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87 - 라피나의 비밀 2
‘...RFN-0103의 자폭 신호 수신... 영혼 전이 확인 완료. RFN-0104 연결 개시...’
마왕성에서 라피나의 자폭이 진행되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났을 무렵.
RFN-0103의 자폭을 확인한 제어 박스에선, 라피나의 다음 신체인 RFN-0104의 기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체 설정 값 확인. 비교 검증 개시... 확인 완료. 신체 구성이 설정 값과 동일한 것을 확인...’
자폭이 확인될 경우, 잠시 동안 새로운 신체에 이상이 없는지 검사를 진행하는 라피나의 기동 준비.
평소라면 30분 이내로 끝날 과정이었지만, 어째서인지 RFN-0104 의 신체는 평소보다 더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 에러 발생. 신체 구성의 변경 필요... 미세 조정 개시...’
분명 라플라스가 입력한 대로 준비된 RFN-0104의 신체인데.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것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라피나의 영혼.
별 수 없이 제어 박스는 인형의 판단에 맞춰, 이미 구성된 그녀의 신체를 지금 가능한 수준에서 변경하기 시작했다.
‘가슴 사이즈 최대치 설정... 완료. 골반 사이즈 최대치 설정... 완료. 성교 유닛과 자궁 유닛의 구성 변경...’
이미 설정된 설정 값의 오차 범위 내에서, 허용 가능한 최대 크기로 자신의 가슴과 골반을 확대하는 인형.
아직 사고 유닛이 기동되지 않은, 순수한 라피나의 영혼이 내린 결정이었다.
‘...재구성 완료. 기억 동기화 개시... 미세 결함 발생...? 무시. 동기화 진행...’
신체 일부의 내구성까지 강화해가며, 시간을 들여 RFN-0104 신체의 미세 조정을 끝마친 이후.
기억 동기화와 시스템 확인에서 발생하는 묘한 잡음을 무시하면서, 라피나는 RFN-0104를 이용한 기동 준비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에러 무시 가능. 각 유닛 상태 정상. 부팅 프로세스 종료...’
자신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사고 유닛을 기동하면서, 제어 박스 안에서 천천히 눈을 뜨는 라피나.
부팅 완료의 신호를 받은 제어 박스가 천천히 열리면서, 라피나의 시야 유닛에 기다리고 있던 주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늦었군. 신체에 문제라도 있었나? 인형?” “...아니요.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지만, 신체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흠... 자폭 사유가 단순히 신체 결함이라고 되어있던데. 자폭 과정에 문제가 있었나? 뭐, 신체에 문제가 없으면 상관은 없겠지...”
제어 박스에서 내려온 라피나를 바라보며, 이번 자폭이 다급하게 진행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던 라플라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라플라스는, 문득 뭔가 발견한 것처럼 RFN-0104의 신체를 보며 라피나에게 물었다.
“음...? 왠지, 가슴이나 엉덩이가 내가 설정한 신체 사이즈보다 크게 나온 것 같다만...?” “그렇습니까...? 일단, 오차 범위 이내의 사이즈입니다만...” “그래? ...하긴. 시설에선 정밀하게 맞출 수 있지만, 이 제어 박스는 연산 한계 때문에 약간의 오차 정도는 생길 수도 있으니...”
골렘을 이용해 억지로나마, 외부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라피나의 제어 박스.
라피나의 신체가 미묘하게 커진 것을 그 제어 박스의 한계 때문이라고 납득한 뒤, 라플라스는 라피나에게 RFN-0103 의 신체로 진행했던 임무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신체는 그렇다 치고, 중요한 건 임무에 대한거다. 라피나. 어째서 내 지시를 똑바로 진행하지 않은 거지?” “지시... 말씀입니까?” “그래. 중간에 보냈던 지시들 말인데. 어째선지 그 지시들을 수행하는 게 조금 이상한 느낌이더군.”
감정은 보이질 않지만 조금 차가운 목소리로, 자신의 지시를 올바르게 수행하지 않았다며 라피나를 나무라는 라플라스.
하지만 지금 라피나는, 자신의 무엇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지시를 따르기는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건성으로 진행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어. 누가 봐도 수상한 곳에는 가질 않거나, 당연히 파악해야 할 내용을 일부러 넘기는 것 같았는데...” “그, 건...” “인형인 네 사고 능력으로는 그 정도의 판단력이 한계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마지막 그 마왕성이란 곳에서 영상의 해상도를 낮춘 것은 어째서지?”
