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39 - 490화 - 원한을 받았으면, 갚아줘야 하는 법! (6)
“죽어어엇!!” “므오오오오오오옷!?”
녹색 빛을 띤 바람의 칼날이, 마왕의 몸을 집어 삼키는 것처럼 휘몰아친다.
요란하게 바람을 일으키지만, 마왕의 몸을 베어 가르는 칼날들에 비해 그리 넓지는 않은 마법의 규모.
지금 캬시아가 마왕에게 사용한 마법은, 지정한 대상만을 바람의 칼날로 찢는 상급의 바람 마법이었다.
이 마법이 멈추는 것은, 대상이 죽거나 시전자가 마법을 중단할 때 뿐.
에세르가 다하지 않는 이상 상대의 육체를 죽을 때까지 찢어버리는, 극도로 공격적인 캬시아의 마법.
그런 마법을, 마왕은 무엇인가 꾸며낸 듯한 비명소리를 외치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엑!!” “하아, 하아...! 몬스터 놈...! 감히 몬스터 주제에 엘프를 건드린 죗값을...! 허억...!”
무엇인가 괴성에 가까운 비명소리와, 굉음을 내며 휘몰아치는 바람의 칼날.
마왕의 옷을 찢으며 계속 휘몰아치는데도, 어쩐지 마왕의 몸은 쉽사리 쓰러지질 않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쓰러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이쯤이면 보여야 될 혈흔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 이상한 상황.
캬시아가 무엇인가 위화감을 느끼던 그 순간, 마왕은 휘몰아치는 바람 안에서 그녀를 비웃듯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푸, 흐...! 푸하하하하하하핫!!” “헉, 허억...! 무, 무슨... 으흡...!!?”
마왕의 두꺼운 팔이, 바람을 뚫고 나와 캬시아의 목을 붙잡는다.
아무리 두껍더라도 결국 피부와 근육. 갑옷도 드래곤 같은 비늘도 없는 이 몬스터의 육체엔, 기습이었던 이 마법이 통했어야 했을 것인데.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법을 뚫고 나온 마왕의 팔은 입고 있던 셔츠만 찢어졌을 뿐, 피부엔 생채기 하나 보이질 않고 있었다.
에세르 소모가 심한 상급 마법을 유지하느라, 어느새 보유하고 있던 에세르를 상당히 소모해 버린 캬시아.
흉악한 몬스터의 팔이 그런 그녀의 목을 붙잡아 들어올리자, 마왕을 감싸고 있던 바람의 칼날들이 실타래가 풀리듯 색을 잃고 허물어졌다.
“컥, 커흑...! 꺼흑...!!?” “캬, 캬시아 선배...!!” “이, 이럴 수가... 선배의 마법이 전혀... 헉!?”
무언가에 억눌리듯, 몸을 움직이지 못하던 엘프들.
그들 중 시선의 위치가 마왕에게 향하고 있던 엘프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캬시아와 마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자기 몸을 지킬만한 마법 한 두 가지는 익혀 둔 마법사이지만, 전투는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끽해봐야 초보 모험가 수준.
가장 공격 마법이 뛰어난 캬시아의 마법이 전혀 안 먹힌다면, 그들의 마법을 쏟아 부어봤자 결과는 자명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들은, 마왕의 멀쩡한 육체를 보고서 놀라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하지만 지금, 그들의 입에서 놀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큭큭... 은신이라. 옛날 생각나네... 근데, 그딴 스킬로 이 마왕의 눈을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냐? 무엇보다 나보다 더 눈이 좋은 내 부인이, 은신만큼은 특히나 꼼꼼히 체크하고 있거든?” “쿡쿡♥ 제대로 살폈다면 제가 마왕님의 몸에 방어 성법을 걸어두는 걸 볼 수 있었을 텐데... 마왕님만 보느라 저를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네요♥ 아무래도 저 암컷, 마왕님께 푹 빠진 모양이에요♥” “그러게 말이야. 일부러 다시 옷도 입었는데 이리 거칠게 벗겨주다니. 아무래도 많이 급한 모양인걸? 큭큭...”
