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5 - 188화 - 몬스터의 말자지는 버틸 수가 없어! (2)
“오오... 눈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남겨두고 있는 12월 30일의 이른 아침.
달력 체계조차 지구와 똑같은 에센티아에서, 나는 처음으로 눈이 내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겨울이라 점점 추워져 가더니... 결국 에센티아도 하얀 똥가루가 내리는구나.
한땐 엄청 더럽게 증오하던 저 하얀 똥가루였는데. 그래도 사는 곳이 달라지니 보는 느낌이 좀 다른걸.
...아니지. 단순히 그것 때문에 군대에서 날 그리도 엿 먹였던 저 똥가루가 좋아질 리가 없지.
내가 지금, 이 눈에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는 이유는...
“잠시만요~ 지나가겠습니다~”
길드관리소에서 퀘스트를 받아 돌아다니는, 저 마법사들 때문이겠지.
세상에. 마법으로 제설작업 이라니. 생각도 못했어!
거기다 그 의뢰 비용을 나라에서 내준다고? 이럼 뭐 눈을 즐기기만 하면 된단 거잖아?
군대 다녀온 이후론 눈은 보기만해도 기분이 더러웠는데. 이젠 뭐 그냥 즐겁구만. 나쁘지 않아.
“주인님. 여기, 말씀하신 대로 정리 다 끝났습니다~.” “오. 수고했어. 루나.”
성인용품점 입구에서 눈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있던 도중, 뒤에서 노예인 루나가 상자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소소한 수준의 매출만 벌면서, 창고에 있던 물건만으로 버티고 있던 마왕성 옆의 성인용품점.
이번에 새로 물건을 발주하는데, 내 암컷과 노예들이 적극적인 추천 때문에 그냥 여성 전용 성인용품점으로 바꿔버렸다.
애초에 여성용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내 여자들이 바꿔달라는데 바꿔야지 뭐.
거기다 에센티아 남자들의 허약한 정력 때문인지, 남성용품은 영 인기가 없었으니...
음... 아니지. 정력이 약하더라도 관심은 있을 법 한데... 위치 때문인가? 에이 모르겠다.
뭐 아무튼, 이제 성인용품점에 채워진 건 콘돔을 제외하면 모조리 여성용 도구들 뿐.
남아있던 남성용품이 한 상자 분량인가. 버리긴 뭐하니 일단 내가 챙겨둬야지.
물론 난 사이즈 때문에 딱히 쓸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버리긴 좀 그렇잖아?
그렇게 남성용 자위용품들을 챙겨 밖에 나오니, 영주성 빌딩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병사가 날 보고선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아, 저기 계시네. 세마 님! 영주성에서 나왔습니다!” “엇. 안녕하십니까. 혹시 호출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영주님께서 잠시 영주성에 와달라고 하십니다.”
크윽. 연말에다 눈도 오는데 호출이라니. 귀찮은데...
물론 히어로 이터 탐색이니, 세실리아의 훈련이니 하며 영주와 얽혀있긴 하지만, 그래도 연말까지 움직이란 건 좀 너무하잖아!
거기다 나는 지금, 이틀 뒤면 ‘그게’ 있는데!
“으음. 곤란한데... 혹시 오래 걸릴까요?” “잠깐 들러 달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리 오래 걸릴 일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뭐...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죠.”
어쩔 수 없지. 잠깐 우리 셀레스티아의 얼굴이나 본다 생각하고 다녀올 수 밖에.
내일 불렀으면 그냥 다음에 가겠다 하고 무시했겠지만, 그래도 오늘까진 뭐 상관없으니까.
***********************************************************************************************************
“아~ 영주 너무하네 진짜! 하필 이런 때에!”
집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며 영주성에 다녀오겠다고 말하자, 리즈벳이 짜증난단 식으로 성을 내며 툴툴거렸다.
뭐, 그럴만한 게, 지금 내 암컷들과 노예들은...
“이틀 뒤가 주인님의 생일인데! 선물은 못 보낼망정...”
이틀 뒤. 내 생일인 1월 1일을 기다리며 파티를 준비하고 있으니까.
달력 체계가 똑같은 덕분에, 내 특이한 생일이 에센티아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엊그제부터 성대하게 준비하고 있던 내 암컷들과 노예들.
노예들과 내 암컷들을 합쳐 10명이 넘는 여자들이, 내 생일을 축하하겠다며 다양한 음식들과 유흥을 준비하고 있었다.
31일부터 2일까지 3일간 가게 영업까지 중단해가며, 단단히 즐길 준비를 하고 있는 그녀들.
내 생일 당일엔 돌아가며 24시간 교미 파티를 해주겠다고 하던데... 그런 준비가 한참인 지금 날 부른단 소릴 들었으니, 내 암컷이 짜증날 만 하지.
“...이미 가겠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죠. 주인님. 가시는 김에 세레스도 초대하는 건 어떤가요?”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내게 셔츠를 입혀준 클레아가, 웃으며 색다른 제안을 내게 건넨다.
어허? 가는 김에 세레스도 데려오라고?
“아직은 거절하지 않을까? 대결이라도 걸면 모르겠는데...” “후훗. 슬슬 세레스도 때가 된 것 같거든요. 조금만 잘 꼬시면 넘어올 것 같은데...” “주인님. 진짜 대결하는 것도 괜찮지 않아? 영주성엔 넓은 훈련장도 있으니까.”
