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2 - 129화 - 성녀의 맹세! (2)
“축하해 클레아! 아니, 클레아 성녀!”
클레아의 서약이 끝난 뒤, 바울이 호들갑을 떨며 달려가 축하를 건넸다.
그러나 클레아는 그런 바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그 옆을 지나 나에게 걸어왔다.
그렇게 당황하는 바울을 무시한 채 내게 다가온 클레아는,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허가를 구했다.
“주인님. 오늘 밤. 준비해 둔 저의 서약을 바치고 싶습니다. 괜찮을까요?” “푸흐흐... 결심한 거야?” “네. 이제, 망설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결의에 찬 클레아의 모습.
마치 당연한 일을 하는 것 같은 당당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서약이라... 뭘 준비해 둔걸까.
“아직 이런저런 행사가 남아있으니, 밤에 숙소에서...♡”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머리를 숙여 나에게 인사하곤, 다시 사제들 사이로 돌아간 클레아.
어떻게 클레아의 복종을 받아낼까 고민 중이었는데... 설마 스스로 나설 줄은 몰랐는걸?
오늘 밤... 드디어 클레아도 내 것이 된다 이거지...
어디,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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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아의 서약식을 구경한 후, 잠시 시간이 남는 동안 왕성에 다녀왔다.
히어로 이터 토벌에 참가한 모험가들에게 주는 사례금에, 비보라와 마르테 관련 일에 대한 왕국 차원의 사죄 등등... 왕도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확실히 보상해 주겠다고 나선 국왕.
마르테가 고지식하게도, 비보라 관련 일을 빠짐없이 보고한 모양이다. 새끼...
덕분에 마르테는 히어로 나이트의 품위를 떨어트렸단 이유로 6개월 간 급여 삭감. 왕정국가에서 저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뭐, 그래도. 왕국 차원에서 히어로 나이트들의 가족 보호를 신경 써줄 예정이라고 하니, 마르테 입장에선 잘 된 일이겠지.
그런데 굳이 사죄가 아니라고 해도 왕국에서 날 대우해 주는 게 상당히 후하단 느낌이다.
히어로 이터 토벌에 참여한 다른 모험가들에겐 그냥 금화 1닢 정도의 사례금이 주어진다는데... 나는 굳이 왕궁에 불러서 필요한 건 없느냐 앞으론 뭐 할거냐 하며 원하는걸 말해보거라~ 하는 특별대우.
그런 국왕의 물음에 잠깐 고민하다 아직 레벨도 낮고 모험가 활동을 쭉 이어나갈 예정이라 쓸 일이 많을 돈이 좋겠다고 답했더니... 국왕은 무려 금화 300닢을 건네 주었다.
제법 커다란 상자에 가득 찬 황금빛을 확인하곤 순간 입이 떡 벌어져서, 순간 이걸 받아도 되나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국왕은 이 기회에 날 왕국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로 써먹으려는 모양인데...
이건 다른 나라로 가지 말라는 그런 뜻이겠지?
만약 이 돈 받고 입 싹 닦으면서 다른 나라로 가면 날 죽이려 들려나? ...뭐 아직 갈 생각도 없지만.
일단 돈을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오케이. 땡큐!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던 왕성에서 순식간에 갑부가 되어, 돌아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말 울음소리를 내며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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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흐흐... 내 시대가 왔구나!” “후후. 정말 기분 좋아 보이네. 그렇게 좋아?” “암! 물론이지! 우리 이제 부자라고!”
리즈벳과 테이블에 앉아, 테이블 위에 열려있는 상자 안의 금화들을 보며 만세를 불렀다.
금화가 300닢이야 300닢!
안 그래도 신수라고 대우받던 탓에 돈은 나름 쪼들리진 않았는데, 이 정도면 정말 뭘 해도 될 것 같은 액수잖아!
“응. 국왕이 확실히 통이 크긴 하네. 이정도 액수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푸흐흐. 이 정도로 대우해 주니까 다른 나라는 가지 말란 거겠지. 그렇다 해도 무시무시한 액수긴 하지만.”
처음엔 조금 떨떠름 했던 기분이,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부자가 되었단 사실이 체감되면서 더욱 더 고조되어 간다.
하... 이 정도면 리즈벳이랑 클레아에게 아무거나 선물해도 여유로울 거고... 아! 집을 사도 되겠는데? 어떻게 써야 하지 이거!?
