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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남의 여자를 빼앗는 말이 되어버렸다-652화 (653/749)

Chapter 651 - 597화 - 접대 내기!

“흐음... 청야가 그렇게... 그리고 우리 막내 신수가 그런 짓을 당했단 말이지...?”

수왕국 어딘가에 자리한, 신수만이 들어올 수 있는 신성한 영역.

그 영역 안에 있는 어느 산봉우리에서, 하얀 머리카락을 지닌 한 여인이 작은 정자에 앉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호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넌 그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고 내게 도움을 구하러 온 것이냐? 세계수의 대리인이니 뭐니 하며 날뛰어대더니. 참 꼴사납기 그지 없구나 호월.” “야이씨...! 그건 그냥 떠넘겨 받은 역할일 뿐이거든!? 신수면 누구라도 지정될 수 있는 거 다 알면서. 왜 또 시비야!?” “흥. 성깔 하고는... 도와달라고 부탁하러 온 주제에 그런 태도라니. 언제 봐도 참 작아빠진 수컷이구나 너는.” “네가 시비만 안 걸면 이럴 일이...! 아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진짜...!”

신장이 작은 호월의 인간 형태를 놀리는 것처럼, 손을 낮춰 선을 그으며 호월을 바라보는 여인.

호월은 그런 여인이 짜증난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이를 악물었다.

괜히 여기서 말대답을 했다간, 저 느긋한 목소리로 꼬투리를 잡으며 자신을 놀리려고 들 터.

요화가 자신의 아이들 때문에 마왕에게 향한 이 시점에, 호월은 괜히 저 여인과 말싸움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기는 싫었다.

“아무튼. 상황이 그렇게 되었으니 좀 도와줘. 백선. 나나 청야는 몰라도 요화를 위해서라면 좀 움직여 줄 수도 있잖아?” “흐응... 글쎄... 굳이 내가 움직여야 할지...”

자존심을 접고 앙숙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호월과, 그런 호월을 무기력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는 백선이라는 여인.

백선은 재차 손에 든 곰방대를 입으로 가져가더니, 마치 구름같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관심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우리 막내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데... 자기 행동의 결과는 알아서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마왕이라는 녀석. 굳이 막을 필요가 있느냐?” “...너도 알잖아. 백선. 그 녀석을 막지 못하면 이 세상이...” “그러니까. 그냥 멸망하게 놔둬도 괜찮지 않냐는 거지.”

호월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자신의 옆에 있는 재떨이에 곰방대를 터는 백선.

그런 자신을 흘겨보며 한숨을 내쉬는 호월을 향해, 백선은 뭐 하러 고생하냐는 듯이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처음부터 어긋나 있던 우주. 애초에 그리 오래갈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이제, 각자 차이가 있기는 해도 다들 여기서 지낼 만큼은 지내지 않았느냐?” “이런 썅... 이젠 정말 완전히 꼰대들처럼 되어가지곤... 하월도 신백도, 심지어 야신까지도 맛이 가서 이젠 부탁할 곳도 없는데...” “흥. 너도 우리 나이쯤 되어보거라. 싫어도 자기 영역에 틀어박혀서 숨만 쉬고 있는, 그 영감들을 닮게 될 테니.” “끔찍하네 진짜. 내가 그런 산 송장들처럼 된다니. 상상만 해도 갑갑해 뒈질 것 같은 느낌이야.”

무언가 답답한 것을 떠올렸다는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가만히 백선을 바라보는 호월.

