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5 - 52화 - 던전 준비!
숙소의 내 방 문 앞에 도착하니, 타이밍 좋게 옆 방에서 리즈벳이 나왔다.
리즈벳은 내 두 손 가득 들린 봉투를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곤 그게 다 뭐냐며 물어왔다.
“리안나 누나가 내 옷을 엄청 만들어 놨더라고. 덕분에 한동안 옷 걱정은 없겠어.” “흐응. 리안나씨가...”
어 음... 리즈벳 눈매가 좀 날카로워 진 것 같은데... 진짜 질투하는 건 아니겠지?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금새 평소의 눈으로 돌아오더니 한번 보자고 말하면서 내 방에 같이 들어왔다.
그렇게 리즈벳과 함께 옷을 하나하나 꺼내보면서 정리하는데, 오늘 리안나가 한 얘기를 들려주자 리즈벳이 조금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거기 옷들 맘에 들었는데 좀 아쉽네. 리안나씨 센스가 꽤 괜찮았었는데.”
리즈벳은 아직 2층을 보진 못했겠지? 2층에 있는 옷들을 입혀보고 싶은데... 가게를 닫기 전에 같이 가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옷들을 정리해 넣은 후, 알스가 던전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얘기를 해 주었다.
“응. 그러네. 슬슬 모험가 활동에 집중하긴 해야지.”
얘기가 나온 김에 내 장비를 맞춰볼 겸 대장간을 둘러보기로 하고 리즈벳과 함께 숙소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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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들을 돌아다녀보니 대부분 내 몸에 맞는 장비를 만드는 데에 난색을 표했다. 틀이나 도구들이 내 덩치에 쓸만한 갑옷을 만들긴 좀 힘들고 귀찮단 이유 때문이었다. 안되진 않지만 귀찮고 힘들단 이유로 거절당할 줄이야...
그러다 한 대장간에서 좀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가능하다고 말하며 내 체형을 측정해 주었다. 다행이다. 까딱하면 방어구도 없이 맨몸으로 다녀야 할 뻔 했어.
덩치가 이러니 전신에 갑갑하게 갑옷 풀셋을 껴입는 것 보단 활동성 좋은 갑옷이 좋겠다고 내가 말하자, 조금 깐깐한 인상의 대장간 주인이 끄떡이더니 내 주문을 받아 적었다.
이 후 재료와 만들어질 갑옷에 대해 이리저리 설명을 해주긴 했는데 그냥 듣기론 대부분 모험가의 갑옷에 쓰이는 적당한 금속인 것 같아 알아서 맞춰 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이 뭔가를 다 적은 후, 가격이 예약금으로 금화 1닢에 찾아갈 때 금화 5닢이라고 말해 주었다. 같은 재료로 만들었다는 갑옷들이 금화 2~3닢인데... 주문제작이라 깎아달라 하기도 뭐하네 이거.
그런데 지금 예약이 많아 기간이 두어 달은 걸리겠다는 소리에 또 아찔해졌다가, 팔 보호대나 가슴 정도만 보호되는 갑옷이라면 지금이라도 쓸 수 있는 게 있다며 그냥 철판 같은 팔 보호대와 끈으로 조이는 형태의 가죽갑옷 하나를 보여주었다.
“어떤가? 이 정도면 그럭저럭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네만” “가죽 갑옷이 대장간에 있는 게 좀 신기하네요. 가죽도 다루십니까?” “가죽만 구해와서 이렇게 안쪽에 판금을 덧댄 거라네. 대부분 대장간이 이 정도는 하지.”
오... 단순 가죽인줄 알았더니 안쪽엔 작은 철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게 보인다.
곧 가게 주인이 내 몸에 갑옷을 걸쳐 주었는데... 그래도 작긴 하다. 복근 쪽이 좀 드러나네. 근데 맞춤갑옷이 그렇게나 오래 걸리면 이거라도 써야지 뭐.
곧 팔 보호대 쪽도 맞춰보더니 안쪽에서 몇 번 두드리고 내 팔에 둘러주었다. 이것도 팔꿈치가 좀 남긴 하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그리브도 가지고 갔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 다리엔 좀 힘들어 보이는군.”
음... 확실히 이 역관절 다리엔 갑옷을 맞추기가 좀 골치 아프긴 하지. 이 다리에 맞춰주는 것 만으로도 주문제작 가격이 갑자기 납득이 가는 것 같다.
