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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남의 여자를 빼앗는 말이 되어버렸다-135화 (136/749)

Chapter 135 - 122화 - 칫, 함정인가! (2)

“...칫. 함정인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헛소리를 내뱉어 버렸다.

뭐야 이거. 진짜 다 알고도 당했네. 왜 이렇게 된 거지?

리즈벳한테 그리 말했으면서 이렇게 제 발로 걸어 들어오다니.

골 때리네 진짜... 이렇게 빡대가리였나? 내 말 대가리는?

“...하아. 진짜...”

한숨을 쉬며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비보라나 그 부하들은 안 보이는걸 보니 푹찍 당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뭐야 그럼. 그냥 가둬두는 게 목적인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세마 씨...”

입구를 틀어막은 바위들을 확인하러 근처에 다가가니, 바위 너머에게 작게 중얼거리는 듯한 마르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죄송할거면 죄송할 짓을 하지 말던가. 병신이니?

“하... 뭐야. 뭐 돈이라도 받아 먹었어?”

이제 더 예의 차려줄 필요도 같아서 그냥 대놓고 말을 놓으며 벽 너머에 들리게 물었다.

묻는 것과 동시에 나는 벽을 살짝 두드려 보면서, 이곳을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고민하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다 저의 한심함 때문에 세마 씨를 말려들게 만들었습니다.”

흐음... 소리가 들리는걸 봐선 생각보다 두껍진 않은 모양인데...

내 싸커킥을 연속으로 때려 넣으면... 안 되려나?

“변명 같지만... 사실 제겐, 병든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이 있습니다.”

변명 맞어. 새끼야. 뭘 아닌 척 하려 그래.

“제 가족은 제게 있어서 삶의 이유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족들을 위해 어린 나이에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모험가 생활을 하다, 왕국에서 히어로 나이트를 모집하는 것을 보고 왕국 소속 히어로 나이트가 되었죠.”

마르테의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벽으로 막혀있어 입구 외의 탈출구는 없어 보인다.

“히어로 나이트가 되고 나서 얻은 수입과 모험가 생활을 하던 때 벌었던 돈을 합쳐, 불치병이나 다름없던 어머니를 어떻게든 회복시켜 드릴 수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 집을 새로 구할 여유가 없어, 한동안 제 어머니와 여동생은 왕도 외곽의 허름한 집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이구 그래. 효자네 효자.

일단 마르테가 있는 정면은 미뤄두고... 혹시 다른 길이 막혀있다거나 하진 않으려나?

“그게 얼마 전 외부인의 힘이 필요하던 비보라의 귀에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은신과 위장을 통해 숨어있다가 장을 보러 나간 제 여동생을 납치한 후, 저에게 세마 씨를 이곳에 가둬두면 여동생을 풀어주겠다고 제게 말하더군요.”

그러셨습니까. 참 고생 많으십니다.

근데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내가 좆같은 건 좆같은 거지.

“비보라는 세마 씨와 길드원 분을 이곳에 가둬둔 후, 지금 치러지고 있는 시험이 끝나면 두 분을 풀어주는 대가로 클레아 씨에게 성녀를 포기할 것을 권유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어이쿠. 죽이진 않는다니. 거 고맙네.”

아무래도 비보라는 범죄자가 된 상황에서도 우릴 죽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마르테가 리즈벳을 떼어놓고 와도 별소리 안 했던 건 협박에는 나 하나로도 충분하다 생각했기 때문인가?

일단 조금은 안심해도 되겠어. 빨리 빠져나가야 하는 건 변함없지만, 그래도 두 사람의 안전과 클레아의 시험이 끝날 때까지의 여유는 있다고 봐도 될 테니까.

“동생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 받아들이긴 했지만, 여러분을 상처 입히거나 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얘기해 두었습니다. 비보라가 다른 마음을 먹더라도, 여러분의 안전 만큼은 꼭 제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혹여, 제 여동생이... 잘못되더라도... 여러분의 안전 만큼은... 그러니까...”

마르테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상황이 대강 이해가 가는 것 같다.

비보라는 증거들도 잘 숨겨둔 덕분에 지금 정도면 클라리스가 성녀가 되는 걸로 다 무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거네. 그래도 움직이긴 힘드니 대신 움직일 사람을 찾다가 마르테를 찍은 거고.

그리고 마르테 너는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이 인질이 돼버려서 비보라의 범죄에 동참하게 됐고, 용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으로 우리의 안전만큼은 확보해 뒀으니 얌전히 있어달라 그거지?

아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고 그러네. 절이라도 해야겠어.

기껏 고생하고 나왔더니 니네 때문에 성녀를 포기해야 될 상황에 놓인 클레아는 생각도 안하는거냐?

