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4 - 막간 ~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는 라디아 ~
라디아의 영주 가문이 관리하는 라디아의 교육 기관. 라디아나 학원.
라디아에서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보내길 원하는 이 곳은, 왕국에서 손꼽힐만한 최고의 교육 기관 중 하나이다.
기본 교과, 교양, 학생 개인의 전공에 맞춘 개인 교육과, 대학 시설.
비싼 교육 비용이 문제일 뿐, 머나먼 타 지역에서까지 찾아오는 이가 있을 정도로 이 학원의 교육은 귀족이나 부유층이 큰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학원 내에서는, 영주가 허가한 나이나 신분에 따르지 않는다는 방침 역시 마찬가지.
이 학원은 단순히 교육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나이와 신분을 벗어난 일종의 사교의 장이었다.
귀족 출신에게는 다양한 만남의 기회를, 평민 출신에게는 권력층과의 인맥이 생길 기회를.
훌륭한 교육과 더불어 신분을 벗어난 만남을 가질 수가 있는데, 어느 누가 이 학원에 자식을 보내기를 마다할까?
리안나와 다리오가 디노를 이 학원에 보내는 것도, 바로 이 훌륭한 교육과 만남의 기회를 디노에게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회가, 디노에겐 괴로운 경험이 될 줄은 몰랐었지만.
“...야, 저거...” “뭐야... 미쳤나 봐...” “저러면, 또 라울이 괴롭힐 텐데...”
디노와 라울이 함께 수업을 듣는, 상급 교양 시간.
교실에 모인 학생들은 모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라울 일당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모렌 디노가 앉아 있는 곳을.
“아, 안 부끄럽나 저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을...” “계집애라고 괴롭히니 진짜 계집애가 되기로 한 건가...” “...미친. 화장까지 한 것 같은데...” “...야. 내가 게이는 아닌데, 저거 여자애들 보다 더 예쁜 것 같지 않냐?” “미쳤냐?”
안 볼래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외모가 여자 같다곤 하지만, 그래도 멀쩡한 남자였던 디노가 마치 여자 같은 옷차림을 한 채 나타났으니까.
심지어 그것도, 여자 모험가들이나 노출을 즐기는 여자들이 입을 법한 과격한 옷차림으로.
매끈해보이는 재질의 스타킹과 장갑. 그리고, 엉덩이 살이 보이는 짧은 핫팬츠와 가슴을 가리는 짧은 셔츠.
그런 모습으로 껌을 씹으며 다리를 꼬고 있는 디노의 모습은, 남자들에겐 충격과 공포의 모습이었다.
“세상에... 디노 쟤...” “이제 그냥 막 나가기로 했나 봐...” “얼마나 괴롭힘 당했으면... 불쌍해라...” “...근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 정말 여자 같아.” “흐응... 저런 모습인데, 가랑이 사이엔... 헤에...”
그런 디노의 모습에 놀라는 것은, 교실에 있는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그녀들의 반응은, 기겁하는 것에 가까운 남자들의 반응과는 조금 달랐다.
디노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약간의 연민. 여자인 자신들이 봐도 여자처럼 보이는 디노의 외모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수컷이 여장을 하고 다니는 것에 대한, 묘한 성적 호기심.
보통은 남자들처럼 기겁해야 정상일 테지만, 왠지 모르게 디노를 바라보는 여자들에게선 오히려 재미난 것을 보는 듯한 표정들이 드러나 있었다.
이 여자들의 반응은, 단순히 디노의 변화에 대해 놀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디노가 교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교실에 희미하게 감돌기 시작한 묘한 향기 때문일까.
무엇이 되었건, 교실에 있는 몇 명의 여자들이 지금 디노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어째선지 아랫도리가 저릿해지는 듯한, 묘한 두근거림.
왠지 모르게 저 암컷의 모습을 하고 있는 수컷을, 잘근잘근 짓밟아 주고 싶다는 이상한 감정이 여자들의 가슴 한 켠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지금 남자들을 더욱 기겁하게 만들며 여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존재들이 추가로 교실에 들어왔다.
“아, 디노... 아, 안녕...” “...쿡쿡. 그래 라울. 안녕.”
학원 안에서는 교묘하게 디노를 괴롭히고, 밖에서는 귀족이란 신분까지 쓰며 디노를 괴롭히던 라울.
교실에 있던 학생들은, 지금 라울이 나타나면 디노를 어떻게 괴롭힐지 상상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상상과는 달리, 나타난 것은 디노처럼 여자 같은 꾸밈새로 나타난 라울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내가 지금 뭘 보는 거지...?” “어, 어...? 쟤, 쟤가 라울이라고...?” “마, 말도 안돼...? 여동생 아냐...?”
평소에도 여자 같던 디노와 달리, 라울과 그 친구들은 평범한 남자.
그런 인물들이 여장을 하게 되면, 누가 봐도 눈이 썩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라울 일당은 아무리 봐도 머리가 짧을 뿐인 여자 그 자체.
