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62 - 608화 - 요화의 대응! (3)
마왕에게 직속 시종으로 지정된 이후, 한동안 마왕과 음수들의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백설.
“얘, 얘...! 백설...!” “어, 네? 언니들?”
잠시 후에 다시 보기로 하고서 식기를 정리하기 시작하자, 마왕이 두려워 숨어있던 암컷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백설을 불렀다.
“으, 읏... 미안해 백설... 나가서 널 불러오고 싶었지만, 도저히 발이...” “그, 그보다 괜찮은 거야 백설? 뭔가 이야기가 길어지던데...” “혹시 성추행이라도 당한 거 아니야? 침실을 그렇게 만들고서 우리에게 치우게 한 걸 보면, 저 마왕은 그러고도 남을...”
당연히 무언가 곤란한 짓을 당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인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백설의 안부를 걱정하는 암컷들.
비록 직접 나서서 도와줄 수는 없었지만, 그녀들이 백설을 걱정하는 것은 분명한 진심이었다.
단순히 흉악한 외형이나 사악한 기운이 아니더라도, 침실을 그런 꼴로 만들어두고 자신들에게 치우라고 지시한 마왕.
그런 마왕이 분명 백설을 괴롭혔을 거란 생각에, 암컷들은 호기심 가득한 여학생들처럼 백설을 붙잡고 마왕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아하하... 그, 그런 일을 당하진 않았어요. 그냥 음식 비결이 뭐냐고 물어와서, 몇 가지 대답해 준 것뿐인걸요.” “으, 음식 비결? 고작 그것 뿐?” “아. 그리고 자기 전담 시중 좀 들어달라고 하더라구요. 힘든 일은 안 시킬 테니 매일 와서 이것저것 설명 좀 해달라나?” “뭐, 뭐!? 전담 시중!?” “어, 어떡해...! 그 사악한 존재가, 백설을...!”
마왕을 전담하게 되었다는 백설의 이야기에, 안색을 새파랗게 물들이며 비명을 내지르는 암컷들.
외모는 흉악한데다 문란하기 까지 한 그 수컷의 눈에 들었다는 것은, 신수의 영역 안에서 수행자 같은 삶을 사는 그녀들에겐 당연히 기겁할만한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그 마왕은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한다는 사악한 존재. 첫 만남부터 본인들을 위협해와서, 요화가 맹약의 주술을 통해 억지로 그의 행동을 제한해야 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성인인 남제자들만을 골라 새하얀 석고상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요화를 속이는 모습까지 지켜 보았으니. 지금 그녀들이 백설을 걱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아... 어떡해... 분명, 그 짐승은 백설을 노릴 텐데...” “위, 위험해 백설. 분명 그 마왕, 널 강간하려고 하는 걸꺼야...!” “오늘 청소해야 했던 그 침실... 으으. 그것들이 전부 그 마왕의 정액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어, 엄청 냄새 나고 기분 나빴지... 아직도 코에 그 냄새가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하지만 그녀들의 표정은, 무엇일까.
분명 백설을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지만, 그 표정들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혐오스러운 대상을 떠올리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있지만, 묘하게 반짝이는 눈동자와 상기되어 있는 피부.
인간에겐 있을 수 없는 마왕의 성기와 교미 흔적을 확인한 암컷들에게, 그동안 없던 새로운 감정이 생겨나고 있는 표정들이었다.
“...백설. 요화님께 말씀 드리자. 요화 님은 원하는 대로 시중만 들어주고 무시하라고 하셨지만... 이대로는 분명, 마왕에게...” “아하하...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일단은 부탁하는 입장이니까. 절대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셨거든요.” “안돼 백설! 그런 사악한 존재가 약속을 지킬 리가 없잖아! 아무리 주술의 규칙이 있다고 해도, 너무 위험...!” “괜찮아요. 주술의 규칙이 있기도 하지만, 실은 그것보다도...”
너무나도 긴장감이 없어 보이는 백설의 표정. 그리고, 그런 백설의 모습에 당황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내비치는 암컷들.
그렇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암컷들에게, 백설은 이상할 정도로 두려움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암컷들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믿어도 되는 분 같았거든요.”
요화의 제자들 사이에서, 마왕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첫 암컷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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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화님의 영역은 본래 요화님이 머무는 본관 뿐이었지만, 요화님이 제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필요한 건물들을 늘려나갔어요. 신수 분들마다 동굴이든 집이든 지내는 곳은 다양하지만, 요화님처럼 규모를 갖추고 지내는 분은 거의 없답니다.”
