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9 - 셀레스티아의 비밀 1
“그 더러운 몬스터가 감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부끄러움에 욕을 내뱉었다.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그 몬스터를 이 라디아에서 내쫓으려 한 것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설마 그 몬스터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사람들을 태우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었지만,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몬스터들의 속도는 뻔한 수준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했던 게 이런 결과가 될 줄은...
거기다... 그런 속도로 움직이는데, 등 위에 타고 있던 자신에겐 이상할 정도로 안락함이 느껴져서...
몬스터의 등 위에 타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그만 무심코 속으로 감탄해 버리다니...
“치욕이에요!”
아니, 그런 건 일단 아무래도 좋아.
지금 가장 곤란한 건, 그 몬스터를 내쫓으려던 내 작전이 망쳐져 버렸단 것이니까.
도대체 그 몬스터는... 아무리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어떻게 그 넓은 땅 위에서 알버트를 찾아낸 거지...?
알버트 몰래 무리해서 내쫓아낸 후, 뒷수습할 준비까지 모두 갖춰놨었는데...! 그게 전부 허사가 되어 버렸어!
이대로...! 나와 알버트가 지켜낸 이 땅에, 그 역겨운 몬스터를 놔둬야 한단 말이야!?
“후우...! 윽...!”
답답해...! 아직도 그 몬스터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 해서, 숨쉴 수가 없어...!
하아... 알버트... 오늘, 수레차 안에서 날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이 너무나도 실망한 눈빛이었죠...
하지만, 어째서 몰라주는 건가요. 알버트...
당신도... 몬스터가 어떠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
나를 구해준 용사인 당신이, 어째서 이제 와서 그런 몬스터와 가까이 지내려는 건가요.
몬스터라는 짐승은, 인간과 함께할 수 없는 해악의 존재.
신수니 뭐니 해 봤자,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왜 몰라주는 건가요...
“......후우.”
...진정하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도록 하죠.
...알버트... 실망한 눈빛이긴 했지만, 심하게 화를 내지 않은 것을 보면... 내 심정을 이해하고는 있다는 거겠죠.
알버트와는, 제대로 한번 얘기를 해 봐야겠네요.
그리고 그 몬스터... 라디아에서 내쫓아내지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라디아에서 살기 힘들다고 느낄 정도로, 집요하게 괴롭혀 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알버트와 나의 집. 나의 고향 라디아... 결코, 그 몬스터가 더럽히게 놔 두진 않겠어요.
...하지만 그 전에, 알버트가 반드시 압류 명령을 취소하고 제대로 사과하라고 말했으니...
더이상 내 남편을 실망시키긴 너무 미안하니까...
정말 내키진 않지만, 지금은... 참는 수 밖에.
“...그 몬스터. 감히, 이 나에게...”
...사과하러 오라고 했겠다? 좋아요. 지금은 얼마든지 사과해 주겠어요.
몬스터 주제에 모험가를 한다고 했었나... 그럼, 모험가들이 눈 돌아갈만한 걸 선물해 준다면 되겠죠.
무릎을 꿇느니 뭐니 말은 했었지만, 귀족의 입장으로서 그럴 수도 없으니...
그 몬스터도 귀족과 척지려 하진 않을 거고... 음. 좋아요. 평범한 모험가가 구하기 힘든 아주 값비싼 선물을 전해주면,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물러나겠죠.
맘껏 좋아하도록 하세요. 역겨운 몬스터.
그 대신, 그 선물을 대가로... 당신을, 반드시 이 라디아에서 내쫓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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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아~ 이런 누추한 곳에 와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셀레스티아 님.”
질질 시간을 끌기도 싫어서, 아침 식사도 하지 않고 바로 하인 둘을 데리고 그 몬스터의 건물 앞으로 나왔다.
되도록 얼굴 마주치기도 싫어서, 선물만 전달하고 가려고 했는데... 정말, 어찌 알고 나와있는 건가요. 이 몬스터는?
“다른 사람이 보면 시끄러워 질 것 같아서 이런 시간에 찾아왔으니, 감사하도록 하세요.” “아, 예에~.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셀레스티아 님.”
하아... 저 기분 나쁜 웃음과 표정은 참... 뭐 저렇게 흉측하게 생긴 건지...
