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78 - 526화 - 마왕의 복수는, 음습하고 지독한 것! (3)
라피나의 새로운 신체가 준비되고 나서, 다음날 오전.
잠시 라디아의 상황을 지켜보던 라플라스 일행은, 변함없이 인간들을 들여보내고 있는 라디아의 모습을 확인하곤 미묘한 표정들을 내비쳤다.
“그리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역시, 자폭으로 큰 피해는 없었던 건가...”
혹시라도 라피나의 자폭에 큰 피해를 입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하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는 듯이, 저 수상한 여병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기하던 교역상과 모험가들을 도시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다.
아마 그 신수가 죽거나 크게 다친 상황이라면, 저렇게 외부인을 받아들일만한 여유가 없었을 터.
내심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차면서, 라플라스는 라디아로 들어갈 준비를 마친 라피나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검문 자체는 좀 더 강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의심사지 않게 행동하되, 자유로운 행동이 어려울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냥 바로 물러나도록. 그때는 차라리 보안을 뚫고 몰래 침입하는 게 나을 테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마스터.” “좋아. 그럼 출발해라.”
감정이 보이질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성문 앞에 모인 인간들 쪽으로 향하는 라피나.
라피나가 조금 멀어지자, 첫 잠입과는 꽤나 달라진 라피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클라리스가 조금 걱정되는 듯한 말투로 라플라스에게 물음을 건넸다.
“괜찮을까요? 아무리 못 알아볼 정도로 외형이 바뀌었다지만, 피부색은 여전히 구릿빛이고 얼굴은 조금 어려 보이는 정도인데. 혹시라도 누가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저 정도면 충분해. 누군가의 인상이란 건 그렇게 기억이 남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 경계가 더 심해졌을 텐데... 혹시라도, 자폭한 흔적에서 라피나에 대한 것이 파악되었다면...” “안심해라. 그쪽이야 말로 걱정할 필요 없는 일이니까.”
걱정하는 게 그거였냐는 듯이, 피식 웃으며 아무 문제 없다는듯한 표정을 내비치는 라플라스.
멀어지는 라피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라플라스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범위는 그리 크진 않지만, 라피나의 자폭 유닛은 인형의 신체를 붕괴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일종의 마법 술식이다. 고농도의 에세르가, 범위 안에 있는 라피나의 신체를 먼지로 만드는 물건이지.” “그렇다는 건...” “그래. 설령 자폭을 통해 피해를 입히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흔적은 남기질 않는다는 얘기야.”
골렘의 제작자로서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한, 자신감이 넘치는 라플라스의 표정.
그 표정을 확인한 클라리스는, 조금 안심했다는 표정을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라피나만 보내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니, 뭔가 좀 불안한 느낌이었거든요.” “이게 골렘의 가장 큰 강점이지. 오히려 나로서는 자기 몸을 던져가며 싸우는 쪽이 너무나도 비효율적이고 불안하게 느껴져.”
이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라피나의 제어 박스로 다가가 또다시 지켜보기 위한 셋팅을 시작하는 라플라스.
작은 마법진을 이리저리 조작하면서, 라플라스는 클라리스와 바울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애초에 라피나의 신체는 그리 쉽게 분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남아봤자 손이나 다리 정도만 남았을 거다. 그 정도론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니, 너희는 안심하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돼.”
자신의 예상이 틀릴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한, 고지식한 엘프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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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은 평소처럼 진행하되,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인물은 확실하게 체크해라! 구릿빛 피부나 엘프의 귀를 가지고 있다면, 통과하는 대로 즉시 보고하도록!”
성문을 개방하고 다시 검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네시아가 오늘 검문을 진행할 병사들을 향해 지시를 내린다.
골렘의 몸 안에서 터지려던 에세르 폭탄을, 성법 스킬과 함께 테세르를 방출하면서 꽤나 중화시켜준 클레아.
그런 클레아의 테세르가 아니었다면 에세르 폭탄의 반경이 그 골렘의 몸을 감싸며, 그대로 흔적이 남지 않도록 소멸시켰을 것이라고 한다.
클레아가 다친 것은 정말 빡치는 일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상체 절반 정도를 제외한 골렘의 몸을 조사할 기회는 얻었으니까. 나름대로 잘 풀린 거라고 봐야겠지.
