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7 - 134화 - 타락한 성녀! (3)
방에 들어온 순간, 클레아가 말했던 대로 정말 누군가 침입한 것이 느껴졌다.
다만... 나는 그냥 침대 근처에서 누군가의 색이 느껴진다 수준인데... 클레아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에요. 비보라. 아니면, 그 손부터 잘라달라는 걸까요?”
비보라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까지,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눈을 감고 있는 상태인데도, 뚜렷하게 잘 보이는 것처럼 침대 너머를 향해 무서운 미소를 짓고 있는 클레아.
감지 능력이 뛰어나다곤 해도 눈이 안보이던 클레아였으니, 볼 수 있게 된 건 기뻐해야 할 일이긴 하지.
근데... 그렇다곤 해도...
“이제야 기어 나오시네요. 그보다 슬슬 그 의미 없는 은신은 풀어 주시겠어요?” “...정말 대단하군. 클레아 수녀.”
침대의 옆에서 흐물거리는 듯한 광경이 보이더니, 은신하고 있던 비보라가 나타난다.
난 그냥 저기쯤 비보라가 있구나 하고 있었는데, 눈을 감은 채 은신까지 꿰뚫어 보는 클레아의 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성능이 좋은 거 아닌가 클레아의 마안은?
비슷하거나 혹은 내 마안보다 조금 떨어지는 그런 수준이 아닐까 싶었는데... 주인인 나보다 더 뛰어난 마안이라니.
내 마안이 엄청 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단숨에 미묘해져 버린 것 같아서 좀 시무룩해지는걸.
“...셋만 온건가?” “보안 마법 때문에 지쳐있는 쥐새끼를 잡는건데, 굳이 더 올 필요는 없죠.” “하... 참 얕보는군...”
도망친 이후 고생을 좀 한 모양인지 옷 군데군데가 너덜너덜하고 머리도 개판인 비보라.
어처구니 없단 것처럼 피식 웃지만, 너덜너덜한 모습과 식은땀을 흘리는 그 표정엔 여유가 없어 보인다..
거기다 내 마안에, 비보라의 에세르가 바닥이란 것도 보이고 있으니... 물론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설마 은신한 내가 움직이는 것까지 파악할 수 있다니... 감지 능력이 그 정도일 줄은...” “후후후... 감지?”
한 걸음. 비보라에게 다가가며 웃는 클레아.
지쳐서 스킬 쓰기도 힘들어 보이는 비보라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다가가는 건...
내가 클레아를 제지하자, 클레아는 괜찮다는 것처럼 내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떡인 후 다시 비보라를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뭐어... 제 감지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뛰어나긴 하지만... 그것만으론 당신의 은신을 완전히 파악할 순 없죠.” “...뭐라고?” “지금 저에겐 당신의 에세르는 물론이고, 까딱거리는 손가락까지 모두 보인답니다.” “...그건 말도 안 돼. 아무리 감지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거기까진...” “그러니까, 감지 능력이 아니라고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한 걸음 더 비보라에게 다가가는 클레아.
“......! 무, 무슨...!”
그리고 클레아는, 마치... 숨길 것 없다는 것처럼, 비보라를 향해 자신의 눈을 보였다.
“보인다고 했잖아요? 당신이 뭘 하든, 제 눈 앞에서는 소용없는 짓이랍니다.” “...뭐냐, 그 눈은... 네 옆의 몬스터랑 같은...”
그러자 클레아의 뒤에서, 불덩이가 날아와 비보라의 복부에서 터져나갔다.
“크헉!!”
클레아의 눈을 보고 당황하고 있던 비보라는, 그 불덩이를 피하지 못하고 폭발의 충격에 뒤로 쓰러진다.
불이 붙지는 않았지만 작은 폭발로 인해 옷에 작게 구멍이 생기면서, 폭발에 그을린 비보라의 배가 드러난다.
“주인님을 모욕하다니, 죽고 싶어? 물론 살려둘 생각도 없지만...” “후후. 입조심 하는 게 좋을 거에요. 저와 리즈는 주인님에 대한 모욕을 그냥 넘기지 않거든요.” “크흐윽...! 미, 미친... 주인님이라고...?” “네에. 그래요.”
