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4 - 121화 - 칫, 함정인가!
“...그 새끼 참 좋은 곳에서 살았네요.”
마르테를 따라 걸었더니, 교회가 있던 옆 도시에 도착했다.
왕성과 교회가 있던 중앙 도시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옆 도시.
이거 참... 왕도의 중심지인 중앙 도시가 가까운데다, 있을 것도 다 있어 보이고...
무엇보다 집들이 성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호화로운 주택들이 모여있어서 딱 살기 좋은 부촌 같은 느낌의 멋들어진 도시인데.
살기에는 중앙 도시보다 이쪽이 더 낫지 않을까.
나는 호화주택보단 펜트하우스 같은 곳이 드림하우스지만... 이런 곳도 나중에 나이 들어서 살면 나쁘지 않을 것 같네.
“귀족 거주구를 제외한다면,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 속하니까요. 아니, 귀족 분들도 꽤 살고 계신걸 생각하면 거의 엇비슷하다 봐도 될 겁니다.”
비보라 그 놈 탈세가 참 달달했었나보네. 부러운 탈세충 같으니. 아니지, 이제 쫄딱 망했으니 부러울 건 없구나.
“그런데, 그 놈이 여기 어디에 숨어있는 거죠? 누구 아는 사람이 숨겨주기라도?”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난 바로 튈 거야. 대답 잘 하라고 마르테.
“...실은, 녀석의 집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를 발견했는데... 그 통로 안에, 던전의 차원문이 있었습니다.” “...엉? 던전?” “네. 던전입니다. 측정되는 테세르의 수치는 낮은데 소멸되지 않는 걸로 봐선 비보라가 숨어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허 던전? 지하 비밀 통로에?
기사단도 있으니 그냥 자기들끼리 들어가 보면 될 텐데 굳이 날 부르다니...
마르테... 너무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요. 믿어도 됩니까? 나 간다 그냥?
“흐음. 던전에... 왕도 안에 던전이 생기는 경우가 많나 보죠?”
묘하게 시선을 피하는 마르테의 모습과 던전이란 말에 이미 내 의심 게이지는 100%를 채워버렸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며 마르테에게 물었다.
이왕 따라오게 된 거, 궁금한 거나 좀 물어보다 슬쩍 빠져야지.
“없지는 않지만, 거의 없던 일이긴 합니다. 던전이란 건 에세르 농도가 옅은, 생명체가 없는 지역에 생기는 게 보통이니까요. 특히 이번처럼 도시 안쪽, 그것도 지하에 생긴 건 처음이라고 봐야...”
흐음. 그래 그래. 그건 또 처음 듣는 얘기네.
“오호라... 그래도 뭐. 문제는 없겠죠? 이렇게나 강한 마르테 씨가 같이 가시는데.”
괜히 과장하며 마르테에게 물어봤지만, 마르테는 내 시선을 피하며 어깨를 살짝 떨었다.
야... 믿음을 주는 척이라도 해 봐 좀. 연기 드럽게 못하네 진짜.
“...사실 전 그리 강한 것도 아닙니다. 히어로 나이트들 중 가장 신참이거든요.”
내 질문에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말을 돌리는 마르테.
그래. 도착할 때까진 나도 맞춰서 모른 척 해줄게.
“막 날아다니시고 공격도 번쩍번쩍한 게 엄청나시던데. 그게 강한 게 아니라구요? 제가 아는 용사는 투기를 써도 속도만 좀 빨라지는 수준에, 그마저도 얼마 못 가서 1~2분 만에 지치던데...” “아. 레벨이 낮을 때는 용사라고 해도 그렇죠. 용사의 강함은 용사 투기가 얼마나 뛰어난가 로 결정되니까요.”
주제가 바뀌고 나서야, 마르테는 날 바라보면서 내 물음에 답해주기 시작했다.
“에세르가 무한한 만큼, 용사 투기로 상승하는 능력치엔 한계가 없습니다. 물론 투기가 강력해질수록 몸이 못 버티고 금방 지치게 됩니다만, 그건 레벨을 올리는 걸로 해결이 되니까요.” “...응? 해결하는 수준이 아닌 거 같던데요? 꽤 길게 싸우시던데...” “아. 이전 히어로 이터와 싸울 때는 투기를 순간적으로만 사용했던 겁니다. 저도 제 투기를 쭉 유지하는 건 3분 정도가 한계입니다.”
아이고. 그 강하던 마르테 너마저 3분 베지터였냐?
물론 넌 그만큼 강하긴 했지만... 그리고 순간적인 사용이 가능하다면 확실히 큰 문제는 아닐지도...
“투기 레벨이 낮다면 그래도 꽤 오래 유지가 가능했겠지만, 그래서야 용사인 의미가 없으니... 이 투기의 효율과 지속시간은 굳이 용사가 아니더라도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모험가들은 에세르량의 제한 때문에 투기의 능력치 상승폭에 한계가 있지만요.” “흐음... 모험가들은 물론이고 모든 용사가 그런가 보죠?” “네. 히어로 나이트들 중에서도 단 한 분을 제외하면 가장 길게 유지 가능하신 분이 5분을 좀 넘는 정도입니다. 물론 저는 아직 들어온 지 얼마 안돼서 레벨이 낮은 것도 있구요.” “...혹시 레벨이?” “59 입니다.”
