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겐 혼전순결이라 말하던, 그 청순함과 고결함, 아름다운 외모 등으로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던 나의 여자친구가, 마치 노예같은 행동을 하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다른 남자의 자지를 빨던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렇게 대학도 못 가고 몇 일 인지 모를 시간지 지났을 때, 나에게 연락온 곳은 경찰서였다.
하은진은, 그 상태로 뛰쳐나갔던 날, 성폭행으로 고소했다. 남자친구 이지만 혼전순결 이였던 자신을, 집의 문을 열고 들어와 억지로 강간하려 했다고. 평상시 인사를 나누던 옆집 남자가 지나가면서 열린 문으로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다면, 강간당했을 것 이라고.
내가 정상적인 사고를 했었더라면, CCTV든 뭐든 증거를 확보하고 반박했었을 것이지만, 경찰서에 가기 전까지 나는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눈앞에 아른거리던 목줄 찬 하은진의 모습 때문에 도저히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못할 상태였다. 그 사이, 내 결백을 증명할 CCTV는 저장기간이 지나 지워져 있었고, 두 사람의 증언만이 증거가 되어 나는 한 적도 없는 강간범이 되어 있었다.
이 후, 아버지의 노력과 불충분한 증거, 그리고 빠르게 처리하고 싶었던 아버지가 하은진과의 합의로 5000만원의 돈을 건네고 나는 풀려났다. 증거 불충분으로 시간을 끌 수도 있었겠지만, 아버지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액수가 어떻든 논란을 빨리 잠재우고 싶었으리라.
이 후로 내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다. 화낸적이 거의 없던 부모님이 집안 물건을 때려부수며 날 욕했고, 나를 잘 모르는 대학 동기 및 선후배들 사이에선, 여자친구를 강간하려 한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나를 잘 아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몇몇 동기들은 나를 믿어 주었으나, 피폐해진 나는 그대로 휴학한 채 젊은 나이 치곤 많은 돈이 들어있는 통장과 짐을 챙겨 집을 나왔다.
그 이후, 구했던 원룸에서 편의점 정도를 제외하곤 밖을 나오는데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 1년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컴퓨터에 매달리면서, 오덕 문화에도 빠져 다양한 만화나 애니, 그리고 19금 만화 등에 빠져 들었었다. 간신히 고등학교 친구들의 술자리에 나갔을 땐, 다들 내가 자살한 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때, 같은 대학에 진학한 친구에게 그 뒷 이야기를 들었다.
하은진은 내 부모님께 돈을 뜯어낸 후, 그대로 얼마간 대학에 나오다 그대로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말해주는 친구 본인도 자세히 듣진 못했으나, 그 이후 그 남자는 무슨 사고를 쳐 감방에 들어갔고 하은진은 그 뒤 술집에 끌려갔단 얘기도 나오고 자살했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자세히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내가 저급하다며 피했던 클럽 죽돌이 여자들과 몇몇 여자들이, 사실 하은진의 그런 면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단 점이였다. 그걸 알던 그녀들은 나에게 알릴까 고민했었으나,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그녀들을 피하던 내 행동 때문에 굳이 알리지 않았다고...
이 얘기를 듣자, 안 그래도 망가진 내 정신에 충격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저급하다며 피하던 여자들이, 오히려 하은진의 그런 면을 알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어이없는 자아도취에 빠져 그녀들을 피해 다녔기에 알 수 없었단 것이었으니까.
그 이후,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의욕을 잃고, 매일을 인터넷과 게임, 만화, 애니, 그리고 하드코어 하다고 말할 정도의 19금 만화 등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복학할 시기도 놓친 채, 어느새 나는 한국에서 30살. 만 29세가 되어있었다.
“......이런걸 보여준 이유가 뭐야”
나타나던 영상이 사라지고, 다시 검은 공간에 서 있는 눈앞의 나에게 물었다.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뭘 안다는 거냐고!!!!!”
눈 앞의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안다니, 뭘. 내가 도대체 뭘 알고 있다는 건데!?
(...네가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그 기억의 위화감 말이야.) “위화감...?”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났다. 위화감이라니, 혼전순결이라던 여자친구가 알고보니 다른 남자의 성노예 였다는게 무슨 위화감이 있는건데?
(네가 그걸 보고 느낀건 배신감이나 분노같은 감정이 아니였어.)
두근. 하고 가슴이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그건 배신감에 올라온 분노와 슬픔이였어.
