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8 - 163화 - 혐오엔 협박으로! (9)
더 이상 뒷걸음 칠 곳 없이, 벽에 부딪쳐 다가오는 몬스터를 바라보며 떠는 셀레스티아.
그런 셀레스티아를 향해, 몬스터는 즐거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셀레스티아에게 다가와 그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나란히 벽에 기대 섰다.
“에이, 방금 전까지 서로 몸을 섞던 사이인데. 까칠하시긴.” “아, 아아...” “자. 보세요. 정말 잘 찍히지 않았습니까? 이야. 저 사진사로 전직해도 될 것 같지 않아요?”
자신의 어깨를 붙잡아 끌어당긴 몬스터가, 자신의 눈 앞에 무언가가 찍힌 사진을 보이며 미소를 짓는다.
백탁의 액체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변기 위에 널부러져 있는 자신을 찍은 사진을.
자신의 모습인데도 처참하다 느끼는 그 모습에, 새파랗게 얼굴이 질린 셀레스티아.
한동안 말없이 몸을 떨다가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며 몬스터에게 물었다.
“뭐, 뭘 원하는 거에요. 당신은...” “음... 원하는 건 딱히 없고. 그냥 백작님에게 선택지를 알려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죠.” “선택지...?” “네. 선택지. 첫 번째로, 이 자리에서 절 죽여 증거인멸을 한다. 간단하긴 하지만 저도 저항하긴 할거고, 꽤나 시끄러워 질 테니 뒷수습이 힘드시겠죠?”
원하는 게 없다니, 그리고 자기 입으로 이런 소릴 하다니.
이 몬스터가 원하는 건 도대체...?
“그리고 두 번째... 서로 오늘 일을 잊고, 앞으로 사이 좋게 지낸다. 백작님과 저, 서로서로 한번씩 주고 받았으니 이제 앙금은 싹 잊고 앞으로 얼굴 붉히지 말잔 겁니다. 전 이걸 골라주셨으면 좋겠는데...” “뻐, 뻔뻔하게...!” “제 매력이죠. 근데 두 번째가 괜찮지 않나요? 서로 없던 일이 되는 건데.” “당신을 어떻게 믿고!? 이런 사진을 찍어놓고선...!” “에이, 그렇게 따지면 전 백작님을 어떻게 믿습니까. 귀족분이 몰래 준비하면 저 같은 일개 시민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니시면서.”
말도 안 되는 괴변을 늘어놓으면서, 음흉하게 셀레스티아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몬스터.
그 몬스터의 말에 반박하려던 셀레스티아 였지만...
“...그리고, 아까... 제법 즐기시지 않으셨습니까?”
셀레스티아의 어깨에 걸쳐진 짐승의 손이, 셀레스티아의 가슴을 움켜쥐면서 반박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속삭이는 짐승의 목소리가 셀레스티아의 귀를 파고들고, 그 목소리로 인해 셀레스티아가 전혀 떠올리지 못하던 어느 한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셀레스티아의 몸의 떨림이, 다른 종류의 떨림으로 바뀌어 버린다.
‘......내가... 즐겼...다고?’
방금 전... 이 몬스터와의 섹스를...?
황당하기 그지 없는 말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은 순간, 역겨운 것이 담겨 있을 자신의 아랫배가 뜨거워진다.
‘아, 아냐... 그럴 리가... 내가 몬스터 따위에게...!? 말도 안돼!!!’
그럴 리가 있냐고 쏘아 부치고, 당장 이 몬스터를 떨쳐내고 싶은데.
두근거리고 있는 듯한 자궁의 감각과, 이 짐승의 더럽고 흉악한 것이 자신의 안에 파고들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셀레스티아는 새삼스레 느껴지는 짐승의 체취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얼마나 영주님과 즐기질 못하셨으면... 원래는 그냥 오늘 하루로 서로 끝내야 하는데, 백작님이 그런 상황이시라면 좀 얘기가 다르긴 하죠.”
어째서, 지금 자신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이 역겨운 몬스터를 떨쳐내지 못하는 것인가.
자신을 그렇게 범한, 정말 증오하는 몬스터일 뿐인데...
“...만약,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른 후... 서로 아무일 없이 지내는 동안, 백작님이 원하신다면... 상대가 되어 드릴 수 있습니다만?” “...하아... 하아...” “전 이런 거 가지고 누구한테 떠벌리거나 하진 않는 놈입니다? 비밀은 확실히 보장해 드리죠. 저희 길드원이나 성녀님도, 제가 이러는 건 전혀 몰라요. 오늘 일도 두 사람이랑은 관계없이 제가 그냥 혼자 사고친 거라...”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짐승의 목소리가, 셀레스티아의 내면에서 42년동안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암컷의 욕망을 자극한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이 몬스터에 비하면 너무나도 왜소한 남편의 성기.
그 성기 외엔 경험한 적이 없었던, 진짜 수컷을 모르고 있었던 자신의 신체.
