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18 - 470화 - 마왕에게 도전하는 대마법사! (3)
“후우. 어디보자, 과연 어떻게 되어있... 어이쿠. 이런...”
10분 정도 호텔에 피신해 있다가, 다시 사루앙과 싸우던 장소로 돌아온 순간.
세라의 권능인 짐승의 문을 빠져나오자 마자, 사우나에 들어온 듯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사루앙의 결계 때문에 불길이 남거나 하진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이런 열기가 남아있는 걸 보니, 어떤 식으로 폭발했는지 못 본 게 조금 아쉬운걸?
다음번엔 멀찍이서 확실하게 구경해 둬야겠어... 그럼, 제일 중요한 사루앙은 어찌 되었으려나?
“사루앙 할배~ 살아있나~?” “...크, 으윽...” “오? 살아있네? 푸흐흐. 노인네한텐 너무 화끈한게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 젊을 적에 좀 놀아보셔서 그런지 화끈한 것도 잘 견디는 모양인걸? 큭큭.”
방 중앙에 널부러져 있던 사루앙을 발굽으로 툭툭 건드린 순간, 기어들어가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사루앙이 몸을 꿈틀거렸다.
옷자락이 군데군데 약간 그을리긴 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어보이는 멀쩡함 그 자체.
혹시나 웰던으로 바싹 구워지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겉만 지진 블루레어 스테이크 정도로 끝난 모양이었다.
푸흐흐... 그래. 이대로 죽으면 조금 아쉽지. 주제도 모르고 감히 이 마왕에게 덤빈 인간인데, 이렇게 쉽게 죽어버리면 조금 아쉽잖아?
무엇보다 페이엔의 양아버지나 다름없는 할배인걸. 적어도 페이엔이 나와 맺어지는 건 보고 가셔야지. 큭큭....
“아 뭐야. 멀쩡하네. 거의 모든 에너지를 마나로 치환해서 때려 넣은 거였는데...” “그래도 거의 빈사상태잖아? 충분히 훌륭하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 리즈.”
내 등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리즈벳이, 비교적 멀쩡한 사루앙의 상태를 보고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푸흐흐. 새로운 마법의 첫 결과가 이래서 조금 아쉽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어찌보면, 이건 생각 이상의 결과 아닐까?
비록 죽이지는 못했지만, 날 능가하는 수치의 에세르를 끌어오고 있던 사루앙이니까.
그런 에너지를 모조리 방어에 돌렸을텐데도 이렇게 만들었으니, 이건 어찌보면 히어로 이터나 고레벨 용사한테도 먹힌다는 증거 아닐까?
물론 나랑 세레스가 에세르를 좀 소모시켜두기도 했고, 결계 때문에 폭발이 퍼지지 않고 집중되었다는 것도 고려해야 겠지만...
그래도 몇 배가 넘는 에세르를 고갈시켜 버릴 정도이니, 효과로만 따지만 아주 충분해.
푸흐흐. 오늘 밤은 아주 뜨거워지겠는걸. 이런 기특한 마법을 만들어낸 내 음수들을 칭찬해 줘야하니까 말이야.
“크, 윽...! 헉, 허억...! 이, 이노옴...!” “어이쿠. 아직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네? 어딜 손가락을 놀려?” “크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키다가, 나를 향해 손을 뻗어 마법진을 만들려던 사루앙.
그런 사루앙의 등을 마신구현화로 만들어낸 말다리로 짓밟자, 사루앙은 바닥에 넘어지며 거친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게 사루앙을 짓밟자마자, 사루앙의 등 뒤에 방어 마법진과 깜빡거리는 주변의 수정들.
방 안을 밝히는 마도구도 전기가 끊기려는 것처럼 깜빡거리는 걸 보니, 끌어오고 있다던 에세르도 거의 바닥난 모양이다.
“이런. 에너지는 아껴 쓰셔야죠 영감님. 이렇게 막 쓰면 요금폭탄이 날아온다고. 큭큭.” “쿨럭, 컥...! 허억, 허억...! 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말이 안되긴. 전부 현실인데. 나이도 드실만큼 드신 분이 왜 이렇게 현실부정을 하실까?” “이노옴... 단순한 마물 따위가 아니구나 네 놈은... 이렇게 된 이상,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네 놈을...!”
