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7 - 97화 - 새로운 명분을! (2)
“앗...! 세마씨. 리즈벳씨. 안녕하세요.”
교회 정문 안으로 들어가자, 부지 한 켠의 벤치에 앉아있던 클레아가 미소 지으면서 우리에게 인사해 주었다.
인사하기엔 거리가 조금 멀었는데... 눈도 안보이면서 그런 거리에서 우릴 알아채다니. 클레아의 감지능력이 어찌 보면 시야 이상으로 좋은 것 같은데.
일어서는 클레아에게 인사를 건네자, 클레아는 활짝 미소 지으며 우리에게 총총 달려왔다.
벤치에 앉아있을 때 뭔가 표정이 엄청 어두워 보였는데... 잘못 본걸까? 표정이 어두웠다기엔 우리에게 미소 짓는 클레아의 표정이 너무나도 기분 좋아 보인다.
마치 반가운 사람을 간만에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 클레아가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느껴진다.
“정말 오랜만에 와주셨네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응? 아 하긴. 일주일 정도 만인가...”
매일같이 들리다가 리즈벳이 알스에게 결별을 선언한 날 이후론 발길이 뚝 끊겼으니... 아무래도 교회 안에만 있어서 심심했던 모양이네.
그래도 마침내 리즈벳과 나 사이에 방해되던 장애물을 치웠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잖아?
“쿡쿡...♡ 클레아 씨. 외로웠나 봐?” “앗, 네에!? 그, 그게 아니라... 갑자기 안 오시길래...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 싶어서...” “킥...♡ 저번에 제안할 때 말했었지? 길드가 만들어진 이후엔, 내가 주인님을 만족시켜 드릴 수 있다고♡” “아... 그러, 셨군요... 기, 길드 창설... 축하 드려요...”
클레아의 표정이 어쩐지,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듯한 느낌이...
“아, 그리고 클레아. 그것 말고도 말할게 있는데...” “네? 어떤...?” “클레아가 내 성욕을 풀어주기로 한 계약 있잖아? 그거, 이제 갑옷이 다 만들어져서...” “네!?”
어두워지는 것 같던 클레아의 표정이, 이번엔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새파래져 버렸다.
“버, 벌써 말인가요!? 아직 기간이 조금...!” “아니, 2달 정도라고 했지 어느 정도인진 정확히 말 안 했잖아? 오늘 대장간에 가보니까 다 됐다고 해서 받아왔는데...”
내 말에 점점 울먹거리는 듯한 클레아의 표정을 보니, 뭔가 죄짓는 듯한 기분인데...
클레아가 벌써 이 정도로 나한테 빠져있었다니,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서 좀 당황스럽네.
“...쿡쿡쿡...♡”
뭔가 재미있기라도 한 건지, 리즈벳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클레아를 보면서 조용히 웃고만 있다.
여기서 뭐라고 말해야 하지? 지금 클레아에겐 내가 생각해뒀던 말들은 그리 좋지 못한 선택지 같은데. 뭔가 이거다 싶은 선택지는 없을까.
그런 내 생각을 알아챈 것처럼, 키득거리고 있던 리즈벳이 앞으로 나와 클레아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후후...♡ 클레아 씨. 잘됐네?”
응? 뭐가 잘됐단 거지?
“순결을 간직한 채 계약이 끝났으니, 바울씨에게 들키는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 이제 다 끝났으니까 맘 편히 바울씨에게 돌아가도록 해♡”
...어라? 리즈벳 지금 무슨 소릴?
설마 이제 와서 질투심이 생기기라도 한 건가!?
“그리고 주인님께 봉사해 드렸던 경험이 있으니까. 바울씨랑 결혼해도 잘 써먹을 수 있겠지? 후훗♡ 미리 결혼 축하해~♡” “읏... 아니, 그... 세마씨는...”
어쩐지 클레아의 표정이 썩어들어 가는듯한 느낌이...
아니, 이거 설마... 질투심이 생긴 게 아니라, 질투심을 느끼게 만들려는 건가...?
“주인님이라면 걱정 마♡ 이제 내가 있으니까♡ 앞으로 주인님의 성욕은 저~언부 내가 풀어드릴 거야♡” “아, 아니... 리, 리즈벳씨도 알스씨가...!” “쿡쿡♡ 그런 한심한 수컷, 이미 진작에 헤어졌어♡ 이제 세마가, 내 연인이자 주인님이야♡” “아, 읏...!”
클레아가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마치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채, 수녀복의 치마를 구기며 손까지 떠는 클레아.
리즈벳은 그런 클레아를 비웃는 것처럼 키득거리면서, 클레아에게 다가가 도발하는 것처럼 계속 말했다.
“어라~? 클레아 씨. 혹시 아쉬운거야? 으응~? 무려 성녀 후보이면서, 바울이라는 연인이 있는 클레아 씨인데. 설마 연인을 놔두고 주인님을~? 킥킥♡ 그건 아니지~?” “으읏, 읏...!”
