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 - 36화 - 옷이 없어!
“세상에! 세마씨! 그 모습은 뭔가요!?” “흐흐흐. 어때. 되다 말았지만, 인간화 된 내 모습은?”
관리소에 들어가자 세라가 날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나는 괜시리 기분이 좋아져서 상의 탈의 상태인 몸을 과시해 주었다.
“우, 우와... 괴, 굉장하시네요. 몬스터 모습이실 때도 굉장하다 느꼈었는데, 이건...”
음... 뭐가 굉장하단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게 어째 나쁜 반응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세라의 반응을 즐기다가, 모험가들과 모여 히어로 이터 토벌 퀘스트에 대한 내용 보고서를 작성했다. 모험가들의 얘기를 들으며 보고서를 살피던 세라가, 다시 한번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세상에... 그럼 결국 세마씨가 큰 역할을 하신 거네요! 이 정도면 영주님이 직접 보상을 주실 것 같은데요?” “오... 영주님...”
으음... 지금 영주님 만난다고 시간쓰긴 싫은데. 당장 이 몸으로 해야 할게 한 두 개가 아니다. 일단 옷도 좀 봐야 하고 앞으로 지낼 숙소도 알아봐야 한다.
그런 내용을 세라에게 말하니, 길드관리소의 아이돌 다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상황을 같이 첨부하면 고려해서 며칠 후에 부르실 거에요. 긴급 호출이 아니라 보상 때문에 부르는 거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한번 보긴 해야 하는 건가. 내가 처음 도시에 왔을 때도 영주를 직접 만나진 않고 보좌관 쯤으로 보이던 사람 정도만 만났었는데...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차피 한번 만나보긴 해야 같다. 멸망을 부르는 자들은 계속 나타날 테니, 그 놈들 관련 정보를 얻으려면 높으신 분들에게 정보공유를 위한 협상 정도는 필요할 것 같으니까.
그리 생각하며 모험가들과 내용 보고를 마치니, 다들 해산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짐을 챙겨 관리소를 나갔고, 몇몇 사람들은 길드관리소 옆에 붙어있는 식당으로 가 테이블을 채웠다. 내 근처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던 리즈벳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세마야. 다 끝났어? 늦었는데 저녁 먹고 가자.” “오. 리즈. 알스는 안 가봐도 될까?”
알스는 팔이 부러지긴 했는데 다른 곳이 전부 치료되고 부러진 팔까지 치료가 되다가 중간에 클레아의 에세르가 떨어진 것이라, 제법 멀쩡한 상태라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부상자들과 함께 교회로 갔고, 오늘 하루는 거기서 자고 올 예정이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내 모습이 변한 것과 오늘 있었던 일 덕분인지, 더 이상 리즈벳에게서 벽을 만드는 것 같던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리즈벳의 웃는 얼굴이 이전보다 더 벽이 허물어 진 것 같다. 처음에는 더럽게 안 풀린다 싶던 상황이, 확 뚫린 듯한 느낌이다.
나는 리즈벳과 함께 식당으로 넘어와 마주보며 테이블에 앉았다. 이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의자에 앉는 이 감각…! 감동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
“크흡... 손을 쓸 수 있고 의자에 앉을 수 있다니... 눈물날것 같아...!” “풋, 그렇게 좋아?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리즈벳에게 손이 있다는 것에 대해 찬양을 하던 중, 갑자기 몰려온 모험가들 때문에 바빠진 점원이 다가와 주문을 받아갔다.
“하... 진짜... 반쪽짜리 인간화이긴 해도 너무 좋아... 앞으로 할 게 막 떠올라서 뭐부터 해야되나 고민될 정도야” “그러고보니 당분간 해야 할게 많겠네? 옷도 사야 할거고, 숙소도...”
지금 내 상태는 알몸에 하반신에 천만 두른 상태. 그나마 말 몸뚱이를 덮던 천이라 길이나 크기가 넉넉해서 대충 묶어도 하반신을 제대로 가려주긴 했지만, 이대로 돌아다니긴 좀 난감하긴 하다. 그나마 다양한 복장을 입는 모험가들이 모여있어서 눈에 덜 띄는거지, 만약 일반인들 앞에서 이런 차림이면 그건 조금…
그리고 숙소! 창고에서 지내는게 점점 서글퍼지던 중이었다. 리즈벳이 살던 방을 생각해보면, 이세계의 숙소는 상당히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편안한 침대와 상쾌한 샤워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웃음만 나온다.
