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5 - 세실리아의 비밀 4
“...레오 오빠. 다리는 좀 괜찮아?”
지친듯한 느낌의 병사들과 함께, 영주성으로 돌아가는 길.
병사들과 조금 떨어져 따로 걷고 있는 나와 레오 오빠 사이에서, 무언가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침묵이 내 옆구리를 찌르는 것 같아, 견디질 못하고 먼저 말을 건넸다.
“아, 그래. 괜찮아... 세실리아는? 다친 곳은 없어?” “응. 세마 오빠 덕분에... 나도 괜찮아.”
본인도 대화거리를 찾고 있던 걸까? 조금 풀이 죽은 듯한 표정을 고치며 레오 오빠도 내 몸을 걱정해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괜찮다고 하는데, 레오 오빠의 표정이 다시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한 느낌으로 변했다.
“...미안. 용사인 만큼 내가 널 지켜줘야 했는데...”
이렇게나 기운 없는 듯한 모습이라니... 도대체, 뭐가 그렇게 미안한 걸까.
잠시나마 시간을 끌어준 레오 오빠가 아니었다면, 세마 오빠는 몰라도 나 역시 다쳤을 뻔 했는데.
어쩐지 레오 오빠는, 그렇게 허무하게 튕겨져 나간 게 충격이었나 보다.
그렇게 위험해 보이는 마물이었으니, 딱히 충격 먹을만한 일은 아닐 텐데...
...응. 이런 적은 거의 처음이긴 하지만, 약혼자인 만큼 내가 오빠를 위로해주지 않으면...
“너, 너무 자책하진 마. 오빠.”
그 정도로 커다랗고 흉측해 보이는 마물이었는데. 용사라고 해도 30레벨대의 인간이 뭘 어쩌겠어.
“난 딱히 위험했던 것도 아니니까. 세마 오빠 덕분에, 나한텐 먼지 하나 안 닿았는걸?”
그렇게나 빠른 세마 오빠를 쫓아올 정도인데. 잠시 멈춰 세운 것 만으로도 훌륭한 것 아닐까?
“무기를 들고 대비하던 병사들이 아무것도 못한 마물이었잖아? 세마 오빠 같은 근육도 없는데, 그렇게 한 번 막아낸 것 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구.”
조금이지만, 레오 오빠가 히어로 이터를 막아 섰을 때 혹시 하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세마 오빠 같은 근육은 없지만, 그래도 용사인 레오 오빠라면...! 하고 기대감이 생기긴 했었는데...
그 히어로 이터가 머리를 흔드는 것 만으로 날아가는 레오 오빠를 보자, 그냥 당연한 결과를 보게 된 듯한 느낌뿐이었다.
“용사만이 쓸 수 있는 용사 투기가 아니었다면, 그 잠시도 못 버텼을 거야. 그것만으로도, 오빠는 훌륭한 용사이니까...!”
그 정도면, 충분히 활약한 거잖아?
근육이라곤 보이지도 않는 레오 오빠인데,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그런 커다란 마물의 힘을 어떻게 버티겠어?
레오 오빠의 몸은 여자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밋밋한 육체인걸. 세마 오빠 같은 우월한 수컷의 육체가 아니라.
아무리 제한 없이 강해질 수 있다는 용사 투기를 둘렀다고 해도, 육체가 빈약한데 어떻게 투기가 발휘될 수 있겠어.
“물론 세마 오빠는 맨몸으로도 버티긴 했지만... 그건 그냥 세마 오빠가 타고난 수컷이라 그런 것 뿐이고...”
어쩔 수 없어. 타고난 육체의 차이는, 잔재주로 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히어로 나이트 정도로 고 레벨의 용사라면 모를까... 아직 레오 오빠의 레벨로는, 그 우월한 수컷이 가진 힘에 못 미치는 게 당연한 거야.
용사니 뭐니 해도 결국 인간... 무기와 스킬을 뺀 맨몸으로만 보자면, 인간은 몬스터에 비해 열등한 존재일 뿐...
...응.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치인걸.
“그, 그러니까! 세마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레오 오빠도 충분히 강해! 자신감을 가져! 오빠!” “...읏, 크윽......”
어라...? 레오 오빠가, 어째서 저런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는 걸까?
혹시 세마 오빠보다 약한 수컷이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
으응... 왜지...? 그건, 당연한 건데...?