체형만 떼놓고 보면 꽤 근사하다 싶지만, 저 거뭇한 피부 색도 그렇고... 정말, 역겹기 그지 없네요.
얼른 볼일 끝내고 돌아가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하인들에게 손짓을 보내니, 준비하고 있던 하인들이 저 몬스터의 앞에 준비한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뭡니까? 이건?” “어제 일에 대한 사과의 선물이에요. 모험가라고 했었죠? 보기 힘든 물건들이니, 받도록 해요.”
그렇게 말한 후, 얼른 떠나려고 타고 온 수레차에 오르려는데... 저 역겨운 몬스터가, 어이없단 듯한 목소리로 날 불러 세운다.
“잠시만요. 어디 가십니까?” “...볼일이 끝났으니 돌아가려는 거죠. 여긴 짐승 냄새가 나서 참기 힘드니, 얼른 돌아가고 싶거든요.” “아직 볼일 안 끝나셨거든요? 무릎 꿇고 사과하셔야죠?” “...쯧.”
하... 이 몬스터, 지금 무슨 소릴...
귀족, 그것도 영주의 부인인 나를, 몬스터인 자신 앞에 무릎 꿇게 만들겠다?
“...왕국의 귀족이 그렇게 간단하게 무릎 꿇을 거라 생각했나요? 거기 선물 정도면...” “선물이고 나발이고, 귀족이 너무 간단하게 말을 바꾸시는데요? 왕국의 귀족들은 다 그런가 보죠?” “......” “어휴, 그 나이에 사과하나 똑바로 못하는 어른이 라인하르트 왕국의 귀족이었다니,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네요. 왕국 귀족이 이래서야, 왕국의 앞날이 뻔한 것 같네요.” “큭...! 이, 이 몬스터가...!” “아~ 이거 영주님은 언제 돌아오시려나~.”
이, 이 분수를 모르는 몬스터가 감히...!
이 어찌나 발칙하기 짝이 없는 짐승인 거지!?
귀족이 선물까지 들고 직접 방문해줬으면, 오히려 절을 해야 하는 상황 아니야!?
“당신, 어떻게든 나에게 치욕을 안기고 싶단 말인가요?” “치욕이라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 오히려 이렇게 선물로 대충 퉁 치고 가려는 게 더 부끄러운 일 아닐까요?” “이, 이...! 말이나 못하면...!” “자. 자. 농담이니 얼굴 붉히지 마세요.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이대로 헤어지긴 좀 그러니 차나 한잔 하고 가시란 겁니다.”
뭘 이제 와서 그런 소릴... 내가 왜 너 같은 몬스터와 차를...
“제 동료과 성녀님이 지금 차를 끓이고 있거든요. 성녀님도 만날 겸, 잠시 이야기나 나누시는 게 어떠십니까? 계속 서로 앙금이 남아 있으면, 영주님 얼굴 보기가 좀 그렇잖아요?”
하아... 그 성녀...
...하긴, 일단 이 몬스터가 라디아에 있는 동안, 그 성녀랑은 안볼 수가 없겠지.
알버트를 안심시켜 줄 필요도 있으니... 그래. 속내를 숨기고 차 한잔 마셔주는 것 정도는...
“...하아. 금방 올 테니, 당신들은 조금 기다리고 있으세요.” “알겠습니다. 셀레스티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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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와 주셨군요. 셀레스티아 백작님.” “네. 아침부터 실례하겠어요. 성녀님.”
몬스터와 함께 마도 승강기에 올라, 답답한 짐승의 냄새를 최대한 참으며 8층에 도착했더니...
승강기 앞에서, 가벼운 복장의 옷을 입고 있는 성녀가 맞이해 주었다.
밖에 나가도 될만한 복장이긴 하지만, 성녀가 입는 다기엔 가벼운 차림새인데... 설마...
“...설마, 성녀님께서도 여기서 지내고 계신 건가요?” “네에. 그 편이 활동하기 더 편하니까요.”
...무슨, 이런 짐승과 함께 살고 있다니...
참, 이해가 안되네요. 이번 성녀님은.
