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5 - 리즈벳의 비밀 3
“흐응, 흐응~”
거울 앞에 서서 가디건을 걸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째선진 모르겠지만, 세마가 옆 방에 온다는 얘길 듣고 난 이후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세마가 옆 방에 온다는 얘길 듣기 전까진, 최근의 내 기분은 정말 나 자신도 이해 못할 정도로 기쁨과 우울함을 출렁이듯이 오가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난생 처음 알스가 나에게 고함쳤다는 우울함 때문에 세마와 술을 마신 그 날. 알스에게 줄 예정이었던 내 처녀가 그렇게 사라졌다는 것을 아침에 알게 되자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딘지도 헷갈릴 정도의 혼란스러움이 내 안에 가득 차 올라서 당황했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 내 안에서는, 슬픔, 분노, 혼란, 기쁨, 공포, 행복, 자신에 대한 역겨움 등이 뒤섞여 난생 처음 맛보는 감정이 날 지배했고,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날 안심시키는 세마의 말에 따라 혼란스럽게 움직였던 것 같다.
그러다 진정돼서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눈 앞에는 알스가 있었다. 그리고 알스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사과와 고백을 하며 건 낸 꽃다발을 받았을 땐, 다시 한번 그 감정이 날 뒤흔들었었다.
그 혼란스러운 감정 때문에 꽃다발을 건네 받은 후, 그렇게나 기다리던 오랜만에 즐기는 알스와의 데이트에서도 전혀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새 밤이 되었을 때, 문득 세마의 성욕처리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세마가 있는 창고 앞으로 걸어갔었다.
하지만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가 세마를 보게되자,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이성의 외침 때문에 도저히 세마를 쳐다 볼 수 없었다. 동시에 혼란스러운 감정이 내 머리를 뒤흔들어서, 얼른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최대한 세마의 말자지를 외면하며 손으로만 처리해 준 후 황급히 빠져 나왔었다.
그렇게 도저히 즐길 수 없는 데이트와 세마의 성욕처리를 몇 일간 하다 보니, 눈 앞에는 알스가 2번이나 패배했던 히어로 이터가 있었다.
“흐응~. 괜찮나?”
그 히어로 이터에게 모험가들이 당하고, 거기에 세마의 앞 다리가 부러지는걸 봤을 때는 이상할 정도로 커다란 절망감이 내 몸을 짓눌렀다. 그러다 알스가 다치게 되자 정말 삶의 희망이 사라진 듯한 충격에 휩싸였었다. 클레아씨의 치료로 알스는 빠르게 치료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몸을 짓누르는 절망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었다.
그리고 히어로 이터 에게서 알스가 당한 검은 구체들이 다시 나타나자, 나는 나도 모르게 세마가 있던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평소처럼 네 발로 달리는 몬스터의 모습이 아닌, 두 발로 달려오는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세마가 있었고, 달려온 세마가 내 앞에 있던 검은 구체를 쳐냈을 땐 온 몸에 안도감이 퍼졌다.
전에 클레아씨가 세마가 뭔가 나쁜 일을 꾸미고 있는 듯하단 얘길 했을 때, 순간 속으로 혹시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세마에게 꺼림칙함을 느끼고 의심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세마가 달려와 날 구해준 그 순간, 내 안에 있던 의심이 사라지고 세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이 솟아올랐었다.
이 후 도움을 요청하는 세마의 외침을 들은 나는 자신의 레벨도 생각하지 못하고 어느새 마법사들 사이에서 마법을 날렸다. 그리고 세마가 히어로 이터를 쓰러트리는 것을 보게 되자, 발이 저절로 세마에게 달려갔다.
그 뒤로도 날 혼란스럽게 하는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세마를 생각하면 조금 진정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어째서일까? 세마의 바뀐 모습 때문일까? 변화된 세마의 모습은 인간이라곤 할 수 없는 이족보행 몬스터의 모습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습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든다.
분명 그 얼굴과 몸은, 말이라고 하는 몬스터의 모습이던 세마를 그대로 이족보행만 하게 만든 듯한 조금 무섭게 생긴 외형. 그러나 사람과 비슷한 신체가 된 세마에게선, 그런 무섭게 생긴 외형임에도 친근감이 느껴지면서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이 새어나왔다.
평범한 남자에게선 볼 수 없는, 여자라면 한번쯤 매혹될만한 커다란 근육. 넓게 펼쳐진 가슴과 함께 내가 올라탈 수 있을 만큼 넓은 어깨.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단단해 보이는 복근. 가린 천 사이로 힐끔 보이는 굵은 허벅지.
흉악한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몬스터의 몸 일 때도 대단하다고 느껴지던 근육들이 사람의 형태로 바뀌자, 에센티아의 남성들에게선 전혀 볼 수 없던 근육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계속 쳐다보게 되는 몸이었다.