그리고 무기를 살펴보려 했더니, 좀 있어 보이는 무기다 싶은 건 대부분 금화 10닢이 넘어가는 고액의 가격. 지금은 살수도 없고 영주의 보상을 받는다 쳐도 좀 부담되는 가격들이다.
그런데 날 보던 대장간 주인이 무기를 처음 써보는 거라면 손에 익는 무기가 생기기 전엔 싸구려 무기로 손에 맞는 형태를 찾아보는 게 좋을 거라 말해주었다. 가만 들으니 그럴듯해서 일단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싸구려 검 하나를 구매했다.
그렇게 갑옷과 팔 보호대, 검까지 해서 금화 1닢과 20은화. 맞춤 갑옷 예약금으로 금화 1닢을 내고 대장간을 나왔다.
“한 1~2주면 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당장 쓸 수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네. 맨몸으로 던전에 갈 뻔 했어.” “으음, 그래도 좀 불안한걸? 회복 포션이나 상처약은 좀 많이 준비해 가야겠네.”
그래도 뭐 관리소에서 우리한테 맞춰서 던전을 배정해 준다면 그리 크게 힘든 곳은 아니지 않을까. 무기나 손에 익힌다 생각하고 다녀오면 되겠지?
“그것보다 지출이 좀 뼈아프긴 하네. 그냥 주문제작은 둘째치고 그냥 싸구려같은 감옷이랑 검인데 금화단위로 받을 줄이야.” “원래 갑옷이나 무기가 그래.”
리즈벳의 지팡이는 마법학교를 졸업할 때 받은 꽤 좋은 지팡이라서 돈이 들진 않았고, 알스는 모험가 양성소에서 값 싼 무기를 받아와서 쓰다가, 날 만나기 전에 무기를 제법 괜찮은 걸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알스의 그 평범해 보이던 검 조차 금화 5닢 정도였다고.
음... 모험가는 수익이 많은 만큼 지출도 크네. 무일푼인 사람이 갑자기 모험가로 성공하고 그런 건 힘든 이야기겠어 에센티아에선.
“그리고 아까 오전에 교회에서도 연락이 왔어. 편할 때 와서 의뢰 보상 받아가래.”
그러고 보니 바울의 의뢰 보상도 있었지. 금화 5닢 이였나. 그건 클레아를 부르러 갈 때 같이 받으러 가면 되겠는데?
그렇게 갑옷을 들고 리즈벳과 대화하며 숙소로 돌아가던 도중, 갑작스레 악세사리를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리즈벳이 곧 생일이라고 했었지. 나한테 남은 돈이 금화 5닢이 조금 안되는데... 적당한 악세사리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럼 나머진 무슨 장신구를 사주냐 인데... 어쩐지 리즈의 귀걸이가 눈에 띈다. 아니지. 귀걸이가 아니라 귀찌였던가 저거.
리즈벳과는 좀 안맞는 듯한 녹색빛의 조그마한 귀찌.
잘 눈에 띄지도 않는데, 가끔 보일 때마다 리즈벳에게 안 맞는 느낌이라 영 내 맘에 들지 않는 촌스러운 귀찌인데... 잘됐네. 생일 선물로 하나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나는 리즈벳의 손을 잡고, 그녀를 악세사리 가게로 끌었다.
“리즈. 곧 생일이랬지?” “어? 잠깐만. 생일 선물로 이런 가게의 장신구 같은 건 너무... 저번에 말한거 그냥 농담이였어!” “에이. 괜찮아. 비싼걸로 준비해 준다 했잖아? 보상은 안받았지만 아직 장신구 하나 사줄 돈은 있어.”
그렇게 말하며 리즈벳과 함께 가게로 들어가자, 조금 어린 듯한 젊은 여자 점원이 맞이해 주었다. 가게 주인 딸 인걸까?
리즈벳은 가게에 들어갈 때 까지만 해도 거절하는 듯 하더니 함께 가게에 들어와 화려한 장신구들을 보자, 제법 흥미로운 시선으로 가게 안을 살핀다. 관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가게 점원이 날 보고 놀라는건 여전했지만, 리즈벳을 가리키며 어울린 만한 귀걸이를 보러 왔다고 말하니 접대미소를 지으며 서랍 같은 곳에서 여러가지 귀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음... 리즈한테 이런게 어울릴 것 같은데.”
나는 눈에 띈 붉은색 귀걸이를 리즈벳의 귀에 대어보며 말했다.