“크윽... 너무 기대돼...!”
그렇게 리즈벳과 마주보며 웃는 동안 테이블 위에 요리가 놓여진다. 닭튀김 같은 모양의 고기 튀김, 스테이크 같은 고기가 몇조각 올려진 샐러드, 삼각형 모양으로 썰린 감자 같은 조각들 위로 소스가 뿌려져 있는 요리.
나는 닭튀김 같은 고기를 포크로 찍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설마 반쪽짜리 인간화라고 여전히 맛 못느끼는건 아니겠지?” “아 그러고보니 맛이 안느껴진댔지? 궁금하긴 하네... 얼른 먹어봐.”
리즈벳이 궁금하단 표정으로 날 가만히 쳐다본다. 제발… 이제 음식 맛도 못 느껴서 풀만 씹어먹던 삶은 질렸어… 몸만 바뀌고 말 머리는 그대로지만 미각만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기 튀김을 입 안에 넣자...
“...맛있어...! 고기 맛이야!”
입 안에서 고기 특유의 육즙과 감칠맛이 느껴진다! 약간의 고기 누린내가 있긴 해도 이정도는 고기 맛으로 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 아닐까? 고소함과 소금기가 느껴지는 이 맛은, 닭고기 같은 맛은 아니지만 정말 감동스러운 맛으로 느껴진다.
그대로 옆에 놓여진 맥주 같은 음료도 들이켰다. 마셔보니 이거 맥주가 아니라 알콜을 향만 넣은 듯한 과실주다! 근데 이 톡 쏘는 상쾌한 맛이 너무 감격스러워!
“크아아아앗! 맛있어!!!” “푸훗. 잘 됐네. 여태까지 보던 세마 얼굴 중에서 가장 기뻐보이는 얼굴인걸?”
어쩐지 주방 안쪽에서 요리사 아저씨가 웃는 것 같은 표정이다. 그동안 날 위해 여물같은 풀떼기를 별도로 준비해 주던 아저씨...! 고마워...!
내 앞에서 리즈벳이 감격스러워 하는 날 보고 즐거운듯이 웃는 걸 보며, 이거 오늘 각 잡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오늘은 일단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일단 지금 파악해야 할 것도 있고, 문득 오늘 그냥 밀어붙이기엔 아쉽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한 채 리즈벳과 대화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2인분 치곤 조금 많은 양의 요리들을 싹 비워버렸다.
“하... 진짜 너무 만족스러워...” “좋아하니 다행이네. 길드관리소 식당 식사는 딱 평범한 맛인데.”
그렇다고 해도 4달 가량을 풀만 씹던 나에게 이건 수라상 수준이지. 웃으며 관리소를 나오니, 밖은 이미 어둑어둑하다. 노점상들도 전부 정리하고 퇴근한 모양이고, 가게들도 문이 닫힌 곳이 많아 보인다. 아마 이 이상 열고 있는 곳들은 늦게까지 하는 술집이나 유흥업소들 아닐까.
“그런데... 오늘 잠은 어쩔까... 이대로 창고로 가서 자기엔 좀 아쉬운데.” “음... 하루씩 숙박 가능한 여관이나 호텔이 있긴 하다고 들었는데 내가 위치를 몰라서... 나랑 알스는 애초에 길드와 얘길 해서 길드가 소개해 준 숙소에서 두 달 정도 지내다가 지금 사는 숙소로 간 거거든. 그런 곳에 갈 일이 없어서...”
으음... 어두컴컴한 밤이라고 해도 이 천만 두른 채로 돌아다니긴 조금... 그냥 계획을 바꿔서 성욕처리를 꺼내면서 다시 리즈벳 방에 들어가볼까 란 생각이 들었다.
“리즈. 그 혹시 괜찮으면 오늘... 성욕처리도 할 겸 재워주면 안될까?” “......안돼. 인간화 했으니 이제 성욕처리는 끝났잖아.”