걸치고 있던 옷들이 전부 찢어진 채, 약간의 천 조각만 남아있는 마왕의 육체.
거의 알몸이 된 마왕의 육체에서, 너무나도 커다란 무엇인가가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검붉은 핏줄이 불거져, 살아있는 것 마냥 꿈틀거리는 몬스터의 커다란 신체 부위.
엘프들의 신음 소리는, 그 신체부위의 위치를 보고서 그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기에 나온 것이었다.
두려움과 당혹스러움. 심지어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만드는, 본인들이 알던 것과는 형태도 크기도 너무나도 다른 수컷들의 신체 부위.
그 엄청난 위용에 암컷 엘프들은 얼굴을 붉히고, 수컷 엘프들은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끅, 으흑...! 꺽...!” “근데 제법 매섭기는 매섭더라. 보호 성법이 걸려 있는데도 충격은 그대로 오더라고. 끽해봐야 연구자 주제에, 어떻게 이렇게 매콤한 스킬을 쓰는 거지?” “...캬시아 걔, 잠깐이지만 수왕국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 일을 했었다고 들었어. 아마 모험가를 해도 꽤 괜찮은 수준일걸?” “그래? 푸흐흐... 정식 교수가 되려고 한다 길래 머리만 좋은 암컷인줄 알았더니. 보기보다 재주가 좋은 암컷이었네?”
마왕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만 보던 페이엔이, 무표정한 표정을 지으며 마왕의 곁으로 다가갔다.
수컷 엘프의 머리가 날아간 참혹한 장면과, 마왕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는 다른 엘프들의 모습.
아무리 그들에게 좋은 기억이 없어도 동정심은 들거라 생각했었는데. 이상하게도 지금 페이엔의 감정은 너무나도 차분하기 그지 없었다.
분명 동족인 엘프들인데. 어째서인지 인간이나 마족조차 아닌 무언가 다른 생물들을 보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
몸과 마음이 변질되어 짐승이 되어가고 있는 페이엔에겐, 엘프들이 아닌 주변의 음수들이 더욱 자신과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 기묘한 느낌 때문에, 그럭저럭 안면이 있는 캬시아를 딱히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질 않던 페이엔.
오히려 무엇인가 근질근질한 감각이 솟아오르면서, 페이엔은 마왕에게 다가가 그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얘도 교미할거지? 그러면, 또 약의 준비를...” “푸흐흐. 일단 있어 봐. 이 녀석들을 한 번 정리하고 할 거니까 말이야.”
두 마리의 엘프가 교미 후 갑자기 변해버린 모습을 보았으면서. 그런데도 가볍게 교미 얘기를 꺼내는 페이엔.
그렇게 변하기 시작한 페이엔을 바라보면서, 마왕은 기쁜 듯이 사악한 미소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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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이 13 마리... 그리고, 수컷이 죽은 놈 빼고 8 마리라...”
엘프들을 수컷과 암컷으로 나눈 마왕이, 두 엘프의 무리를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는다.
아무리 테세르가 있다고 하지만, 다수의 생명체를 언제까지고 속박할 수는 없는 리즈벳의 스킬.
그것을 고려해 엘프들을 묶는 동안, 엘프들은 순순히 짐승들의 포박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평상시의 엘프들 이었다면 순순히 포박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 흉악한 말자지를 과시하면서 마왕이 목에 걸린 성물을 풀어 기운을 방출하기 시작하자, 엘프들은 도저히 이 사악한 존재에게 반항하려는 의지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저 혹시라도 누군가가 찾아와 구해 주길 바라면서, 짐승들이 시키는 대로 모인 엘프들.