아침 식사의 뒷정리를 마치고 잠시 휴식한 뒤, 나와 음수들에게 요화의 영역을 안내해주러 나온 백설.
마당의 수컷들 마네킹 앞에서 만난 백설은, 잠시 마네킹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다 표정을 고치고 우리에게 요화의 영역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푸흐흐. 일부러 수컷들 마네킹 앞에서 만났는데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다니...
아직 내가 두려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직 살아있기는 하니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걸까?
어느 쪽이건 아직 문제될 건 없지만, 이왕이면 나에게 마음이 열리고 있어서 저 수컷들에게 마음이 멀어지고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는걸. 큭큭...
“흐응. 신기하네요. 이 곳도 신수의 거처 라기엔 조금 작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이게 오히려 규모가 있는 편이라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신수 분들은 제자도 안 키우시는 데다, 물욕 같은 것도 거의 없으시거든요. 아예 동굴 같은 곳도 없이 지내시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그건 좀 이해가 안 되는걸. 왜 굳이 신수씩이나 되어서 그렇게 지내지?
신수 정도면 그래도 적당한 마을이나 도시 같은 데서 충분히 왕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우리보단 못해도 평범한 엘프나 인간들보단 훨씬 뛰어난 편이잖아?
그런데 굳이 집도 없이 나는 자연인이다 찍으며 산다고? 제자를 키우는 요화가 특이한 케이스야?
한 두 놈도 아니고 죄다 그러고 산다니. 어째 영 이해가 안 되는 놈들이네 이거.
“아마 저희가 아니었다면 요화님도 다른 신수 분들처럼 지내셨을지도 몰라요. 사실상 본관 이외에는, 저희 제자들의 편의를 위해 지어진 건물들이라... 물론 그렇다고 요화님이 본관에만 계시는 건 아니지만요.”
흐음. 기왕 제자들을 위해 건물을 늘리긴 했지만. 본인은 필요할 때만 들리고 대부분은 그냥 본관에서만 지낸다는 건가...
어쩐지 얌전히 지내는 동안 영 마주치질 못하더라니... 날 보기 싫어서 틀어박혀 있던 게 아니었구만 이거.
“흐음... 그럼, 지금도 요화는 본관 안에 있겠네? 아직 자고 있으려나?” “아. 지금은 안 계세요. 오늘은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엥? 뭐야. 나랑 교미하면서 완전히 실신해놓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어?
으음... 나와의 교미를 떠올리면서 하루 종일 자위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금새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갔다라...
그러고 보니 분명, 나만 요화의 영역 밖으로 못나가는 규칙이었지? 쓰읍. 가봤자 어딜 가겠냐 싶어서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뭔가 내기에서 이득을 볼만한 비밀 장소라도 가지고 있었던 건가?
...뭐, 벌써 나갔다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매일 겨루는 승부 때문에 오늘 안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굳이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그래도 어딜 가는 건지는 궁금하긴 하니까. 오늘 승부 후에 물어보거나 내 음수들에게 뒤를 밟아보라고 해봐야겠어.
“흐음. 그렇군... 뭐, 볼일이 있는 건 아니니까 됐어. 백설 양. 일단 지금은 건물 하나하나 안내 좀 해줄래?” “네. 그럼, 기왕 안내해 드리는 거 본관 쪽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어쩐지 친해지고 싶은 상대에게 집을 구경시켜 주려는 것처럼, 전혀 불편한 기색 없이 안내를 자처하는 암컷.
대화를 나눈 것 만으로 내게 두려움이 사라진 백설의 안내를 받으며, 그렇게 우리는 요화의 영역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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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아...! 청야! 호월! 다들 준비는 마쳤느냐!?”
그렇게 마왕이 자신의 것이 될 요화의 영역을 둘러보기 몇 시간 전.
짐승의 냄새에 취한 어린 제자를 다른 제자들에게 맡긴 요화가, 귀환부를 사용해 친우인 청야의 영역에 들어갔다.
다소 무례한 짓이기에 긴급 용도로만 허락 받은 행위이지만, 달려서 청야의 영역에 도착하려면 왕복하는 데에만 하루가 모두 소모될 터.
기다리고 있을 두 신수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맑은 기운이 모인 청야의 영역에서 잠시라도 몸을 정화할 생각이었다.
