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50 - 596화 -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함정에 다가가는 여우! (3)
“이 사악한 것!! 감히 내 영역 안에서 내 아이들을 건드려!?”
성난 짐승처럼 앙칼진 목소리를 내면서, 나를 향해 달려드는 분노한 신수.
꼬리나 귀가 아니더라도 날카로워 보이는 송곳니가, 그녀의 모습을 짐승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어지간한 성인보다도 훨씬 커다란 체격인데. 그런데도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나 여우가 생각나게 만드는 저 모습.
이거 저렇게 큰 암컷을 귀엽게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는걸? 당장 끌어안아서 저 꼬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
“죽여주마! 그 사악한 육신을, 흔적도 남김없이 불태워버리겠...!” “어이쿠? 괜찮으십니까 신수님~? 신수님의 소중한 아이 중 한 명이, 제 손에 있는데용~?” “큭...!? 이, 이 사악한 놈이...!!”
나를 향해 달려들면서, 손에 든 부적을 던지려고 하던 요화.
그런 요화의 정면에 들고 있던 소우마라는 녀석을 내밀자, 달려들던 요화가 백스탭을 밟으며 뻗으려던 손을 집어넣었다.
내게 인질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도대체 얼마나 눈이 뒤집혀있던 거야?
아무래도 요화에겐 이 아이들이란 녀석들이 정말 소중한 모양인걸? 큭큭. 생각보다 더 재미있게 써먹을 수 있겠어.
“이 극악무도한...! 어린 아이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에이~ 설마 이런 밤톨만한 꼬맹이를 죽이기라도 할까? 날 너무 쓰레기로 보시네 우리 신수님은~” “큭...! 네 놈...!”
뭐어~ 사실 열등한 수컷인 만큼, 죽여버리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요화가 이렇게 아끼는 모습을 보니, 가볍게 죽이기엔 좀 아까운 느낌이란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말정액에 저항하는 요화다 보니, 지금 단계에서 애새끼들을 죽이면 정말 단단히 틀어질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여차하면 말정액에 절여버려서 강제로 타락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재미도 없고 음수로 만들려는 요화에겐 예의도 아니지.
어디 보자... 이 상황을 어떻게 요리해야 가장 재미있게 요화를 즐길 수 있으려나...
“...소, 소우마는 놔주시오... 아, 아직, 어린 아이잖소...” “...응?” “이, 인질이 필요하면 이 늙은이가 인질이 될 테니... 소우마는 그만 풀어주시오...”
날 보며 이를 악무는 요화와 대치한 채, 잠시 생각을 이어나가던 도중.
내 뒤에서 왠 늙은 인간 수컷이 자비를 구하듯이, 앞으로 나와 내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켁, 에흑...! 하, 할아버지...!” “호오... 이 꼬맹이 대신, 본인이 내 인질이 되시겠다?” “그, 그렇소... 요화님을 협박하기 위해서라면, 이 늙은이의 목숨이라도 상관없잖소...” “큭큭. 가만 놔둬도 곧 뒈질 것 같은 늙은이랑 비교할 수가 있나. 인질로 쓰기엔 영감은 너무 가치가 떨어지는데?” “그, 그런...”
늙어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이 마왕을 호구로 본 걸까?
당장 내일 픽 죽어도 그러려니 할 것 같은 늙은이인데. 그런 늙은이를 가지고 협박한다고 뭐 씨알이나 먹히겠어?
물론 망설이는 모습 정도야 볼 수 있겠지만. 다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날 공격하겠지.
흐음. 그나저나 인질이라... 그래. 한 마리 가지고는 조금 부족하겠지? ...음?
“방심했구나! 날 앞에 두고서 한 눈을 팔다니!!” “오오옷...!?”
내가 잠시 한 눈을 팔던 그 사이에, 무언가 준비라도 마친 것일까.
요화가 나를 향해 부적 한 장을 던지더니,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마법사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날아온 부적이 내 몸에 부착된 순간, 그 부적들도 뭔가 묘한 빛을 내뿜더니...
내 팔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면서, 소우마란 녀석을 요화에게 던져버렸다.
“요화님!!” “소우마! 이리 오거라!” “요화님이 소우마를 구했다! 모두, 방호 결계를!”
와. 방금 이거 뭐지? 되게 신기한 느낌인데?
설마 방금 부적 한 장 붙인 걸로, 이 마왕의 몸을 조종했다는 거야?
보통의 마법으로는 타인을 조종하거나 세뇌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들었었는데. 근데 평범한 인간도 아니고 이 몸을 부적 한 장으로?
