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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남의 여자를 빼앗는 말이 되어버렸다-538화 (539/749)

Chapter 537 - 488화 - 원한을 받았으면, 갚아줘야 하는 법! (4)

“엘프 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숲은, 단순히 숲으로 꾸민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특별하게 관리되고 있는 곳이야. 수왕국 수준의 에세르 농도를 유지하려면 그냥 숲인 것 만으로는 안되거든.”

숲 입구의 관리실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며, 나와 음수들에게 설명을 이어나가는 페이엔.

페이엔은 지금 우리를 숲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교수의 권한을 써가며 숲에 설치된 보안용 마도구에 우리들의 정보를 입력하고 있었다.

“세계수의 방식을 참고해서, 학생들이 있는 기숙사 근처에 인공적인 에세르 발생장치를 설치했는데... 효율은 나쁘지만, 덕분에 그럭저럭 수왕국과 흡사한 느낌이 나오거든?”

처음에는 곤란하다는 듯이, 엘프들에게 가축촉진제를 쓰는 것을 망설이던 페이엔.

하지만 끈질기게 페이엔을 설득했더니, ‘어쩔 수 없네~’ 싶은 느낌으로 스리슬쩍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지. 큭큭... 교미 도중에 그리 설득했으니, 페이엔이 내 마음을 느낀 것 아니겠어?

페이엔을 위해 그 시건방지던 엘프들에게 복수해주려고 하는, 나의 기특한 마음을 말이야.

푸흐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있었지만, 페이엔 본인도 은근히 그 건방진 녀석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싶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기 동족들한테, 가축촉진제 테스트를 해보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겠어?

아무리 내 말정액이 암컷에게 사악한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고 해도 말이야. 아직 페이엔은 내 음수들처럼 난폭하고 음란하게 행동할만한 단계는 아니잖아?

심지어 자신의 교수 권한을 사용하면서 우리를 안내해 준다니. 분명 페이엔도 마음 한 켠에서는 이 상황을 바라고 있었을 거야.

큭큭... 이거, 잘하면 이 상황을 기점으로 페이엔의 마인드를 바꾸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겠는걸.

“...됐다. 이제 등록은 다 됐으니 들어가면 돼... 이건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무 난폭한 짓 하려는 건 아니지?” “흐음~? 글쎄~ 어쩌면 방해하려는 엘프 수컷들한테는 난폭한 짓을 할 수도~?” “...이젠 아예 대놓고 말하네. 정말이지... 하아. 나도 참 무슨 생각으로 이런 몬스터를...”

골치 아프단 듯이 머리를 짚으며, 페이엔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것처럼 중얼거린다.

이대로 날 엘프들에게 안내하는 것이, 정말 괜찮은 건지 다시 생각해 보는 듯한 페이엔의 찡그린 표정.

나는 그런 페이엔에게 다가가,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푸흐흐. 걱정하지 말라고. 어차피 우리 페이엔을 괴롭힌 괘씸한 녀석들이잖아? 그런 못된 녀석들은 벌을 좀 받아야지. 내가 페이엔을 대신해서 복수해 줄게.” “나, 난 딱히 복수 같은 생각은... 이미 몇 십 년이 지난 일인데...” “은혜는 잊어도 원한은 잊지 못하고, 군자의 복수는 수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은 법. 사루앙이 아니었으면 린치당해서 맞아 죽었을 거라며? 근데 그런 놈들한테 복수할 생각이 없다고?”

내 뒤에 있는 음수들에게서, 내 의견에 동의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엘프 거주구역의 관리실. 그런 장소에서 내 이야기를 들으며, 말 없이 나를 올려다 보는 페이엔.

본인을 위해 나서주겠다는 나를 바라보는 페이엔의 눈동자가, 조금씩 내 음수들의 사악한 눈빛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걱정은 하지 마. 고작 20명도 안 되는 엘프들인데. 숲에 틀어박힌 엘프들이 좀 이상해 진다고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어차피 유학 올 때 다 사고 당할 수 있다는 걸 각오하고 온다며?” “...뭐, 그렇지... 이런 장거리 해외 유학은, 수왕국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 그러면 뭐, 아예 죽여버린다 해도 딱히 문제될 건 없잖아? 어차피 사루앙이 널 위해 다 덮어줄 텐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죽이는 건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시선을 돌리며, 죽이기까지 해야겠냐는 듯이 말하는 페이엔.

하지만 크게 거부하지 않는 것을 보면, 페이엔도 은근히 그 놈들을 죽이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겠지... 그런 대우를 받았었는데 용서할 마음이 든다면 그게 어디 사람이겠어? 성녀지 성녀.

아니, 바로 그 성녀인 우리 클레아조차 용서 못할 악독한 대우라고. 푸흐흐...

성녀도 용서하지 못할 짓을 하다니. 으음... 그런 놈들은 절대로 가만히 두면 안되겠지?

페이엔도 은근히 한 두 놈 죽는 꼴을 보고 싶은 모양이니까. 적당히 시건방진 놈들을 골라 시원하게 대가리를 날려 줘야겠어.

“뭐, 죽인다는 건 말이 그렇단 거지. 푸흐흐... 아무튼, 문제가 있어도 내가 잘 처리해 줄 테니까. 너는 그냥 못된 엘프들이 벌을 받는 모습을 구경만 하면 돼.” “......”

이미 속으로 한 두 마리의 수컷을 죽이기로 다짐한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조금 걱정스러운 듯이 나를 올려다보는 페이엔.

뒤에 있던 내 음수들이 그런 페이엔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다독이기 시작했다.