특히 머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게 참 다행이었어~ 덕분에 페이엔과 연구원 가축들이, 자폭한 골렘의 기억이 그대로 어디론가 전송된다는 것까지 알아냈거든.
심지어 그 전송에, 30분에서 2시간 정도의 딜레이가 생긴다는 것까지 말이야.
지금 어딘가에 숨어있을 라플라스란 놈과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고 들었지만, 만약 30분 정도라고 쳐도 한 번 정도 즐기기엔 충분하지?
푸흐흐. 게다가... 우리 똑똑한 마법도시 출신의 가축들이, 골렘을 분석한 결과를 가지고 아주 재미있는 것들도 준비하고 있는 상태거든?
또 골렘을 보내올지 안 보낼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보낸다면 그 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제작자 양반.
원형이 엘프 공주라고 추정되는 네 피규어를, 내가 좀 가지고 놀아볼 생각이거든. 큭큭...
새끼... 뭐 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기분 나쁘게 실제 인물을 써서 리얼돌이나 다름없는 피규어를 만들다니...
실제 인물이 아니더라도 외형만 같으면 상관 없단 건가? 푸흐흐. 근데 이걸 어째? 그 인형, 이제 내가 좀 가지고 놀아볼 생각인데?
도대체 얼마나 완벽하게 만들었길래 자궁까지 만들어 뒀는지, 내가 좀 즐겨보고 감상을 말해 줄 테니까. 피규어 뺏겼다고 질질 짜거나 하진 말라고. 큭큭.
“음. 마왕. 준비는 끝났다. 이제 그 인형이 들어오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돼.” “오. 그래. 도시의 암컷들에게도 공지는 다 되었겠지?” “물론. 세라와 행정직 가축들이, 도시 전체에 전파해 둔 상태지. 지금은 혹시 몰래 잠입하지 않았는지, 암컷들의 모습을 파악중인 상황이야.” “좋아. 이제 찾아오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구만.”
무려 수백 년을 산 용사라는 분이시니까. 설마 한 번의 실패로 도망가거나 하진 않으시겠지?
그러면 너무 실망스러울 거야. 지금 이렇게, 네 인형을 맞이해 줄 준비를 마쳤거든.
기왕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온 김에 서로 얼굴도 보고 그래야 하지 않겠어?
큭큭... 굳이 찾아 다니진 않을 테니까. 계속 그렇게 숨어있으면서, 내 목숨을 노릴 귀여운 인형을 계속 보내보라고.
통신 기술이 허접한 에센티아에서 그 정도의 통신 기술을 갖췄다는 건 놀랍긴 하지만... 큭큭. 뭐, 덕분에 아주 재미나게 즐겨볼 수 있을 것 같거든?
아마 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를테니... 어디, 영문도 모른 채 네 인형의 변화를 만끽해 보도록 해.
무엇인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 때쯤엔, 그때는 이미 늦었을 테니까. 네 피규어가 다른 남자의 손에 개조되는 기분을 자~알 느껴보라고. 이 기분 나쁜 오타꾸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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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럼 다음분~ ...어머? 당신은...” “...모험가인 헬리안 이라고 합니다. 거주할 도시를 찾아 여행중인데, 이 도시에 일주일 정도 체류를...” “...후후. 그러신가요...♡ 헬리안 님이시란 말씀이시죠...♡”
몇 시간의 기다림 끝에, 자신의 검문 순서가 되어 처음 보는 병사를 마주한 라피나.
라피나를 보자 마자, 병사는 왠지 모를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끈적한 묘한 눈빛으로 라피나의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라피나의 몸을 살피는 것 같기도 하고 원하는 것 같기도 한, 동성에게 보내는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 끈적한 눈빛.
외형을 바꾼 것과 더불어 이번에는 가명까지 준비했는데. 그런데도 자신을 유심히 살펴보는 시선에 라피나는 감정 유닛이 만들어 낸 기분 나쁜 감각에 휩싸여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네♡ 그럼 일단, 이쪽 서류의 작성을 부탁 드려요♡”
첫 잠입에서는 없었던 서류의 작성을 요구하며, 라피나에게 헬리안이란 이름을 기입한 서류를 건네는 여병사.
