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3 - 241화 - 생각하지 못했던 조우! (2)
붉은 안광이, 흙먼지 속에서 날카롭게 빛난다.
검은 안개가 흙먼지가 뒤섞여, 저 너머에 있는 불길한 존재를 더욱 위협적이게 만들고 있다.
아니, 저 존재가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시야가 막힌 것 때문만은 아니다.
시야가 막혀 있는데도, 흙먼지에 섞여 있는 검은 기운이... 저 존재의 커다란 덩치를 알려주고 있으니까.
조금씩 흙먼지가 걷히면서, 커다란 마물의 몸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
“...힉...!”
세실리아와 몇몇의 병사들이, 조금 두려운 듯한 신음을 흘렸다.
“...이런 시발.”
나 역시, 입이 저절로 욕을 내뱉어 버렸다.
이전의 요르문간드 같은 어마어마한 체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형 화물차급은 되어 보이는 초대형 사이즈의 멧돼지.
...아니, 저걸 멧돼지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사람의 손과 발, 짐승의 다리가 뒤섞인 6개의 다리. 그리고, 코 아래로는 썩어버린 듯한 흉칙한 모습.
커다란 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 오르면서 입에선 검은 액체를 뚝뚝 흘리고 있는 저 모습은, 만든 놈이 있다면 얼굴을 좀 보고 싶을 정도의 악의적인 센스가 흘러 넘치는 모습이다.
이젠 따로 확인을 안해도 구분이 되네. 보나마나...
====================================================================== 이름 : 칼리돈 – 히어로 이터 종족 : 해[亥] 레벨 : ??? 칭호 : 멸망을 불러오는 자 나이 : ??? !@#$% : 8명 ======================================================================
...뎃? 뭐야 이건.
이름이랑 칭호만 보이던 히어로 이터 상태창에, 뭐가 늘었는데?
해[亥]...? 8명? 뭐야 저건.
“...전원! 마물 포위 진형! 세실리아! 너는 뒤로!”
레오가 소리를 지르자, 멍해져 있던 병사들이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무기를 잡았다.
...으음. 그래. 여유롭게 상태창 파악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지.
가장 먼저 정신차리고 지시를 내리다니. 과연 용사다운걸?
나는 지금 천 하나 걸친 말보르기니 폼인데다, 무기도 없으니... 일단 세실리아를 라디아에 내려준 후 갑옷과 말박이를 챙겨와야...
“꾸이이이이이이익!!!!” “...! 세마 오빠! 피해!” “이런 슈발!!”
라디아에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 내 앞을 저 검은 덩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나간다.
조금만 더 몸을 내밀었으면 다리와 머리가 휘말렸을 아찔한 속도.
이런 미친. 저 덩치에서 어떻게 저런 속도가...
병사 몇 명은 치여서 날아갔나 본데... 시발. 이거 병사들이 발을 묶을 수준이 아니네.
“...다시 온다!”
라디아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싶더니, 다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 덩치.
달리는 게 아니라 몸을 날리는 것에 가깝지만, 속도만 보면 거의 내 최고속도와 맞먹는 것 같은 아찔한 속도다.
아니, 저런 괴상한 다리로 도대체 어떻게...!
“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무기를 들고 마물을 대비하던 병사들이, 허무하게 비명을 지르며 튕겨져 나간다.
병사들 수준은 기껏 해봐야 10~30 레벨 정도라고 했던가?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지만 저 육중한 놈이 저런 속도로 들이박는데, 그런 레벨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을 터.
안되겠다. 얼른 라디아에 들어가서 준비를 하고 나와야...!
“앗...! 세마 오빠! 저 마물, 이쪽을 봤어!”
라디아를 향해 달리는 순간, 날 향해 뛰어든 것처럼 보이는 히어로 이터.
아차 싶은 순간, 뒤에서 뭔가 검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크윽...! 가! 얼른 가서, 세실리아를...!” “레오 오빠!”
푸른 기운이 일렁이고 있는 레오가, 마물에게 밀리는 것처럼 힘겨운 표정으로 외친다.
나이스 레오! 근데, 용사 투기로도 밀리는 거야!?
이런 시발. 체급이 깡패라더니...! 이건 얼른 튀어야...!
“아! 세마 오빠! 나도 싸울...!” “갑옷도 없이 얇은 검 한 자루 차고 나왔는데! 안 돼!” “그, 그렇지만...! 앗! 레오 오빠!”
세실리아의 비명에 뒤를 돌아보자, 푸른 기운이 마물의 뒤로 튕겨져 나가는 게 보인다.
미친, 2초 지났다 2초! 뭘 그리 쉽게 튕겨나가고 있는 거야 용사 주제에!
그래도 병사들 중 탑 클래스인 30 중후 반 쯤 되는 레벨이라고 들었는데, 너무 허무하게 튕겨나간 것 아니냐!?
