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81 - 436화 - 즐거움이 더해져가는 마법도시! (3)
내 손을 붙잡고 연구실 안쪽으로 들어와, 구석진 곳에 날 밀어 넣는 페이엔.
지금 그녀의 손아귀 힘은, 내가 뿌리치지 못할 정도로 강한 힘이 실려있었다.
요 작은 덩치의 어디에서 이런 힘이... 이건 마치, 주인을 끌고 가는 대형견 같은 느낌이...!
아니 뭐, 사실 뿌리치려면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겠지만~ 묘하게 몸에서 아우라가 보이는 것 같아서, 뿌리치기가 좀 그러네? 푸흐흐.
너무 그렇게 잡아당기지 말라고 페이엔. 이 마왕님은 암컷을 두고 어디 가진 않으니까 말이야. 큭큭...
“꺄흥...!”
날 벽에 밀어 넣고서는,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처럼 벽에 손을 짚으며 날 올려다보는 페이엔.
조그마한 신체로 날 가두는 듯한 그 모습은, 표정이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귀엽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캬... 여기서 말자지만 꺼내 세우면 구도는 딱인데 말이야. 자기 머리 위에 솟아오른 말자지를 올려다 보는 구도잖아?
날 째려보는 이 시건방진 표정이, 말자지를 꺼내면 어떻게 될지...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고 페이엔. 흥분돼 버리잖아. 큭큭...
“뭐야~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페이엔?” “...너. 뭐야.”
능청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척 페이엔을 바라보던 도중.
피식 웃으며 페이엔에게 묻자,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더욱 날카롭게 날 째려보았다.
으응~? 뭐냐니. 그냥 마왕인데?
마왕을 협박하는 것 마냥 밀어 넣고선 다짜고짜 뭐냐니. 왜 이러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네~
“모르는 척 하지마! 내가 이런 반응 보일 줄 몰랐다는 건 말이 안되니까!” “아니, 정말 모르겠는데~? 뭐야. 실험 결과에 뭐 문제라도 있어?”
페이엔의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무어라 해도 나라는 마왕에 대한 연구. 평범한 암컷이 나에 대해 알아버리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거야 당연한 거겠지.
이렇게 빠르게 반응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만... 아니, 고작 하루 지났는데. 너무 빨리 눈치챈 거 아니야?
도대체 얼마나 나에 대해 알고 싶었으면... 그래. 작기는 하지만 너도 암컷이다 이거지? 큭큭.
“뭐? 문제? 문제에!?”
되묻는 나에게 눈을 치켜뜨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내비치는 페이엔.
그러면서 나를 다시 끌고가, 무언가 묘한 액체들이 부글거리고 있는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눈이 있으면 보라고! 이게 어디 평범해 보여!?” “오... 이건...”
작은 플라스크 안에서, 뭔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끓어오르고 있는 붉은 액체.
아마 내 피에 뭔가 섞여있는 듯한 액체가, 눈으로 보일 정도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뭔가 섞여 있는 것을 집어 삼키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뭐야. 이 액체 치고는 비정상적인 이상한 움직임은?
딱 보기에도 뭔가 위험해 보이는 이상한 느낌이네.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되었담? 푸흐흐.
“이건 말도 안돼... 도대체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에너지의 밀도는!?”
내게 테이블 위를 보인 후, 페이엔이 짜증난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린다.
안 그래도 정리되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이 더욱 헝클어져, 뭔가 더욱 꾀죄죄한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작은 엘프.
한동안 머리를 붙잡고 있다가 고개를 치켜든 페이엔의 얼굴에는, 그 꾀죄죄한 모습을 더욱 강조하듯이 짙은 다크써클이 깔려있었다.
음... 이제 보니 얼굴이 좀 푸석푸석한걸. 혹시 잠도 안자고 연구하고 있었던 건가?
“고작 혈액이 이 정도의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니!? 거기다 성질까지 정상이 아니야! 너, 도대체 뭘 먹고 살아왔길래 피가 이런 거야!?”
어이쿠. 아무래도 결과가 좀 이상해서 계속 매달려 있었던 모양이네? 그렇게 급하게 진행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큭큭.
