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19 - 471화 - 꺾여버린 마음, 자포자기하는 엘프!
“뭐... 뭐라, 구...? 사루앙,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자신이 뭘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내보이며, 사루앙에게 되묻는 페이엔.
그녀의 표정에서는 지금, 무엇인가 절망스러워 보이는 두려움의 감정이 안타까울 정도로 듬뿍 담겨있었다.
“...말한 대로란다... 지금부터는, 마왕님이 시키시는 대로 따르거라...” “그게 무슨... 아, 알잖아 사루앙. 내가, 저 녀석한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러셨던 거란다. 네가 나쁜 이야기는 아니니, 그냥 너는 따르기만 하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도대체, 저 녀석이랑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마치 우는 듯한 표정으로 사루앙에게 매달리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저 모습.
지금 페이엔의 모습은, 마치 믿고 있었던 마지막 희망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너, 너...! 사루앙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푸흐흐... 다짜고짜 나한테 따지다니. 이런 억울할 데가 있나.
나는 그냥, 사루앙에게 이 마왕에 대한 진실을 보여준 것뿐이라고?
그렇게 내 진실을 알고 감동한 사루앙이, 그 동안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이렇게 직접 이야기해주고 있는 건데. 왜 그렇게 험악한 표정을 보여주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는걸~ 이 마왕은 너무 억울해~
“무슨 짓을 했냐니... 큭큭. 그냥 서로 숨기는 것 없이, 꾸밈없는 대화를 나눴을 뿐이라고. 그렇지 사루앙?” “그, 그렇죠... 맞습니다. 마왕님...” “웃기지마! 네가 뭔가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루앙이...! 사루앙은 너 같은 마물에게, 그것도 마왕님이라는 불길한 이름으로 부르면서 고개 숙일 남자가 아니라고!” “에이~ 존경할만한 존재를 만나면 고개도 숙일 수 있는 거지 뭐. 그렇지? 사루앙?” “맞습니다... 네. 마왕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거기선 맞다고만 하지 말고 어디가 존경스러운지 좀 포장을 좀 해줘야지. 에잉...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기껏 페이엔의 오해를 푸는 역할을 맡겨줬는데. 이래서야 풀기는커녕 더 오해해 버리겠어.
에휴... 수컷 주제에 절망하지 않고 내 말에 따라주는 건 고맙기야 한데... 충격이 컸던 건지 노친네가 좀 바보가 된 느낌이네 이거.
역시 미완성 상태의 절망 마약을 쓴 게 문제였나? 으음... 그렇지만 그 절망 마약이 아니었으면 사루앙이 이 세상의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것 같은데...
뭐,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나랑 음수들이 하는 말만 잘 따르면 되는 거니까. 나중에 몸보신 이나 되도록 완성된 절망 마약이나 잘 챙겨줘야겠어.
“너 따위를 존경...? 웃기지마...! 너처럼 변태적인 마물 따위를 누가 존경한다는 거야!? 당장 사루앙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지 않으면, 내가 널 죽여버리...” “페이엔!!!”
눈가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분노하는 표정을 짓고서, 내게 거역하려는 의지를 내보이던 페이엔.
하지만 나를 향한 페이엔의 분노는, 사루앙의 호통으로 인해 더 이어지질 못했다.
“마왕님께 그 무슨 말버릇이냐! 내가 널 그리 키운 게야!? 그러다 마왕님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정신차려 사루앙! 지금 사루앙은 저 녀석에게...!” “모르는 소리 하지 말거라! 나는 아무것도 당하지 않았어! 마왕님께선 내게 그저 진실을 알려주셨을 뿐이다!” “도대체 무슨 헛소리야!? 세뇌라도 당한 게 아니라면 사루앙 네가 이럴 리가...!”
어이쿠. 세뇌라니. 이 마왕이 그런 몹쓸 짓을 할 리가 있겠어?
암컷이라면 세뇌 플레이도 즐거울 것 같지만, 사루앙은 오늘 내일 하는 늙어빠진 수컷인걸. 세뇌까지 해가면서 길들일 이유가 없지.
지금 살려둔 것도 그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라 약간의 자비심이 생겼을 뿐...
진실을 알려주고 적당히 마지막 순간까지 즐기게 해주는 대가로, 적당히 도움을 받는 것뿐이라고.