그렇게 말한 후, 리즈벳과 클레아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각자 내 양쪽 옆구리에 자신들이 가슴을 밀착시키며 달라붙었다.
말박이를 클레아가 넘겨받아 손이 자유로워진 나는, 두 사람에게 호응하듯이 내 암컷들의 가슴을 움켜지었다.
“아앙♡ 주인님♡” “후훗...♡ 여기 리즈. 그리고 저는... 우수한 수컷인 주인님의 암컷 노예랍니다♡” “...미친년들...”
비보라가 황당하단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다가, 다리를 떨며 몸을 일으켰다.
“설마... 이런 미친년 이였을 줄이야... 바울 주교의 연인이라고 들었는데...” “풋... 아하하핫! 바울? 그런 역겨운 수컷의 연인? 제가?” “어리석긴♡ 주인님을 알게 된 암컷이 인간 따위를 고를 이유가 없는데♡”
어이없다는 표정에서, 질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변하면서 이쪽을 노려보는 비보라.
마치 보기 싫은 것을 봤다는 것처럼, 비보라의 표정이 구겨지며 분노가 서린다.
“정말... 역겹군... 이런 여자가 성녀라니...” “후훗. 인간인 당신은 이해할 수 없겠죠. 그것도 열등한 인간 수컷이니까.” “뭐가 그리 당당한 건지 모르겠지만... 너 같은 더러운 창녀가 성녀가 되도록 놔둘 순 없다.” “아하핫♡ 잘도 말하네♡ 유흥업으로 번 돈을 써서 클라리스란 여자를 성녀로 만들려고 한 주제에♡”
깔깔거리며 리즈벳이 비웃자, 비보라는 여기서도 보일 정도로 어금니를 악물며 이쪽을 노려본다.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면서, 천천히 발을 끄는 비보라.
“......반드시, 네 년 목에 내 칼을 박아주마. 오늘 내 앞에서 주절거린 것, 전부...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쿡쿡쿡...♡ 당신 따위가? 가능할거라 생각하나요?” “...씨발... 두고 봐라. 반드시...!”
클레아의 도발에 표정을 잔뜩 구기던 비보라의 몸이 흐릿해지면서, 점점 투명해진다.
비보라의 은신을 보고 허겁지겁 말박이를 클레아에게서 넘겨받아 달려들려 하는데, 클레아가 손에서 말박이를 놓지 않았다.
왜 그러냔 표정으로 클레아를 쳐다보니, 오히려 안심하란 것처럼 날 향해 빙긋 웃는 클레아.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며, 클레아는 창문 근처의 벽을 가리켰다.
“리즈. 저 쪽.” “맡겨둬. 에잇!” “커헉!!!!”
클레아가 가르킨 곳을 향해 리즈벳이 손을 뻗어 무언가를 움켜지듯이 붙잡더니, 옆으로 손을 내던진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금이 가면서, 비보라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들고 있던 단검조차 떨어트리고, 은신이 풀린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비보라.
클레아와 리즈벳이 천천히 하이힐을 또각거리면서, 그런 비보라를 향해 다가간다
말려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괜찮을 것 같단 느낌에 말리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왜지? 비보라는 고레벨 모험가인데... 아무리 에세르가 바닥인 상태라고 해도 위험할거라 생각되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위기감이 느껴지지가 않는 걸까.
“쿨럭, 쿨럭! 큭, 이, 이게 무슨... 크아아악!!!”
벽에 부딪친 충격에 쿨럭거리던 비보라.
그런 비보라에게 다가간 클레아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발을 들어, 킬힐에 가까운 하이힐의 굽으로 비보라의 허벅지를 내려찍었다.
어찌나 강하게 밟은 건지, 굽이 비보라의 허벅지에 푹 박히더니 피가 새어 나온다.
“크아아아아악!! 이, 씨바알!! 끄아악!!” “아하♡ 기분 좋은 비명이네요♡ 더, 더 울부짖어 보세요!”
하이힐로 자근자근 비보라의 허벅지를 짓밟으며, 비보라를 향해 외치는 클레아.
호에에엑... 졸라 아프겠다... 저 하이힐 굽, 제법 날카로웠는데...
“끄아아아악! 미, 미친년이!!!” “아하핫! 꽤나 즐겁네요! 쓰레기 같은 인간을 짓밟아 주는 건!”