와아우. 낮은 게 59라고?
교회에 호위하러 온 히어로 나이트들이 죄다 레벨이 60을 넘는 괴물들 이었단 말이네.
그래도 5분이라... 내가 히어로 나이트들이랑 싸우진 못해도, 도망치는 건 거리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겠는데.
“...아. 근데 방금 단 한 분은 제외라고...?” “네. 단 한 분. 히어로 나이트들 중 가장 강력한 투기를 30분 이상 유지 가능하신 분이 계십니다.”
가장 강한데 30분 이상...!?
3분 베지터들과 확연히 차이 나는 시간에 놀라움과 동시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왕궁에서 봤던, 정말 강해 보이던 그 아저씨. 분명...
“왕국의 수호자라 불리시는 기사 단장. 오를란도 경 이십니다. 저희 히어로 나이트의 대표이시기도 하시지요.”
그래. 그럴 거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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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테 님!?” “상황은?” “어, 네! 현재까지 별다른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래. 곧 신수 님과 돌입하겠다. 너희들은 밖을 지켜라.” “네!”
하품을 하며 마당을 둘러싼 형태로 비보라의 저택을 지키던 기사들이, 마르테가 나타나자 당황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마치 전혀 이야기 들은 게 없다는 것처럼 당황하는 모습들. 흐음...
아무래도 기사들은 따로 아는 게 없는 모양인데... 그럼 슬슬 빠질 준비를 해볼까?
“이쪽입니다.”
으리으리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고급 단독주택 수준은 되는 비보라의 집 입구로 들어가자 벽과 파닥을 파헤쳐둔 곳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제대로 한번 엎은 것인지, 물건들도 얼마 없고 난장판이 된 비보라의 집.
뭐 됐어. 비보라는 관심도 없으니 슬슬...
“......응?”
그럴싸한 연기를 하면서 마르테에게 그냥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하려던 도중, 지하 안쪽에서 일렁이는 차원문이 보였다.
그런데... 뭐지? 저 차원문을 보게 되니,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묘한 기분이...
...왜지? 갑자기 가슴이 술렁거리는데. 이건...
...기대감? 아니 두려움? 뭐라 설명하기 힘든 묘한 느낌인데...
“가시죠. 세마 씨.” “......그러죠.”
...시발!? 뭐야 나 지금 간다고 말한 거야?
대답하자마자 머릿속으론 아차 하고 정정하려는데, 몸은 어느새 마르테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아니, 뭐야 저 차원문? ‘어맛 이건 가야 돼’ 란 느낌 때문에, 나도 모르게 가자고 말해버리다니.
머리로는 얼른 튀어야 한다고 경고등이 울리고 있는데, 몸은 마치 저 차원문에 홀린 듯한...
혹시 마르테 너 무슨 최면어플 이라도 가지고 있는 거냐? 아니, 어쩌지 이거?
이 술렁거리는 느낌. 어디서 느껴봤더라?
“......어...”
술렁거림과 당혹감에 어쩌지 하는 동안, 좁은 외길이 이어진 폐쇄형 던전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시발 조졌네. 이런 건 생각 못했는데.
당장 기다리던 비보라나 그 놈 부하들이 튀어나와서 내 목을 쓱싹 하는 거 아닐까?
아니 물론 쓱싹 당할 이유는 없긴 한데, 도적 출신의 범죄자 새끼니까... ‘내가 망한 건 너 때문이야~’ 이럴 수도 있잖아.
안돼. 지금이라도 나가야...
“저, 마르...” “이쪽입니다. 세마 씨.”
아 씨... 왜 이렇게 입이 안 떨어지냐. 발은 왜 이렇게 가볍게 움직이는 거고.
이런 기분은 난생처음이네. 아니, 분명 어디서 한번 느껴봤던 것 같은데...
어디였더라... 분명 에센티아에 오고 난 이후였던 것 같은데...
“여기입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외길의 끝이 보이고 그 끝에 연결된 넓어 보이는 방 입구가 보인다.
방 입구 쪽이 묘한 느낌인 게, 이거 분명 함정이 확실한 것 같은데...!
“...세마 씨.” “...네.” “...죄송합니다.”
그 말과 함께, 마르테는 미청년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날 던전의 방 안으로 밀쳐 넣었다.
날아가는 수준으로 방 안에 밀쳐진 후, 아니나 다를까 방 입구에 커다란 돌이 무너져 내리며 입구가 막혀버렸다.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 마르테는 내 예상대로 날 함정에 빠트린 모양이다.
“...아오 시발.”
이런 미친... 나란 병신은 진짜...
그렇게 다 예상하고 있었으면서도, 눈 뜬 채로 나는 비보라의 집 지하에 생긴 던전에 갇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