캬~ 한 순간이긴 했지만, 단순히 멈춰 세운 것도 아니고 조종을 했단 말이지? 주술인지 뭔지 이거 상당히 흥미로운 능력인걸?
“더 이상 인질을 가지고 협박하진 못할 터! 이제 네 놈에게 벌을 내리겠노라!” “그럴 리가 있나~ 이거 우릴 너무 호구로 보시는데~?” “꺄악!? 요, 요화 님!?” “뭐, 뭣...!? 아니, 어느새...!?”
인질이 사라지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부적을 날리며 자신들의 앞에 결계를 만들어낸 요화의 아이들.
하지만 내게 붙잡힌 인질에만 신경 쓰느라 은신으로 몸을 감췄던 라피나를 눈치채지 못했던 모양이다.
결계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잽싸게 안쪽으로 들어가, 라피엔느 소드를 들고서 대기하고 있던 라피나.
내가 신호를 보내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라피나는 임신한 암컷의 목에 라피엔느 소드를 가져다 댄 채 모습을 드러냈다.
“읏...!? 으, 은신을...? 어느새...” “큭큭. 애새끼에 정신이 팔려서 내 음수들을 안보고 계셨구만. 그리고 뭐야 이건. 이딴 걸로 날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아까 내가 너희들의 결계를 찢어버리는 걸 봤으면서?”
결계에 다가가 가볍게 두드리자, 마치 벽을 두드리는 것 같은 감촉이 전해지는 아까와는 다른 결계.
주먹을 움켜쥐고 전력으로 몇 번 휘두르자, 마치 금속이 우그러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또다시 결계가 깨져버렸다.
아까와는 달리 나름대로 내구성이 있는 것 같지만. 그조차도 내 주먹질 몇 방에 가볍게 깨져버린 아이들의 결계.
몇 명이 충격을 받은 것처럼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요화와 아이들의 얼굴이 절망 어린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내가 하려고만 하면 이런 놈들 따위 1초컷이거든? 지금 난 널 배려해서 이 놈들을 살려주고 있는 거라고? 요화?” “으, 윽...! 네 놈...!” “하지만 이 놈들을 죽이면 요화 네가 너무 슬프겠지? 그래서 말인데. 여기서 제안 하나 하도록 하지.” “뭐... 라고? 제안...?”
사실상 내가 봐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내게 인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달려들지를 못하던 요화.
갑자기 내가 꺼낸 제안이라는 말에, 요화는 긴장한 것처럼 꼬리를 세우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에 대해 좀 아는 모양이던데. 내 목표가 뭔지 알고 있나? 요화?” “...어긋난 세상을 바로잡는다는 핑계로, 이 세상의 생명체들을 멸망시키는 것 아니냐.” “음? 푸흐흐. 약간 조금 다르긴 한데... 일단 그건 대충 그렇다고 해두지.”
이 세상의 생명체들을 멸망시킨다니. 이거 날 너무 극악무도한 악당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 그냥 이 우주를 구원하기 위해, 잘못 설계된 열등종들을 정리하는 것뿐이라고~
그 과정에서 내가 구해줄 수 있는 암컷들을 구해주고 있는데. 그게 어째서 생명체들의 멸망이 되는 거람?
요화에게 이런 잘못된 지식을 알려주다니. 누가 알려준 건지는 몰라도 가만 놔두면 안되겠네 이거. 큭큭.
뭐, 저런 잘못된 지식은 천천히 교정해 주면 되는 거니까. 일단 지금은 그냥 넘어가야지.
“질문을 바꾸지. 내가 지금 널 가지고 싶어 한다는 건, 아까의 교미로 눈치 챘을 테지?” “...그래. 네 놈이 그 더러운 것으로 암컷들을 타락시킨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이야~ 그새 그런 것까지 눈치채셨어? 그러면 뭐, 이야기는 빠르겠네.”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자, 귀를 움찔거리며 주술봉 같은 지팡이를 내게 겨누는 요화.
굳어있는 요화의 아이들을 내버려 둔 채, 나는 천천히 적대감을 보이고 있는 요화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와 내기 하나 하지 않겠어? 요화?” “...무어라? 내기...?” “그래. 내기. 승자가 패자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는 조건으로 말이야.”
몇 단 안 되는 작은 계단을 내려와, 나는 요화와 마주보듯이 몇 걸음 앞에서 멈춰 섰다.
소우마란 아이를 숨기듯이 자신의 꼬리로 감추는 요화와, 그런 요화의 꼬리를 붙잡고서 날 노려보는 어린 수컷.
