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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남의 여자를 빼앗는 말이 되어버렸다-20화 (21/749)

Chapter 20 - 19화 - 부탁이야!

몸이 가벼워 지는 느낌과 함께 눈이 떠진다. 마치, 갑갑한 옷을 껴입고 있다가 벗은 듯한 상쾌함이다. 눈을 뜨니, 나 자신의 욕망을 깨달은 후 눈을 뜨기 직전까지 떠올리던 리즈벳이, 조금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다. 그 얼굴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들뜨는 것 같다.

머리 속 한 구석에서, 지난 날 동안 날 괴롭히던 안개가 걷힌 느낌이다. 하은진. 내 인생에서의 트라우마, 그러나 그 트라우마가 새겨진 기억을 되돌아보며 나의 진짜 욕망을 자각하게 되자, 나도 놀랄 정도로 그녀의 대한 분노나 슬픔,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사라져버렸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감사함까지 느끼고 있다. 이젠 그녀가 내 전 여자친구란 사실조차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목줄을 차고 남자에게 아양 떨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리즈벳에게 그런 플레이를 시켜보고 싶단 욕망 정도만이 기억 속의 그녀에게 남은 감정이다. 앞으로는 딱히 그녀를 떠올릴 일이 없을 것 같다. 벌써, 그녀의 얼굴이 흐릿해지는 게 느껴진다.

“세마! 깨어났구나!” “몸은 좀 어때 세마?”

리즈벳의 뒤에서 오른팔을 움켜쥐며 절뚝거리는 알스가 다가왔다. 아무래도 에레보스의 뒷발을 막을 때 제대로 막지 못한 것 같은데... 그럼 에레보스는?

“난 괜찮아.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지? 에레보... 아니, 그 얼굴 두개 달린 고양이 같은 녀석은?” “10분 정도야... 그 마물은... ”

알스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마법진이 있던 장소를 바라본다. 이미 마법진과 그 위에 나타났던 차원문은 사라진 상태. 에레보스도 없는 걸 보면 알스와 날 공격하고 사라진 모양이다.

“그래... 리즈벳은? 다친 곳은 없어?” “난 괜찮아... 미안. 내가 멍하니 있어서...”

다소 풀죽은 듯한 리즈벳이 내 옆에서 고개를 숙인다. 그 얼굴을 보자 다시 묘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이 감정이 당혹스럽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개운해진 머리가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이럴 땐 고맙다고 하는거야. 안 다쳤으니 다행이야.” “으, 응... 고마워...”

내 몸 상태와 상황 파악이 끝나고, 이 후 어떻게 할 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가장 좋은 건 당장 던전 밖으로 나가, 던전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을 모험가 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철수한 뒤 재정비하여 에레보스를 찾는 거겠지.

하지만 그러기엔 알스의 몸 상태가 나빠 보인다. 얼굴에선 땀이 잔뜩 흐르고 있고, 팔과 다리쪽이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다친 것 처럼 보인다. 당장 던전을 나가기엔, 최단 경로로 되돌아 간다고 쳐도 반나절은 걸릴 터. 그 동안은 승차감이 좋다 하더라도 흔들리는 내 등에 타고 이동하긴 힘들 것 같다.

용사인 만큼 생사를 오가는 상처가 아니라면 쉬는 동안 몸이 나빠지지 않을 거란 알스의 얘기를 듣고, 일단 보스방을 벗어나 가까이에 있는 넓은 공간에서 한차례 휴식을 취한 뒤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던전의 이상이 무엇인지 파악은 되었고, 오면서 마물이 없는 것 역시 검증된 것이나 마찬가지. 가는 동안, 그리고 이 후로도 위험은 없을 것이다. 가깝기도 하고 움직일 수 있긴 하니 굳이 내 등에 타지 않고 근처의 방으로 이동했다.

“......”

이동하는 동안, 내 앞에서 알스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리즈벳의 뒷 모습이 보인다. 아니, 정확히는 눈을 뜬 이후부터, 내 눈은 계속 리즈벳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절해 있는 동안,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게 되었으니까. 알스가 다친 것 따윈 내 알 바 아니다.