“오셨나요. 백작님~. 이쪽으로 오시길~. 주인님~. 준비 다 됐어♡”
현관 너머에서, 정말이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차림새의 여자가 나타나, 이쪽으로 오라며 나에게 손짓한다.
어제도 봤지만, 저 여자는 부끄러움이 없는 걸까...
그런데 설마... 저 여자도, 여기 살고 있단 건가...?
...이 두 여자, 혹시... 아니겠지...?
“백작님 입맛에 맞으실진 모르겠지만~. 아직 아침식사도 안 하신 것 같아서, 조금 진하게 타봤답니다~.”
깔끔하긴 하지만, 아직 가구들이 얼마 없어 조금 휑해 보이는 넓은 거실.
테이블로 날 안내한 성녀와 여자가, 내 앞에 탁한 빛깔의 차를 내 놓았다.
이 희멀건 한 느낌이 섞인 불투명한 갈색은... 밀크티 같은 것일까...? ...뭔가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하아, 그래요. 고마워요.” “별말씀을~. 자 클레아. 그리고 주인님은 이거♡”
성녀와 날 안내한 붉은 머리 여자 앞에 나와 같은 차가 놓여지고, 내 앞에 앉은 몬스터에겐 투명한 선홍빛의 차가 놓였다.
혼자만 다른 차를 마시는 건가요. 참 예절하고는...
뭐, 저 몬스터와 오래 볼 것도 아니니 일일이 화내 봤자 제 손해겠죠.
“대접 고마워요. 오래 있을 순 없으니, 이 차만 마시고 금방 일어나겠어요. 선물은 두고갈테니, 나중에 천천히 뜯어보도록 해요. 맘에 들 테니까.” “하하. 선물까지 주실 필요는 없는데.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셀레스티아 님.”
후. 그래요. 처음부터 그렇게 고분고분 했으면 얼마나 좋았나요.
뭐. 물론 그렇다고 해도 당신을 라디아에 놔둘 생각은 없지만...
얼른 차나 마시고 일어나야 겠...!?
“...!? 뭐, 뭐죠 이 차는...!?” “어머, 왜 그러시나요 백작님? 맘에 안 드시는 거라도?” “뭐가 이렇게 걸쭉한 거죠? 차가 맞는 건가요?” “후후...♡ 요즘 유행하기 시작한 차랍니다♡ 맛이 꽤 괜찮지 않나요?” “마, 맛...?”
...으음, 뭔가 생각과는 다른 걸쭉함이 느껴져서 놀라긴 했지만...
의외로 맛은 뭐랄까, 나쁘진 않네요...
입 안에 들어올 땐, 뭔가 형용하기 힘든 강렬한 향이 확 퍼지는데...
그 향이 묘하게 나쁘진 않은데다... 입 안에 달라붙는 듯한 묘한 걸쭉함...
어디선가 맛본 것 같기도 한, 이상하기 그지 없는 맛이 혀에 퍼지는데...
...기억이 안 나는 그 맛을, 수백 배는 농축한 듯한 진한 맛...
형용하기 힘든 묘한 맛인데, 이상하게... 자꾸 끌리는 듯한 맛이네요.
거기다... 삼켰을 때, 목에 들러붙는 듯한 이 감촉... 왠지 모르게 중독될 것 같은 느낌이...
“......후훗♡ 한잔 더 드릴까요?” “...아... 음. 부탁해요.”
어라, 어느새...
으음. 목이 말랐던 걸까. 바로 일어나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그렇지만, 이 차... 괜찮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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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왠지 모르게 끌리는 이 걸쭉한 차를 주는 대로 마시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차를 12잔이나 받아 버렸다.
금방 일어나려고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마셔버린 거지...?
차로만 배를 채운 셈인데, 이상하게 몸이 만족스러워...
거기다... 어느새 내 앞의 짐승, 그리고 날 바라보며 미소 짓는 여자들과... 이렇게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니...
이러려고 따라온 게 아니었는데...?
“...이 차. 정말 괜찮은걸요. 이름이 뭔가요?” “후훗♡ 죄송해요 백작님. 사실 파는 게 아니라, 제가 직접 만들어 본 거랍니다♡ 나중에 저희 길드의 신규 사업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어떠셨나요?” “어머... 그랬나요? 리즈벳 씨. 꽤 능력이 있으시네요. 이거, 분명 잘 팔릴 것 같은데요?” “칭찬 감사합니다 백작님~.”