그 성기마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발기부전에 걸려버린 자신의 남편 알버트.
말괄량이 딸 대신, 자신들의 뒤를 이어주는 아들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고 느끼던 유부녀의 임신 욕구.
그 모든 것이 겹치면서, 셀레스티아는 자신의 옆에 있는 몬스터에게서 점점 혐오감이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해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에 휩싸인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백작님이 원하신다면 이지만... 굳이 지금 선택하지 않고 천천히 생각해 보셔도 됩니다? 어떠신가요?”
암컷의 대답을 확신하고 있는 몬스터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셀레스티아에게 선택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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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흐흐. 감사합니다. 백작님. 이야~. 혹시 저 죽이겠다고 하셨으면 정말 알짤 없이 죽었을 텐데.” “다, 닥쳐요...!”
파티장 근처의 복도에서, 얼굴이 잔뜩 붉어진 셀레스티아를 웃으며 뒤따라가고 있는 세마.
셀레스티아는 그런 세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앞장서 걷고 있지만... 그 걸음걸이는, 뒤따라오는 몬스터에게 묘하게 맞춰져 있다.
“설마 백작님과 이런 관계가 될 줄은 방금 전까지 생각도 못했었는데 말입니다. 의외로 신체 궁합이 좋았던 걸까요 저희?” “그런 거 아니니까 좀 닥치라구요...! 어디까지나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당신과는 더 이상 엮일 일 없을 테니, 오늘 일이고 뭐고 다 잊으라고요!”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른 후, 세마가 추가로 건넨 제안 만큼은 거절하겠다 말한 셀레스티아 이지만...
앞장 서 걸어가는 셀레스티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세마는 이미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셀레스티아는 이미, 자신의 손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흐흐, 네. 그렇죠. 그래도 혹시 나중에 그럴 마음이 드신다면, 전 언제든지 OK니까 찾아오십쇼.” “그럴 일 없다니까! 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한 소리가 나오는 일이 생기면, 정말 당신을 죽이러 갈 테니까 그런 줄 알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세마와 함께 파티장의 입구 앞에 선 셀레스티아가, 심호흡을 한 후 세마를 째려보며 재차 확인의 물음을 건넨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남편 앞에서는 반드시...” “네. 조용히 있겠습니다. 저도 죽기는 싫거든요.” “...하아. 그래요. 서로 없던 일로 하는 거에요. 그럼...”
그렇게, 세마와 함께 다시 파티장 안으로 들어가는 셀레스티아.
세마를 기다리고 있던 리즈벳과 클레아가, 들어온 두 사람을 보며 묘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셀레스티아를 향해 다가오는 어느 한 남자.
“셀레스티아! 말도 없이 어디 갔었소?”
셀레스티아의 남편이자 라디아의 영주. 알버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미안해요. 여보. 잠시 기분이 안 좋아져서.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왔답니다.” “으음... 그랬소? 한마디 해주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세마 군은?” “아~. 저도 잠깐 바람 쐬러 나왔다가, 백작님을 만나서 잠시 이야기 좀 나누고 왔습니다.” “으음...? 셀레스티아와...?”
그렇게나 몬스터를 혐오하고, 얼마 전까지 당장 세마를 내쫓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던 셀레스티아.
그런 셀레스티아와 세마가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눴다는 말에, 약간의 불안함을 느끼던 알버트였지만...
“...얼마 전 일 때문에,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이야기 좀 나눴어요.”
다소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말하는 셀레스티아를 보며, 알버트는 속으로 기쁜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셀레스티아가 스스로 몬스터인 세마에게 다가가 사과하고 이야기를 나눴다니, 이 어찌나 기쁜 소식인가.
드디어 셀레스티아의 몬스터 혐오가 조금은 줄어드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보니, 두 사람의 모습이 제법 가깝게 느껴지는 알버트였다.
“으음. 잘했소. 셀레스티아. 앞으로 세마 군과는 자주 보게 될 텐데, 계속 사이가 나빠서야 안될 말이지.” “...그, 그렇...죠...” “당신이 쭉 세마 군을 혐오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좋은 소식이구려. 세마 군. 앞으로 셀레스티아와도 잘 지내주게. 자네 힘이 필요할 때가 많을 거야.” “하하. 물론입니다. 백작님.”
파티장의 입구에서, 영주와 세마간의 훈훈한 웃음과 대화가 이어져 나간다.
자신의 아내의 성격에 큰 문제로 느껴지던, 몬스터에 대한 과도한 혐오감이 줄어들었다는 것에 만족하며 미소를 짓는 알버트.
얼굴을 붉힌 채 부끄러워 하고 있는 자신의 아내가, 드디어 조금이나마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그였지만...
그런 알버트는, 전혀 알지 못했다.
드레스로 감춰진 아내의 자궁 안에, 아직 흡수되지 않은 말정액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자신이 보지 못하고 있는 아내의 뒤에서, 눈 앞의 몬스터가 아내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