만약 그냥 다 죽이고 강간하는 방식으로 갔었으면,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놀지 않아도 됐을 텐데...
정말이지. 자비로운 마왕이 되는 것도 참 어렵다니까. 푸흐흐...
“의심하지 말거라 페이엔. 네가 할 일은, 그저 마왕님이 시키는 것에 따르며 그 몸을 바치는 거다. 그리하면, 너도 모든 것을 알게 될 테니...” “뭐, 뭐...? 어떻게, 그런 소릴... 나랑 미하일을 엮어보려던 네가... 이젠 저 딴 마물이랑 날 엮겠다는 거야...?”
사루앙이 너무나도 절실해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믿었던 희망이 사라져버린 것이 충격이었기 때문일까.
변해버린 사루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리치던 페이엔이, 점점 목소리가 줄어들면서 절망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믿었던 사루앙 마저, 이 마왕을 어찌하지 못했다는 절망감.
앞으로 나에게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런 감정과 함께 망가져버린 부모의 모습에, 자신의 마음도 망가져가는 듯한 페이엔의 모습.
지금 페이엔은, 내 말자지에 저항하던 의지가 완전히 꺾여 버린 것처럼 보였다.
“미하일은 신경 쓰지 말거라... 어차피, 방법이 없으니까...” “무슨 소리야... 내, 내 제자잖아... 우리 가족이잖아... 그리고 나도, 이제서야 미하일을...” “...헤어질 필요는 없겠지만, 그 마음은 잊거라. 어차피 미하일에겐 미래가 없어. 그리고 그렇게 멀어져야만, 미하일 역시 잠깐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테니...” “사루앙...! 사루앙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내 주문대로 진실을 숨기며, 페이엔의 마음을 뒤흔드는 사루앙.
덕분에 이후로도, 아무것도 모르는 페이엔을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 사라져 버린 암컷이, 자신의 몸을 탐하는 나에게 앞으로 어떤 반응을 보여줄 것인가...
기대감과 동시에, 울먹거리는 페이엔에게 즐거운 욕정이 마구 샘솟는다.
“마왕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면서... 계속 마왕님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마왕님을 기쁘게 해드리거라... 그것이, 너의 역할이란다...” “흑, 으흑... 사, 사루앙...”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 너라도 살아남으면, 적어도 무의미한 끝은 아니니...”
진심으로 자신의 딸을 걱정하는 듯한, 사루앙의 처절함이 담긴 목소리.
페이엔을 안아주는 사루앙의 모습에서, 자신의 딸을 지켜내려는 부모의 애정이 느껴진다.
“곧 너도 모든 것을 알게 될 게야... 그러니... 행복해지거라 페이엔. 적어도, 너 만이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페이엔 만큼은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사루앙의 진심이 담긴 모습.
딸을 넘기는 부모의 의지를 본 나는, 그 마음에 기필코 보답해 주겠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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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페이엔~ 나왔어~” “......그래....”
그리고 다음 날. 평소처럼 페이엔의 연구실에 찾아온 오늘.
어제는 페이엔이 변해버린 사루앙의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혼란스러워 했었기에, 그 이상 뭘 하진 않고 넘어가 주었다.
당황하고 있을 때를 노리는 것도 즐겁기야 하지만, 여유를 주면서 제대로 즐기는 것도 즐거운 일이잖아?
어차피 사루앙도 내 노예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겠다, 이렇게 맘 놓고 천천히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제 라디아와의 교역이 시작돼서 정복 자체는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그 동안 페이엔이란 엘프를 제대로 물고 빨며 놀아봐야겠어.
“푸흐흐. 표정이 왜 그래~ 사루앙 한테 말했던 것도 그냥 넘어가 줬는데 말이야~” “...정말, 사루앙을 죽이거나 하진 않는 거지?” “내가 걜 왜 죽이냐니까~ 말했던 것처럼, 정말 사루앙 이랑은 터놓고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라고~” “잘도 그런 거짓말을...! 큭, 됐어. 어차피 그 테세르로 뭔가 한 것일 테니, 파악만 끝나면 사루앙도...”
음~ 사루앙은 테세르를 어찌 한다 해도 크게 변하는 건 없을 텐데 말이야.
머릿속에 흘려 넣은 테세르는 어디까지나 진실을 보여주는 용도였을 뿐. 수컷들은 육체도 변질되지 않아서 내 테세르를 접해봤자 무기력함과 절망을 느끼게 될 뿐이라고.