용사도 특별한 존재이긴 하지만, 세마 오빠는 더욱 특별한 신수. 그것도 그런 우월한 육체를 타고난 강한 수컷이잖아?
내 몸으로 겪어 봤으니 잘 알아. 우월한 수컷인 세마 오빠의 육체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봤자 따라갈 수 없어.
그런 흉포하고 거친 힘을 발휘하는, 세마 오빠의 우월한 육체... 응. 그건, 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훌륭한 것이었는걸.
거기에 비교되려면, 적어도 용사들 중 최상위의 존재들인 히어로 나이트 급은 되어야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왜, 레오 오빠는 저런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내가, 위로의 말을 잘못 고른 건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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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나와 레오 오빠는 대화가 끊긴 채 영주성으로 돌아왔다.
간신히 쥐어짜낸 것처럼 내일 보자는 인사말과 함께, 힘없이 숙소로 돌아간 레오 오빠.
밤새 레오 오빠의 그런 기죽은 표정을 생각하다가, 아침에 되어 습관처럼 훈련장을 향했다.
...괜찮을까? 그런 표정의 레오 오빠를 처음 본거라... 오늘은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어...
아무래도 어제 건넨 위로는 내가 뭔가 실수한 것 같은데... 하아. 답답해.
“세실리아.” “어? 레오 오빠?”
내가 훈련장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안 걸까? 몸을 풀고 있던 도중, 레오 오빠가 훈련장에 들어왔다.
“...같이, 훈련하지 않을래?”
앗... 레오 오빠. 저 진지한 표정은...
그렇구나. 레오 오빠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거구나.
쿡쿡... 귀여워. 기껏 휴일이 되었는데, 저렇게 진지하게 훈련하자고 찾아오다니.
내가 검 들고 쫓아다니면 위험하다면서 피하던 오빠가... 후훗.
레오 오빠가 저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을 줄은 몰랐는걸? 어쩐지 조금 멋있는 것 같아!
응. 좋아. 오빠의 약혼자인 내가, 오빠가 강해지는걸 도와줘야지!
“응! 같이 훈련하자! 레오 오빠!” “그래. 그럼, 검은...” “아, 훈련장에 있던 건 어머님이 치우셨어! 어차피 지금은 내 갑옷도 없는데, 먼저 격투술로 대련하는 건 어때?” “격투술은 딱히 중요한 게... 아니. 그래. 그것도 신체를 단련하는 덴 도움이 되겠지.”
후훗. 용사라고 늘 검만 휘두르던 레오 오빠도, 이젠 좀 아는구나.
나도 세마 오빠 덕분에 안 사실이지만, 맨몸으로 움직이는 게 은근히 단련이 잘 되는 것 같지?
물론 나도 검이 가장 좋긴 하지만... 뭐랄까, 세마 오빠 덕에, 검 말고도 재미있는 걸 알게 된 느낌이야.
그런 즐거운 대련, 레오 오빠와 할 수 있다면 이유야 어찌됐든 두근거리는 대련이지!
다만, 저번의 대련은 좀 실망스러웠지만 말이야. 이번엔 레오 오빠도 진지해 보이니, 저번과는 다르겠지?
과연, 진지한 레오 오빠는 얼마나 강할까?
자! 오빠의 귀여운 약혼자인 내가 강해질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마음껏 덤벼봐!
“준비 됐지? 시작해! 오빠!” “그래. 그럼... 먼저 공격한다!”
꺄아♡ 레오 오빠가 웬일로 먼저 공격을!?
그래! 그거야 오빠! 평소에 내 공격만 받아주는 게, 얼마나 답답했는데!
응. 강해질 수 있어. 레오 오빠라면 분명, 지금은 무리더라도 훗날 세마 오빠만큼 강한 수컷이...!
“흣! 핫! 하아!” ‘......어라?’
뭐지? 팔에 감기는 이 미묘한 타격은?
어라? 레오 오빠. 표정은 진지한데... 왜 아직도 봐주고 있는 거야?
아무리 근육이 없는 약한 수컷이라고 해도, 일단 용사잖아? 이건 저번이랑 그리 다를 게 없는데?
혹시 빈틈을 노리고 있는걸까...? 그럼, 살짝 몸을 열어 주면...
“...! 큭...! 하아!!”
기껏 몸을 열어줬는데, 순간 움찔한 모습을 보인 레오 오빠.
내가 약혼자라고 부담스러운 건가... 저렇게 상냥해선...
- 푹!
...어라?