마치 일부러 라피나가 무언가를 숨겼단 것처럼 말하는, 라플라스의 물음.
전혀 생각지도 못한 구박을 들은 라피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면서 주인을 바라보았다.
“해상도...? 영상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그래. 안 그래도 화질이 썩 좋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그 마왕성이란 곳에 들어가니 얼굴 파악도 힘들 정도로 해상도가 낮아지더군. 심지어 노이즈도 잔뜩 발생하고 말이야.” “그... 런... 저는, 분명 평소대로 영상을 전송하고 있었는데...”
평소대로 영상을 전송했다는 라피나의 말에, 라플라스는 조금 성가시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라피나가 영상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면, 영상에 영향을 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
거리 안에만 있다면 그 어디에서든 시각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원격 조종의 장점이었는데. 그런데 거기에 영향을 주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니.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던 방해 요소를 만난 것도 성가시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생겼단 사실에 라플라스는 조금 짜증을 느꼈다.
“쯧... 네가 제한한 것이 아니라면, 결국 뭔가의 방해 요소가 있다는 말이군... 그럼 혹시, 네가 지시를 올바르게 수행하지 않은 것도 지시 수신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인가?”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테세르가 영상에 무엇인가 영향을 끼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마왕성이란 곳의 테세르 농도는 다른 곳보다 훨씬 진했던 터라...” “하... 저 도시 외부에서 느껴지는 것보다 말인가? 그래. 저 테세르 때문이라면 그 동안 영상이 미묘하게 화질이 나빴던 것도 이해가 되지... 하지만, 그렇다면 조금 성가시군...”
이제는 신수가 거주하고 있는 그 마왕성이란 곳에서 신수를 암살해야 하는데. 그런데 정작 그 암살을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다니.
어차피 본인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지만. 무엇이든 본인이 제대로 확인해야만 성미가 풀리는 라플라스에겐 제대로 구분이 되질 않는 영상이란 것은 영 찝찝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그럼, 네 기억에 보존된 기억은 멀쩡한가? 이쪽에선 그 신수란 녀석이 누군가를 죽이는 것까지 확인했다만...” “네. 제 기억 상에서는, 신수가 무대 위의 남자를 죽이는 장면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아. 수왕국에 놔두고 온 장비들이 있다면 네 기억에 접속해서 영상을 확인했겠다만... 이 제어 박스는 통신 수신밖에 안되니...”
그래도 나름 장거리 이동이었기에,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고 생각하던 라플라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게 되자, 라플라스는 수왕국에 두고 온 시설이나 장비들을 떠올리며 조금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한 대가 아닌 몇 대의 골렘을 동원해야 했겠지만. 들고 올 수 있는 장비들을 모두 가져왔다면 라피나의 기억 접속이나 다양한 대응이 가능했을 텐데.
하지만 그런 것들을 놔두고 온 이상, 라플라스는 어떻게든 이 제어 박스와 몇 가지 도구들 만으로 암살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암살 대상과 그 주변에 있던 대상들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건 짜증나지만... 이대로 암살을 진행할 수 밖에... 인형. 그 마왕성이란 곳의 구조는 확실하게 기억해 뒀겠지?” “네. 기억 속의 정보를 바탕으로 구조도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좋아. 그러면 그 구조도를 그려봐라. 그걸 보면서 암살 루트와 행동 방침을 정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클라리스 님과 바울 님은...?”
옷보다도 먼저 종이를 내미는 차가운 주인의 명령에 따라, 알몸인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지시부터 수행하려고 하는 인형.
그러던 도중 보여야 할 인물들이 보이질 않는 것을 깨달은 라피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자신의 주인을 향해 그들의 행방에 대해 물음을 건넸다.
“...하. 그 둘 말인가...”
그런 라피나의 의문에, 어째서인지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피식 웃음을 흘리는 라플라스.
그리곤 이동형 골렘의 아래쪽에 설치된 텐트를 가리키기면서, 라플라스는 라피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클라리스가 밤새 바울을 달래주다가 둘이서 같이 잠들었다. 그 신수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부터, 바울이 겁에 질려서 발작하기 시작했거든.” “...그렇, 습니까...” “영상이 흐려서 목소리만 들리는 수준이었지만, 그 신수가 죽은 남자의 여자를 데려온 걸 보고서 자기 여자를 빼앗겼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 같더군. 다 큰 성인이 어린애처럼 울면서 클라리스에게 매달리는 꼴이라니... 큭큭.”