그런 몸에 옷을 갖춰 입은 세마의 모습은, 얼굴이 몬스터의 얼굴 임에도 흉악한 몬스터가 아니라 어쩐지 멋진 남성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근사한 남성미 넘치는 육체에 묘한 끌림을 느꼈고, 거기에 세마에 대한 고마움이 겹쳐지면서 어쩐지 세마를 떠올리면 두근거리는 감정이 솟아 올랐다.
계속 새어나오는 그 감정 때문에, 인간화 스킬을 얻으면서 끝났을 성욕처리를 세마가 부탁해왔을 땐, 자신도 모르게 하겠다는 대답이 튀어나오려던 걸 간신히 목 안으로 집어삼켰다. 만약 이성이 조금만 느슨했었더라면, 자신도 모르게 알겠다고 대답해버렸을 것이다.
“...이제 슬슬 올려나?”
그리고 오늘, 그런 세마가 자신의 옆 방으로 온다는 사실에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마치 알스가 처음 데이트를 신청했던 날처럼 기쁜 감정이 날 감싸고 있었다. 왜 이렇게 기쁜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반가운 사람이 옆 방으로 온다는 건 제법 기대되는 일인 것 같다.
그 감정에 휩싸인 나는, 아침부터 계속 거울 앞에 서서 이런 저런 옷들을 대보며 어떤 게 더 귀여울까 고민하다, 아끼던 원피스에 귀여운 핑크색 가디건을 걸치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슬슬 세마가 오겠다던 시간인데...
“리즈~? 나 왔어.”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서, 밖에서 세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를 듣자, 나도 모르게 뛰쳐나가듯이 문 앞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이 후, 즐거운 감정을 느끼면서 세마의 방에 들어가, 가재도구들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내 방과 방향만 다른 동일한 구조의 방이지만, 방금 막 입주해 텅 비어있는 방은 아무래도 좀 색다른 느낌이 드는 것 같다.
그렇게 대강의 설명을 끝내고 나니,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있는 세마의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두 개의 봉투와 몬스터의 몸일 때 차고 다니던 작은 가방 하나. 얼마 안되는 짐들을 보니 아무래도 앞으로 구입할 게 많을 것 같아서 뭔가 선물을 해줘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봉투에 들어있는 커다란 상자를 꺼냈을 때.
나는, 그 상자를 보고, 몸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 커다란 상자에는, 안에 들어있는 물품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할 만한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XXXL 인외 사이즈!’ ‘인간에게서 맛볼 수 없는 흉악함을 즐기세요!’
이 문구, 그리고 옆에 적힌 작은 글자들에서 예상되는 박스의 내용물. 나는 그 내용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상자를 열어버렸다. 그 상자 안에 채워진 작은 상자들 위에는... 내가 지식으로 알던 콘돔과는 전혀 다른, 매우 커다란 콘돔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 이건... 설마...”
나도 모르게, 그 커다란 콘돔을 손으로 들어 확인했다. 이 물건을 어디에 쓰는 걸까. 말하지 않아도 명백하다. 남녀간의 관계를 할 때 겸사겸사 피임을 할 수 있는, 에세르 친화도를 올리지 않기 위한 물건.
이 세상에서 여성의 피임법, 정확히는 착상을 막거나 이미 착상된 수정란을 다시 되돌려 배출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 쓸 수 없는 방법들 이지만, 값싼 마도구를 통해 피임할 수도 있고, 몸에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약도 다양하며, 마법사의 경우엔 스스로 피임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도 얼마 전, 마법을 사용한 피임을 직접 체험했었다. 세마가 내 처녀를 가지고 간 다음날.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전날의 기억에서, 내 난자가 세마의 정자를 수정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어렴풋한 기억에서 확신을 얻게 되자, 다급하게 마법서를 뒤져서 거기 기록된 피임 마법을 사용했었다.
이렇게나 피임 방법이 다양하며 간단히 해결 가능한데 이런 물건이 있는 이유, 그 이유는 바로 에세르 친화도 때문이다.
같은 남녀간의 관계에서 여성이 남자의 정자를 받아들여 수정하게 될 경우, 그 두 사람의 에세르는 친화력이 생겨 점점 여성의 몸에서 그 남자의 에세르에 대한 면역반응이 줄어들게 된다. 그 때문에 정자의 수정확률이나 수정란의 착상확률이 더욱 올라가게 되며, 동시에 다른 남성의 에세르, 정확히는 다른 남성의 에세르를 지닌 정자에 면역이 생겨 수정되지 않는 몸이 되게 된다.
동시에 에세르 친화도가 높아질 수록 정자와 난자가 수정할 때 에세르 공명으로 얻는 여성의 오르가슴은, 더욱 더 올라간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확률이며, 오르가슴 역시 남성에 따라 편차가 있다고는 들었다. 한 두번 정도라면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 관계가 지속될 경우, 그 남자 외에는 수정하는 것 조차 어려워져서 임신 확률이 제법 낮아지게 된다고 한다.