...왜, 자궁이 떨리질 않지?
제대로 복부에 꽂혔는데... 어라? 그리 아프지 않아...?
“...윽...! 세, 세실리아. 괜찮...!!” “오빠. 너무 봐준 것 아냐? 강해지려면, 전력으로 쳐야...” “무슨 소리야! 온 힘을 다해 쳤는데! 아프지 않아!? 어디 잘못되진...”
...아. 뭐야.
이게, 전력으로 친 거라고...?
아무리 저런 근육 한 점 없는 연약한 육체라고 해도, 진지한 모습이라면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하하. 이제 좀 알 것 같아. 세마 오빠가, 자신을 왜 그리 우월한 수컷이라고 강조했었는지.
그렇구나...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지금 이 정도라면...
아무리 노력해 봤자, 레오는 평생 세마 오빠를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
인간 수컷. 열등한 수컷은... 몬스터를, 우월한 수컷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거였어...
“...하아. 레오 오빠.” “응? 세실리아? 괜찮아?” “이번엔 내가 공격할 테니까. 받아봐.” “윽, 잠깐, 세실리...!”
왜지?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레오 오빠는, 나 때문에 강해지려고 하는 것일 텐데...
약혼자인 나는, 그런 레오 오빠를 응원하고 도와줘야 할 텐데...
암만 노력해 봤자 수준이 뻔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 실망을 넘어 짜증이 나.
용사주제에... 나와 결혼해야 하는, 약혼자인 주제에...
어째서! 날 만족시키지 못하는 그런 열등해 빠진 몸을 가지고 태어난 건데!
“큭, 세실리아...!” “버텨! 강해지고 싶잖아! 이 정도도 못 버티면 어쩌려고!?”
고작 이 정도라면, 암만 노력해 봤자 우월한 수컷은 될 수 없어!
내 약혼자이면서, 그렇게 분한 표정을 지었으면서...!
기껏 짜낸 힘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된단 거야!?
그딴 건 수컷이 아냐! 그런 힘으론, 날 굴복시킬 수 없어!
“컥, 커헉...! 세실리아...! 잠깐...!” “물렁해! 밋밋해! 뭐야 이 몸은! 좀 더 힘줘서 단단하게 만들어 보라고!”
뭐야? 왜 그렇게 괴로운 표정이야?
세마 오빠에겐 간지러운 수준밖에 안 되는 내 허약한 주먹이, 그렇게나 아픈 거야?
하하! 그렇게나 강해 보였는데, 이제 보니 레오는 그냥 좆밥이구나?
응. 뭐, 어쩔 수 없네! 열등한 수컷 수준은, 딱 이 정도 아니겠어?
암컷에게 밀리는, 열등하기 그지 없는 나약한 수컷.
...풉. 그래. 레오 너도 결국 나에게 얻어맞던 수컷들처럼... 날 굴복시킬 수가 없는, 열등한 수컷이란 거구나.
그래. 그렇다면... 네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수컷이라면...
네게 어울리는 역할은, 내 샌드백이나 되는 거야!!
“커허억! 쿨럭, 쿨럭...!! 컥...!” “푸후훗...♡ 허저업~♡ 정말 약하네. 레오.” “윽, 세실리...” “하아... 이렇게나 약하다니... 정말, 앞으로 노력을 많이 해야겠는걸?”
노력해 봤자 뻔한 수준이겠지만... 뭐, 혹시 모르지.
용사이니까, 선택 받은 존재이니까. 갑자기 각성해서, 내 약혼자에 걸맞은 강한 수컷이 될지 누가 알겠어.
하지만 그러지 못한 다면... 레오 네가, 계속 열등한 수컷일 뿐이라면...
...일단, 내 약혼자니까. 믿고 있을게. 레오.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너니까,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우월한 수컷이 되어, 날 지배해줄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놀고 있을 때가 아니였네. 레오.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나랑 훈련해. 오늘처럼 말야.” “세, 세실리아...?” “죽을 만큼 단련해. 계속 약한 상태라면, 오늘처럼 내 샌드백이 될 테니까.”
부디, 죽을 만큼 단련해서 각성해 봐. 레오.
그러지 않는다면 난, 약해빠진 널 수컷으로 볼 수가 없어.
앞으로 영원히, 내 샌드백으로 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날, 우월한 수컷에게 빼앗기기 싫다면...
부디, 강해져서 날 만족시켜 보도록 해.
뭐, 딱히 기대되진 않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