어... 음... 이거 말려야 하는 건가?
내가 고민하는 사이 리즈벳은, 클레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귀에서 속삭이기 시작했다..
“후후훗...♡ 뭐어...♡ 물론 주인님이...♡ 다른 수컷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멋진 수컷이긴 해♡”
자신의 귀에서 속삭이는 리즈벳의 말에, 클레아가 흠칫하며 어깨를 들썩이는 게 보였다.
“여자 한 명 정도는 한 손으로도 가볍게 들어올릴 정도로 힘세고...♡ 몸에서는 늘 짐승과 수컷의 냄새가 코가 삐뚤어질 정도로 풍겨오고...♡”
코가 삐뚤어져!? 진짜!? 아니, 나 요즘은 잘 씻고 있는데도 그 정도야!?
“다른 수컷들은 커 봤자 여자의 두 손으로 감쌀 수 있는 크기인데...♡ 나는 물론이고 클레아 씨의 커다란 폭유로도 다 감쌀 수 없는 커다란 말자지...♡” “으, 읏... 하아...”
어쩐지 클레아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
“그 말자지에서 느껴지는 데일 것 같은 뜨거움♡ 그 강렬한 체취를 농축한듯한 향기로운 말자지의 냄새♡” “하아... 하아... 흐읏...♡”
점점 부들거리던 느낌의 떨림이, 움찔거리는 듯한 떨림으로 바뀌면서... 동시에 클레아가 뜨거운 한숨을 내뱉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자지에서 나오는 말정액은...♡ 쿡쿡♡ 암컷을 복종하게 만드는 황홀한 짐승과 수컷의 냄새♡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감미롭고 농후한, 목에 걸리는 그 맛♡ “아, 으, 그, 그만...♡”
방금 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클레아가 울먹거리고, 리즈벳은 그것을 즐겁다는 듯이 키득거리며 바라본다.
“안됐다아...♡ 클레아 씨는 이제...♡ 더 이상 그걸 느껴보지 못하겠네?” “......!”
리즈벳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선 뒤, 허리를 숙이고 클레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후훗...♡ 그렇게 봐도 소용없어...♡ 이제 그건...♡ 전부 내 거 니까♡” “......”
어쩐지 리즈벳을 바라보는 클레아의 얼굴이... 마치... 원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분노가 느껴진다.
리즈벳이 뭘 생각한 건진 알겠지만, 이게... 맞는 걸까?
난 내 암컷과 암컷이 될 예정인 클레아가 싸우길 원하지 않는데...
“후후후...♡ 클레아 씨가 원한다면... 방법이 있긴 한데에...♡” “뭐, 뭐라... 구요? 방...법...?”
두 여자의 사이에서 한동안 묘한 기류를 느끼던 도중, 리즈벳의 말에 그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분노하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클레아는 리즈벳의 다음 말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 방법이란 건...?” “킥킥킥...♡ 그건 말야...♡”
리즈벳이 말을 늘어트리고, 클레아가 리즈벳의 말을 기다리며 침을 삼키던 순간.
“클레아!! 아니? 세마씨와 리즈벳씨도 계셨군요!?”
교회 정문 쪽에서 바울이 다가오며 외쳤다.
“...하아. 씨바...”
바울의 목소리에 리즈벳의 표정이 구겨지고, 그 입에서 아주 작게 욕이 새어 나왔다.
“마침 잘 됐습니다! 여러분을 찾아가려 했었는...데... 어, 음. 흠흠...”
다가오던 바울이, 우리를 둘러보더니 리즈벳을 보고 몸이 굳었다.
아무래도 변해버린 리즈벳의 모습에 뇌가 정지한 모양이다.
그런 바울을 쳐다보면서 금새 표정을 바꾸어 미소를 지은 리즈벳은, 살며시 내 옆으로 다가와 서서 바울을 올려다 보았다.
“어흠... 그, 리즈벳 씨... 좀 많이 과감해 지셨군요...” “킥킥...♡ 이게 진짜 저에요. 바울 주교님♡” “그... 그렇습니까? 어흠... 그, 알스씨는...?” “저랑은 헤어졌고,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미소 짓던 리즈벳이 알스의 이름을 듣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바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뭔가... 사정이 있으신가 보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응? 뭐가 어쩔 수 없단 거지?
어째 당황한 것 치고는 바울의 표정이 금새 다시 진지해진 게, 뭔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알스씨가 없어도, 두 분께 부탁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세마씨는 애초에 연관이 있으신 얘기기도 합니다.”
내가 연관이 있다? 무슨 얘기일까.
“중요한 얘기입니다. 클레아도 같이, 제 방에서 얘기를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바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우리 셋은 바울을 뒤따라 주교의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