내 손이 들고 있는 이 물건. 이 물건은 바로 그 에세르 친화도가 올라가는걸 원하지 않는 사람들. 즉 배우자 몰래 불륜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물건이다. 주로 쓰이는 곳은 창관이나 불륜하는 관계, 아주 간혹 여성의 자위도구에 위생을 위한 정도로 사용되는 부끄러운 물건일 텐데...
그런데 어째서 이런 것이 세마에게? 이 크기로 봐선 세마가 쓰기 위해 산 물건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세마가 무어라 설명해주고 있지만, 혼란스러움에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 ...파트너가 있는 게 더 만족스럽잖아? 그걸 고려해서 미리 사 둔거지.” “파트너...?”
파트너라니, 무슨 소리지. 인간화 스킬을 얻으면, 스스로 해결하려던 것 아니었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 해결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자, 세마의 입에서 창관이란 얘기가 나온다. 창관이라니? 불량한 남자들이나, 문제 있는 사람들이나 가는 그 상스러운 곳? 그런 곳에 간다고? 이걸 쓰러?
창관이란 얘길 듣자, 왠지 모르게 맘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세마를 그런 곳에 보내기 싫다는 감정과, 알 수 없는 질투심 같은 감정. 어째서 이런 감정이 솟아오르는 걸까?
“리즈가 해주던 성욕처리가 정말 만족스러웠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완벽하진 않아도 인간 형태가 되긴 했으니 어쩔 수 없지.” “......”
내가 해준 성욕처리에 대해 만족스러웠단 얘기를 듣자, 몸 안쪽에서 근질거리는 묘한 기쁨이 솟아오른다. 손으로 느꼈던 말자지의 뜨거움과, 입 안에서 혀와 목으로 느꼈던 말정액의 농후한 맛과 냄새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더 이상 그것들을 느낄 수 없고 성욕처리를 해 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뒤섞인다. 요 근래 날 혼란스럽게 하던 감정과 비슷한 감각이, 다시 날 뒤흔드는 것 같다.
“사실 내 맘은 리즈가 이전처럼 성욕처리를 해 주면 좋겠지만... 그건 안되겠지? 리즈는 알스가 있으니까.”
그래. 나에겐 알스가 있다. 세마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순간부터, 더 이상은 안 된다. 이미, 알스에겐 말할 수 없는 큰 배신을 해버렸으니까. 여기서 멈춰야 한다.
“정말 아쉬워. 창관에서 그 어떤 여자를 만나더라도 리즈 같은 매력적인 여자는 없을 텐데 말이야. 그런 여자들과 섹스를 해 봤자 리즈벳이 손이랑 입으로 해주는 것 보다 못하겠지.”
왜지? 세마가 날 매력적이라고 말해주는 것에, 알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오른다. 그렇게 말해도 난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더 이상 세마의 성욕처리를 해줄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이런 몸이 되었는데 손과 입으로만 만족하는 건 또 아쉽고...”
그래. 아쉬울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물건을 이렇게나 사 둔 거겠지.
“...어때? 리즈만 괜찮다면, 이전보다 더 나아간 내 성욕처리를 해 보는 건?” “...더, 더 나아간...?”
나도 모르게 세마의 말을 되물었다. 내 심장에서,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고동이 울린 것 같다.
“그래. 뭐가 더 나간 건진 잘 알 거고... 이번엔 리즈가 스스로 원할 때 그만하는 조건으로. 그럼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잖아?”
언제든지 그만둬도 된다. 그 말이, 어쩐지 너무나도 달콤하게 들린다. 심장의 고동이 커지면서, 날 감싸고 있는 혼란스러운 감정 때문에 몸이 회전하는 듯한 감각이다.
“스스로 그만 둘 수 있는데다, 그런걸 미리 경험해두면, 나중에 알스와 섹스할 때도 나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거기에... 콘돔을 쓴다면, 큰일날 일도 없지 않겠어?”
그래.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고, 마침 여기에는 ‘큰일날 일’도 막을 수 있는 물건도 이렇게 많잖아? 이 물건을 쓴다면... 조금, 아주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리즈도 그런 욕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 콘돔이 있으면 위험부담 없이 그 욕구만 채울 수 있을 텐데?”
내 욕구. 세마의 크고 흉악한 자지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끼던, 그리고 그 흉악한 자지가 내 처녀를 빼앗아 간 이후엔 더 크게 느끼던 나의 욕구. 그 갈증 나는 듯한 욕구를, 이걸 쓰면 채울 수 있다.
세마의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쓰다듬을 때 마다, 동시에 내 체온이 올라가면서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다.
