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64 - 610화 - 요화의 대응! (5)
“...흐음. 그렇군. 그 마왕이란 녀석과 매일 승부를 해야 한다라...”
보기만 해도 맑은 정기가 넘쳐흐르는 듯한 작은 호수. 그 곳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맞으며 몸을 정화하고 있는 요화.
그녀가 몸에 깃든 마왕의 독을 빼내는 동안, 백설은 호수 근처의 바위에 앉아 요화에게서 여태까지의 일들을 전해 들었다.
“그건 다소 성급한 판단이었구나. 척 봐도 그 마왕이 널 차지하기 위해 제안한 수이지 않느냐?” “그, 그렇지만... 잘만 풀리면, 그 놈을 날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고 붙잡아 둘 수 있다는 생각에...” “이미 승부를 제안한 시점에서 마왕은 널 상대할 자신이 있었던 거다. 네가 그런걸 몰랐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게... 아이들도 걱정되고, 자신없냐고 묻는 그 놈이 워낙 짜증나서... 그만, 나도 모르게...” “흐음...”
폭포를 맞으며 어린애처럼 변명하는 요화와, 그런 요화를 바라보며 가늘게 신음하는 백설.
이쯤이면 어지간한 부정은 정화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도 백선의 시야와 감각엔 요화의 몸에 깃든 사악한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표면에서 느껴지던 부정한 기운은 바로 정화되었거늘... 요화의 안에서 느껴지는 저 기운들은 거의 빠져나가지가 않는구나...’
맑은 에세르의 기운이 농축된 이 깨끗한 물에는, 아무리 진한 테세르라고 해도 금방 씻겨나가야 정상일 텐데.
하지만 요화의 자궁 쪽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테세르의 기운은, 마치 그녀의 자궁에 질척하게 들러붙은 것처럼 씻겨나가질 않고 있었다.
분명 샘의 맑은 기운이 요화의 몸 안쪽까지 파고들고 있는데. 자궁 주변에 결계라도 있는 것처럼 정화되지 않는 사악한 기운.
오늘 안으로 저 기운을 씻어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면서, 백선은 가만히 요화의 배를 응시했다.
‘그리 대단한 농도가 주입된 것은 아니야. 저게 평범한 테세르 였다면, 이미 진작에 요화의 기운에 소멸되었을 터...’ “...백선?” ‘이쪽 생명체 들에겐 맞지 않는 성질의 에너지가 테세르인데. 마왕의 테세르는 성질부터가 다르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저 마왕의 테세르는 결국...’ “배, 백선? 왜 그렇게 빤히... 조용히 있으니 좀 무섭다만?” ‘대상을 타락, 아니, 변질시키는... 제 3의 에너지나 마찬가지란 것이로군...’
묘하게 조용한 백선의 모습에 긴장된다는 듯이 당황하는 요화와, 그런 요화를 말없이 응시하기만 하는 백선.
무언가를 가늠해 보는 듯한 백선의 시선에, 요화는 어째서인지 몸의 털이 서는 듯한 불길함을 느꼈다.
‘이것을 잘못된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변화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흐음. 이게 세계수가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이유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으, 으음... 저, 백선? 무슨 생각을 그리...”
한동안 자신을 부르는 요화의 목소리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백선.
몸을 일으켜 바위에서 내려온 백선은, 이제 되었다는 듯이 요화를 불렀다.
“이제 그만 나오거라. 슬슬 그 승부란 것을 준비해야 할 것 같으니.” “어? 벌써? 아직 몸에 찝찝함이 남아있다만...” “그 정도로 정화했으면 급한 것은 넘겼을 게다. 계속 여기에 시간을 쓸 수만은 없는 일이니, 몸을 완전히 정화하는 건 나중에 천천히 하거라.” “으, 으음... 하긴. 계속 이러고 있다가 그 녀석과의 승부에서 지면 결국 의미 없는 일이기는 하지...”
무엇인가 납득이 되지 않은 듯한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온 요화가 불길에 휘감긴다.
그렇게 몸을 말리며 옷을 갈아입는 요화를, 부채로 입을 가린 채 묘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백선.
‘...변화, 인가...’
무표정한 이 신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그렇게 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백설의 안내를 받으며, 요화의 거처를 꼼꼼하게 파악해본 이후.
라디아에서 돌아오는 음수들을 맞이하면서, 나는 여유롭게 요화의 복귀를 기다렸다.
주술의 조건으로 매일 나와의 교미... 아니, 승부를 하기로 정해두었으니, 당연히 금방 돌아와서 나와의 승부를 준비할거라 생각했지만...
하지만 그 준비를 밖에서 하고 있는 것인지, 요화는 저녁이 가까워질 때까지 소식이 들리질 않았다.
에잉... 해뜨기도 전에 자리를 비웠으면서, 아직까지 돌아오질 않는다니...