어이쿠. 아직도 뭔가 비장의 한 수가 있는 건가? 과연 대마법사라고 지칭할만 한걸?
근데 그런 걸 가만둘 수는 없지. 늙어빠진 수컷과 동반자살이라니. 그딴 건 사절이라고.
“다들. 조금 피곤하겠지만 부탁해.” “후훗. 마왕님이 원하시는대로♥” “알았어 마왕님♥ 근데 난 테세르가 부족해서 몇 초 정도가 한계일지도?” “충분해. 자, 사루앙. 그러면...”
최후의 한 방을 위해 마나를 모으며, 몸 아래에 마법진을 만들던 사루앙.
하지만 그 마법진이 완성되기 전에 리즈벳의 속박이 사루앙을 제압하고, 그런 사루앙에게 클레아와 세라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윽!? 뭐, 뭐냐 이건...!? 살아있는 생명체의 육체에 직접...!? 무슨, 이런 말도 안되는 마법이...?!” “이건 마법이 아니거든~♥ 마왕님의 음수인 내가 마왕님께 하사받은, 나만의 권능이라고 해야하나? 쿡쿡...♥” “그게 무슨...! 뭐, 뭐냐, 나에게 뭘 하려는게야!?” “자아~♥ 아프지 않아요~♥ 그냥 조금 따끔할 뿐이랍니다~♥” “커, 커헉!? 끅, 으으윽...!!?”
리즈벳이 잠시 묶어둔 동안, 사루앙의 목에 세라가 건네준 미완성 상태의 절망 마약을 꽃아넣는 클레아.
그러자 사루앙의 눈에 핏발이 서면서, 사루앙의 몸 아래에서 만들어지던 마법진이 빛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
기왕이면 완성된 절망 마약을 꽃아주는 게 좋았겠지만... 아직 완성되질 않았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전투할 수 있을 정도로 팔팔한 할배니까. 조금 효과가 거칠더라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겠지?
최대한 잘 버텨내 봐 사루앙. 어쩌면 발기부전에 빠진 늙은 실좆이, 오랜만에 기운을 차릴 지도 모른다고? 큭큭...
“커, 커흐윽...! 끅, 그륵...!!?” “오오~ 역시 대단해... 실험해봤던 젊은 수컷들보다도 잘 버티는 것 같은걸?” “뭐, 뭐냐 이건...!? 어째서, 이런 감각이...!? 왜, 이런 절망스러운 감정이 생기는... 크흑...!!” “꽤나 자극적이지? 내 음수들이 괜히 마약이란 이름을 붙인 게 아니라니까. 앞으로 이 절망 마약이 없으면 못사는 몸이 될지도 몰라~ 큭큭.” “끅, 악...! 으하아아악...!!”
큭큭... 노인네가 눈물이랑 침을 흘리면서 몸을 뒤트는 꼴을 보니, 불쌍해서 차마 보고있질 못하겠구만.
이거 그냥 곱게 보내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인데... 노인네가 고통스럽지 않도록 뭔가 해드려야겠지?
어쩔까. 제법 잘 버티고 있지만, 절망 마약을 한 방 더 꽂기엔 역시 나이가 좀 걸리는데...
흐음... 가만. 살려두는 쪽이 좋지만 어차피 죽어도 크게 상관은 없으니까.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실험이나 해볼까?
“그륵...! 흐윽, 헉...! ...크헉!? 뭐, 뭐냐!?” “에헤이. 가만있으셔. 잠깐 뭐 좀 확인해 보려는 것뿐이거든.” “이, 이 놈...! 크헉, 노, 놓아라...! 이거 놓지 못해...!?” “푸흐흐... 세레스. 내가 힘을 방출하면 사루앙을 영원한 시간으로 보내버려.” “네♥ 알겠습니다 마왕님♥”
사루앙의 눈을 가리듯이 머리를 붙잡자, 내 팔을 잡으며 버둥거리는 사루앙.
그런 사루앙의 반항을 무시한 채 다른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나는 내가 잘 알고있는 그 감각을 떠올리기 위해 의식을 집중했다.