귀찮다는 듯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선의 표정에, 호월은 설득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아... 그래도 네가 가르친 요화가 위험한데. 어떻게 한 번만 도와주면 안되겠어?” “흐음... 글쎄...” “그냥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답이 없는 상대는 아니야. 끝없는 테세르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 육체는 생명체라는 틀 안에 있는 평범한 육체였다고. 어떻게 치명상만 입히면 막아낼 수 있다니까?” “그 여신이 준비한 만큼 그조차 쉽지는 않을 것인데... 귀찮게 굳이 힘든 일에 나서야 할지...”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좀 도와줘라. 멸종 위기에 빠진 이 우주의 인간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짜증나는 감정을 집어넣은 채, 어떻게든 백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간절하게 부탁을 건네는 호월.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듯이 인간들의 이야기를 꺼내봤지만, 백선은 관심 없다는 듯이 먼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마왕을 죽인다고 해도, 결국 멸종할 운명인 것은 매한가지인데...” “야 이...! 피할 수 없는 멸망이랑 살해당하는 거랑 비교가 되냐? 우리야 살 만큼 살았다지만 인간들은 그런 것도 아니잖아!” “네가 인간들을 그리 아끼는 줄은 몰랐구나. 하긴. 우리들은 그들에게 친근감을 가질 만도 하지. 그렇지만...” “그렇지만은 뭐가 그렇지만 이야!? 아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진짜!”

답답해서 참지를 못하겠다는 듯이, 또다시 자신의 가슴을 치며 짜증을 부리는 호월.

그리곤 이제 됐다는 듯이 뒤돌아서더니, 호월은 몸에서 연기를 일으키며 네 발의 짐승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됐다 이젠! 그냥 우리들끼리 어떻게든 해볼 테니 신경 꺼!”

백선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요화의 영역과 가까운 청야의 영역으로 돌아가려던 호월.

그런데 그런 호월이 뛰쳐나가려던 순간, 그 등 위에 무엇인가 무게감이 더해졌다.

“하? 백선. 너 지금 뭐 하는...” “하여간 작은 수컷 아니랄까 봐... 2천년을 넘게 살았는데도 그 놈의 소갈머리는 고쳐지지가 않는구나.” “야 이... 나랑 얼마나 차이 난다고. 자꾸 작다고 부를 거야?” “암컷 중에서 평범한 나보다 작은 수컷이면 말 다한 거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뭘 그리 화를 내느냐?” “너... 진짜 그 놈의 주둥이를 확 그냥...”

부들거리며 네 다리에 힘을 주는 호월과, 그런 호월의 등 위에서 편안한 자세를 찾는 것처럼 꾸물거리는 백선.

자세를 잡은 후 담배 연기를 내뿜은 백선은, 출발하자는 듯이 호월의 옆구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가보자꾸나. 귀찮기는 하지만, 내가 더 늙기 전에 막내는 한 번 보고 싶으니.” “...마왕을 쓰러트리는 건 도울 생각이 없는 건가?” “가서 보고 결정하자꾸나. 마음이 내키면 도와주도록 하마.” “흥. 딱히 기대는 안되지만... 뭐 좋아. 그래도 위험에 처한 요화를 못 본 척 하지는 않을 테니...!”

확실하게 돕겠다는 말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 움직이겠다는 백선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는 호월.

그렇게 호월은 기대하지 않고 있던 백선을 태운 채, 안개가 자욱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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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서로의 운명을 건 나와 요화의 내기가 성립되었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날 쓰러트리기엔 힘이 부족하단 것 때문인지, 의외로 쉽게 나의 제안을 받아들인 요화.

이후 나와 요화는 자리를 옮겨서,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며 내기의 세부적인 내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럼, ‘계약’은 이 내용대로 결정하겠다. 이제 이이는 없겠지?” “큭큭. 서로 몇 번이고 계속 확인했잖아? 이제 난 됐으니까. 너나 추가할 내용은 없는지 잘 살펴봐~” “흥. 건방진 녀석...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느니라...”

내가 이 거처에 도착한 것이 어제 해가 질 무렵. 그리고 지금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밤새도록 내기의 규칙을 정한 나와 요화.

사실 나는 규칙 쪽은 대강 정해둔 뒤에, 필요할 경우 대충 말장난을 하며 내 마음대로 요화와 이 휴양지를 즐겨볼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요화는 어디서 이런 내기를 해본 적이 있는 것인지, 규칙은 확실히 하자며 이것저것 세세한 규칙들을 내기에 포함시켰다.