그렇게 교미를 즐겼으면 좀 서로 감상도 말하고 여운도 즐기고 해야 될 거 아냐? 근데 무슨 원나잇이라도 한 것 마냥 얼굴도 안보여?
뭘 준비하든 어차피 오늘도 나와 교미하게 될 텐데 말이야. 진심모드인 이 마왕에겐 뭘 준비하더라도 통하지 않는다고.
쯧, 정말이지... 집주인이 손님을 놔두고 집을 비우다니...
원래라면 집주인인 요화와 가까워 지면서, 이 거처를 하나씩 허가 받는 것처럼 공략해 나가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이러니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네. 나 참...
괜찮겠어 요화~? 이런 식이면, 지루해진 내가 너 대신 네 제자들부터 손대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니, 그렇다기 보다... 이미 내 음수들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장난감 한 마리를 가지고 놀기 시작해 버렸거든?
“후, 하아... 저, 저기... 너무, 가깝...” “아하핫♥ 왜~? 우린 그냥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인데~?” “설마 누나들 곁에 앉아 있다고 부끄러워하는 건가요? 후훗♥ 귀여워라~♥” “함께 지내는 누나들도 많으니 익숙한 일인 텐데. 뭐가 그리 부끄러운 걸까요~? 쿡쿡♥” “꺄핫♥ 왜 그렇게 꼼지락거려? 혹시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은 거야?” “어머나~♥ 그러면 안되겠네요♥ 누나들이 같이 가줄까요? 소우마?” “으, 으흣...! 아, 아니... 괘, 괜찮... 아요...”
내 음수들 사이에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벌이라도 받는 것처럼 정좌하고 있는 어린 수컷.
아직 라디아에 있는 리안나와 페이엔을 제외한 나머지 음수들이, 소우마에게 강렬한 암컷의 냄새를 풍기며 그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푸흐흐. 새끼... 못 참겠다는 듯이 몸 떨어대는 것 좀 봐. 좋아서 아주 죽으려고 하는데?
아직 옷이 완성되지 않아서 노출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사이에 두고 귓속말을 하거나 발이나 손으로 슬쩍 찌를 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 저리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이라니... 주변에 누나들도 많으면서, 너무 암컷에 대한 내성이 없는 거 아냐? 큭큭.
하긴 뭐, 내 음수들은 고자나 게이라고 할 지라도 본인들의 노예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암컷들이기는 하지.
작정하고 죽은 시체도 빨딱 서게 할 강렬한 색기와 암컷 짐승의 체취를 뿌려대고 있는데. 그 어느 수컷이 견딜 수 있겠어?
아직 정자도 못 만드는 어린 수컷이어도, 내 음수들에게 유혹당하면 그대로 끝장이지. 그 날로 번식 자격을 박탈당하고 암컷들의 장난감이 되는 거라고.
“후후...♥ 소우마? 혹시 믿는 종교 같은 건 있나요? 없다면 우리 마왕교에 입교해 보는 건 어때요? 내가 직접 세례를 내려줄게요♥” “야 꼬맹이♥ 주술 말고 할 줄 아는 거 없어? 수컷이면 검 같은 것도 쓸 줄 알고 그래야지~♥ 누나랑 대련 같은 거 좀 해보는 게 어때?” “마법이나 학자 같은 건 관심 없나요? 마침 우리 카발로니아 행정관들의 장난감... 아니, 비서를 뽑고 있는데 말이에요♥” “으, 으으... 아니, 그게...”
푸흐흐. 용사라는 것 때문인가? 내가 적당히 괴롭히라고 하긴 했지만, 이거 다들 당장이라도 잡아먹으려는 듯한 느낌인데?
어차피 진심으로 수컷으로서 상대해주려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야. 아 하긴. 진심으로 상대하면 그것도 좀 문제지?
나에게만 허락된 음수인 건 둘째 치더라도, 내 음수들은 이제 평범한 수컷들은 감당할 수 없는 서큐버스 이상의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장난감으로 만들기도 전에 그냥 생명까지 빨려서 죽어버린다고. 큭큭.
아직 요화도 시간을 더 들여야 하는데 벌써 소중한 제자를 건드리면 곤란하지. 장난이 과해질 것 같으면 적당히 말려야겠어.
“저, 마왕님. 지금 막 요화님께서 복귀를... 어머? 소우마? 너 아직 여기 있었어?” “아...! 배, 백설 누나...!”
그렇게 내 음수들이 소우마를 괴롭히는 것을 구경하며, 오늘 밤엔 요화를 어떻게 즐길까 고민하던 도중.
요화가 돌아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던 백설이 찾아와, 소우마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왕이 오면 자기가 퇴치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이젠 마왕님 일행 분들과 제법 친해진 모양이네?” “어머? 그랬나요? 후후♥ 마왕님을 퇴치하겠다니, 소우마는 용기가 참 가상하네요♥” “쿡쿡♥ 그래도 이젠 그럴 맘은 안 들지? 소우마? 네가 마왕님을 퇴치하겠다니. 그런 거 딱 봐도 절대 불가능하잖아?” “아, 아니, 그게...”