빈말로라도 성격이 좋다고 느끼지 못할 그런 표정을 내비치며, 발작하던 바울의 모습을 떠올리는 라플라스.
그런 라플라스의 표정을 바라보던 라피나는, 평소에 잘 웃지 않는 주인이 웃음을 내비쳤다는 사실에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지어 그걸 달래준다고, 클라리스가 바울을 어디론가 데려가서는... 거기서 바울과 관계를 가지면서, 바울이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는 걸 받아주더군. 큭큭. 정말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지.” “...그걸, 계속 지켜보신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들린 거다. 엘프의 청력을 모르는 건지, 두 사람이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았거든.”
라피나의 물음에 정색하면서, 허튼 소리 하지 말란 듯이 라피나를 노려보는 라플라스.
고개를 숙인 라피나의 모습에 가볍게 혀를 차고는, 라플라스는 텐트쪽을 바라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대단한 여자야. 아무리 성녀에게 당한 피해자로 내세울 거라지만, 저렇게 정신이 나간 남자를 보살펴주고 관계까지 가질 수 있다니... 그것도 한때 자신과 대립했다던 남자를...” “...주인님을 찾아오는 동안, 정이라도 들었단 걸까요?” “그런 건 나야 모르지. 하지만, 생각보다도 야심이 많은 여자란 것은 확실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녀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가끔 멀쩡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늘 두려움에 떨며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을 보이던 바울.
라피나 역시 주인의 지시가 없으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기에, 지금의 일행 사이에서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눈 것은 라플라스와 클라리스 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이 시간인 만큼, 의뢰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라플라스와 클라리스.
그렇게 파악한 클라리스에 대한 라플라스의 평가는, 극악무도한 여인은 아니지만 야심이 많고 원한을 잊지 않는 성가신 여자란 것이었다.
수녀로서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 아니었다면, 아마 인간들 사이에서 제법 이름 알리는 악녀가 되었을 터.
어찌 보면 그녀가 수녀가 된 것이 나름대로 적절한 판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 라플라스는 그녀가 제시했던 보상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런 여자는 적으로 두면 성가시지만, 친해지면 나쁠 건 없지... 거기다 만약 바울이 정신을 차리고 클라리스가 성녀가 된다면, 여신교에 괜찮은 인맥이 둘이나 생기는 셈이니...” “...만약 이번 의뢰로 받는 성물이 마스터가 원하던 것이 아니라고 해도, 두 분께 따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군요.” “바로 그거다 인형. 예상보다도 성가신 의뢰가 되었지만, 의뢰가 성공했을 때의 보상은 나쁘지 않아.”
자신의 인형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표정을 내비치는 라플라스.
실패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라플라스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암살 대상이 저렇게 극악무도한 녀석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었지만... 뭐, 간만에 용사다운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지. 이젠 딱히 의미는 없지만, 널 구동하려면 용사의 에너지는 필요하니까 말이야.” “네. 마스터.” “하지만 그런 에너지도 네가 완성 되기만 하면 필요 없어진다. 수왕국에 복귀하면 바로 성물을 사용해 볼 테니, 그녀에게 자리를 비켜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도록. 알겠나 인형?” “...네. 마스터...”
무언가를 인식시키는 것처럼, 라플라스가 자신의 인형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마치 무언가를 각오하고 있으라는 것처럼,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며 싸늘한 표정을 내비치는 주인.
라피나는 그런 주인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밤새 옆에서 그런 일이 있어서인지, 나도 기분이 좀 그렇군... 인형. 내가 널 사용하지 않은 지 얼마나 됐지?” “...주인님께서 마지막으로 모델 RFN-0101을 ‘사용’하신 후, 현재 52일과 6시간 12분이 경과했습니다.” “그래? 벌써 그렇게나 지났나... 그럼, 오랜만에 네 주인을 만족시켜 보도록. 인형. 밖에서 하는 취미는 없으니, 이번엔 그냥 간단히 입으로만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무엇인가 당연한 것을 시키는 것처럼, 라플라스가 무미건조하게 명령을 내린 후 의자에 털썩 몸을 맡긴다.
무언가 멍한 표정을 내비치면서, 라피나를 흐릿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라플라스.
자신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을 라플라스에 대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감정을 느끼며 라피나는 천천히 자신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오라버니~ 라피엔느가, 입으로 해줄게~” “아아... 그래... 라피엔느...”
신체에 영혼석이 결합되었을 때만 허용되는, 오라버니라는 호칭.