암컷들은, 가볍게 손이 묶였을 뿐 편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수컷들은 철저하게 묶인 채, 머리가 깎이고 자신들의 알몸을 드러내야만 했다.
치욕스러운 모습이 되어 여자들 앞에서 성기를 드러내고 있는, 가여운 모습의 수컷 엘프들.
수컷들의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마왕은, 가장 먼저 캬시아를 일으켜 세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큭큭... 올린 머리도 그렇고 안경도 그렇고. 이거 겉으로만 보면 정말 어딘가의 여선생 같은 암컷인걸.” “크, 크윽...!” “가르치는 능력은 모르겠지만, 후배들을 위해 나서던 모습을 생각하면 아마 좋은 선생이나 교수가 될 수도 있었겠지. 뭐, 시건방진 엘프라서 인간들도 잘 가르쳤을진 모르겠지만.” “나, 난...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교수가 되려는 게 아니라...!” “아~ 꼭 있더라. 교수는 연구만 잘하면 되는 줄 아는 녀석들. 그럴 거면 회사를 차리거나 연구소에 취직할 것이지... 학생들도 안 가르칠 거면 뭐 하러 교수가 되려는 거람? 푸흐흐.”
반항할 의지를 잃은 캬시아의 머리를 만지며, 그녀의 정보를 확인하듯이 말을 이어가는 마왕.
이미 페이엔에게 그녀가 교수가 되려는 이유를 들었던 마왕이지만, 지금 그는 다른 이유로 그녀의 정보를 되새기고 있었다.
비록 인간들 사이에서의 지위이지만, 저주받은 엘프가 유학을 온 본인들보다 위에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캬시아.
같은 엘프라고 엘프들과 종종 엮이는 페이엔을 견제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좀 더 연구를 하고 싶었던 그녀는 겸사겸사 교수가 되려고 하던 것이었다.
캬시아의 그런 시건방진 생각을 비웃는 것처럼 웃으며, 그녀의 귀에 본인이 들은 정보를 속삭이는 마왕.
그 행동은 말하자면, 짐승이 되기 전에 여태까지의 자신의 엘프생을 되새겨 추억으로 남기라고 전하는 일종의 자비나 다름 없는 행동이었다..
“크윽...! 저, 저 엘프도 수업은 그리 하지도 않는데... 앗, 뭐, 뭘 하려는... 꺄악!?”
차마 반항은 하지 못하고, 마왕을 향해 불만스럽단 듯이 투덜거리던 캬시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마음껏 즐기던 마왕이, 이제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듯이 캬시아의 몸을 안아 들었다.
가축이 된 두 엘프가 가져온 소파에 캬시아를 눕힌 후, 그녀의 얼굴 근처에서 말자지를 흔드는 마왕.
강렬한 수컷과 짐승의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하자, 어째서인지 캬시아의 심장 고동이 조금 빨라지기 시작했다.
“으, 으읏...! 여, 역시... 지금, 그 흉측한 물건으로 나를...” “푸흐흐. 급하기는. 아직 미리 준비해야 할 것 도 있는데 말이야.”
당장이라도 교미하려는 것처럼, 캬시아의 몸을 어루만지는 마왕.
다른 엘프들에게 치욕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되자, 캬시아는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떨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듯이 웃으며, 옆에 있는 페이엔에게 손을 뻗는 마왕.
그러자 마왕의 손에, 불길하기 그지 없는 거무스름한 액체가 든 주사기가 쥐여졌다.
“자. 그럼... 어디, 먼저 배워서 후배들을 가르쳐 보자고. 캬시아.” “크, 으으윽...! 누, 누가아아...!”
그 불길한 주사기에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새파랗게 질리는 캬시아의 안색.
하지만 마왕은 포기하라는 듯이, 천천히 그 주사기를 캬시아의 목에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바늘이 목과 쇄골 근처에 닿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두려운 약물.
마왕의 옆에서 작은 엘프가, 그런 캬시아의 표정을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