그 서류의 내용을 살펴보자, 출신이나 나이를 기입하는 빈칸과 함께 신체 사이즈나 취미 등을 묻는 묘한 질문들이 적혀 있었다.
검문을 목적으로 한다기 보단 마치 자신을 소개하라고 하는 듯한 기묘한 서류.
그 서류를 건네 받은 라피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쓸 수 있는 곳부터 작성을 하기 시작했다.
“...저, 이 신체 사이즈는... 꼭 필요한 건가요?” “물론이죠~♡ 인물을 구별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거든요~♡ 아, 본인 사이즈를 모르신다면 저희가 직접 재 드릴 수 있답니다♡” “그... 하아. 네... 부탁 드립니다.”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끼고 질문을 건네려다, 괜히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말을 아끼는 라피나.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뭘 좋아하냐는 등의 질문에 답을 채워넣으며, 라피나는 그렇게 순순히 검문에 협조를 해나갔다.
“출신지가 벨헨이라... ‘피부색’을 보고 느꼈지만, 정말 먼 곳에서 오신 분이셨네요♡ 벨헨에서 오신 분은 처음이에요♡” “...그, 출신만 그렇지 모험가가 된 이후론 다른 도시에서...” “쿡쿡♡ 그런가요? ...뭐, 그렇다 치죠♡ 그리고 혼자 다니시는 이유는 던전에서 파티원들이 사망해서... 작은 마을에서 몸을 회복하다가 거주할 곳을 찾아 라디아로 오셨다구요?” “...네. 그런데 오다가 모험가 카드의 분실을...” “괜찮아요~♡ 모험가 카드 분실은 은근히 자주 있는 일이니까요♡ 어차피 며칠 안에 재발급 받으실 테니 문제는 없답니다♡”
라피나가 작성한 서류를 보면서, 무엇인가 묘한 표정으로 질문을 건네는 여병사.
그녀의 질문에 라피나가 대답하는 동안, 몇 명의 병사들이 달라붙어 라피나의 몸을 꼼꼼하게 측정하고 있었다.
“종아리 30, 허벅지는 55...” “골반이 이렇게 넓은데 허리는 이렇게나 얇다니~♡ 가슴은 없지만, 이건 이거대로 괜찮은 느낌이네요♡”
마치 라피나의 몸을 애무하는 것처럼 매만지며, 불쾌한 신체 측정을 이어나가던 여병사들.
그 여병사들이 신체 측정을 끝내자, 서류를 든 여병사가 그렇게 측정된 라피나의 신체 사이즈를 서류에 적어 넣었다.
“취미나 좋아하시는 게 없어서 참 아쉽긴 하지만...♡ 뭐, 이건 필수는 아니니까... 네♡ 다 됐습니다♡”
자기소개서 같은 서류 내용의 확인을 끝내고, 밝은 미소를 선보이며 라피나에게 입장해도 된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병사들.
무엇인가 의문스럽기는 했지만, 라피나는 순순히 들여보내주는 것에 안도하며 라디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안에 들어가시면 다양한 분들이 환영해 주실 거에요~♡ 모르는 게 있으시면 그 분들에게 물어보시면 된답니다♡” “...일단 잠시 혼자 도시를 둘러볼 계획이라... 아니, 네. 참고하겠습니다.”
빨리 도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이, 병사의 친절에 대충 고개를 숙이며 발걸음을 옮기는 라피나.
그런 라피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서류를 든 병사는 옆에 있던 짐승인 동료에게 서류를 넘겨주었다.
“검문은 우리끼리 계속 진행하고 있을 테니까. 마왕님과 음수님들에게 보고 부탁해♡ 제법 유력해 보이는 암컷이 들어왔다고 말이야♡” “쿡쿡♡ 나는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저런 어린 암컷이 혼자 도시를 넘나들다니. 말이 안되잖아~♡” “킥킥♡ 내 생각도 그렇긴 한데... 뭐, 그래도 확실하진 않으니까♡ 판단은 음수님들에게 맡겨야지♡ 우린 그냥, 저 암컷이 라디아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면 될 뿐이라구♡”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거리면서, 잠시 서류에 적힌 암컷의 인적사항을 평가라도 하는 것 마냥 살펴보던 여병사들.
그렇게 짐승들의 의심을 산 암컷 인형은, 자신이 의심을 샀다는 것도 모른 채 라디아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