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5 - 33화 - 다가오지 마세요!
“다가오지 말아주세요!”
내가 인사를 건네자 성녀 후보라는 클레아가 꺼낸 말이다.
“앗, 그... 바울이 워낙 성화여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전... 당신을 신뢰하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뭐냐 이거. 왜 인사 한번 했다고 내 호감도가 -100% 인 거지? 암만 내 기운이 기분나쁘다 해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
나한텐 이따구로 대하더니 저 여자, 먼저 나보다 인사를 나눈 알스와 리즈벳이랑은 정말 성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근데 내가 좀 다가가면 바로 하악거리는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반응이다.
심지어 표정까지 정말 혐오스러운 것을 본단 것 같이 변하는데... 이거 얼굴 반반한 성녀 후보라서 좀 기분 좋았는데 태도때문에 확 짜증이 난다.
아니, 처음 만났을 때야 내 기운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쳐도 두 번째 만남에서 그냥 인사만 건낸건데 이런 반응이라니?
내가 인간화 스킬 정보 때문에 참는 거지 그거 아니었음 성녀 후보고 뭐고 나 안 해 하고 때려쳤을것 같다.
“클레아 수녀님. 이제 출발할까요?”
리즈벳이 내 기분을 알아차린 건지, 클레아와 대화하며 탐색 진행으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요 몇 일 리즈벳도 내 상대를 제대로 안 해줘서 슬펐는데 살짝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해서 서쪽 성문에 도착을 했는데... 여기서 클레아는 이동하는 것에 또 태클을 걸었다.
이미 출발 전에 돌아볼 곳은 다 정해져 있었다. 바울에게 몇 곳의 장소가 표시된 지도를 받았고 클레아를 그 근처에 대려다 준 후, 클레아가 그 주변에서 히어로 이터를 감지하고 없으면 다시 이동. 이걸 나올 때까지 반복이다.
발견되지 않아서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적절히 중간 정산 후 다시 진행한다는데, 아무래도 왕국과 교회는 시작한 김에 완전히 끝을 볼 생각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지도에 표시된 곳도 꽤 되는데, 클레아가 내 등에 타는걸 완강히 거부. 내 등은 넉넉하게 둘, 좀 당기면 셋은 충분히 탈 정도인데, 죽어도 싫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 이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퀘스트하러 가는데 사람 도보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그... 클레아씨? 세마가 그렇게 부담스러우신 건가요?”
이쯤 되니 리즈벳도 좀 그런지 클레아에게 물었다. 리즈벳과 얘기를 나누며 앞에서 걸어가던 클레아는, 날 힐끔 쳐다보더니 조금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죄송합니다. 실례란 건 알고 있지만... 전 눈이 불편한 것 때문에 에세르 감지능력이 발달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그 감지능력으로 파악하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그러면서 날 다시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세마 씨에게서 느껴지는 에세르는... 그... 여태까지 봐온 어떠한 범죄자들 보다 흉악해서... 도저히 안심할 수가...”
뭐? 미친 내가 범죄자보다 흉악하다고?
“그리고 뭔가... 나쁜 일을 꾸미고 계신 듯한...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는듯한 그러한 기운이 느껴져요.”
...하 이년 봐라? ...예리하네 이거
감지 능력이 발달했다고 들었을 땐 그저 좀 기운에 민감하단 수준인 줄 알았는데 어쩐지 감정까지 느낄 수 있는 수준인 것 같다. 난 사람들한테서 뭐 느껴지는 것도 없는데...
“나쁜 일을...?”
어어? 잠깐 이게 뭐야? 어쩐지 클레아 저 여자 말을 듣고 리즈벳 눈매가 뭔가 이상해졌는데? 아니, 리즈벳. 내가 네 처녀를 따먹었다고 해서... 존나 나쁜 짓 했네 생각해보니.
어쩐지 두 여자가 나한테서 좀 더 떨어진 느낌이다. 이거 진짜 뭐지? 클레아 저년 말 한마디에 리즈벳한테서 내 호감도가 떨어진 것 같은데?
갑자기 이렇게 되니 클레아 저년이 성녀 후보가 아니라 무슨 개년 후보로 보인다. 아니 지금 어떻게 리즈벳을 다시 꼬시나 고민하고 있는데 오히려 거기에다 재를 뿌려?
앞으로 넌 내 안에서 그냥 개년이야.
“하아...”
한숨이 다 나온다. 어째 리즈벳의 처녀를 정복한 뒤로 계속 일이 잘 안 풀리는데. 답답함을 느끼며 리즈벳의 상태창을 슬쩍 확인하니 아니나다를까 내 호감도가 45까지 떨어졌다.
이게 뭐지? 인간화 스킬 떡밥이 나와서 올게 왔다 생각하고 물었더니 오히려 제대로 물만 먹었는데?
내가 부탁을 받은 쪽인데 왜 이렇게 됐는가 하고 한숨 쉬며 리즈벳 옆에서 걸어가는 저 개년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다.
================================================== 이름 : 네리스 클레아 종족 : 인간 레벨 : 12 ( 3170/ 4620) 칭호 : 여신교의 자애로운 성녀 후보 나이 : 27세 ==================================================
어째 레벨은 확실히 낮긴 하다. 성직자기도 하고 눈 때문에 제대로 활동도 못했었겠지. 아니, 그보다도 자애로운 성녀 후보는 무슨... 얼굴 좀 예쁘고 몸매가 장난 아닌 건 인정이지만 차마 성녀라고 인정하진 못하겠다.
상태창을 보다보니 왜 리즈벳과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초기 상태창인지 좀 궁금하긴 한데, 그것 보단 클레아의 행동이 짜증나서 저 커다란 가슴을 때려주고 싶은 생각 뿐이다.
