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3 - 186화 - 지루한 귀족 영애의 색다른 관심거리! (3)
“우와아아아! 굉장해! 엄청 빨라!!” “에헤이! 일어나진 말고!”
시답잖은 말싸움을 이어나가다가, 시간 아깝다며 내 등에 올라탄 세실리아.
정말 대단한 영애님이셔. 내 말불알에 딱밤을 날려놓곤 이리 당당하다니.
내 암컷으로 만들었다가 오히려 역으로 끌려다닐 것 같아서 무서운걸. 그런 건 내 취향이 아닌데.
물론 이런 성격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한테만은 얌전한 암컷이어야지. 암.
그래도 뭐... 뻔뻔한 표정만 보여준 게 아니라, 중간중간 부끄러워하는 귀족 아가씨의 표정도 보였으니까.
그 표정이 디폴트가 되게 만드는걸 목표로, 잘 공략해 봐야겠지.
“속도는 어떠신지? 너무 빠르진 않으십니까 영애님?” “괜찮아! 하아... 굉장해~!! 레오 오빠가 태워줬던 병사용 샐러맨더보다 훨씬 빨라~!”
뭐야. 그 악녀 히로인이 할법한 대사는?
샐러맨더? 이름만 봐선 도마뱀 같은 몬스터인가?
고작 도마뱀 따위랑 날 비교하다니... 이거 너무한걸?
애초에 에센티아의 몬스터들. 탈 수 있는 녀석들도 얼마 없고, 거기다 속도들도 하나같이 느려빠졌던데. 그런 놈들과 날 비교하다니.
레오란 녀석이 뭘 태워줬는진 모르지만, 고작 몬스터 따위와 이 정세마를 비교하지 마라! 세실리아!
레오 녀석이 뭘 태워주든, 나보다 더한 충격을 줄 순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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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숲까지... 굉장해...” “푸흐흐. 맘에 드십니까? 세실리아 영애 님?” “쩔어! 야 세마! 앞으로 훈련하지 말고, 그냥 다른 도시 구경가면 안될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러고 싶으시면 내기 대련에서 절 이겨보시던가요.” “...쳇. 저번처럼 도망 다닐 거면서! 검으로 맞붙으란 말이야!” “다 전술입니다. 전술.”
어라? 보나마나 날 이길 수 있다고 건방 떨 거 같았는데, 생각보다 얌전하네?
생각해 보니, 오늘 말싸움하던걸 빼면 딱히 크게 건방진 태도는 아니었지.
음... 배빵 한대 맞더니, 내가 호락호락하지 않단 걸 느끼기라도 한 걸까?
“그러고 보니 이제 은근히 이름으로 불러주시네요? 전 보나마나 내기도 무효니 뭐니 하며 그냥 넘어가실 줄 알았는데.” “날 뭘로 보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귀족인데, 치사하게 그 정도 내기 가지고 그러진 않아.”
이야... 그래도 내뱉은 말은 제대로 지킬 줄 아는구나. 좀 다르게 보이는걸 세실리아?
앞으로 내기에서 져놓고 징징대는 모습은 안 나오겠네. 아주 좋아.
“...흥. 말하는걸 보니, 질 생각은 없는 모양이네?” “쉽게 져 드릴 순 없죠. 무려 한 달씩이나 영애님 개인 탈것이 되는 건데.” “한 달은 너무 짧은데... 하아. 뭐 좋아. 계속 이기면 되니까.”
내가 언제까지 네 훈련 담당을 맡을 줄 알고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어차피 네가 내 암컷이 될 때까지 맡을 생각이긴 하다만... 나 참.
“...근데 확실히 신수는 신수더라? 제법이던데?”
오? 세실리아 얘 왜 이러지 오늘따라?
내가 태워준 게 그리 좋았나? 예상 못한 반응인걸?
“뭐, 그렇죠. 힘도 그렇고, 몸 하난 튼튼하거든요” “...확실히, 이런 근육은 사람한테선 볼 수 없긴 하지... 용사인 레오 오빠도 이런 근육은 없는데 말이야.” “덕분에 옷은 무조건 주문제작이에요. 평범한 옷은 크기는 둘째치고, 팔 한 짝 집어넣기도 힘드니까요.” “...그, 그래... 팔도 엄청 두꺼웠지... 응...”
어라? 이 미묘한 반응. 꿈틀거리는 듯한 움직임. 설마?
...흐흐흐. 그래. 암만 그래도 성인이 된 암컷인데,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역시 너도 어쩔 수 없는 암컷이구나. 세실리아.
조금만 기다려. 셀레스티아가 내 암컷이 된 후에 너도...
“...야. 다음 훈련 말인데.” “네?” “...그, 무기는 빼고... 맨손 격투로 해보지 않을래?” “예? 맨손으로?”
어라? 이건 좀 생각 못한 제안인데... 맨손으로?
방금 전까지 내 근육을 인정하고 있었으면서, 무기를 빼고 대련해보자니?
암만 레벨이 있다고 해도 호리호리한 여자애와 근육질 몬스터의 대련. 맨손으로 싸움이 될 리가?