“원래는 오늘 밤에 한번 구경해 볼 겸 창관에 가볼 예정이었는데... 그 예정을 조금 바꿀게.”
“내 제안을 받아줄 생각이 있다면... 오늘 저녁식사 이후에, 내 방으로 찾아와. 안 오면 거절하는 거라고 생각할게. 그렇지만 만약 온다면...”
어느새 세마의 손이, 내 엉덩이와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손길을 거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세마는, 내 손을 잡아 내 욕망이 원하고 있는 자신의 커다란 물건에 가져다 대고 내 귓가에서 속삭였다.
“이 녀석으로, 네 욕구를 마음껏 채워 주겠어.”
그 달콤한 속삭임을 들으며, 내 손에 닿아있는 이 커다란 말자지가 내 욕구를 채워주는 광경을 상상해 버려서, 나는 그만 가볍게 절정 해 버렸다.
그 이후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내 몸을 감싸는 혼란스러운 감각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것 같은 감각이다.
그러다 어느 샌가 나는 방에서 나와, 속옷 전문점에 가서 속옷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후에는 여성복을 파는 곳에 가서 약간 반투명하면서 부드러운 재질로 된, 조금 섹시한 느낌이 드는 파자마를 사버렸다.
방에 돌아와 정신이 나간 것처럼 넋을 잃고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저녁에 알스와 만났지만, 옆에 있는 세마가 신경 쓰여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의 맛이 어떠한지도 제대로 느끼질 못했다.
그렇게 세 명이 모여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오는 중, 세마가 날 붙잡고 내 귀에다 속삭였다.
“기다릴 테니, 잘 생각해 봐.”
그 얘길 듣자, 혼란스러운 머리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졌다. 그래. 이제 선택해야 한다.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면서 침대에 앉아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쩌지? 내가 여기서 거절한다면, 나는 더 이상 알스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마와는 조금 서먹해 지겠지만, 더 이상 연인을 배반하지 않고 세마와도 친구로 남을 수 있는 선택. 그리고 당연히 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선뜻 이 선택을 고를 수가 없다. 내가 거절하면, 세마는 이후 창관에 가게 되겠지. 어째서인지 그 사실이 너무나도 싫다. 연인도 아닌데, 마치... 세마를 빼앗기는 것 같은 이상한 질투심이 솟아오른다.
그 동안 수없이 만지고 입에 넣으며 성욕처리를 해 주었던, 그리고 내 처녀를 빼앗아 간 그 커다랗고 흉악하던 세마의 자지. 그 자지가 지금, 내 눈앞에서 날 유혹하는 것 같다. 그 형태와 크기를 떠올리자, 그 자지에서 느껴지던 짐승과 수컷의 냄새가 섞인 강렬한 냄새가 떠오른다. 마치 며칠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것 같은 갈증이 나서 미칠 것 같다.
냉장고를 열어 물을 쏟아 붓는 것처럼 삼킨 후, 세마의 방에서 발견한 콘돔을 떠올렸다.
불륜을 하는 남녀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그 물건. 그래. 증거가 남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물건을 사용한다면, 알스 몰래, 세마와 관계를 가지더라도... 문제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어째선진 모르겠지만, 샤워하는 도중 몸을 평소보다 더 청결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오후에 사왔던 조금 섹시한 느낌의 승부속옷 같은 약간 비싼 속옷과, 살색이 조금 비치는 파자마를 입고 방안을 서성거렸다.
어쩌지... 정말 문제가 없을까? 알스가 알게 되지 않을까? 세마가 알스에게 말할 거라 생각되진 않는다. 하지만 만약, 알스가 갑자기 찾아오거나 해서 그 광경을 보게 되거나 한다면?
...어째서지? 그 상황을 떠올리자, 몸이 미묘하게 떨리는 듯한 오싹함이 내 뒷목을 타고 흐른다. 이건... 무슨 감정이지?
혼란스럽다. 어지럽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감정을 휩싸이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 전까지 쓰고 다니던 마법사용 망토를 두르고, 망토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 쓴 채 세마의 방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만약 이 문을 두드린다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성이 날 붙잡고, 지금이라도 되돌아 가야 한다고 외치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쩐지 내 눈앞에서, 세마의 남자다운 몸이, 그 커다란 자지가, 그 자지에서 발해지던 그 냄새가... 날 유혹하는 것 같다.
그만둘 수 있다. 그래. 세마는 나에게, 언제든지 그만둬도 된다는 선택권을 주었다. 아주 조금... 아주 조금만... 내 욕구를 채우고, 그 흉악한 자지가 주는 쾌락을... 그리고 그 후엔...
‘알스... 미안해... 아주 조금... 아주 조금만 즐기고... 그만둘 테니까...’
그렇게 내 손은, 눈 앞의 문을 두드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