뭘 먹고 살아왔냐니~ 글쎄 뭐... 고기, 술, 과일... 거기다 내 암컷들의 모유와 애액 정도?
끼니야 뭐 내 암컷들이 잘 챙겨줘서 먹고 있지만, 사실 내 주식은 우리 음수들의 체액이지. 푸흐흐.
예전엔 세레스 정도만 가능했었지만, 음조마를 출산한 이후론 내 음수들 모두 원할 때마다 모유를 뿜어낼 수 있게 되었거든. 그런 극상의 음료가 나오는데, 당연히 그걸 마시고 살아야 되지 않겠어?
그렇게나 강렬하기 그지 없는 달콤한 체액을 마시며 지내고 있으니, 피까지 힘이 넘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
뭐, 그런 달콤한 모유를 뿜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준 건 내 말정액이지만 말이야. 큭큭...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근데 내 피가 이렇게나 기운이 넘칠 줄은 나도 몰랐는걸? 뭘 섞었길래 이렇게 된 거야?
인간들이나 몬스터들의 피를 쓰면 어떻게 되길래? 아마 평범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놀라는 거겠지?
사실 나도 내 몸에 대해 정확히 몰라서, 이 참에 알아볼 겸 연구를 승낙한 건데... 으음. 그래도 피는 별다른 거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설마 피부터 평범하지 않을 줄은 몰랐는걸?
하긴... 이 마왕의 피니까. 테세르의 기운이 잔뜩 농축되어 있는 진한 혈액일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 겠지?
어디선가 얼핏 정액과 피가 비슷한 거라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음...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연구하도록 잘 유도해 봐야겠는걸.
“흐음... 이거,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거야?” “뭐? 하... 야. 잘 봐.”
샬레를 꺼내놓은 뒤, 어디선가 혈액이 들어있는 작은 병을 가져와 그 위에 몇 방울 떨어트리는 페이엔.
거기에 무언가 푸른 색의 액체를 떨어트리자, 혈액과 푸른 액체가 살며시 움직이면서 부드럽게 섞이기 시작했다.
“봤지? 내 피와 혈액 검사용 에세르 시약이야. 이게 평범한 혈액의 반응.”
그렇게 말한 후 다른 샬레를 꺼내, 내게서 채취한듯한 피를 몇 방울 샬레에 떨어트리는 페이엔.
마찬가지로 푸른 에세르 시약을 떨어트리자, 잠시 동안 내 혈액과 시약이 서로를 거부하듯이 부들거리더니...
이내, 내 피가 무엇인가 검은 기운을 뿜어내며, 푸른 액체를 집어삼키듯이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푸른 색의 액체가, 무언가 오염되는 듯한 느낌으로 검은색으로 변하며 붉은 피와 섞이는 기묘한 광경.
부드럽게 섞이던 페이엔의 혈액과 달리, 내 피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푸른 시약을 검게 오염시키며 그것과 섞이고 있었다.
이거 재미있네. 뭔가 탐욕스러워 보이기 까지 하는 묘한 느낌인걸?
“오... 신기해라.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되는 거지?” “뭐? 신기해!? 하... 야. 이거 테세르와 에세르가 섞이는 것과 유사한 반응이거든? 뭔 소리냐면 네 피에 테세르가 검출되었다는 거야.”
오옷? 그런가요? 그럴 거라곤 전혀 상상도 못했어요!
세상에나~ 정말 놀라워~ 피에서 테세르가 검출되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긴 걸까요? 페이엔 교수님?
“물론 평범한 테세르도 아니야. 원래 에세르와 테세르는 섞이는 게 아니라 반발 후 중화되어야 하는데... 처음엔 테세르가 아닌가 싶었지만, 이쪽 반응을 보니 테세르는 확실해.”
뭔가 부글거리고 있는 플라스크를 가리키며,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찡그리는 페이엔.
그 표정에선 무언가 자기 생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듯한, 짜증에 가까운 감정이 엿보이고 있었다.
