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9 - 136화 - 성녀의 계획! (2)
“...라인하르트 왕국의 시민 여러분.”
조용해진 광장에, 클레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금, 에센티아는 이제까지 없던 유래 없는 위기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클레아는, 마이크가 놓여진 발표대 위에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동시에, 클레아 뒤에 앉아있던 몇몇 대주교들의 표정이 무언가 이상하단 것처럼 변한다.
“여신님의 뜻을 거스르는 마물들... 그 마물들의 위협이 극대화된, 히어로 이터라는 마물이 에센티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표정이 변하지 않는 것은, 교황을 비롯해 절반이 조금 넘는 대주교들.
그 외에는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처럼, 당황스러운 표정들을 짓고 있다.
“왕국의 보호가 약해지는 먼 지방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히어로 이터의 위협은, 얼마 전 왕도에까지 닿아 4명의 사망자와 38명의 부상자. 그리고 왕국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하는 클레아의 말에, 주변의 시민들이 고개를 끄떡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듣는다.
사실 넓은 왕도에서 보면 정말 작은 피해였지만, 그래도 왕도에 피해가 나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일터.
“오늘 성녀가 되기 전까지, 저는 그 순리를 거스르는 마물. 히어로 이터를 두 번 마주하였고, 그 마물들을 보며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히어로 이터라는 마물의 출현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란 것을.”
이제부터 시작이란 말에,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크나큰 위협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왕국을 수호하는 용사들도 막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커다란 위협이.”
너무나도 확신에 찬 성녀의 말은, 시민들에게 조금씩 두려움이 퍼져나가게 만든다.
“여신님의 보호가 절실한, 이 커다란 위협 앞에서... 여신교의 새로운 성녀가 된 저. 네리스 클레아는 한가지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흐음? 희망이라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그 희망이야 말로, 여신님께서 히어로 이터에 대항하기 위해 저희에게 보내주신 여신님의 은총이란 것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클레아가, 잠시 고개를 숙이다가 가슴 앞에 주먹을 쥐며 외친다.
“여러분도 아시겠지요. 저희 왕국에 직접 찾아오신 신수. 세마 님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 저요?
“세마 님께서는, 라디아에 나타났던 히어로 이터를 직접 토벌하시고... 더불어 이번 왕국에서 나타났던 히어로 이터를 토벌하는데 도움을 주셨습니다.”
어, 그렇긴 한데요.
“왕국에 관심 없는 다른 신수들과 달리, 자발적으로 찾아와 굳이 모험가를 자처하며 나서신 세마님. 저를 구해주시고, 사람들을 지키시며, 히어로 이터를 토벌하는 그 분을 보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그 분이야 말로...! 여신님께서 왕국을 지키기 위해 내려 보내주신 신수란 것을!”
네? 제가요?
아니 노숙자 신이 보내주긴 했는데요.
“신수라는 존재! 누군가는 그저 몬스터일 뿐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성스러운 생물이라고도 말합니다. 인간을 자신의 아래로 보는 그 존재들을, 누군가는 거부하고 누군가는 숭배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클레아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 확신에 찬 목소리가, 어쩐지 주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는 것 같다.
“스스로 왕국에 찾아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람들을 지키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히어로 이터를 쫓으며 그들을 토벌하려 하는 세마 님! 저는 성녀로서 확신합니다. 평범한 신수들과는 다른 그 분이야 말로, 여신님께서 왕국에 보내주신 진짜 신수이시란 것을!”
어쩐지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날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다.
으아아... 좀 부끄러운데 이거...
“새로운 성녀가 된 저, 네리스 클레아가 감히 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 네리스 클레아는, 절 지켜주신 그 분을 성녀의 권한으로 여신교 성녀의 수호자로 지목할 것입니다. 더불어! 모험가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그 분을 따라, 그 분과 함께 모험가 활동을 하며 왕국을, 아니 에센티아를 위협하는 히어로 이터를 쫓을 것입니다!”
클레아가 말하자, 당황하던 몇몇 주교들의 표정에 더욱 당혹감이 서린다.
“성녀는 본래 왕도에서 여신교를 지탱해야 할 존재.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위협에 대항하지 못한다면 성녀라는 자리엔 의미가 없습니다!”
조금 당황하던 시민들이, 어쩐지 점점 그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곧, 그 끄덕임이 박수로 변하면서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히어로 이터라는 위협을 직접 마주한 경험 때문이겠지.
하하... 클레아가 꽤 재미난 이벤트를...
“추가적으로, 여러분께 전달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엥, 더 있다고?
“현재 여신교 내부에서, 위협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부패한 자들이 여신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 자들을 성녀의 권한으로 처벌할 것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기사들이 단상 아래에 모인다.
“여신교를 조종하려는 외부자들과 결탁해, 그들에게서 재물을 받으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탐해온 부패한 성직자들... 아스투스 대주교와 그 휘하 파벌!”
클레아가 뒤를 돌아보며 지목하자, 기사들이 단상 위로 올라가 아스투스 대주교를 포함한 몇명의 사제들을 결박한다.
아스투스 대주교가 뭐라 외치지만, 교황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그를 차갑게 바라본다.