그렇게나 강하던 새끼가... 네 덕분에 요즘 내 안에서 커지던 용사들의 인상이 확 망가졌어 새꺄. 뭐 이리 엉성해?

분명 착한 놈들이긴 한데, 바울이 자랑하듯 말하던 선택 받은 특별한 인간이라고 하기엔 좀 문제가 있네.

물론 다 알고도 넘어온 나도 병신이고.

...씁. 입구 외엔 그냥 다 그냥 벽이네. 그럼 오히려 안쪽으로 들어가는 건... 어?

...저건 뭐야.

“...야. 여긴 뭐냐?” “네? ...아. 비보라의 말로는 3년 전쯤 갑작스레 저택 지하에 던전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마물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는 특이한 던전이라, 물건을 숨겨두거나 하는 용도로 썼었다고 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제단 같은 거 말이야.” “아... 그건 비보라도 뭔지는 모른다고 했었습니다. 뭔가 결계 같은 게 있는 건지 다가가질 못한다는데, 던전의 유용성 때문에 조금 알아보다가 그냥 무시하고 있었다고...”

결계... 그래. 이 던전. 그거구나.

여신의 기억 같은 게 봉인되어 있었고, 그 기억을 보면서 마인폼을 얻었던 그 이상한 던전.

그때 봤던 커다란 계단형 제단이 아니라 그냥 작은 탁자형 제단이란 차이가 있지만...

그럼 던전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 사라지지 않는 건 그때와 같은 이상한 던전이라서 그런 건가?

“안에는 먹을 것과 물도 놔두었습니다. 제 동생의 안전이 확인된다면, 비보라는 제가 책임지고 확실히 체포할테니...”

계속해서 마르테의 비통한 변명이 이어지지만, 한 귀로 들어왔다 그대로 빠져나가 버린다.

왜지? 당장 저 제단에 가봐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강박감 때문에 저 제단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마르테를 따라 들어온 건 이 묘한 끌림 때문일까?

“...그럼. 나중에 오겠습니다. 세마 씨.”

마르테의 목소리가 끊기고, 작게 멀어지던 발소리가 사라졌을 때.

나는 어느새 침을 삼키면서, 제단에 다가가고 있었다.

미친... 뭐하는거야 이거. 얼른 나가야 되는데. 왜 이게 이리도 신경 쓰이는 거지?

이전의 제단은 그저 신비한 느낌만 받았을 뿐, 이런 이상한 기분이 들진 않았었는데.

제단을 본 순간부터 묘하게 목이 타는 것 같고, 조바심 때문에 걸음이 멈춰지질 않는다.

분명 결계가 있었을 텐데.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느새 제단 코앞까지 다가와 버렸다.

그리고 떨리는 기분으로 낮은 제단을 내려다보자, 그 위에 놓여진 기묘한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촛대? 나무 장식? 미술품? 뭐라고 해야 하지?

제단 위에 놓여져 있는, 뭐라 형용하기 힘든 기묘한 나무 같은 모양의 장식.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있는 여러 개의 가지들 중 2개의 가지 끝에, 묘하게 불길한 검은 구슬 2개가 달려있다.

열매 같기도 하고 장식 같기도 한 그 구슬을 보자, 알 수 없는 감각이 몸을 휘감아서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뭘까. 엄청 불쾌하고 두려운 느낌인데... 한편으론 묘한 흥분과 기대감이...

“......하아... 후우...”

떨리는 손으로 그 각각의 구슬에 손을 뻗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구슬들이 내 양 손의 손바닥 위로 떨어진다.

사람이라기엔 너무 거친 내 양 손 위에 놓인 커다란 사탕 정도 크기의 칙칙한 검은 구슬들.

왜지? 왜 이렇게 가슴이 술렁이는 거지? 왜 갑자기 알아서 떨어진 건데?

뭐야 이거. 알 수 없는 느낌 때문에 함정이란 걸 알고도 들어온 던전에서, 뭔가 정해져 있던 것처럼 이어지는 이 흐름은?

“후우... 후우...”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두렵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두려운 거지?

기대된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기대되는 거지?

뭔가... 눈 앞에 폭탄인지 선물인지 알 수 없는 상자를 놔두고 있는 듯한 이상한 흥분감.

아니, 그게 아니야.

지금 내 몸에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감정은...

......죄책감?

“푸흐...! 후으...! 크윽...!”

손바닥 위에 놓은 구슬들에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점점 더 심해지는 몸의 떨림.

그 떨림에 거친 숨을 내뱉으며 알 수 없는 감정들에 지배당하던 나는.

그대로, 그 두 개의 구슬을 내 양 눈에 박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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