마왕이 된 이후부터는 매일같이 경험한, 내 가축들을 만들어내는 감각.
내 가축들을 만드는 것에는 교미가 필수이지만, 가축을 만들어낼 때의 교미는 평범한 교미와는 느낌이 다르다.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교미의 쾌감 자체는 그대로지만, 암컷을 짐승으로 바꾸겠다는 내 의지에 따라 테세르가 조금 다르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
내 테세르를 천천히 몸에 새기는 음수들과는 다르게, 뭔가 급속으로 빠르게 칠해버리는 듯한 기묘한 그 감각...
그 감각을 잘 이끌어낸다면, 굳이 교미할 때가 아니더라도 내 테세르를...
“우, 우오오오오오오오옷!!?”
이렇게, 주변을 오염시키듯이 꺼낼 수 있지 않을까.
“으헉!? 억!? 아!? 으허어어어억!!?”
푸흐흐. 단순한 실험이야 사루앙. 내가 가축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수컷에게 적용하면 어찌될지 확인해보는, 그런 실험.
교미는 해주지 않으니 신체 자체가 변질되는 짐승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게 잘 풀리면 수컷이라도 어느 정도 ‘진실’ 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에센티아는 나라는 마왕이 지배하지 않으면, 그대로 멸망해 버린다는 잔혹한 진실...
암컷들은 모두 내 가축이 되는 순간 알게 되는 진실이니까. 머릿속에 직접 테세르를 새겨주면 수컷이라고 해도 그 진실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만약 그렇다면, 제대로 그 머릿속에 새기고 오라고 사루앙. 마침 세레스가 네 시간 감각도 느리게 만들어 줬으니까 말이야.
오랫동안 머리 속에 새긴다면,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할 그런 경험이 되겠지?
과연 진실을 알게 된 수컷이 내게 어떤 태도를 보일지... 기대해 보겠어.
“끄아아아아아악!? 뭐... 냐....! 이, 이... 거언...!?” “푸흐흐. 어때 사루앙~? 머릿속에 뭔가 흘러들어오고 있습니까아~?” “끄하, 악...!! 그, 마안...! 아, 안...! 이런 건, 버틸, 수가아...! 끄하아아아악!!”
제대로 진실을 보고 있는 걸까? 뭘 버티지 못하겠다는 건지 궁금한걸.
음... 이 정도면 이제 괜찮은가? 대충 느낌으론 이 정도인데...
어디, 사루앙의 머릿속에 뭐가 흘러들어 갔는지 보자고.
“컥, 커헉!! 크허어어어...!!”
사루앙의 머리에서 손을 떼자, 바닥에 쓰러지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사루앙.
세레스의 얼어붙은 시간도 멈추자, 사루앙은 감각을 확인하는 것처럼 부들거리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돼...” “푸흐흐. 왜. 뭘 보셨길래 말이 안되신대?” “그게... 사실인가...? 아니, 사실이란 말입니까...?”
오~ 이거 뭐야. 갑자기 나한테 존댓말을?
큭큭... 아무래도 이거, 내 생각대로 잘 풀린 모양인걸?
“말도 안되는... 이 에센티아가... 멸망을, 앞두고 있다고...?” “그래. 그것도 용사라는 뒤틀림 때문에 말이지.” “아, 아아...! 어찌,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존재가...! 그런...!!”
절망했다는 듯한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고개를 떨구고 몸을 떠는 사루앙.
내려다 보이는 노인의 뒷모습에서, 절망했다는 감정이 너무나도 잘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알겠지? 지금 에센티아에 살고 있는 생명들은, 그 설계부터가 잘못되어 있었다는걸.” “크, 흐윽...! 으흑, 으흐윽...!!” “이미 뒤틀림이 생겨버렸으니, 이대로 두면 그냥 멸망할 뿐이야. 우주 자체가 그냥 무의미하게 사라지게 되는 셈이지.” “으흑...! 아, 으아아...!!” “근데 그러면 너무 허무하겠지? 그런 허무한 멸망을 막기 위해, 여신이 나라는 마왕을 만들게 된거다.”
뭐어... 여신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자고.