마치 도발하는 것처럼 피식 웃음을 보이고는,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요화를 향해 아주 너그러운 조건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얼마간, 나는 네 거처인 여기에 머물 거다. 나와 내 암컷들이 즐기기에 딱 좋은 휴양지 같거든.” “뭐라, 고...!?” “그리고 여기서 머무는 동안 룰을 정해서, 매일 나와 승부를 겨루는 거지. 그 승부에서 이길 때마다, 넌 그날 밤에 내가 원하는 대로 따르는 거야.”
이미 인질이나 다름없는 이 많은 아이들. 그리고 이 훌륭한 경치를 지닌 근사한 요화의 거처.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을 끔찍이 아끼는 요화의 태도를 본 순간, 내 안에서 요화를 어찌 즐겨볼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정해졌다.
매번 피를 보는 것도 슬슬 질리기 시작했으니까. 이번에는 좀 다른 방식으로 즐겨도 괜찮지 않겠어?
큭큭... 요화. 널 위해 아주 부드러운 아이디어를 떠올렸거든? 그러니 너무 그렇게 경계하진 말라고.
“어떤 걸로 승부를 볼지는 네가 정하게 해주지. 하지만 그 대신, 여기 네 아이들은 내기하는 동안 인질로 데리고 있겠어.” “이, 이 놈이...! 내가, 그런걸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싫으면 그냥 이 자리에서 승부를 봐도 괜찮아~ 뭐, 그 경우엔 너보다 저 놈들을 먼저 죽여버릴 거지만~” “크, 크으윽...! 이 비열한 놈이...!!”
비열하다니~ 그냥 바로 싹 다 인질로 삼아서 협박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고 내기란 형태를 제안하고 있잖아?
널 위해서 배려해주고 있는 건데. 날 너무 쓰레기로 보신다 우리 요화님은~
“큭큭. 아무튼 그렇게 승부를 벌이다가... 대충 결정한 기간이 끝나고 나서, 네가 내 암컷이 될 것인지 아닌지 선택하면 된다. 내 암컷이 되기를 거부한다면, 내가 내기에서 패배한 걸로 치지.” “...하? 나에게... 선택권을 맡기겠다는 거냐?” “그래. 세부적인 내용은 최대한 널 배려해서 조율해줄 생각인데... 어때? 받아들일 생각 있나?”
암컷은 강제로 굴복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굴복하게 만들어야 제맛인 법.
그러니 요화에겐 최대한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마지막 승패 역시 본인이 선택하게 만들어줄 생각이다.
대충 기한을 정해 매일 승부를 벌이자는 간단한 틀만 가지고, 세부적인 내용은 요화의 의견에 맞춰 조절할건데...
어때 요화. 구미가 막 당기지 않아? 아이들을 지키면서 온건하게 나와 대결할 수 있는 기회라고? 큭큭.
“조율이라고 해도 이 녀석들은 내가 데리고 있을 거다. 인질이 없으면 네가 날 상대할만한 이유가 없을 테니까” “......” “그래도 이 마왕의 이름을 걸고 인질들의 목숨은 보장해주지. 그리고 내기에서 질 경우엔 뭘 요구하든 그에 따라주겠어. 뭐, 이런다고 전혀 믿기진 않겠지만 말이야.” “...호오...”
“물론 인질이 걱정되고 내가 약속을 지킬지 의심되겠지만... 그 점은 그리 걱정 안 해도 돼. 암만 신수라고 해도 암컷인 너에게 질 정도라면, 자존심 상해서 마왕 같은 건 못해먹을 것 같거든.”
내기하고 싶어서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매달리듯이 요화에게 조건들을 제시한다.
이것저것 제시한 제안을 듣는 동안 뭔가 떠오른 것처럼, 분노하던 표정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변해가는 요화.
마치 도발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기하자고 말한 나를, 요화는 피식 웃으며 어이없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흥... 과연... 네 놈은 이제 보니, 단순히 사악한 것뿐만이 아니라 유열을 즐기고 싶어서 몸이 안달 나있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니까~? 뭘 하든 즐겁지 않으면 하는 의미가 없잖아? 내가 마왕으로서 활동하는 것도 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라고?” “하... 생명체들을 멸망시키려는 것도 즐거움이란 말인가... 그래. 좋다!”
지팡이를 땅에 내리찍으며, 위엄 넘치게 고개를 끄덕이는 요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만으로 그 커다란 폭유가 출렁이면서, 요화의 매력적인 신체가 내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받아들이도록 하지! 이 내게 그런 내기를 제안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노라!”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씨익 웃으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보이는 요화.
미소 짓는 요화가 자신의 소매를 주섬 거리며, 내 앞에서 두 장의 부적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