체형과 신장까지 변화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단순히 여장으로 취급하기엔 너무나도 커다란 변화였다.
“많이 늦었네?” “그, 네가 사오라고 한걸 사다가...” “누가 변명하래? 쥐어 짜이고 싶어?” “아, 그... 미, 미안...” “계집애처럼 웅얼거리지 마. 자꾸 거슬리게 굴면 누나들한테 부탁해서 ‘놀이’의 강도를 올릴 거야.” “아, 알았어... 미안해...”
그리고, 그 변화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건방지던 귀족 자제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디노의 눈치를 살피는 라울의 모습이었다.
마치 디노가 라울 무리의 대표가 된 듯한, 역전된 두 사람의 분위기.
디노의 주변에서, 여장한 수컷들이 주춤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뭐야... 저거...” “쟤들, 도대체 무슨 일이...” “무, 무슨 악질적인 마법에 당하기라도 한 건가...” “...야. 나 좀 꼴린 듯.” “미쳤냐고 진짜.”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수컷도 암컷도 아닌 자들을 보며 수군거리는 교실의 학생들.
그들의 수군거림은, 교실에 들어온 여선생이 출석을 부르며 당황할 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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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 라디아다~” “몇 개월 만이야 진짜~. 드디어 방에서 쉴 수 있다니!” “리더! 저희, 먼저 가서 쉬어도 돼요?”
모습이 변한 디노 일행이, 학원에서 주목을 받을 무렵.
라디아의 서쪽 성문에서, 3개월만에 복귀한 한 길드가 라디아에 돌아왔다.
수 개월이 걸리는 몬스터 토벌에 나설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모험가 길드. 새벽의 발자국.
준 히어로 나이트급에 해당하는 50레벨대의 용사. 브랑의 길드였다.
“그래. 다들 먼저 가서 쉬어. 이번 토벌 결산과 뒷풀이는 내일 하도록 하자.” “고마워요 리더~” “길드장 님! 수고하셨습니다~!” “아. 토벌 보고 하러 가는 거면 같이 가지! 길드장!” “다나! 배고프지 않아?”
2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서로 즐겁게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준 히어로 나이트인 만큼, 길드 역시 거대한 규모인 새벽의 발자국.
그 길드원들 중 핵심적인 길드원에 해당하는 이들만으로 진행된 토벌이었지만, 3개월이 걸린 퀘스트 기간은 고레벨인 그들 역시 지치는 기간이었다.
지친 피로를 풀기 위해, 각자의 집 혹은 길드 건물로 향하는 새벽의 발자국의 길드원들.
그 중 다나와 헤즐리 라는 여성들이, 서쪽 성문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자신들의 집을 향해 함께 걸었다.
“아으으~! 드디어! 이제 우리도 중심가 쪽으로 이사할 수 있겠다!” “하아~. 계약 조건을 제대로 못보고 계약해버려서, 2년이나 묶여있었다니...” “급하게 집을 사는 게 아니었어... 그래도, 이번 토벌 보수를 더하면 꽤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겠지?” “그 동안 상당히 모았으니까. 어쩌면 귀족 거리 근처로 갈 수 있을지도 몰라.” “잘생긴 귀족 옆집이면 좋겠다~. 미혼이면 더 좋고!”
자매는 아니지만, 자매 수준으로 가까운 사이여서 함께 돈을 모아 라디아에 집을 마련한 두 사람.
월세를 내기 귀찮아 싸게 마련한 집이었지만, 싸게 계약한 만큼 그 집은 내부에 성한 곳이 없었다.
겉보기만 그럴듯했을 뿐, 집에 구축된 마법진들까지 구형이어서 뜨거운 물 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던 형편없는 집.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상당한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사기에 가까운 계약은 덤이었었다.
별수없이 분을 삭히며 그냥 지내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얼마 후면 끝.
이번 토벌에서 분배될 두둑한 보수와 더해, 어디로 이사할지를 기대하며 곧 헤어질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난 어디로 가든, 이제 유흥거리 쪽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 “그러게. 유흥 거리 쪽이 이렇게 살기 불편할 줄은 몰랐지.” “술집 가깝다고 좋아할 게 아니었어. 정말, 주정뱅이들이 그렇게 많을 줄은...” “사람들이 별로라고 하는 덴 이유가 있다니까. 하아...”
한 숨을 내쉬면서,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두 여성 모험가.
그렇게 집으로 향하던 중, 그녀들의 집이 가까워진다는 증거인 한 건물이 그녀들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신수네 집이다.” “저기도 오랜만이네... 어라? 뭔가 더 늘어난 것 같지 않아?” “으음... 그러게. 토벌 나가기 전엔 건물 창 안쪽이 휑한 느낌이었는데...” “가게들이 들어왔나 보네. 근데, 딱히 장사가 잘될 것 같진 않은데...” “신수는 왜 저런데다 집을 마련한 건지 몰라~.”