으음... 혹시 클레아가 성녀 준비를 하느라 바빴던 게 아니라 이걸 준비하고 있었던 건가...?
“거기에 더해... 바울 주교!”
뭐? 바울?
“성녀 선출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 그 역시 처벌해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이 부패한 자들을, 왕국과 함께 죄를 낱낱이 밝혀내 처벌할 것입니다!”
저 너머에서, 너무나도 당황하는 바울의 얼굴이 보인다.
“...레아! 클레아! 무슨 말이야!? 아니야! 아니라고! 난...!”
기사들에게 붙잡혀 끌려가면서 클레아에게 무어라 외치는 바울이지만...
그런 바울을 내려다보는 클레아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 없다.
아니, 오히려 저 표정은 뭐랄까...
미소?
“여러분께 이 자리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길었던 평화로 인해, 여신교 내부에 이런 부패한 자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끌려가던 바울을 지켜보던 클레아가, 시민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그 부패한 자들을 걷어내고, 다가오는 위협에 맞서 여신교는 여신님의 뜻에 따라, 왕국과 협력해 여러분을 지킬 방패가 될 것입니다.”
끌려가는 사제들을 보고 놀라던 시민들이, 클레아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인다.
“왕도의 여신교 지부에서는, 교황님과 다른 분들께서 여신교의 중심을 지키실 것입니다. 말씀 드렸던 것처럼, 저 성녀 클레아는 신수이신 세마 님을 따라, 그 분의 길드에 들어가 히어로 이터의 이빨이 여러분에게 닿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녀가 직접 나서서, 얼마 전 자신들을 위협했던 히어로 이터라는 마물을 토벌하겠다.
그 말은, 여태까지 안락한 교회 안에서 지내오던 성녀들을 보고 있던 시민들에게 큰 충격이 된 것 같았다.
“성녀로서... 반드시 에센티아를 위협하는 어둠을 걷어 내겠습니다. 이상으로, 제 말을 마치겠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여러분.”
그리고 그 충격은, 새로운 성녀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며 환호성이 나오게 만들었다.
신수를 따라 마물을 잡는 여신교의 성녀. 클레아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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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아!!!”
성녀 연설이 끝난 후, 대기실에 들어간 클레아에게 클라리스가 다가와 그녀의 이름을 외친다.
“어머. 클라리스 수녀. 한동안 안보이시더니 이제 나타나신 건가요?” “웃기지마! 성녀가 마물을 토벌하러 돌아다니겠다고!?” “네. 히어로 이터란 위협이 있으니까요. 당연한 거죠.” “다 네 추측이잖아! 성녀의 역할이 그런 건 줄 알아!?”
여태까지 보이던 차분한 태도는 온데간데 없이, 클레아에게 소리지르는 클라리스.
그런 클라리스에게, 클레아는 눈을 감은 채 웃음으로 대답했다.
“어머, 클라리스 수녀가 무슨 상관이시죠? 상급 수녀이긴 하지만, 그저 일개 수녀일 뿐이면서.” “당장 성녀 자리를 물러나! 그런 제멋대로인 행동. 용납할 수 없어!” “교황님께도 허가를 받았는데, 클라리스 수녀가 용납 못하면 어쩌려구요?” “큭...!!!”
정말 분한 것처럼, 얼굴을 붉힌 채 몸을 떠는 클라리스지만... 그 말 대로였다.
아스투스를 포함한 자신의 뒷배들은, 방금 클라리스로 인해 모조리 축출된 상태.
하지만, 아무리 돈으로 자신의 뒷배가 되어준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 자들은 성직자였는데.
여신교가 아무리 평화에 찌들었었다 해도, 대주교란 지위는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게 아닌데.
큰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 사람들을, 그렇게 모조리 축출할 줄이야.
“......비보라는... 어떻게 됐어...!”
할 말을 잃고 몸을 떨던 클라리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연인에 대해 묻는다.
비보라. 한 때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만을 바라보던 바보.
성녀가 되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자신을 성녀로 만들기 위해 말도 없이 도와주던 그 비보라.
자신만 믿으라고 말한 후, 비보라는 클레아를 방해하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그와의 연락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수배자가 되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의 능력으로도 연락이 완전히 끊기다니.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길래...
“...후후. 그런 사람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다 알면서. 시치미 떼지마.” “아핫. 어찌나 증거를 잘 숨겼던지. 다들 붙잡혀 가는 와중에 클라리스 수녀는 어찌 할 수가 없더라구요.” “됐어! 비보라는 어떻게 된 거야!?” “쿡쿡쿡...♡ 클라리스 수녀. 이 참에 말해두죠.” “...!? 뭐, 뭐야!?”
클라리스에게 다가와, 그녀의 몸을 껴안으며 포옹하는 클레아.
그리고 그녀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다 끝났으니, 깝치지 말고 앞으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도록 하세요.”
오싹함이 느껴지는 클레아의 목소리가, 클라리스의 귀에 파고든다.
“당신의 수컷처럼 죽기 싫다면 말이에요.”
자신에게 속삭이는 성녀의 말에,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는 클라리스.
가로로 긴 동공이 보이는 검은 짐승의 눈이,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여신교에서 클라리스라는 이름의 수녀가 그만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