하지만 지금처럼 주인의 상대가 될 때는, 영혼석의 장착 여부와는 상관없이 라피나는 자신의 주인을 오라버니라고 불러야만 했다.
심지어 그런 것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라피엔느라고 칭하며 친근한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주인의 성욕을 처리하는 행위.
그렇게 원래 이 신체의 사용자가 되었어야 할 엘프의 공주를 연기하며 라피나는 주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아... 라피엔느... 이전보다 조금 커졌구나...” “정말~ 라피엔느도 성장하는걸! 언제까지 오라버니 기억 속에 있는 어린애인줄 알아?” “그래... 그렇지... 그렇겠지...”
어째선지 라피나에게 성장했다고 중얼거리는 주인의 모습.
그런 주인의 모습과 신체 설정 값을 보면, 아마 지금 주인은 라피나의 신체를 라피엔느의 신체로부터 조금 성장한 모습으로 설정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은, 주인의 희망에 맞춰 조금 성장한 라피엔느를 연기하는 것.
수없이 경험해 보았던 설정 놀이를 떠올리면서, 라피나는 그렇게 라플라스의 바지를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오라버니는 지금 피곤한 모양이니까~ 라피엔느가 입으로 해줄게~ 오라버니는 그냥 가만히 있어~” “하하... 라피엔느... 정말, 언제 이렇게 기특해져서...”
지금 자신을 바라보는 주인의 눈에 비치는 것은, 라피나인 자신이 아니라 엘프의 공주였던 라피엔느라는 여자.
아무리 애정이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애정은 ‘라피나’인 자신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그저 대용품. 주인이 사랑하던 여인의 신체에 끼어든 불순물이나 다름없는 존재.
사고 유닛에서 그러한 사실을 인식시키며, 라피나는 이미 많이 해보았던 입을 사용하는 봉사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다음은, 바지를 내린 후 발기한 마스터의 성기를 보며 감탄하는 것...’
거의 정형화된 레파토리. 그 레파토리에 따라, 라피엔느를 연기하며 주인을 만족시켜주면 될 뿐.
주인이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에 씁쓸한 감정을 느끼며, 그렇게 인형은 자신의 주인을 만족시키기 위한 연기를 이어나갔다.
“읏샤...! 와아~ 오라버니의 자지, 엄청 쬐끄매~” “하하. 라피엔느. 뭘 그렇게 놀라는... 하...?”
본래라면 크다고 감탄하면서, 주인의 성기에 눈을 반짝이다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데 어째서인지 지금 라피나의 입에서는, 주인의 성기를 모욕하는 것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어? 방금... 내가, 마스터의 성기를 작다고 말한 건가...?’
자신이 내뱉은 말에 본인도 당황하면서, 어째서 그런 말을 내뱉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라피나.
굳어 있던 라피나가 무엇인가 변명을 하기도 전에, 라플라스의 다리가 알몸인 라피나의 배를 걷어찼다.
“이 병신 같은 인형이! 시키는 것도 똑바로 못해!?”
꼴사나운 모습으로 바지를 올리며, 알몸으로 바닥에 쓰러진 인형을 난폭하게 걷어 차는 인형의 주인.
그렇게 걷어 차이는 인형은 전혀 반항하지 않으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내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라피엔느는 그딴 소리 안 해! 늘 나를 최고로 여겨준단 말이다!!” “...죄,송... 합니다... 마스터... 언어 유닛에, 장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히 라피엔느의 모습으로! 그딴 말을 하다니! 이 쓸모도 없는 실패작이!!” “마스, 터... 용서, 를...” “이 쓰레기 같은 년! 감히 라피엔느의 몸을 차지한 주제에...!! 너 때문에, 라피엔느가...!!”
평소 냉정해 보이던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감정을 마구 드러내며 자신의 인형을 걷어차는 라플라스.
그런 라플라스의 발길질 속에서, 인형은 자신이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얌전히 주인의 분노를 받아 낼 뿐이었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게 통각을 차단하고서, 주인의 발길질 속에서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원인을 파악해보는 라피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라피나는 그저 주인의 성기가 열등한 수준으로 작다는 인식만이 사고 유닛에서 떠오를 뿐이었다.
자신의 주인의 작은 성기로부터, 라디아에서 보고 들었던 열등한 수컷들과 실좆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당혹스러운 감정에 빠져 있던 라피나.
라플라스가 혀를 차며 발길질을 멈출 때까지, 라피나는 자신이 왜 그런 것들을 떠올리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