리즈벳이 얼굴을 붉히면서 당황하다가,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이 시발. 그러고보니 인간화 할 수 있을때까지 였구나 그거!
어쩔 수 없이 밥먹으며 떠올렸던 계획을 실행해야 겠다고 생각하며, 얼굴을 붉힌 채 조용해진 리즈벳과 헤어졌다. 리즈벳의 반응을 보면 계획이 먹힐 것 같아 기대되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 이렇게 넘어가야 한다는게 아쉽긴 하다.
그렇게 위치도 모를 여관을 찾기도 뭐해 창고로 돌아와, 불빛이라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만 있는 창고 안에서 두르던 천을 벗고 확인하려던 내 주니어를 확인했다.
“...역시...”
묵직한 느낌으로 대충 예상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보질 못해서 확신 못하고 있었는데... 내 주니어, 말 몸뚱이 일때 달려있던 그 말자지와 말불알 그대로인 상태로 보인다. 조금 그럴듯한 느낌을 주면서 들어가 있는 말자지를 꺼내자, 어렴풋한 달빛에 흉악한 말자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음... 인간화 하면 좀 줄어들 줄 알았더니... 하긴 지금은 크게 상관 없어지긴 했지만...”
문제는 이거, 옷이 이 놈을 가릴 수 있을만한 사이즈가 있을까? 어쩐지 걱정되는데... 일단 아침에 가게가 문 열만한 시간에 바로 칼같이 찾아가 옷을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정하고, 이대로 눕기엔 좀 그래서 말 몸뚱이로 변해 짚더미 위에 누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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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침, 사람들이 출근하며 가게들이 문을 여는 시간이 되자마자 인간 형태가 되어 하반신에 천을 두르고 지나다니며 보았던 옷가게로 향했다. 최근 날 보며 아~ 그 신수님이네~ 정도로 바라보던 시선들이, 죄다 놀라는 표정들이다. 심지어 여자들은 놀란 얼굴이 붉어져 있는게... 아무래도 빨리 옷을 사야 할 것 같다. 그리 생각하며 옷가게를 들어가 속옷부터 찾으려 했는데... 옷이 없다고 한다!
“아이고 신수님. 우리 가게엔 신수님 체형에 맞는 옷은 없수다. 아마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 일거요”
날 보며 놀라던 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자, 내가 입을 만한 옷이 없다고 한다. 아니 왜! 여기 가게는 리안나의 고급 의류점과 다르게 옷을 그냥 쌓아두고 파는 곳 아냐? 그런곳에 맞는 옷이 없다고?
“신수님 체형은 제가 옷가게 하면서 봐온 덩치큰 모험가들보다 훨씬 커서... 팔도 그렇고 허벅지도 그렇고 너무 두꺼우셔서 맞는 옷 찾기는 힘드실거 같구려. 이건 주문제작 하시는 방법밖엔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해주는 나이든 옷가게 주인과 내 체형을 비교해보니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 몸뚱이 였던 동안 높아졌던 시야에 익숙해져서 눈치 못채고 있었는데, 지금 내 몸은 이세계인 평균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더 크다. 거기다 팔이고 허벅지고 근육이 불거져서 두꺼우니 이거 맞는 옷 찾기가 확실히 힘들거란 생각이 들었다.
“주문제작를 받아주는 곳은 귀족거주구 아래쪽에 있는 고급 의류점들이 받아주는데... 아는 곳이 없으시면 시간이 꽤 걸리실 것 같구려. 그런 곳들은 예약받고 옷만들어 주는데 시간이 좀 걸리거든.”
귀족 거주구 아래에 있는 고급 의류점들이라... 이거 리안나의 가게가 떠오른다. 근데 어... 그럼 리안나한테 하반신을 모조리 보여줘야 하는건가. 말 몸뚱이일땐 별 수 없었지만, 반쪽짜리 인간화를 했는데도 보여줘야 한다니...
근데 별 수가 없구나. 빨리 옷을 마련하지 않으면 그대로 천 하나만 두르고 다니는 변태 말이 되버릴테니. 아 혹시, 리안나의 남편이 용사라면... 그냥 확 리안나를 내 암컷으로 만들어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리안나의 가게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