“방식이 방식인 만큼, 수컷들을 구원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마왕이라면 암컷들만큼은 짐승으로 변질시켜서 구원해 줄 수 있지. 결함이 있던 육체를 새롭게 바꿔주는 셈이랄까?” “......” “억울하겠지만 뭐 어쩌겠어. 여신이 너흴 결함 덩어리로 만들어 버린것을. 부정적인 감정이나 에너지를 따로 모아둔다니. 살면서 이런 저런 일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게 가능하겠어?” “............” “태초에는 정말 선한 감정이나 긍정적인 면만 있었겠지만, 지금 너희는 뒤틀림때문에 여신의 의도와는 멀어진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대표가 바로 용사들이고. 용사들을 모조리 죽이면 멸망이야 잠깐 멈추겠지만, 너희가 뒤틀린 존재가 되어버린 이상 또다시 용사가 나오게 될거야.”
이미 늦어도 한참 늦어버렸단거지. 이 에센티아의 생명체들을 살려두기엔 말이야.
“그나마 유일한 해결책은... 이 우주에 분리되어 있는 에세르와 테세르를 어떻게든 천천히 섞어가는 것. 그걸 위해선, 뒤틀린데다 에세르 외엔 받아들이지 못하는 너희들이 모조리 사라져야 돼.” “...그런... 그런, 것은...” “말 그대로 싸그리 밀어버리면 편하겠지만... 생명체가 없는 우주라니, 그것도 있는 의미가 없잖아? 그래서, 이 마왕이다.”
몸을 떨던 사루앙이, 눈물을 흘리던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에게 대항할 의지가 사라진 절망스러운 눈빛. 그 눈빛을 보며, 나는 안심하라는 듯이 가볍게 미소지어 주었다.
“암컷들만큼은 이 마왕을 섬긴다면, 새로운 종족이 되어 이 우주를 이어나갈 수 있다.” “......” “하지만 수컷들은 살아남지 못해. 그 녀석들의 역할은 아무리 노력해봤자, 이 마왕이 세상을 정복하기 전까지 지루한 암컷들의 장난감이 되어 주는 것 뿐이야. 뭐, 그런걸 거부하는 놈도 있고 좋아하는 놈도 있겠지.” “............” “중요한 건, 이 마왕이 구원해주지 못하는 수컷들은 결국 죽어야 한다는 거다. 근데 사루앙 넌 살 만큼 살았잖아? 거기다 아직 시간도 있으니, 노환으로 죽기 전까진 충분히 즐기다 갈 수 있지 않을까?”
뭐...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너무 절망스러워서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페이엔이 행복해지는 건 보고 가셔야지. 그래야 죽어서도 여한이 없지 않겠어?
“그래도 이 마왕은 최대한 온건하게 세상을 정복할 생각이다. 혹시나 희생될수도 있는 암컷들의 숫자는 최대한 줄이고 싶거든. 안 그랬으면 이 마법도시를 굳이 이런 식으로 찾아왔겠어?” “...그랬던, 겁니까...” “그래그래. 다 내가 즐기... 아니, 희생 없이 가려는 것 뿐이야... 아무튼 그래서, 사루앙. 진실을 알게 된 너는 어찌 할거지?” “...나는... 저는...”
도시 내부부터 타락시켜 간다면, 설령 수컷들이 발악을 하더라도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
당연히 암컷들의 희생도 적을테고. 그렇게 야금야금 전 세계의 암컷들을 타락시켜두면, 설령 국가 단위의 반항이 나오더라도 가볍게 대처할 수 있을테지.
그런 나의 뜻을 모르고 감히 이 마왕에게 대적한 대마법사. 너는 과연 어떤 선택을 보여줄까?
“계속 반항해도 좋고. 나를 위해 일해도 좋다. 뭘 고르든 간에, 네 딸 같은 암컷... 페이엔은 내 부인이 되어 행복하게 지낼테니까.” “......” “자. 그래서, 너의 선택은?”
대답을 촉구하듯이 한 발짝 다가간 순간, 고개를 치켜들고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던 사루앙.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이 없던 노인은, 그렇게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마왕이시여...”
내 발굽에 입을 맞추며, 마왕에게의 굴복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