애초에 원하는 걸 어느 정도 들어주는 척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리도 뻔뻔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뭐, 나도 결국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밤새 이건 되네 안되네 하며 어울려주긴 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덕분에 아주 재미있어 보이는 규칙이 만들어 졌으니까. 내기하는 동안은 아주 즐겁게 즐겨볼 수 있겠어.

“...그럼, 시작하겠다. 이건 그 누구도 해제할 수 없는 주술이니, 나중에 딴말하지 말도록.” “네. 네. 난 얼른 시작하고 싶으니까. 빨리 걸고 시작하자고~”

빈정거리는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눈을 감고 염주 같은 것을 감은 손을 겹치는 요화.

기도하는 듯한 자세로 요화가 무엇인지 모를 주문을 외우자, 나와 요화 사이에 놓여져 있던 부적이 떠올라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나 신수 요화와 마왕 세마는, 서로의 목숨을 걸고 계약을 맺는다.”

떠오른 부적에 무언가를 새기는 것처럼, 나와 계약을 맺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요화.

사실 요화가 나와의 내기를 받아들인 것은, 단순히 아이들이 위험하다거나 본인의 힘이 모자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요화가 진행하고 있는 이 주술은, 상대방과 확실한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맹약의 주술.

이 주술을 맺는 순간부터 요화와 나는, 설정해 둔 내기의 조건을 어길 경우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통해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본 계약의 규칙은, 이하와 같다. 첫 번째. 본 계약의 기간 동안 마왕 세마는...”

내가 요화와 설정한 내기의 규칙은, 총 12가지.

1. 본 계약의 기간 동안 마왕 세마와 그 부인들은, 요화의 거처에 머무는 손님이 된다. 2. 요화의 제자들은 세마가 머무는 동안, 세마와 세마의 부인들을 손님으로 대우하며 접대한다. 3. 세마와 그 부인들은 요화의 거처를 파괴하지 않는다. 4. 거처에 머무는 동안 마왕 세마와 그 부인들은, 요화와 그 제자들을 공격하지 않고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장한다. 5. 요화는 제자들의 접대를 관리해서는 안되며, 거처 안에서의 세마의 행동을 제약하지 않는다. 6. 요화는 세마가 머무는 동안, 매일 세마를 찾아와 승부를 겨룬다. 7. 승부에서 세마가 승리할 경우 두 시간 동안 요화를 원하는 대로 ‘사용’하며, 요화가 승리할 경우 내기의 기간을 하루 단축한다. 8. 내기의 기간 동안 세마는 요화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으며, 요화는 승부와 사용 시간을 제외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9. 승부 내용은 요화가 결정하되, 양쪽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공평한 규칙을 갖추어야 한다. 10. 내기의 기간이 종료되었을 때, 요화의 승리, 혹은 패배 선언으로 그 승패를 결정한다. 11. 내기의 승리자는 상대방의 처우를 결정할 수 있게 되며, 패배자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12. 내기의 기간은 계약 순간으로부터 60일로 지정한다.

이렇게 총 12가지의 규칙을, 밤새도록 요화와 함께 단어 하나하나 세심하게 따지며 결정했다.

여기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여관의 주인과 손님이 겨루는 접대 내기 라고 하는 게 맞겠지?

사실 요화는 자기 거처를 여관처럼 쓰겠다는 게 조금 불쾌한 모양이었지만... 뭐 어쩌겠어. 자기 아이들의 목숨이 걸려있는데 싫어도 해야지.

거기다 들어보니 이 주술은 워낙 강제성이 커서, 목숨을 걸면 그 누구더라도 알짤 없이 죽게 된다고 하니... 피를 보지 않고도 날 죽일 수 있는 엄청난 기회잖아?