큭... 하여간 용사들 나사 빠진 것 하고는...! 성벽에 도착할 때까지 버텨 줄거라 생각했던 내가 나빠!
“오빠! 점점 다가오고 있어!”
윽, 설마 나보다도 빠른 거야!? 저 덩치로!?
이런 시발...! 성벽에 도착하는 게 아슬아슬 하겠는데. 이러다간 저 놈 돌진에 휘말려서...!
안되겠어. 어떻게든 저 놈을 막아서야...!
“세실리아! 뛸 수 있지!?” “어, 어!?” “지금 그냥 투기 써서 내 허리 밟고 뛰어! 내가 저 놈 막아줄 테니까!” “그, 그치만 오빠 혼자는...!” “괜찮아! 내가 붙잡고 있을 테니, 안쪽에 있는 병사들이랑 모험가들 데려와! 자, 얼른!” “으, 응!!”
내가 다급하게 외치자, 세실리아도 고집을 접고 고개를 끄덕인다.
승마 보조 스킬 덕분일까?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는 흔들림 속에서, 내 허리를 밟으며 몸을 일으켜 세운 세실리아.
곧 허리에 제법 묵직한 충격이 가해지더니, 성문을 향해 세실리아가 붉은 기운을 일렁거리며 날아가는 게 보였다.
세실리아를 확인한 뒤 공중에서 몸을 돌려 마인 폼으로 형태 변화를 하자, 내 몸이 연기에 휩싸이며 일렁거리다가...
간신히, 히어로 이터가 닿기 직전에 팔이 완성되어 녀석의 썩은 듯한 어금니를 붙잡을 수 있었다.
“...큭! 이, 이 새끼...!!”
내가 달리던 속도와 칼리돈이 날아오는 속도가 합쳐져, 땅에 멈춰 서질 못하고 그대로 쭉 밀려나는 내 신체.
그렇게 쭉 밀려나면서 근처의 성벽에 몸이 부딫치는 순간, 무언가 마법진 같은 것이 일렁이다 그대로 깨져버렸다.
마법진을 잃은 후 커다란 충격이 가해지면서, 무너져 내리는 라디아의 성벽.
“끄아아아악...! 시발, 내 허리...!!!”
성벽이 막아줘서 간신히 멈췄지만, 상황은 썩 좋지가 않다.
무너진 성벽이 몸을 덮치는 데도, 아주 멀쩡해 보이는 히어로 이터.
그런데 내 허리에선 끊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져서, 어쩐지 다리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다.
망했네 이거. 붙잡고는 있지만, 이대로 이놈이 고개 몇 번 흔들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데...!
그러면 이 놈이 도시 안으로 파고 들 수도 있는 건가? 안돼 시발! 여긴 이제 내 도시나 마찬가지라고!
내 낙원에 감히 발을 들이려 해!?
“씨, 씨발...!! 마왕 펀치다 이 돼지 새꺄!!”
마왕 펀치! 마왕 펀치! 말 중의 왕, 마왕의 펀치 맛이 어떠냐! 이 뒤틀린 황천의 돼지야!
어딜 덩치빨만 믿고 깝치려 해!? 나도 힘으론 어디 가서 안 꿀려 쨔샤!
이대로 널 붙잡고 있으면 고레벨 모험가들이 와서 네 모가질 따주겠지! 산책 나왔다가 멸망도 미루고! 딱 좋네!
내 허리의 고통, 100배 1000배로 갚아주마! 그 역겨운 대가리를 터트려 버리겠어!
“마왕 펀치! 마왕 펀치! 뒤져라 이색... 커헉!?”
뭐, 뭐야!? 방금, 내 얼굴에 박힌 충격은...!?
서, 설마 이 새끼. 지금...!?
저 괴상한 다리들 중에 사람 손 같은 다리를, 휘두른 거야!?
“커헉! 푸힝! 이, 이 새끼가!?”
뭐야 이거!? 다리들 중 저 두 다리는 뭔가 가져다 붙인 듯한 위치에 달려있긴 했지만, 그걸로 주먹을 날리다니!?
설마 날 흉내 낸 건가!? 내 주먹질까지 흉내 내다니, 이런 미친 놈이...!
이... 시발...! 거기다, 체급만 차이 나는 게 아니라...! 저놈은 다리 4개로 밀어대는데, 난 다리 2개로 버티고 있으니 힘이 딸려!
아, 안돼. 밀린다...! 이대론, 도시 안으로 밀려나겠...!
- 콰아아아아앙! - 퍽, 퍼억! 푹!!
도시 안으로 밀려나겠다고 생각하던 도중, 칼리돈의 옆구리에 폭발과 동시에 커다란 얼음 덩이가 날아와 박혔다.
...저 조합. 왔구나...! 내 암컷들...!