보스방 근처의 넓은 방에 도착하여 야영할 때 처럼 자리를 만들고, 이 후 알스가 누워 잠들었다. 괴로운 듯 하던 알스의 표정이, 잠들고 나니 조금 편해진 듯이 풀렸다. 에레보스에게 알 수 없는 공격 당해 기절 당하기 전까지의 나 였다면, 이런 알스를 보고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알스의 저 상태가, 지금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잠든 알스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알스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리즈벳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리즈벳. 잠깐 둘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괜찮아?” “응? 어, 괜찮아... 왜?” “여기선 좀 그렇고 잠깐 옆쪽에서...”

내가 그렇게 말하고 반대편의 옆 방으로 걸어가자, 리즈벳도 무슨 일이지 란 표정으로 날 따라왔다.

리즈벳. 내가 이세계로 넘어와 처음 만난 여자.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라고 말했던, 용사가 된 알스의 연인. 그리고, 내 욕망이 원하는 최상의 암컷.

삐뚤어진 욕망을 자각한 나 이지만, 이 욕망은 아무렇게나 발산할 수 없는 욕망이다. 타인들에게 도저히 이해 받을 수 없을 삐뚤어진 욕망. 심지어 나 조차도, 이 욕망에는 걱정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평생동안 우수하고 모범적인 남자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삶을 살아온 나에게, 갑자기 그 가면을 벗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의 진짜 욕망을 깨달은 나는, 그것을 거부할 생각이 없다. 이 욕망을 그저, 조절하며 풀면 되는 것 아닌가? 욕망 이란건 과도하게 매달릴 때 사람을 망가트리는 법. 그저, 조절하며 욕망을 해소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삐뚤어진 성욕과 욕망을 조절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아무에게나 욕망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수를 정하는 것이다. 연인이 있는 아무 여자나 건드려 한다면, 그건 그저 욕망에 잡아 먹힌 미친놈 이겠지. 하지만, 단 한명, 혹은 많아 봤자 두 명 정도라면? 오로지 한 명, 단 한 명의 암컷만을 탐하며, 그 암컷을 다른 수컷에게서 빼앗는다면, 빼앗긴 수컷에겐 미안하겠지만 그리 큰 일도 아니니까. 주변에서 보기에도 그저 한 여자를 두고 수컷간의 경쟁에서 한쪽이 패배한 것 정도로 보이겠지.

그러니까 알스. 리즈벳은 내 여자로 만들겠다. 내가 처음 만난 이세계의 여자이자, 너의 연인. 원망하려거든 여태까지 그런 암컷을 내버려둔 너의 고자 같은 성욕을 탓해라. 이 암컷은, 앞으로 내 것이 될 테니까.

“...리즈벳.” “으, 응? 왜?”

내 표정에서 위화감을 느낀 것인지, 리즈벳이 긴장된 표정으로 묻는다.

“실은, 부탁이 있는데...” “부탁?”

그래. 이건 부탁이다. 나 자신의 욕망을 알게 된 내가, 한 마리 암컷이 될 너에게.

“어... 리즈벳. 아까 나한테 고맙다고 했지?” “어? 으, 응. 그랬지”

약간의 당혹감을 느끼며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는 리즈벳. 그런 리즈벳이, 깜짝 놀랄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럼 앞으로 내 성욕처리좀 해 주라.” “......하?”

리즈벳의 얼굴은 도대체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잠시 후, 리즈벳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나에게 소리친다.

“미, 미, 미, 미친 변태 몬스터 새끼야!!! 지금 뭔 소릴 하는거야!!?” “쉬잇. 알스한테 들리겠어. 목소리좀 낮춰.”

그러자 리즈벳은 움찔 하며 목소리를 낮춘 채 나에게 낮게 소리친다.

“이, 익!! 야, 야! 너 지금 무슨 소릴 한 건지 아는거야!? 성욕처리!? 혹시 아까 기절할 때 뭐 잘못되기라도 한 거야!?” “음... 그럴지도? 그래도 나쁜 부탁은 아니잖아?” “그런 미친 부탁이 뭐가 안 나쁜 부탁이란거야!”

새빨간 얼굴로 부들부들 떨면서 나에게 말하는 리즈벳. 그 얼굴조차 지금은 귀엽게만 느껴진다.