(네가 그 침실에서 보고 있던건 노예가 되어 있던 여자친구가 아니야. 아니 보고 있는건 맞지만, 네가 주목한건 여자친구가 아니였어.)
두근. 가슴이 더 큰소리로 울린다. 아냐, 난 그때 하은진의 모습을 보고 충격먹었던 거야.
(네가 보고 있던건... 남의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눈앞의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것이 되어 있는 암컷 이였지.)
두근두근두근두근
(네가 그때 느끼던 감정은... 부러움 이였어)
“아니야!”
(남의 여자를 빼앗는 그 행위, 남자친구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복종하는 암컷의 충성.)
“아니라고!”
(모범적인 삶을 살며 남들이 쫓는 쾌락을 저급한 걸로 여기던 너에게, 그 광경에서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 닮게 해 주었지.)
“아냐! 난 남들과는 달라! 술! 담배! 여자! 도박! 게임! 그 어떤 것도 절제할 줄 알면서 남들의 존경을 받는 올바른 모습이 바로 나야!”
(네가 진짜 원하는 욕망. 그건 남의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삐뚤어진 성욕. 그게 바로 네가 원하는 욕망이자, 위화감의 정체야)
“아냐... 아냐... 나는...”
(너의 백수생활 6년을 되돌아봐. 그 동안 넌, 빠져있던 소설, 애니, 19금 만화에서 뭐에 집중했었지? 연인이 있더라도, 다른 남자에게 빠지는 그런 여자들. 혹은 남의 여자를 빼앗는 그런 장면에 집중하지 않았었나?)
“그건... 그건...”
(19금 만화. 너는 단순히 현실 여자를 피하면서 성욕을 풀기 위해 거기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네가 찾아보던 19금 만화는 어떤 종류였지? 남의 여자를 정복하고, 다른 남자에게 보지를 벌리는, 바로 그런 장면에 성욕을 느꼈었잖아?)
“......”
(인정해. 너는 그때 하은진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게 아니야. 하은진이 예쁘다 뭐다 해도 사실 본심으론 너 정도면 그런 여자는 당연하다 생각했었잖아? 배신감이 아니라 그저 다른 남자의 여자를, 그렇게 빼앗고 싶다는 욕망을 자각한 혼란을 느꼈던 거지. 너 자신도 자기가 그런 삐뚤어진 성욕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으니까.)
“............”
(이세계에 와서 삐뚤어진 여성관을 버리겠다고? 왜 굳이? 어차피 신도 네 맘대로 살란 식으로 보내주지 않았었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욕망을 억제하고 살아야 돼? 왜? 이곳에는, 최상의 암컷들이 널려있는데?)
“........................”
(계속 자신을 거부하지 마. 받아들여. 남의 여자를 빼앗아 자신의 암컷으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진짜 너의 모습이니까. 지금 그 몸에는, 여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훌륭한 것도 달려있잖아?)
“......넌...누구야...”
(난 너 자신. 너의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너의 욕망이야. 날 거부하지 마. 괴로워질 뿐 이니까.)
“아니... 넌, 내가 아니야. 아니 설령, 네가, 그 욕망이, 나의 욕망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실제로 드러내는 건 내 의지가 아니야.”
잊으려고 했었지만, 깊은 곳에서는 깨닫고 있었다. 그래. 나의 성욕, 나의 욕망은 삐뚤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란 것을 알고 멈추는 것. 그것 역시 나의 의지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의 삐뚤어진 욕망을 드러낼 정도로, 쓰레기 같은 인간은 아니다. 아니, 아닐 것이다.
(...부질없는 의지야. 그렇게 평생, 자신을 감추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이렇게 자각한 이상, 평생 감추고 살 수 없겠지.” (......) “그러니까 나는... 내 욕망은 받아들이겠어. 하지만 이 욕망을 누구에게나 드러내진 않을꺼야.”
그래. 이 욕망은, 만나는 여자 아무에게나 마구 드러낼만한 욕망이 아니다. 절제하고, 감추고, 숨기며 살아야 한다.
(...푸흐흐, 원하는대론 안 될 텐데...)
그렇게 말하며, 눈 앞의 내가, 내 말 몸과 겹쳐지는 듯 하더니, 녹아 내렸다. 발 밑으로 녹아 내리는 내가 아주 조금, 내 몸 안에 스며든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의 진짜 욕망을 깨닫게 된 상쾌함. 그 욕망이 삐뚤어져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는 답답함을 느끼며, 나는 리즈벳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