내가 욕망을 억제하는 것만 아니라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참교육을 시전하러 달려들었을 텐데...
그런 생각과 일이 꼬여가는 답답함을 느끼면서 세 사람의 뒤를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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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단하긴 하네...’
놀랍게도 클레아는 몇 군데에서 뭔가 기도하듯이 손을 모으고 뭔가 감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몇 번 반복하더니, 첫 날에 바로 의심되는 장소를 찾아냈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데 이곳이라고 하길래 눈이 안보여서 대충 찍는 건가 싶었는데... 신호탄을 보고 찾아온 사제들과 마법사들이 모여서 뭘 하더니 던전의 차원문과 비슷한 게 나타났다.
아무래도 히어로 이터 그 녀석. 숨겨진 던전 같은 곳에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마주쳤는데 사라졌다고 보고한 모험가들이 있었던건가.
그 던전 내부에서 녀석의 기운이 느껴진단 보고를 들은 바울은, 조금 고민하더니 토벌대에 들어가 클레아를 데리고 후방에서 대기하다가 혹시 위험해질 경우 우리만 빠져 나와 달라고 요청했다. 알스와 리즈벳은 좀 고민하는 듯 했지만, 우릴 보호해줄 인원을 따로 붙여준다 하니 조금 더 고민하더니 결국 승낙했다.
그리고 이틀째인 오늘, 규모 있는 여러 길드들이 모여 돌입을 준비 중이다.
“새벽의 여명! 모두 모였나!” “황혼의 그림자 길드원들은 모두 사전에 얘기한 대로 준비해 주세요!” “캬루단! 각오는 됐겠지!” “푸른 새벽 길드원은 모두 이쪽으로!”
중간에 뭔가 배신할 것 같은 길드 이름이 들린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각자 자신들의 길드명을 외치는 길드장들이 자신들의 길드원들을 체크하며 돌입을 준비하고 있다.
모인 길드들을 쭉 둘러보니, 다들 제법 한 가닥 하는 모험가들이 모인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길드들마다 5~20명 정도는 모여있는데다, 장비들도 제법 화려하다.
교회의 사제들까지 다 더하면 한 100명은 넘어 보이는데... 이 규모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다같이 움직이기로 결정되었으니, 이 정도면 히어로 이터라고 해도 알짤 없지 않을까?
“으음... 이 규모면 문제는 없겠지?” “사실 모으려면 더 모을 순 있었을 거야. 근데 보통 던전 규모를 생각하면 지금도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좀 힘들 숫자긴 해. 만약을 고려한 최대 숫자겠지. 보호받는 우리들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알스도 표정은 조금 긴장한 표정이다. 오히려 지금은 리즈벳쪽이 다소 여유로워 보인다.
“이정도 인원에 알스를 빼도 용사가 3명이나 있으니까... 알스는 나가면 안 되는 거 알지?” “응. 알고 있어. 후방에만 있을 테니 걱정 마.”
곧 모든 길드의 준비가 끝났는지, 가장 규모가 커서 인솔을 맡은 대규모 길드의 길드장이 돌입을 외쳤다. 그렇게 200명이 넘는 인원이 조금씩 입장하기 시작했고, 곧 우리도 뒤따라 던전에 들어갔다.
“오...”
던전에 들어가니, 이전의 던전과는 다르게 뭔가 숲 같은 장소가 펼쳐져 있다. 혹시 이게 그 개방형 던전이란 건가. 좀 감탄하며 둘러보는데 어째 클레아의 표정이 별로 좋지가 않다.
“이건... 도대체...” “왜 그러세요 클레아 씨?”
알스가 묻자, 클레아는 새파래진 표정으로 조금 떨면서 대답한다.
“윽... 엄청난 양의 에세르와 테세르가 섞여서 마치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어요... 어떻게 이런...”
으음... 난 잘 모르겠는데... 근데 대부분의 사제와 몇몇 모험가들 표정이 조금 긴장되어 보이는 게, 확실히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음... 리즈벳. 알스. 여차하면 바로 내 등에. 클레아 씨도 이번엔 그냥 타셔야 합니다?”
내가 말하자 클레아는 이번엔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부터 그렇게 고분고분 할 것이지. 내가 참으면서 리즈벳만 노린다고 다짐했던 거 아니었으면 너의 그 머리보다 큰 수박만한 가슴을 아주 제대로 가지고 물고 빨아줬을 거다. 마침 바울이란 연인도 있는 너니까.
아무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100여명이 대열을 맞춰 조금씩 전진을 시작했다. 사제들은 대열 안쪽에서 군데군데 퍼져 주변을 감지하고, 우리는 클레아와 우릴 지켜주기로 한 모험가들 옆에 붙어 주변을 둘러보며 이동.
내 머리 높이가 높아 모험가들 머리 위에서 주변을 쭉 둘러보며 걸었지만, 딱히 별거 없는 것 같단 감상을 느끼고 있으니 내 옆에서 리즈벳이 말했다.
“이상해... 그래도 던전인데, 마물이 전혀 없다니...” “...너무 심하게 에세르와 테세르가 요동치고 있어서, 감지도 제대로 되지 않아요... 이런 기운은 난생 처음인데...”
그런 얘기를 하며 조금 더 걸으니, 앞쪽에서 찾았다는 긴박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모험가들 전체가 무기를 부여잡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를 들으며 전방을 확인하니 그 곳에 있는 건...
“그르르르르르....”
이전보다, 2배는 더 커진 에레보스 – 히어로 이터가, 높은 제단 같은 곳에 올라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