과연... 직접 만든 거였나요.
뭘 어떻게 섞은 건진 모르겠지만, 분명 이거라면 귀족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만 하겠어요.
흐음... 저와 같은 마법사 란 것도 그렇고, 이 몬스터가 만든 길드의 길드원으로 두긴 아까운 아가씨네요.
저 옷 차림새만 어찌 한다면, 외모도 그렇고 생각보다 아주 괜찮은 아가씨 같은데...
“그런데 말이죠♡ 백작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감탄하던 도중, 성녀와 마법사 아가씨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두 사람은 뭔가 친근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의자를 끌며 내 옆에 가까이 다가와 날 바라보다가... 리즈벳이란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백작님. 약속이란 건, 중요한 것 아닐까요?” “...? 네. 중요하겠죠...?” “그것은 물론, 귀족에게도 마찬가지. 그렇죠?” “그거야 당연히...”
그러자 성녀가 내게 가까이 붙으면서, 붉은 머리 아가씨의 말을 이어받는 것처럼 말을 걸었다.
“백작님. 저희 주인님께, 약속한 게 있지 않으셨나요?” “...그건...” “귀족이신 백작님이시니, 약속의 중요함은 잘 아실 텐데... 아무리 그래도 그냥 넘어가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어쩐지 두 여자의 말이, 내 귀를 간지럽히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으음... 그렇죠. 일단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 법이죠...
눈 앞의 저 몬스터, 세마란 이름 이였던가요.
분명... 제가 무릎 꿇고 사과하겠다 했었는데...
...으음... 저 몬스터... 세마 군에게 무릎 꿇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기분이 나쁠 거라 생각했는데... 묘하게도, 가슴 안쪽이 술렁거리는 듯한...
...그래요. 비록 몬스터이긴 하지만... 약속은... 지켜야 겠죠...?
“...그렇, 네요. 약속은 음... 지켜야겠죠.” “후훗. 역시... 좋은 선택이에요. 백작님♡” “자, 주인님과 같이 이쪽으로 오시길♡”
그렇게 그녀들이 이끄는 방으로 들어가자, 뭔가 엄청나게 큰 침대가 놓여진 넓은 방이 나타났다.
그 침대에 앉으면서, 다리를 쫙 벌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보기 싫은 몬스터.
그 몬스터가 날 바라보는데... 어쩐지, 내 몸을 꿰뚫어 보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왜지, 당장... 무릎 꿇어야 할 것만 같아...
“...사과 안 하십니까? 백작님?”
이상해... 왜 이런 상황이 된 거지?
분명, 차 한잔만 마시고 금방 돌아가려 했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이런 상황이...
“...무릎 꿇고 내게 사과해라. 셀레스티아.” “네엣...!”
어? 뭐야? 이게...
왜... 내가 무릎 꿇은 거지?
어째서... 내가... 그렇게나 증오하는 몬스터에게, 무릎을...!?
“시, 신수님...! 저, 라디르 네브 셀레스티아가... 귀족의 지위를 이용해, 신수님께 폐를 끼쳐 버렸습니다...!”
자, 잠깐. 그만둬.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
내가 왜, 몬스터한테 사과하고 있는 거냐고...!!
“제 개인적인 이유로, 그런 민폐를...! 하아, 읏...! 저, 정말... 정말...!”
아, 안돼. 그만둬.
그것만은...! 그것만은 하지 마!
“정말...! 죄송했습니다! 신수님!!!”
내 마음 속의 절규와는 상관없이, 내 머리가 바닥에 닿으며 눈 앞의 몬스터에게 절을 한다.
다소곳하게 손을 모아, 이마를 바닥에 대면서, 마치 아첨하는 듯한 굴복의 사죄.
어쩐지... 그런 내 모습을 비웃는 듯한 짐승들의 비웃음이 들리는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이상하게도, 나의 이 치욕스러운 사죄가 무언가에 기록된 것처럼 느껴지면서...
이 날, 왕국의 귀족이자 라디아의 영주 부인. 나 라디르 네브 셀레스티아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의 경험이 몸과 머릿속에 새겨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