“진심? 아니, 혹시 세실리아님. 무슨 무술 같은 거라도 익히신 겁니까?” “그, 그건 아닌데... 그, 왜... 한번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법을 익혀보고 싶달까...” “어허... 아까는 계속 내기하잔 식으로 말했으면서. 아무래도 이길 생각이 없으신 모양이시네요.” “...내기는 할거거든? 내가 이길 수도 있잖아?”
암만 그래도 그건 에바지. 세실리아.
내 팔뚝이 네 팔뚝의 5배는 되는데. 무술을 배운 것도 아닌 네가 날?
너뿐만 아니라, 단순 체격만 보면 에센티아에선 날 맨손으로 이길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인데?
키라도 크면 모르지만, 키도 160 정도의 평균키에 딱히 엄청난 근육질인 것도 아닌데...
그냥 운동 좀 해서 군살 없는 늘씬한 몸매란 느낌? 물론 에센티아엔 스텟이나 스킬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기가 없으면 싸움은 체급빨이란 말도 있는데... 도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거지?
“아무래도 다음 대련은 결과가 뻔한 것 같네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맨손으론 세실리아 님한테 질 거 같지가 않아요.” “으, 해, 해보면 알 거 아냐. 그냥 몬스터와의 근력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궁금할 뿐이니까.” “그래요? 그런 쉬운 대련에 내기라니... 이거 참. 너무 날로 먹는 느낌이네.”
뭐야. 진짜 무슨 생각이지 세실리아 얘?
뭔가 준비해둔 거라도 있는 건가?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나한테 너무 유리한 조건이라 오히려 좀 무서운걸.
“...그, 그 대신! 넌 발은 쓰면 안돼! 제자리에서 손만 쓰도록 해!” “그럼 그렇지... 근데, 그렇다 쳐도 제가 질 것 같지는 않은데...” “됐고! 할거야 말거야?” “프흐흐. 제가 이기면 이제 둘만 있을 땐 서로 반말하자고 할겁니다. 준비해 두십쇼.”
그래. 뭔가 생각해 둔 게 있었구만.
근데 어쩌냐. 세실리아. 무기가 없으면, 네가 아무리 때려봤자 간지럽기만 할 것 같은데.
내 몸이 얼마나 튼튼한지, 아직 제대로 파악이 안된 모양이구나?
뭐, 나야 나쁠 것 없지. 꽁승 잘 받아갈게. 세실리아.
“...그, 그러던가... 네 생각만큼 쉽진 않을 테니까...” “뭐, 다음 훈련 때까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십쇼. 암만 그래도 맨손으로 대련은 좀 오바 같으니까... 그럼, 슬슬 돌아갈까요?” “그, 그래...”
묘한 세실리아의 제안은 둘째치고, 라디아를 한 바퀴 돌며 드라이브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려는 게 보인다.
영주성에 세실리아를 데려다 주고 나면 딱 저녁시간쯤 되겠는걸.
오늘 저녁은 홀스 호프에 가서 일이나 좀 해볼까... 어라?
“...어라? 세실리아 님. 저건 뭐죠?” “응? 뭐가... 어?”
숲을 빠져나가려고 돌아서던 도중, 숲 안쪽에서 뭔가 거뭇거뭇한 땅바닥이 보인다.
녹색과 흙색으로 뒤덮인 숲에 이질적으로 눈에 띄는, 구덩이처럼 보이는 커다란 흔적.
가까이 다가가자 마치 땅이 썩어버린 것 같은 검은 기운이, 부러진 중간중간 부러진 나무들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무언가 커다란 게 떨어져 자국을 남긴 듯한, 묘한 흔적이지만...
그 무엇보다 묘한 것은, 마치 연기가 올라오는 듯한 검은 기운.
...저거, 마물의 기운 같은 느낌인데...
“...마물의 기운이야. 어째서 여기 이런 게...?”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런데 뭐지, 뭔가 커다란 구덩이가 만들어진 것 같은 이 묘한 흔적은.
마물 여럿이 만들었다기엔 이상하고, 한 놈이 만들었다기엔 너무 큰데?
물론 저번의 요르문간드 같은 녀석도 있었지만, 걘 좀 특이케이스고.
무엇보다 내 마안에도 아무것도... 그냥 마물의 흔적만 보이는걸? 이럴 수 있나?
마치, 커다란 덩치를 가진 마물이 주저앉았다가, 그대로 사라진 듯한...?
“...빨리 돌아가자. 이건 보고해야겠어.” “아. 그렇네요. 지금 전 무기도 없으니.”
뭘 조사해보기엔 확실히 좀 위험하네. 내 암컷들도 없고.
주변에 마물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방심하면 안되겠지.
무엇보다 저 크기... 만약 한 놈의 흔적이라면, 덩치가 상당한 놈이겠어.
...저 흔적을 남긴 놈이 히어로 이터라면...?
만약 히어로 이터라면, 이놈까지 잡으면 느낌만으론 100년 가량은 멸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럼 잡아야겠지. 100년쯤 시간을 벌면, 진짜 모험가 생활은 그만두고 여유롭게 살아도 될 정도의 시간이니까.
시간은 미리미리 쌓아놔야지. 암.
무기 챙겨서 병사들이랑 모험가들 데리고 다시 올게. 히어로 이터라면 멀리 가진 마라.
내 행복한 이세계 생활을 위해, 때려잡아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