세레스와 세실리아 두 모녀가 양 옆에서 달라붙자,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소우마.
우리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때문일까. 백설은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소우마를 친구를 사귄 동생을 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푸흐흐. 그보다 백설. 지금 요화가 복귀했다고?” “아. 네. 부탁하신 대로 마왕님이 기다린다고 말씀 드리려 했는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마왕님에게 본인이 도착한 걸 알리라고 하셨어요.” “오 그래? 이거 만나고 싶었던 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구만. 큭큭.”
이거 참~ 오자마자 날 찾았다고? 얼굴도 비추질 않고 밖을 싸돌아 다녔으면서?
아무래도 밖에서 뭔가 준비를 해온 모양인데~ 다짜고짜 날 찾는걸 보면 제법 자신이 있는 거려나?
푸흐흐. 신수라서 그런가 이거 포기할 줄 모르는구만. 뭐, 이렇게 나와주면 나야 즐기는 재미가 있으니 더 좋지.
요화 네가 까칠하게 굴면 굴수록 이 마왕을 더 흥분시킬 뿐이라고. 아직 한 번 졌을 뿐이라서 감이 안 오는 모양이지?
큭큭. 과연 그걸 깨닫는 데 얼마나 걸릴지... 어디 한 번 발악할 수 있는 데까지 발악해 보라고. 요화.
“음... 그런데... 본관이 아니라 산 정상 쪽으로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다른 신수 분들도 함께 오셨던데...” “엇? 그래? 몇 명이나?” “세 분이에요. 두 분은 청야와 호월이라고 저희도 자주 뵙는 분들이었지만... 한 분은 완전히 처음 뵙는 분이셨어요.”
흐음? 뭐야. 설마하니 지금 친구들을 데리러 나갔다 온 거야?
나와 내기 중이면서 굳이 다른 신수들을? 으음... 설마 그렇게 털렸는데, 날 힘으로 어찌 해보려는 건 아니겠지?
다른 신수가 끼어들더라도 규칙이 적용될 것 같은데... 아닌가? 내가 거기까진 규칙 설정을 안 했었나?
으음. 어차피 금방 함락될 거란 생각에 내 안전은 그리 신경을 안 썼는데... 그걸 눈치채고 더 늦기 전에 날 죽이려는 걸지도 모르겠는걸.
한 마리가 더 추가됐다라. 근데 내 음수들도 7마리나 있는데, 고작 4마리로 뭘 해보겠다는 거람?
뭐, 굳이 힘으로 날 제압해 보겠다면 어쩔 수 없지. 다시 한번, 요화의 몸에 교훈을 새겨주는 수 밖에.
“다들. 잠깐 등산이나 하고 오자. 요화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을 데려왔는데 우리도 같이 가줘야지.” ““네♥ 마왕님♥””
내가 고개를 까닥이며 부르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와 옷을 놔둔 방으로 향하는 음수들.
그런 음수들의 모습에 내가 적이었다는 게 떠오른 것인지, 백설은 묘하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 마왕님. 요화님은 그게...” “아~ 걱정하지마 백설. 설령 요화가 날 죽이려고 해도, 난 요화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거든?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상대할 거니까. 너무 긴장하진 말라고.” “그, 그러면 다행이구요... 부디, 너무 심하지 않게 부탁드려요...”
푸흐흐.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니. 역시... 백설은 벌써 내가 얼마나 우월한 존재인지 느끼고 있는 모양인걸.
뭐, 기특한 백설이 이렇게 부탁하니까. 다른 놈들은 몰라도 요화만큼은 최대한 멀쩡하게 데려와야지.
“으, 윽...! 너, 너...! 요화님을 다치게 하면, 가만 두지...!” “큭큭.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 걱정하지 마 새꺄. 네가 아니더라도 요화는 멀쩡하게 데려올 거니까 말이야.” “......정말, 이지...?” “그래~ 그래야 오늘도 요화랑 내가 즐거운 밤을 보내지 않겠어? 아, 넌 오늘도 따라와야 하니까. 미리 알고 있으라고. 푸흐흐.” “윽... 오늘도, 요화 님을...”
싸움의 낌새를 느끼곤 음수들의 향기에 취해있던 머리를 흔들며, 소우마가 나에 대한 적대심을 내비친다.
그 수컷의 이마를 튕기며 씨익 웃어주자, 소우마는 무어라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듯이 이마를 붙잡은 채 나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부모와도 같은 암컷을 따먹을 거라고 은유적으로 말하는데도, 그게 무엇인지 모른 채 불쾌함만을 내비치는 어린 수컷.
성지식이 부족한 이 어린 수컷이 어떻게 망가질지를 기대하며, 나는 음수들을 따라 요화를 만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