큭큭. 이런 걸로 진짜 날 죽일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어차피 내가 이길 거라서 알아볼 기회가 없겠네~ 아쉬워라~

“...양측은 이 12가지 규칙을 준수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정도에 따라 심장에 고통을 받거나 죽음에 이를 것이다.”

후후... 요 귀여운 여우 같으니. 이 내기 조건이 내게 얼마나 유리한지도 모르고...

죽기는커녕 내 심장이 아플 일조차 거의 없을 거야. 이 규칙들을 어기지 않고도, 충분히 너와 네 제자들을 즐길 수 있을 거거든.

물론 본인은 단어 하나하나 세심하게 체크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푸흐흐...

정말이지. 내 능력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알고 있었더라면, 내기는 몰라도 분명 제자들을 이 내기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텐데...

손님으로 대접받겠다며 밤새도록 설득한 보람이 있는걸. 정말이지 아주 만족스러운 규칙이야.

“나 신수 요화는, 이 계약을 통해 세마와의 내기를 진행할 것을 맹세한다.” “나 마왕 세마는, 이 계약을 통해 요화와의 내기를 진행할 것을 맹세한다.”

요화가 주술의 발동을 마친 후, 미리 들었던 대로 마지막 선언을 말한 순간.

떠올랐던 부적이 강렬한 빛을 내뿜더니, 두 개의 빛으로 나뉘어져 요화와 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오? 심장 쪽에 뭔가 새겨지는 듯한 이 감각... 이게 그 맹약의 주술이 가진 강제성인가?

이야. 죽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규칙을 안 따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느껴지는걸?

마왕인 나조차 얌전히 따라야 하는 제약이라니. 주술이란 게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기술일지도 모르겠어.

...어? 이야... 요화의 목에 둘러진 저 초커 같은 문양... 이제 보니 단순히 느낌만 가해지는 게 아니라, 주술이 걸렸다는 표식 까지도 새겨지는 모양이네?

내 목에도 새겨진 상태겠지? 흐음. 내 음수들에게 연구하도록 맡겨보면 해제할 수 있으려나?

...뭐, 어차피 내기는 즐겨볼 생각이었으니까. 굳이 억지로 해제하려고 할 필요는 없지.

그리 거슬리거나 하는 느낌도 아니니까. 그냥 보여만 주고 해제는 나중에 따로 연구해 봐야겠어.

“...이것으로, 나와 네놈은 맹약의 주술로 엮였다. 지금 이 순간부터, 죽기 싫다면 나와 아이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을 게다.” “푸흐흐. 그럴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손님인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네 제자들에게 잘 일러두라고.” “흥. 애초에 원하지도 않던 손님이다만... 그리도 손님 대접을 받고 싶어하니 어쩔 수 없지. 충분히 만끽하도록 하거라. 모든 승부를 이겨서 한 달 안에, 네 놈을 이 세상에서 소멸시켜 줄 테니 말이다.” “한 달이라니 너무 자신만만 하시네. 큭큭. 두 달 동안 나와 질퍽하게 즐길 준비나 하시라고.”

뭔가 자신이 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건방지게 느껴지는 미소를 내비치는 요화.

나 역시 입 꼬리를 올리며, 요화를 향해 자신만만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해를 가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어이쿠... 아무렴 여부가 있겠습니까. 손님으로 왔는데 얌전히 즐기다 가야죠.

뭐, 그 얌전히가 비록 이 마왕 기준의 얌전함이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푸흐흐. 요화. 넌 지금 상상도 못하고 있겠지? 내가 왜 이리 너그럽게 다양한 규칙을 받아주고, 그 규칙에서 몇몇 단어를 고쳐댔는지?

기대하도록 해. 지금 나가자 마자 아주 까무라칠 일이 벌어질 거거든.

그걸 보고 나와 내 음수들의 능력을 모두 파악하지 못한 것을 원망하면서, 앞으로 두 달간 날 즐겁게 만들 즐거운 놀이거리 들을 준비해 보라고. 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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