비보라는 내려다보는 마족눈을 반짝이며,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모습으로 웃는 클레아.
엄마야... 클레아가 좀 무서워...
근데 왜... 그런 무서운 클레아의 모습인데, 이런 흡족한 느낌이 드는 걸까...
“후후...♡ 비보라. 내가 왜 당신한테 이것저것 떠들어준 건지, 왜 우리끼리만 온 건지 이해가 안되나요?”
클레아가 비보라의 허벅지에서 힐을 뽑은 뒤, 비보라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방금 까지 사람의 허벅지를 하이힐로 짓밟던 얼굴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미소로, 비보라를 바라보며 웃는 클레아.
비보라가 신음소리를 흘리며 자신을 올려다보자, 클레아는 감고 있던 마족눈을 보이면서 말했다.
“오늘, 당신을 살려 둘 생각이 없기 때문이에요. 약해진 쥐새끼를 잡을 기회를 놓칠 리가 없잖아요?” “크으윽...! 서, 성녀가, 살인을 하겠다고...?” “쿡쿡쿡...♡”
반짝이는 금발을 쓸어 넘기며, 비보라를 향해 웃어 보이는 클레아.
“주인님께 해를 끼친 순간, 당신의 죽음은 결정되어 있었답니다. 주인님께 해를 끼친 죄는, 그 무엇보다 무거우니까요.”
웃는 클레아의 표정에선, 전혀 죄책감이나 불안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사들을 데려오지 않은 건 시간이 없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보다, 당신만은 꼭 제 손으로 죽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마, 말도 안돼... 성녀가, 아니 여신교의 성직자가 이 무슨...!” “그 무엇도, 주인님과 비교할 순 없답니다.”
클레아가 손을 펼치자, 리즈벳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비보라의 단검을 클레아의 손에 쥐어준다.
“클레아. 그런 거라면 꼭 클레아가 아니어도...” “후후. 걱정 마세요. 주인님. 아니 그것보다... 이 쓰레기는, 꼭 제가 처리하고 싶거든요♡”
아니, 비보라는 나도 기회가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다 싶을 정도로 패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내 암컷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조금...
“크, 크아아아아악!!!” “! 이새끼!!”
내가 단검을 쥔 클레아를 보며 생각하던 사이, 비보라가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쳤다.
발버둥치며 클레아를 밀어내려던 비보라를 본 나는, 그대로 비보라를 걷어 차버렸다.
내 암컷 손에 피를 묻히는 게 좀 그렇단 거지, 내 암컷을 밀쳐도 된다고는 안 했거든?
“아아...♡ 감사합니다. 주인님♡ 이 쓰레기. 얼른 멱을 따버려야겠네요♡”
내 발길질에 쓰러진 비보라의 머리채를 붙잡아, 위로 들어올리는 클레아.
아으... 이거 내버려둬도 되는 건가?
머리로는 그냥 내가 나서야지 싶은데...
왜지. 이상하게 저런 클레아의 모습에 흡족함이 느껴져서, 입이 안 떨어져...
“후후... 아까, 제 목에 당신의 칼을 박아 주겠다고 했었나요?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네요. 후후...♡” “...씨발... 너 같은 년을 성녀로 인정할 사람은 없어... 내가 아니라도... 반드시 네 년 목에 누군가의 칼이...” “풋. 헛소리는 지옥에서 하도록 하세요. 쓰레기.”
비보라의 말을 끊은 클레아는, 그대로 비보라의 목에 손에 쥔 칼을 찔러 넣었다.
목과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비보라는 그대로 목에 칼이 박힌 채 바닥에 쓰러졌다.
“커헉... 꺽... 크, 클라... 미안... 끅...”
허공을 바라보며 무어라 중얼거리던 비보라는, 곧 손을 떨어트리며 움찔거리더니... 그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비보라의 죽어가는 모습을, 오싹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던 리즈벳과 클레아.
클레아는 곧 비보라의 곁에서 무릎을 꿇은 뒤,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후후...♡ 여신님. 열등한 인간 수컷 하나가 여신님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부디 그 영혼을, 불타는 지옥의 바닥으로 인도하시길...♡”
손에 피가 묻은 클레아의 기도가, 조용히 내 귀에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