“신수의 혈액이라면 당연히 에세르를 증폭시키며 다른 반응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뭐야 너. 신수가 맞기는 해? 아니 그 전에,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에엥? 어떻게 살아있냐니. 테세르가 검출된 게 그렇게 심각한 거야?” “당연하지! 테세르는 이 우주의 어딘가... 그러니까 이계와 연결되어 있는 던전에서나 검출되는 에너지야. 그쪽의 생물이라고 추측되고 있는 마물이라면 모를까, 살아있는 생명체가 지닐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니라고! 상식이잖아!”
오옷? 이야. 설마 던전이 테센티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까지 눈치채고 있는 건가? 제법이잖아 마법학교.
애초에 마물은 제대로 만들어진 생물도 아니라서, 죽이면 그대로 소멸하니 실험하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과연 똑똑한 놈들이 모여있는 값은 한다는 건가.
이거 도시를 정복할만한 가치가 느껴지는걸. 아주 훌륭해.
“생명체가 테세르를 받아들이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실험은 전부 실패였는데... 뭐야 너. 설마 신수가 아니라 마물인건 아니겠지?” “그 무슨 불쾌한 말씀을... 이래뵈도 멀쩡한 몬스터라고. 그런 마물들과는 달리 에센티아의 주민이라니까?”
암. 마물들과 비슷하긴 하지만, 여신님이 손수 에센티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훌륭한 육체라고.
사실상 재료만 테센티아의 찌꺼기를 썼을 뿐이지, 에센티아의 몬스터들을 만드는 방식대로 만들었는걸?
그 방식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마물이었으면 이렇게 돌아다닐 수도 없었을걸? 에센티아에 가득한 에세르에 억눌려서 소멸됐을 거라고.
신기하지? 푸흐흐. 나도 그래 페이엔. 그러니까 잘 좀 연구해 달라고. 나도 내 몸에 관해선 제대로 파악해 둬야 하니까 말이야.
“아 씨... 마물도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짜증나네...” “야. 아무리 그래도 반응이 너무한 거 아니냐? 너무 괴물 취급하면 나도 상처받는다고?” “그게 아니라. 너 때문에 10년 전 내 논문이 쓰레기가 됐잖아. 그걸로 꿀 빨고 있었는데. 쯧...” “푸핫. 뭐야. 무슨 논문이었길래?” “인간이나 몬스터가 테세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한 논문이었는데... 아 몰라. 이렇게 된 거 다시 연구해야지. 하아...”
큭큭... 이거, 자기 논문이 똥이 된 것 때문에 짜증내던 거였구만. 왜, 그걸로 일 안하고 놀고 있었어?
아무래도 페이엔은 일하기 싫어하는 니트끼가 있어 보이니까. 내키지 않을 때 일하는 게 귀찮다는 거겠지.
뭐, 그래도 이렇게 밤새면서까지 연구하는 걸 보면 연구 자체는 좋아하는 모양이지만...
흐음. 얼른 게을러빠진 조그마한 엘프를, 나를 위해 연구를 즐기는 음란한 암컷으로 바꿔주고 싶어지는걸.
“미하일한테는 뭐라 말해야 한담... 하아. 영감탱이가 비웃는 얼굴이 보인다 보여~” “큭큭... 아. 그것 말인데. 다른 사람들한텐 결과가 좀 나온 뒤에 말하면 안될까?” “뭐? 왜? 물론 나도 다른 녀석들이 끼는 건 귀찮긴 하지만, 지금 네 몸은 나 혼자 가볍게 연구할만한 사안은 아닌데?” “그게... 당분간 마법도시를 즐기고 싶은데, 네 반응을 보니 다른 사람들이 네가 실험한 결과를 알게 되면 귀찮아 질 것 같거든. 특히 학장님이 말이야.” “...뭐, 그렇겠지... 그 영감, 오지랖만 넓어서 궁금한 건 못 참고 지나가는 타입이니까...”
단순히 페이엔을 타락시키는 걸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무심코 꺼낸 말이었는데.
그런데 어쩐지 페이엔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금새 사라지고 짜증난 듯한 표정으로 되돌아오긴 했지만... 뭐야 방금 그 미소?