음...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초대할 생각을 안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얘길 들으니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요즘 셀레스티아의 태도도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는 중이고... 뭐, 아직 혐오 Lv.1 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요즘은 날 보고 불쾌하단 표정을 짓는 횟수가 확 줄긴 했지.
그런 세레스를 끼운 생일 겸 교미 파티라... 괜찮은걸. 아니, 꼭 해보고 싶어!
“음... 좋아. 가서 한번 잘 꼬셔 봐야지. 그럼, 다녀올게.” “네. 잘 다녀오세요. 주인님.” “너무 늦으면 안돼~ 빨리 다녀오세요~”
***********************************************************************************************************
“...그래서, 이 주변까진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네. 남은 건 이 외곽 쪽인데...”
테이블에 지도를 놔두고 이곳 저곳을 찍으며, 히어로 이터 탐색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는 영주.
목소리에 피로가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한참 동안 바빴던 모양이다.
“외곽 지역은 라디아에서 거리도 멀고 해서 탐색이 영 성가시다네. 그래서 말인데, 흔적을 발견한 자네가 성녀님과 함께 가능한 곳을 탐색해 줬으면 하네만...” “음... 당장은 좀 힘들지만, 며칠 후부터는 가능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물론일세. 자네도 새해엔 쉬어야지. 자네가 나서 주는 것만으로도 병사들 부담이 확 줄어드니 고마울 다름일세. 후우...” “...어쩐지 좀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찮으십니까?” “응? 아... 히어로 이터에 관해서는 하나도 놓치지 말고 제대로 보고하라고 명이 내려져서 말일세. 길드관리소의 관리소장도 요즘 부재중이니, 신경 써야 할게 많아서 좀 피곤하군.”
어, 관리소장? 오랜만에 듣는 이름인걸. 그러고 보니 나도 한참을 못 만났네?
내가 라디아에 온 직후에 몇 번 얼굴을 본 것 빼면, 이후론 한번도 만나질 못했지?
길드관리소 최고 담당자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도 되는 건가?
“아. 그분... 저도 한참 못 만났는데... 그러고 보니 자리를 꽤 오래 비우셨네요? 그래도 됩니까?” “...으음, 그 친구는 집안에 일이 좀... 크흠.”
어쩐지 묘한 표정인걸. 뭐지?
그래도 소식은 아는 모양인데... 하긴. 길드관리소의 관리소장이면 영주와도 자주 보긴 했을 테니까.
“혹시 관리소장에 대해 궁금하다면, 셀레스티아에게 물어보게나. 그녀와 친구 사이라서, 나보단 잘 알고 있을 걸세.”
오호라. 그 관리소장이랑 셀레스티아가 친구 사이였어?
하긴, 그 관리소장. 나이를 가늠해 보면 셀레스티아랑 비슷해 보이긴 했지.
사실 좀 친해지려던 도중에 사라져서, 크게 궁금하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라디아에 왔을 때 정착을 도와준 사람이니까. 나중에 한 번 물어보기나 할까.
“그렇습니까... 혹시 셀레스티아님은 지금...?” “요즘은 계속 본인의 연구실에만 있다네. 혹시 볼일이 있나?” “아 네. 돌아가기 전에 꼭 뵈었으면 하는데. 힘들까요?” “연구실에 들어가면 내가 불러도 전혀 나오질 않는데... 으음...”
연구실이라... 나와의 대결 준비라도 하는 건가?
뭘 연구하는진 몰라도 영주가 불러도 안 나올 정도라면 방법이 없네. 에이 아깝다...
꼭 내 생일 기념 교미파티에 끌어들이고 싶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같이 가서 불러 보지. 내가 안내해 주겠네.” “엇.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하하. 자네가 셀레스티아를 불러 준다면 나야 고마운 일이니까. 잠시 휴식할 겸 가는 걸세.” “감사합니다. 영주님.”
역시 사람도 좋아. 이 아저씨는. 용사만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용사인 것 때문에, 자신의 아내인 셀레스티아를 나에게 빼앗기고 있다니. 참 안타까워.
그래도 뭐, 어쩌겠어 영주님. 당신이 용사인 덕분이지. 미안해.
이제 곧 당신의 아내는, 완전히 내 암컷으로 바뀌게 될 거야.
그냥 운명이니까.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도록 해.
그래도 날 여러모로 배려해 준 만큼, 그쪽은 나도 배려할 수 있는 만큼 배려해 주도록 할 테니까.
자신들의 연인을 빼앗기고, 그녀들에게 수컷으로서 처형당해버린... 당신보다 먼저 날 만났던 두 명의 용사.
그 녀석들과는 달리 당신은 최대한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응? 왜 그러나? 세마 군?”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
...푸흐흐. 나도 참 성격이 더럽네. 영주가 눈 앞에 있는데도 전혀 죄책감이 들질 않다니.
이런 사람 좋은 아저씨의 마누라를 빼앗고 있는데, 왜 이리 즐거운 걸까.
내가 원래 이랬었나? ...뭐, 아무래도 좋아.
인간. 그것도 다른 수컷의 불행 따윈, 나 같은 짐승에겐 전혀 관계없는 일이지.
그러니 앞으로도 쭉, 그렇게 눈치채지 못하고 발기부전으로 남아있어 주라고.
조금만 더 지나면, 그 쥐좆만한 인간의 성기가 고쳐져도 이미 늦어있을 테니까.
영주님 당신은 그저, 그렇게 얌전히 있으면 되는 거야.
셀레스티아가 완전히, 내 암컷이 되는 그 순간까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