제법 화려하고 커다란 가넷같은 붉은 보석이 달리고, 그 아래로 작은 보석들이 꿰어진 짧은 끈이 늘어져있다. 늘어진 곳 끝에는 조금 작지만 화려한 붉은 보석이 마무리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리즈벳의 이미지와 잘 맞으면서 화려함을 더해주는 귀걸이다.
“이쁘긴 하네... 근데 너무 화려해보여서 부담스러운데...” “리즈는 이정도가 어울려.”
그렇게 말하고 점원에게 가격을 묻자 금화 2닢 이라고 말하며 이런 저런 귀걸이의 효과를 말해 준다. 아무래도 단순 악세사리 점이 아니라 이런저런 기능이 있는 마도구에 가까운 악세사리점 인 것 같다.
리즈벳은 가격에 부담을 가지다가, 귀걸이의 모양을 보며 다시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거 귀도 뚫어야 하네. 귀 뚫어본 적 없는데...” “이참에 뚫어도 괜찮지 않아? 귀 안뚫으면 낄 수 있는게 많이 없잖아.” “으응... 귀 뚫는건 조금 그런데...”
뭐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피어싱을 뚫거나 몇개씩 뚫는건 좀 그렇지만 이런 평범한 사이즈로 귀를 뚫는 건 여자애니 괜찮지 않나?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점원 쪽에서도 귀 뚫는 것을 권장하며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며 리즈벳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와 점원의 말을 듣고 있던 리즈벳은, 곧 확인하듯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정말 괜찮아? 생일선물로 금화 2닢은 너무...” “괜찮아. 내 감사표시 라고 생각해.”
슬쩍 리즈벳의 귀에 대고 그녀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밤마다 내 성욕처리를 해주는데 이건 오히려 싼게 아닌가 싶을 정도니까. 내일 보상 받아와서 더 챙겨줄게.”
그렇게 말하자 리즈벳은 얼굴을 붉히며 날 바라보더니, 결심한듯 점원에게 말했다.
“그럼 귀 뚫고 달아보고 싶은데요...”
리즈벳은 귀에서 귀찌를 빼며 점원에게 다가가더니, 잠시 손에 든 작은 녹색 귀찌를 바라보았다. 뭔가 표정이나 몸짓이 고민하는 듯한 표정인데, 혹시 알스가 선물해 준건가?
“아끼는 거야 그거? 그래도 리즈벳 외모엔 좀 아쉬운 것 같은데.” “...아, 아니야. 그냥... 선물 받았던 거라...”
그렇게 말하며 귀찌를 집어넣고, 점원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는 리즈벳. 점원이 손에 귀를 뚫는 바늘이 달린 물건을 가져와 리즈벳의 귀에 대며 말했다.
“조금 따끔하실 거에요~” “읏...!”
귀를 뚫고 귀걸이 착용을 점원이 도와준 후 거울을 리즈벳의 눈 앞에 놔두었다.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며 리즈벳은 부끄러운듯 말했다.
“...이쁘긴 하네...” “리즈벳이 예뻐서 그래.”
리즈벳은 내 말을 듣곤 피식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점원이 고맙게도 말을 덧붙였다.
“정말 잘 어울리세요. 신수님이 안목이 있으시네요. 여자친구분 외모가 훨씬 아름다워 진 것 같아요!” “여, 여자친구는 아니에요...” “아, 실례했습니다! 분위기가 그런 것 같아서 그만...”
내 외모를 보고도 여자친구라고 말하는 점원이 좀 놀라운데. 그래도 여자친구라니 요 꼬마 점원 꽤 맘에 드는 소릴 하네.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 리즈벳을 바라보다, 그대로 금화 2닢을 내고 귀걸이를 구매했다.
“귀 뚫으신 직후에는 2주 정도는 그대로 차고 계셔야돼요. 그리고 간간히 소독을 해 주셔야 하는데 이걸로...”
귀를 뚫은 리즈벳에게 주의사항등을 말해주면서, 귀걸이를 담는 케이스와 주의사항이 적힌 작은 쪽지를 전해주었다.
그렇게 가게 밖을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중에, 리즈벳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계속 차야 된다고...” “왜? 무슨 문제 있어?”
그렇게 물으니 날 빤히 쳐다보다 리즈벳은 고개를 젓고 웃으며 말했다.
“아냐. 괜찮아. 선물 고마워 세마.”
내 암컷이 되고나면 더 비싼것도 선물해 줄테니 기대하라고.
나는 속으로만 그렇게 말하곤, 리즈벳과 서로 웃는 얼굴로 쳐다보면서 숙소 입구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