“마왕님 말이 맞아 페이엔 언니~♥ 우리가 마음 먹으면, 열등한 수컷 몇 마리 정도는 가볍게 묻어버릴 수 있거든♥” “에? 어... 언니라니... 크흠... 당신들...” “한 도시의 영주에다 성녀... 거기다 마법도시의 수장인 사루앙 씨도 우릴 도와줄 테니까요♥ 지켜주는 곳도 없는 엘프들 따위, 남들 모르게 처리하는 건 손쉬운 일이죠♥” “...하아... 난 여신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설마 성녀한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협박을 시작했을 무렵엔, 분명 내 음수들에게도 반감을 나타내던 페이엔.

하지만 지금, 페이엔의 얼굴에서는 당황하는 느낌은 있지만 그녀들을 거부하는 느낌은 느껴지지 않는다.

짐승이라면 당연히, 자신과 같은 냄새가 느껴지는 상대방에게 마음이 열리기 마련인 법.

아마 지금 페이엔은, 점점 자신의 체취가 되어가고 있는 짐승의 냄새로 인해 암컷의 본능이 내 음수들을 동료나 가족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자신의 몸에 배인 짐승의 냄새를, 더욱 농밀하고 달콤하게 풍기고 있는 내 음수들.

자신과 가까운, 아니 더 강렬한 체취를 지니고 있는 내 음수들의 무리에...

지금 페이엔은, 조금씩 그녀들과 합류하기 위해 다가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후후♥ 마왕님을 거슬리게 하는 수컷들을 처리하는 건, 우리들에겐 일도 아니랍니다♥ 이미 라디아에선 몇 번이고 해본 일이니까요♥” “...세레스 씨... 영주인데 그래도 되는 건가요? 하아...” “킥킥♥ 어차피 열등한 수컷들인데, 딱히 상관 없잖아요? 수컷들을 괴롭히는 거, 엄청 재미있다구요~♥” “따님이란 분까지 이러시니 정말 머리가 아프네... 하여간 저 몬스터는, 어떻게 한 도시의 영주 모녀까지...”

큭큭. 날 째려보고 있는 페이엔이지만, 표정에선 딱히 기분 나쁜 느낌은 느껴지지 않는걸?

꽤나 충격적일 이야기도 나왔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정말 훌륭하게 변해가고 있단 느낌이야.

본인은 자신의 마인드가 변해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는 있으려나? 페이엔은 꽤나 알려준 게 많아서, 과연 어떨지 모르겠는데...

뭐, 자각하고 있다면 그것도 재미있겠지. 어디 오늘 충분히 즐기고 나서, 페이엔의 감상이나 한 번 물어봐야겠어.

“푸흐흐... 그럼, 슬슬 가볼까? 클레아는 혹시 빠져나가는 놈이 없는지, 집중해서 잘 살펴봐 줘.” “네♥ 마왕님의 분부대로♥” “그래. 그럼 가자 페이엔. 네가 만든 약의 효과를 확인하러 말이야.” “...하아. 그래... 여기까지 온 이상... 응...”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되새기는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페이엔.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단순히 각오를 다진 그런 결의 뿐만 아니라...

묘하게 엘프들의 절규를 기대하는 듯한, 기대감이 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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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익...!? 저, 저건...!? 어떻게, 저 마물이 이 숲에...!?” “페이엔 교수!? 설마 당신이 들여보내 준 건가요!?”

나와 음수들의 모습을 보고, 기겁하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떠는 두 마리의 엘프.

뭔가 책이나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 두 엘프는 수업을 받으러 나가려던 모양이다.

큭큭... 안되지 안돼. 내가 뭐 하러 이런 이른 시간에 음수들을 모두 데리고 찾아왔는데.

오늘 너희 암컷 엘프들은 한 마리도 빠짐없이, 페이엔이 완성한 가축촉진제의 실험 대상이 되어줘야 한다고.

무엇보다 너희와의 교미를 목 빠지게 기대하고 있던 나인데. 그런 내가 너희를 그냥 넘어가 줄 것 같아?

절대로 안되지. 어디, 클레아의 마안에 걸린 것을 기뻐하면서 완성된 가축촉진제의 첫 실험 대상이 되어달라고.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요 페이엔 교수! 여긴 외부인 출입 금지 구역이란 거 몰라요!?” “누가 저주받은 엘프 아니랄까 봐...! 나가요! 안 들려요!? 얼른 나가라니까!”

캬~ 앙칼진 년들 같으니. 이거 참 표정이고 목소리고 건방짐이 아주 만족스러울 정도로 느껴지는 암컷들이네.

큭큭... 지금 본인들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페이엔을 또 모욕했단 말이지...

지금 페이엔의 마음 속에, 약~간의 동정심은 남아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거 아무래도, 그 동정심이 사라질 법한 반응인걸?

어디, 우리 페이엔의 기분이 어떠신지 한 번 물어나 볼까~?

“큭큭... 페이엔. 저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할까?” “...묻기는 뭘 물어. 어차피 할 거면서...”

말은 떠보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굳어진 표정에서 기분 나쁜 티가 느껴지는 페이엔의 모습.

페이엔은 챙겨온 짐을 뒤적거리더니, 내게 불길한 색의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내밀었다.

“바로 할거지? 목 쪽에 그대로 꽃아 버리면 돼. 그 뒤엔 네 맘대로 하든가 말든가...”

일말의 동정심조차 사라진 듯한, 날카로운 표정의 귀여운 엘프.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날 재촉하는 듯한 느낌이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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