“아니 그게, 요 이틀간 네 불침번 시간에 내 말자지를 들추면서 만져댔잖아? 관심있는 거 아니야?” “......!?!?”

순간, 리즈벳은 깜짝 놀라며 얼굴에 당혹감이 서린다. 자는 듯 보였던 내가,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을 알고 있다는 게 부끄럽고 당혹스럽겠지.

“사실, 이거 말하면 네가 부끄러울 것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했었는데 말이야. 기절한 동안 내 몸에 대해 어느 정도 느낀 게 있어. 내 성욕은 아무래도 평범하지 않은 모양이야. 이 말자지가 매일같이 내 의지를 거스르고 튀어나오는 것 때문에 늘 곤란했는데 아무래도 제때 풀어주지 않으면 늘 그런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 것 같아.” “......”

새빨간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숙이고, 리즈벳은 묵묵히 듣고 있다.

“깨어나서 그걸 깨닫게 되니까, 이거 도저히 앞으로 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그렇다고 내가 이 몸뚱이로 어디 사창가 같은데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탁할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어. 그렇게 밤에 몰래 내 말자지를 들춰서 만지던걸 보면 너도 관심있는 것 같은데...” “이, 익...! 난 그런게...!”

리즈벳이 새빨개진 얼굴로 아니라는 듯 부정한다. 거짓말하지마 이 변태야. 상태창 때문에 다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관심있는 줄 알았다면 나한테 옷값 뜯어낼 때 굳이 안 사줘도 됐을 것 같지만, 그건 뭐 상관없어. 나도 잘못한게 있기도 하고, 옷 자체는 리즈벳한테 잘 어울리고 예쁘니까. 근데 아까 널 지키다가 기절했을 때 내 몸 상태를 깨닫게 되니, 도저히 앞으로 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구해준 게 고마우면 좀 도와줬음 좋겠는데...” “......”

리즈벳이 새빨간 얼굴로, 눈에는 약간 눈물까지 고인 채 날 째려본다. 하나하나 부정할 수가 없으리라. 내 말자지에 흥미 있는 것도, 자신을 지켜 준 것도, 거기에 고마움을 느끼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으읏...! 이 변태 몬스터...! 왜 하필 나야!? 난 알스도 있는데...!” “너 말곤 부탁할 사람도 없어서 그래, 난 아는 사람도 거의 없잖아? 그리고...”

리즈벳의 부끄러운 듯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리즈벳 네가 해줬으면 좋겠거든.” “......”

리즈벳이 말을 잇지 못하며, 나를 째려본다.

“계속 부탁하진 않을께. 내가 인간화 스킬을 얻을 때까지만. 알스에게도 말 안하고 비밀로 할거고, 이 일로 내가 무슨 협박이나 그런걸 하지도 않을거야. 내 몸이 이러니 섹스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손이든 입이든 발이든 뭐든 써서 처리만 좀 해주면 돼... 안될까?” “......”

리즈벳은 새빨개진 고개를 숙이며,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들며 나에게 말했다.

“...인간화 스킬을 얻을 때 까지 만이야.. 그 동안이든 이후든 다른 사람들이나 알스가 알게 되면 진짜 죽여버릴 거야. 손만 쓸 거니까, 그 이상 요구하면 그 자리에서 구워버릴 거야.” “알았어, 알았어. 고마워 리즈벳.” “절대, 절대로 다른 사람한테 말 꺼내지마.” “말 안해. 티도 안 낼 테니까 안심해. 나도 지금 여자한테 무슨 부탁을 하는 건지 잘 이해하고 있다고.”

리즈벳은 빨개진 얼굴은 그대로인 채, 힘이 빠진 듯한 얼굴로 말했다.

“하아... 진짜 어쩌다 이런 변태 몬스터를 만나서...” “운명이지 운명. 그럼 받아들여준 것 같으니...”

나는, 내 몸에 걸쳐진 천을 말 치고는 유연한 고개를 돌려 입으로 걷으며 내 말자지를 드러냈다.

“앗...! 무, 무슨...!” “지금 바로 처리좀 해 주면 좋겠는데.”

리즈벳. 천천히 널, 내 암컷으로 만들어 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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