그런 절망스러운 기분에서 벗어나게 해줄 방법은 없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거라면 절망 마약을 통해서 성욕이라는 즐거움이라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사루앙을 생각한다면, 테세르를 중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보다 절망 마약을 완성시켜 주는 게 더 좋을걸? 사루앙도 그 편을 더 기뻐할 거고 말이야.
푸흐흐. 본인은 아직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지만... 뭐, 이제 얼마 뒤면 페이엔도 알게 되겠지.
어차피 죽게 될 수컷들을, 굳이 배려하거나 신경 써 줄 필요는 없다는 걸 말이야.
“푸흐흐. 뭐, 열심히 해봐~ 근데, 내가 부탁한 것들부터 먼저 해줘야 하는 거 알지?” “...그거, 정말 어제 말한 대로 하면 되는 거야?” “응? 물론이지~ 이 마왕은 그런 걸로 속이려 들거나 하진 않는다고.”
어제 페이엔에게 전한, 앞으로 어찌 하면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
하지만 아직 페이엔의 표정에서는, 그 내용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 섞여있었다.
“연구 협조는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다만 사루앙에게 알렸으니, 벌로서 내가 시키는 것들은 따라야 한다... 쉽잖아?” “그 뒤가 어처구니 없으니까 그렇지. 뭐? 섹스는 내가 거부하면 안 해? 부탁한 것들을 완성하고 나면, 그 뒤엔 너랑 미하일 둘 중 하나를 고르게 해줘?” “뭐, 이 마왕의 배려라고 생각해. 나는 페이엔이 내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페이엔은 아직 그럴 마음이 없잖아?” “...내가 왜 당연히 널 고를 거라 생각해? 아무리 네 말정액이 이상한 효과가 있다지만, 이미 어느 정도 파악된 게 있어서 이상해지기 전에 끝낼 수 있을 거거든?” “빨리 끝내면 나야 좋지~ 어차피, 페이엔 넌 날 고르게 될 거거든.” “......쯧...”
푸흐흐. 거기선 아니라며 반박해야지. 왜 본인도 확신을 못하겠다는 것 마냥 입을 다무는 거야.
섹스는 싫으면 거부해도 된다니까? 왜, 네가 생각해도 금방 나한테 매달릴 것 같아? 큭큭.
그렇겠지~ 이미 상당히 말정액을 연구해온 페이엔이니까. 이미 날 벗어나기 힘들다는 건 깨닫고 있겠지~
아직 미하일의 호감도가 더 높기는 하니, 내 호감도가 미하일을 넘어서기 전에 가축촉진제와 절망 마약을 완성해버리면 되겠지만. 과연 페이엔이 그럴 수 있으려나? 푸흐흐.
“...두고 봐. 최대한 빨리 완성해서, 보란 듯이 미하일을 선택해 줄 테니까.” “그래 그래. 열심히 해 보라고... 자, 그럼. 오늘도 슬슬 시작해야겠지?” “...하아. 그래...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이건...”
한숨을 내쉰 후 각오를 다지는 것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날 째려보는 페이엔.
표정만 보면 자신을 변하게 만드는 내 말정액을, 얼마든지 견뎌낼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넘쳐 흘렀다.
사실 이런 일을 받아들인 것부터가, 이미 늦어도 진작에 늦어버린 것이지만...
뭐 됐어. 페이엔이 섹스 해달라고 조르는 순간을 기대하면서, 천천히 즐겨보도록 할까?
“...좋아. 그래서, 뭘 시킬 건데? 섹스는 안 할거니 똑같이 입? 얼른 끝내고 의뢰 연구 할거니까. 빨리 시작해.” “푸흐흐. 그래... 뭘 시킬 거냔 말이지...”
에엥? 섹스는 안 한다구요? 누가 그랬죠?
나는 네가 싫어하면 안 한다고 했을 뿐. 섹스를 안 하겠다는 말은 하질 않았다고? 푸흐흐.
“일단, 옷 벗고 엉덩이 이쪽으로 내밀어. 페이엔.”
허세를 부리듯이 날 째려보는 귀여운 엘프를 향해, 입꼬리를 올리면서 향해 명령을 내리는 이 즐거운 순간.
그 명령을 듣자 마자, 허세가 사라진 페이엔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