그녀들이 신수네 집이라고 표현한, 유흥 거리에서 눈에 띄게 화려한 건물.
그 건물은, 모험가들 사이에선 신수의 집이니 신수 건물이니 하며 제법 유명한 건물이었다.
신수 그 자체로도 이미 이 라디아의 유명 인물.
그런 신수가 영주에게 어마어마한 포상금을 받아 깔끔하게 개축하고 자신의 가게까지 차렸다는데. 어찌 유명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단지 단점이라고는, 유흥 거리 안에서도 너무 안쪽에 있다는 것일 뿐.
근처에 집이 있는 자신들이 아니더라도, 소문을 들은 모험가들이 종종 찾아가던 곳이 바로 저 신수의 건물이었다.
“무슨 가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사하면 여기 올 일도 없을 텐데. 한번 가 볼까?” “다음에~. 일단 오늘은 좀 쉬고 싶어.” “하긴. 좀 씻기도 해야 하니까... 어라? 편의점도 생겼네.”
집으로 가려면 신수의 건물을 지나쳐야 하기에, 건물을 살펴보며 유흥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던 다나와 헤즐리.
옷가게만 있던 신수 건물의 1층에, 작은 편의점이 생긴 것이 보였다.
“으음... 지금 들어가면, 나오기 귀찮은데...” “...마실 것 좀 사 갈까?” “그러자! 이 근처엔 편의점도 없었는데. 있으니까 좋네~.”
마치 빨려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편의점 안으로 들어온 두 모험가.
간단한 먹거리와 술을 담은 뒤, 조금 과도한 노출을 하고 있는 점원 앞에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계산을 하려던 도중, 그녀들의 눈에 들어온 무언가의 문구.
‘드디어 풀렸다! 당신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어줄, 기분 좋은 한 모금!’ ‘라디아에 등장한 새로운 담배를, 당신도 맛보세요♡’ ‘귀족이나 경험하던 그 기분! 이젠 모두가 누릴 수 있어요!’
그 문구의 근처에, 네모난 형태의 상자들이 선반 위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저기, 저건 뭐에요?” “아, 담배 말씀이신가요? 얼마 전에 라디아에서 담배 관련 제한이 풀렸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팔기 시작한 거에요.” “헤에... 저게, 담배...” “나 저거 피던 귀족 본 적 있는데... 연기를 먹는 게 맛있나?” “스트레스가 풀린다니, 조금 궁금하네. 무슨 느낌이지...”
새로운 물건은, 모험가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
다나와 헤즐리 역시, 처음 보는 저 물건에 자연스럽게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저기, 저거 얼마에요?” “동화로 5닢 이랍니다. 저건 신수님께서 판매하기 시작한 담배인데, 세금이 면제되어서 엄청 싸게 나왔어요.” “신수? 이 건물 주인인 그 신수? 와... 이젠 저런 것도 파나보네.” “혜택 받아서 좋겠다~. 우린 목숨 걸고 한탕 뛰어봤자 모험가 길드 보수 뿐인데...” “그래도 동화 5개면 돈 벌 생각은 크게 없나 보네. 저거 엄청 비싸다 들은 적 있는데. 금화 단위로 팔린다고 하지 않았었나?” “하여간 귀족 놈들. 세금으로 떼먹는 건 뭐 있다니까.”
불만스럽게 말하면서, 담배 흥보 문구를 흥미롭게 쳐다보는 다나와 헤즐리.
부담 없는 가격 때문일까. 아니면 새로운 물건에 대한 흥미 때문일까.
건네는 돈에 동화 5닢을 더 건네면서, 그녀들은 선반에 쌓인 담배를 가리켰다.
“저것도 같이 하나 주세요.” “네. 담배 한 갑. 구입 감사합니다♡ 행사품인 재떨이도 같이 드릴게요~♡” “그 가격에 행사품도 있어요? 남는 게 없겠다...”
밝게 웃으면서, 그녀들이 구입한 술과 먹거리를 담은 봉투에 담배를 넣어주는 점원.
과하게 밝은 그녀의 인사에,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편의점을 나왔다.
“싹싹한 직원이네. 편의점 직원 이라기엔 옷이 좀 노출이 있긴 하지만.” “좀 더 일찍 생기면 좋았을 텐데... 뭐, 생기든 말든 이사는 할거지만.” “얼른 가서 씻은 다음에 맥주 하나씩 때리고 자자. 피곤해~.” “이 담배, 끝에 불 붙이면 되는 거였지? 궁금하니 한번 피워보고 자야겠어...”
물건이 든 봉투를 나눠 든 채, 그렇게 웃으며 편의점을 나가는 두 여성 모험가.
그녀들을 바라보는 점원의 표정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마치 계획대로라는 것처럼, 헤즐리의 손에 들린 담배를 보며 키득거리는 편의점의 직원.
편의점의 문이 닫히면서, 그녀들은 그 사악한 미소를 보지 못하고...
이틀 후, 또다시 담배를 구입하기 위해 이 편의점에 들리는 것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