“주인님! 괜찮아!?” “실패작주제에, 감히 주인님께...!!!“
리즈벳과 함께 마법을 날리며, 성벽 위에서 날아오는 것처럼 뛰어내리는 리즈벳과 세레스.
하늘의 색을 바꾸는 것 같은 얼음과 불덩이가, 화려하게 칼리돈을 향해 휘날린다.
“내가 붙잡고 있을 테니, 두 사람. 마무리를 날려!!” “리즈! 세레스 언니! 가호를 걸 테니, 바로 큰 공격을!”
내가 외치자, 두 사람의 뒤에서 클레아가 양 손을 반짝이며 리즈벳과 세레스에게 가호를 걸어준다.
가호가 걸린 채, 자신들의 등 뒤에 커다란 마법진을 만들며 주문을 외우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마법사.
두 사람의 지팡이에서, 커다란 빔처럼 보이는 불과 냉기가 휘몰아친다.
“플레임 블래스터!!!” “글라키에스 페나!!!”
마치 모든 것을 태우고 얼려버릴 것만 같은, 불과 얼음의 폭우.
두 사람의 마법이, 뭔가 서로를 증폭시켜 주는 것처럼 엮여서 칼리돈의 허리 위에 쏟아져 내린다.
요르문간드는 뭔가 좀 답이 없는 놈이었지만, 이놈은 몇 대 쳐보니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저 정도 위력이라면, 이 뒤틀린 지옥 멧돼지도 별 수 없을 터.
어디, 내 암컷들이 주는 시원하고 뜨거운 마법 맛이나 봐라!
“끅, 꾸이이이이이이이이익!!!”
큭, 버틴다고!? 이걸!?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나!? 바로 뒤질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좀 버티는데!?
그래. 멸망을 불러오는 놈이라는데, 좀 단단할 수도 있지!
그래도 내 암컷들, 내 말정액 덕분에 스텟도 빵빵하고 지금은 클레아의 버프도 있거든!?
계속 붙잡아 줄 테니, 어디 한번 죽을 때까지 버텨...
“꾸륵, 꾸이이이이이이이익!!!” “큭!! 얌전히 있...! 끄악!!!”
칼리돈의 머리와 뒤틀린 두 팔이, 내 몸을 밀쳐내는 순간.
팔에 온 힘을 줘서 버티고 있는데, 내 뒤통수에 무너진 돌이 부딪친다.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충격에, 칼리돈의 어금니를 쥐고 있던 내 손에 힘이 살짝 풀려버렸다.
기회를 잡아 그대로 날 밀쳐낸 후, 땅을 박차며 성벽에서 멀어지는 칼리돈.
리즈벳과 세레스의 마법이 그 칼리돈을 뒤쫓아가던 도중, 그 앞에 뭔가가 일렁이더니...
그대로, 칼리돈은 포탈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앗, 저게...! ...주인님!” “괜찮으신가요!? 아아, 저희가 없는 사이에 이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주인님! 곧 내려가서 치료해 드릴 테니까요!”
사라진 칼리돈을 향해 혀를 차다가, 날 향해 다가오는 내 음수들.
그녀들과 함께 이제야 나온 모험가들이, 내가 있는 무너진 성벽을 향해 달려온다.
하... 조금만 더 일찍 오지. 저 모험가들이 같이 있었으면 잡았을 것 같은데...
“세, 세마 오빠!!!”
모험가들 사이에서, 날 부르며 달려오는 세실리아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 뭐, 놓쳐버린 건 어쩔 수 없지.
일단, 세실리아를 포함한 내 암컷들이 무사하단 것에 만족하자.
“오빠!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푸흐흐. 괜찮아. 허리가 좀 아프긴 한데, 크게 다치진 않았어.”
내게 천을 덮어 준 뒤 내 몸을 살피던 음수들 사이로 파고들어와, 나에게 안기는 세실리아.
모험가들의 시선이 있는데도, 전혀 부끄럽거나 하지 않은 모양이다.
나의 음수들이, 어쩐지 그런 세실리아의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후훗. 자. 세실리아. 주인님께서는 치료를 받으셔야 하니, 너무 방해하진 말고 일어나렴.” “아, 어머, 님... 네, 네에. 알겠습니다...” “주인님을 걱정할 줄 알게 되다니... 우리 세실리아, 아주 장한걸?” “으, 응? 아하하... 요즘, 세마 오빠랑 좀 친해져서...” “...쿡쿡. 그래. 주인님과... 역시, 내 딸이구나. 세실리아.”
오랜만에 만나는 것일 터인, 세레스와 세실리아.
음탕한 차림새의 세레스가 세실리아를 칭찬하는 광경은, 어쩐지 흐뭇함이 느껴지는 모녀의 모습이다.
멀리서 병사들과 함께, 그 광경을 바라보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레오.
두 모녀는 그런 레오에게 단 한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오직 나만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