“음... 이 정도면 길드 소속 사업체를 만들어도 되겠는걸?”
내가 고민하는 동안 리즈벳의 입에서 놀라운 얘기가 나왔다. 세상에, 사업!? 회사를 만든다고!?
“사업이라니! 돈 생겼다고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건.” “평범한 사업이라면 그렇겠지만... 뭐,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하자. 아직 주인님은 길드 소속 사업체 같은 것들을 모르니까. 나도 잘 아는 건 아니고.”
흐음? 길드 소속 사업체는 뭔가 다른가?
뭐 그래도... 이 정도 액수라면, 아이템만 확실하다면 사업 해봐도 괜찮을 것 같은 액수긴 하지.
그래도 일단은, 생활의 안정이 먼저야. 이런 저런 것들을 하고 나서 남으면 그때 생각해봐야지.
“아. 클레아 왔나 보다.”
리즈벳의 말이 끝나자 마자, 문 너머에서 노크소리가 들린다.
왔구나! 오늘의 또 다른 기쁨!
냅다 달려가 문을 열자, 손에 뭔가 짐을 들고 있는 클레아가 웃으면서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주인님.” “어서 와 클레아. 기다리고 있었어!” “후훗. 네. 기분 좋아 보이시는데, 무슨 일 있으셨나요?”
클레아의 짐을 들어주면서 테이블에 앉힌 후, 오늘 국왕을 만나고 온 일을 말해주면서 금화를 받아왔다고 말해 주었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내 얘기를 들은 후, 클레아는 고개를 끄떡이며 내게 얼굴을 향했다.
“그렇군요... 이런 커다란 액수를...” “사실 완전히 위로나 보상으로 줬다기 보단, 어디 가지 말란 의미가 클 거야. 날 왕국의 마스코트처럼 써먹으려는 것 아닐까 싶은데.”
어째 놀라거나 기뻐하기 보단, 오히려 턱에 손을 가져다 대곤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클레아.
“과연... 국왕님도... 그렇다면... 응...”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클레아의 모습이 어쩐지 묘한데... 뭘 생각하는 걸까?
“오늘로 클레아도 내 암컷이 될 테니, 이건 우리 모두의 돈이나 마찬가지지. 뭐 하고 싶은 것 있어 클레아?” “...후훗. 마음만으로 감사합니다. 주인님.” “필요한 것 생기면 말해. 내 암컷들에겐 뭐든 해줄 수 있으니까.”
으음. 부자가 됐는데 리즈벳도 그렇고 클레아도 그렇게 막 기쁜 것 같진 않네.
오히려 내가 기뻐하는 것에 만족하는 듯한 모습들인데...
뭔가 용돈 받아서 기뻐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님 같은 느낌이라서 묘하네. 좀 더 기뻐해도 될 텐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오늘, 제가 주인님께 서약을 바치겠다 말씀 드렸었죠.” “응. 기다리고 있었어. 피곤하진 않아?” “네. 저도 기대하고 있었답니다. 주인님의 암컷이 된다는 기대감 때문에, 오히려 힘이 솟아오르고 있어요.”
이거 기특한걸. 그렇게나 기대하고 있다니.
흡족한 대답을 들으며 클레아의 옆에 다가가, 살며시 클레아의 가슴을 주무르자 클레아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몸을 맡기듯이 기댄다.
좋아. 이제 정말 준비되었단 말이지.
“한번 내 암컷이 되면, 더 이상 바울과... 아니, 평생 나만의 암컷이 되어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교미는 못하게 될 텐데... 각오됐단 거지?” “후후... 각오? 아뇨. 그것은 암컷으로서의 진정한 행복.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이겠어요.”
눈을 감은 채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클레아.
그래. 그렇게나 확고하다면 이제...
“그 전에.”
클레아의 대답에 흡족함을 느끼던 중, 클레아가 자신의 가슴을 주무르는 내 손에 자신의 손을 올리며 리즈벳에게 얼굴을 향했다.
“리즈랑 잠깐... 아. 같이 씻으면서 준비를 해도 될까요? 미리 리즈에게 물어봐 둘 게 있어서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나에게 웃으며 미소를 보여주는 클레아.
왠지 모르게 그 클레아의 미소가, 살짝 무섭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