왠지 모르게 더 보고 싶어지는 미소였는데... 흐음. 잘못봤나...?
“뭐 좋아. 나도 혼자면 편하기도 하고, 새 논문도 만들어야 하니... 근데 너무 오래는 안될걸? 분명 며칠 지나면 뭐 실험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을 텐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잠시 도시를 즐길만한 여유만 주면 돼.” “흐응... 그래. 그렇다면야...”
어차피 그때가 되면, 페이엔 넌 내 암컷에 가까워졌을걸? 푸흐흐.
그때쯤엔 도시의 분위기도 제법 바뀔 테니까. 설령 연구를 중단한다 하더라도 나를 위해 귀찮아질만한 일은 벌이지 않겠지.
열심히 연구해줘 페이엔~ 나도 제대로 모르는 이 육체를 파악하면서, 천천히 음란하고 귀여운 암컷 짐승으로 타락하도록 해~
“그럼, 말 나온 김에... 대충 신수 연구처럼 진행해보려고 했는데 안되겠어. 피부, 털, 체액... 피도 좀 더 뽑고, 채취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연구해 봐야지.”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겨있다가, 결심한 듯이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하는 페이엔.
주사기나 칼, 몇 가지 약품들과, 이상하게 생긴 마도구들 등...
뭔가 보기만 해도 오싹해지는 도구들이 늘어지자, 내 등에서 소름이 돋으며 살짝 몸이 떨렸다.
“히엑... 뭘 그렇게까지...” “뭐야. 협조하려는 것 아니었어?” “그야 물론, 나도 내 몸을 제대로 몰라서 협조하려고는 했는데... 뭔가 기분이 좀...” “덩치는 커다란 게. 뭘 그리 겁먹는 거야? 어제 자기 팔 가르던 신수 어디 갔어?”
피식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메스 같은 칼을 들고서 말하는 페이엔.
그 표정에선 어쩐지 신나 보이는 듯한 감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크흡... 직접 상처 내는 거랑 남이 상처 내는 거랑은 다르지. 무엇보다 도구들이 심상치가 않잖아.
뭐야 그 커다란 주사기는. 뭔가 이상한 것도 달려있는 게, 되게 특수한 주사기처럼 보이는데?
암만 내가 마왕이라고 해도 그런 도구들은 좀 소름 끼친다고. 암컷답게 이런 건 배려를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참...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리저리 뜯기겠구만. 우리 음수들이 알면 기겁하겠어.
“에휴... 그래 뭐. 제대로 연구해서 내 몸을 파악할 수 있다면야... 자. 팔 주면 돼?” “아. 오늘은 피는 됐어. 아직 좀 남은 게 있으니까. 매일 상처내면 미안하니, 필요할 때 채취하는 걸로 하고...”
도구들을 점검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가볍게 말하는 페이엔.
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거대한 주사기가 들려져 있었다.
...뭐야. 왜 피를 뽑는 것도 아닌데, 주사기를...
“털이나 피부 조각은 이따가 적당히 체취하면 되니까... 일단 귀찮은 것부터 처리해야지.” “...응? 귀찮은 거?” “어. 지금 바지 좀 까 봐.”
...뎃? 뭐라구요?
다짜고짜 바지를 까라니. 이런 당돌한 암컷 같으니... 아니, 이게 아니라.
바지를 까라는 건 분명 나야 고마운 말이지만... 어째서, 그걸 그런 불길한 물건을 들고서 말하는 거지...?
“뭐, 뭐라고...? 바지...?” “그래. 바지. 그 천도 치우고. 너는 난생 처음 보는 몬스터니까. 생식관련으로도 연구를 해볼 생각이거든.” “새, 생식...? 근데 왜 그런 물건을... 설마...”
커다란 주사기를 들고서 내게 다가와, 나를 올려다보며 빙긋 웃는 페이엔.
그 표정이 제법 귀엽다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내 등에서는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수컷의 생식 능력을 연구하려면, 당연히 고환에서 뽑아내야 되지 않겠어? 자. 까봐♡”
날카로운 주사기의 바늘과 함께, 다크써클이 짙은 페이엔의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