“엇...!? 딱 맞춰 왔군 요화! 이제 막 준비가 끝났는데...!” “뭐, 뭐야!? 호월, 이제야 준비가 끝났다고!? 이미 진작에 끝났을 거라 생각했었다만!?” “청야의 회복이 늦어져서 어쩔 수가 없었어! 빨리 끝낼 수도 있었겠지만, 청야 녀석이 욕정에 지배되긴 싫다고 고집을 부려서...” “으, 응? 욕정? 그게 무슨...”
분명 이미 진작 준비를 마치고, 맹약의 주술을 사용한 본인을 만나러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이제 막 준비가 끝났다는 호월의 말에, 요화는 정화의 샘을 쓰겠다는 말을 하려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너무 늦어서 오히려 엇갈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데 아직까지도 회복을 못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게 요화가 청야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했던 건지를 걱정하던 와중, 요화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이냐 요화. 어쩐지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품고 왔구나.” “어, 어!? 언니!? 아, 아니 백선!?” “후후. 오랜만이구나 우리 막내. 그 동안 잘 지냈느냐?”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나타난 백발의 여인. 그 여인의 모습을 보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호월을 바라보는 요화.
기대하지 않았던 백선의 모습에 반가움을 느끼면서도, 요화는 이 자리에 백선이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신수들 중 마지막으로 들어온 자신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준 언니나 다름없는 백선이지만. 벌써 500년 전부터 자신의 영역 안에 틀어박혀 완전히 은둔 생활을 하던 그녀인데.
도대체 어떻게 데려왔냐는 듯이 호월을 바라보자, 호월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칭찬해 보란 듯이 가슴을 내밀었다.
“세, 세상에 백선...! 그대가 와주다니...!” “딱히 도와주려고 온 것은 아니란다. 그냥, 그 마왕이란 녀석을 한 번 살펴보기나 할까 싶어서 말이다.” “하여간 고집부리기는. 말은 그렇게 해도 도와줄 거면서...” “글쎄다... 내가 어찌할진 나도 모르겠으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말거라. 호월.”
백선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는 호월과, 그런 호월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백선.
요화는 한껏 반가운 표정을 내비치며, 그녀답지 않게 들뜬 모습으로 백선의 손을 붙잡았다.
“아니, 이렇게 와준 것 만으로도 어딘가! 사실 그리 기대도 안하고 있었는데!” “후후. 그랬느냐? 그래도 네가 이리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름대로 온 보람이 있구나.” “나도 마찬가지네 백선! 그 사악한 놈 때문에 아주 골치 아픈 상황이었는데! 그대가 와준 걸 보니 희망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야!”
백선이 있으면 마왕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어쩐지 이제 다 됐다는 것처럼 웃으면서, 백선의 손을 흔드는 요화.
그런 요화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백선은, 어딘지 모르게 걱정이 담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진정하란 듯이 가볍게 요화의 어깨를 토닥였다.
“진정하거라. 그 마왕을 어찌할지는, 일단 한 번 보고 결정할 생각이니...” “으음. 걱정 마라 백선! 분명 보자마자 절대 가만둬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 테니까! 생긴 것 뿐만 아니라 하는 짓까지 어찌나 끔찍하던지...! 감히 내게 그런 치욕을 주고, 내 아이들까지...!” “...흐음. 아무래도 이야기를 좀 들어봐야 할 것 같구나.”
무엇인가 너무나도 분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떠는 막내 신수의 모습.
그 막내 신수의 몸에 베인 사악한 기운과 음란한 냄새를 느끼던 백선은, 이것부터 해야겠다는 듯이 요화의 손을 잡고 그녀를 이끌기 시작했다.
“호월. 요화를 정화시키러 다녀오마. 잠시 청야와 대기하고 있거라.” “뭐!? 설마 요화, 이번에도 그 녀석에게...!” “어찌 된 일인지는 내가 들어보고 알려주마. 자. 요화. 몸을 정화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보거라.” “으, 음...! 역시 백선...! 알겠느니라. 일단 얼른 정화부터 해야겠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상태를 파악한 백선을 믿음직스럽게 바라보며, 그녀와 함께 동굴의 밖으로 나가는 요화.
오랜만에 반가운 재회를 한 두 암컷 신수는, 그렇게 손을 붙잡고 맑은 기운이 가득한 샘으로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